어렸을 때 누구나 상상해봤을 것이다. 인형이 말을 할 수 있다고, 우리 강아지가 어느 날 나에게만 말을 걸 것이라고. 어린 엘리에게도 말을 하는 토끼가 있었다. 그 토끼의 이름은 이었다. 그 시절, 다섯 살 터울의 오빠와 다정한 부모님과 함께 사는 엘리는 평화로운 유년생활을 보내고 있었다. 평화롭다는 것이 꼭 행복하다는 말과 같은 뜻은 아니다. 평화로워 보이는 유년시절에서도 나름의 굴곡은 있고, 그런 굴곡들이 성인이 되었을 때도 끊임없이 그때로, 신이 토끼였을 때로 계속 엘리를 부른다.  


엘리와 엘리의 오빠 조, 그리고 엘리의 친구 제니와 조의 친구인 찰리. 이 네 명의 아이들을 중심으로 1부가 흘러간다. 1부는 말 그대로 어린 시절의 이야기다. 엘리는 어딘가 엉뚱한 면이 있는 소녀였다. 선물 받은 토끼에게 이라는 이름을 지어주고 모든 것을 사랑하는 신은 똥도 사랑을 하냐며 다소 신성모독적인 발언도 툭툭 내뱉는다.

 

토끼가 신일 수도 있다고 생각하세요?” 나는 별생각 없이 물었다.

토끼가 신이 되지 못할 이유는 전혀 없지.”

 

 

 

 

 

 

 

 

 

마냥 행복하기만 할 것 같던 유년시절에 엘리네 가족에게는 끊임없이 사건이 벌어진다. 엄마가 암선고를 받기도 하고, 엘리는 친하게 지냈던 옆집 할아버지에게 몹쓸 짓을 당한다. 그리고 조는 친구인 찰리를 사랑하게 되고, 아빠는 또 복권에 당첨되어 큰 돈을 벌기도 한다. 엘리의 친구인 제니는 갑자기 떠나버린다. 이런 여러 가지 사건들이 엘리와 조를 먹여서 키우고, 그들은 어느새 성인이 된다. 1부가 어린 시절을 다룬 이야기였다면 2부는 이들이 성인이 된 후의 이야기다. 남다른 우애를 자랑했던 엘리와 조는 이제 따로 떨어져서 살게 되어 각자의 길을 걷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911 테러가 발생했고, 뉴욕에 살던 조는 행방불명이 된다.

인생은 우리에게 행운도 주지만 불행도 안겨준다. 늘 웃음만 가득했던 것 같은 유년시절도 잠시 생각해보면 마냥 행복하지만은 않았을 것이다. 좋은 것만 기억하려는 노력 때문에 잠시 잊고 사는지도 모르겠다. 이 작품을 읽으면서 내내 현실적이라는 생각을 했다. 1부는 어린시절의 얘기라서 그랬는지 아이들만의 상상이 그대로 담겨 있었다. 몸에서 동전을 꺼내는 아이, 그리고 나에게 말을 거는 토끼. 사건들도 정확하게 서술되지 않고 몇 가지 정황을 제시하면서 이런 일이었겠구나, 하며 생각하게끔 한다. 어린아이의 상식으로는 이해가 되지 않는 일이었을 테니까. 그러한 일들이 차곡차곡 쌓여서 어린아이는 키가 자라고 몸이 커져서 성인이 된다.

 

오래도록 잊힌 채 머물러 있는 건 없어, 엘리. 때로는 우리가 특별하다는 걸, 우리가 여전히 여기에 있다는 걸 세상에 일깨워줘야 해,”

  사람은 듣는 책이라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읽는 책이 아니라 듣는 책. 사람마다 갖고 있는 사연이 있고, 지나온 인생이 있어서 한 권의 문학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는 뜻이다. 엘리도, 조도, 찰리도, 제니도 모두 한 권의 책이다. 무던한 인생을 보내왔을 것 같던 사람들도 자세히 들여다보면 유년시절부터 시간이 켜켜이 쌓여서 만들어진 것 같다.

소박한 꿈들이 누구에게나 이루어지던 그 시절, 내 영혼의 목격자이자 내 유년 시절의 그림자였던 그에 대해. 사탕이 1페니밖에 안 하고 신이 토끼였을 때였다.

이 작품은 거의 모든 형태의 사랑을 담고 있다. 남녀 간의 사랑은 물론이고, 애완동물에 대한 사랑, 아무도 모르는 친구의 아픔을 이해하는 사랑, 동생의 모든 것을 품어주고 숨겨주는 오빠의 사랑, 동성끼리의 사랑, 그리고 나이차이가 많이 나는 친구와 나누는 우정, 피가 섞이지 않았음에도 가족처럼 서로를 이해하는 사랑. 사랑한다고 직접 말하지는 않아도 누가 봐도 이들은 서로를 사랑하고 있다. 때문에 혼자서는 감당할 수 없었던 불행들도 사랑의 힘으로 버티고 이겨내고 끊임없이 앞으로 나아가는 것이다. 이들의 경계 없는 사랑 덕분에 이 작품은 누구에게나 사랑받을 것이며 따뜻한 온기를 전할 것이다.


 

그들이 주고받는 정감어린 농담은 재미있고 편안했으며, 장난은 친밀하면서도 깊이가 있었다. 그것이 요란한 말을 사용하지 않는 그들만의 사랑해였던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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