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제 강점기 최초의 여성 의병장 윤희순 여성 인물 도서관 6
이진미 지음, 달상 그림 / 청어람주니어 / 202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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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 바로 저거로구나!'

희순의 머릿속에 번뜩 떠오른 것은 어린 시절 어른들을 따라 흥얼거렸던 <경복궁 타령>이었다.

"노래는 뭇사람의 마음을 하나로 모으는 힘이 있다는 뜻이란다. 노래를 함께 부르며 지치고 힘든 마음을 서로 위로하고, 위로받는 게지."

외당의 다정한 목소리가 엊그제 들은 것처럼 또렷이 떠올랐다.

'노래는 힘이 세다고 하셨지. 그래, 노래를 지어 퍼뜨리는 거다!'

희순은 그 자리에서 종이와 붓을 꺼내 노랫말을 짓기 시작했다. 어찌 표현하면 나라 사랑하는 마음을 잘 이끌어 낼까 고민하며 노랫말을 고치고 또 고치느라 날이 새는 줄도 몰랐다. 노래를 지으며 희순은 노랫말이 입에 잘 붙는지 소리 내어 불러 보았다. 53

윤희순 의사(1860~1935)는 1895년 명성황후 시해 사건과 단발령에 대항한 의병부대에게 밥을 지어주고, 의병가를 만들어 퍼트리며 의병활동을 시작했어요. 노래의 힘이 세다는 것을 어린 시절 경험으로 알고 있는 노래가 힘이 세다는 사실을 이용해 지금의 어려움을 이겨내는데 힘을 실어 주기로 했지요.

우리나라 의병들은 나라 찾기 힘쓰는데

우리들은 무얼 할까 의병들을 도와주세.

내 집 없는 의병대를 뒷바라지하여 보세.

...

우리 조선 아낙네들 나라 없이 어이 살며

힘을 모아 도와주세.

만세 만세 만만세요 우리 의병 만세로다.

여성이 앞장서서 일을 추진하기 어려웠던 시절, 의병 활동을 장려하며 군자금과 식량을 조달했어요. 탄약과 무기를 직접 제조하여 공급하고, 여성 의병을 조직하는 등 적극적으로 독립활동을 이어나갔어요. 1910년 경술국치로 국권을 상실하게 되자 가족과 함께 만주로 이주하여 항일 운동을 계속해요. 조선인뿐만 아니라 중국인들에게도 항일운동의 필요성을 전파하고 군자금을 모았지요. 1912년에는 '노학당'을 세우고 '항일, 애국, 분발, 향상'의 정신으로 수많은 독립운동가들을 길러냈어요. 하지만 일제의 감시와 탄압으로 학교는 3년 만에 문을 닫게 되어요. 좌절의 순간, 윤희순은 어렵고 힘든 길을 함께 걸었던 이들의 얼굴을 떠올려요. 산만했던 마음을 비우고 다시 시작할 수 있는 힘을 얻어요.

'조선의 독립이 어디쯤 있는지 알 수 없지만 우리가 가닿지 못한 그곳까지 당신이 힘내어 걸어 주오. 당신도 가닿지 못한다면 누군가 또 뒤를 이어 걷지 않겠소. 황소처럼 뚜벅뚜벅, 한 걸음 한걸음 걷다 보면 언젠가는 그곳에 도달할 수 있지 않겠소. 그러니 힘을 내주오. 당신은 당신이 갈 수 있는 곳까지만 가면 된다오.'

희순은 창밖을 바라보았다. 휘영청 떠오른 둥근 달덩이 너머로 외당과 제원, 항골 아낙들, 경도와 그의 아내, 종수와 노학당 제자들이 환하게 웃고 있었다. 희순은 자리에서 일어섰다.

'이대로 주저 않지 않겠다. 천 번을 넘어지면 만 번을 일어서겠다. 내 마지막 숨이 허락하는 그날까지 멈추지 않고 걸어가겠다.' 97

일제 강점기 최초의 여성 의병장, 윤희순 의사

덕분에 이렇게 우리가 살 수 있는 거지요. 그분의 지혜와 용기를 되새기며, 오늘을 살아갈 용기를 얻어 봅니다.

보통의 인물 소개서와 다르게 책을 시작하며 [인물 관계도와 연표]가 들어 있어요. 간단하게 인물에 대해 알고 책을 읽으니, 조금 더 여유 있게 이야기를 읽을 수 있어요. 어린 시절 이야기를 읽으며, 인물이 가지게 되는 삶의 태도나 특성들이 어떻게 다져지고, 키워졌는지를 알 수 있어서, 사건 당시의 행동을 더 잘 이해할 수 있고요. [ #항일_의병_운동, #삼일_운동, #의병장 #독립운동가, #일제_강점기_여성_항일_운동 ] 해시태그로 정리되어 있는 [그때 그 사건], [인물 키워드]로 다시 한번 윤희순 의사가 살았던 그때의 상황과 역사적인 정보를 같이 알 수 있어, 좀 더 입체적으로 인물에게 접근할 수 있어요.

출판사에서 활동지를 제공해 줘요. 활동지는 [책 소개], [독후 활동지]로 나누어져 있어요.

[책 소개]는 간단한 소개 글, 관련 교과, 연계 단원으로 정리해 주고 있어 책을 한눈에 확인할 수 있어요. 연계 단원으로 5학년 2학기 사회가 나오는데요. 국어 5학년 2학기(가) [1단원 마음을 나누며 대화해요] 권기옥((우리나라 최초의 여성 비행사) 독립운동가에 대한 글을 읽을 때, 도덕 5학년 [3단원 긍정적인 생활] 부분에서 함께 소개해도 괜찮겠어요.

[독후 활동지]는 전중후로 나뉘어 있어 필요에 따라 PDF를 사용하거나 HWP 파일을 편집해 활용할 수 있어서 좋아요. 관찰 질문, 생각 질문, 토론 질문이 적절히 섞여 있는데, 독서 중 활동에서는 '오늘날의 군자는 어떤 사람인지, 친구들에게 군자라고 생각하는 사람 소개하기' , 독서 후 활동에서는 ' 나를 위로해 준 노래의 가사 쓰고 이야기하기' 활동이 눈에 띄어요. 학생들이 군자의 의미를 어떻게 받아들일지, 과거의 인물을 보며 현재의 나의 관점에서 어떻게 생각을 풀어갈지 궁금해지는데요. 단편적인 개별 지식의 습득을 넘어서 학습 내용을 자기 지식화 혹은 체화하고 이를 통해 배운 것을 새로운 상황에 적용해 보는 '깊이 있는 학습'에 적합하게 구성되어 있어 활용하기 좋아요.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서평을 작성하였습니다.

#청어람주니어 #의병가 #안사람_의병대 #의병장 #독립운동가 #윤희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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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냥 씨의 동물 직업 상담소 창비아동문고 329
안미란 지음, 유시연 그림 / 창비 / 202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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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잡러 고양이 그냥 씨가 낮 근무를 시작했어요.
카페에 들어오는 손님을 맞이하고, 손님들의 사진 모델 서비스도 제공하는 카페 영업을 담당해요. 해 질 무렵이 되면 두 번째 일을 하기 위해 사무실로 이동해요. 동물 직업 상담소 소장이 되어 도움이 필요한 동물들을 위해 직업이나 집을 소개해 주고, 도시 생활에 필요한 일들을 안내해 주는 생활 안내자 역할을 하고 있어요.

"인간이 동물을 싫어할 때는 두 가지 이유가 있어. 첫째, 원래 있어야 할 곳을 떠나 마음대로 돌아다닌 것. 사실 이건 인간 탓이지만 걔들은 그렇게 생각 안 해."
쿠마짱과 폴라스키는 입을 꾹 다물었다. 첫 번째 이유가 자기들을 가리킨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둘째, 인간에게 이용당하기 거부한 것. 고라니처럼 지나치게 예민해서 우리에 가둬 기르기 힘들거나, 코알라나 판다처럼 편식이 심하고 까탈스러운 경우야. 그것도 아니면 호랑이나 표범처럼 포악스럽거나."
포악스럽다는 말을 할 때 슬그머니 폴라스키를 보았다. 사냥꾼이라는 자랑스러운 마음이 다치지 않기를 바랐다. p.17

그냥 씨에게 쿠마짱과 폴라스키가 찾아왔어요. 줄어든 숲에서 먹을 것을 찾아온 일본 출신 흑곰 쿠마짱, 빙하가 녹아 물범 사냥이 힘들어져 도시의 찻길을 헤맨 러시아 출신 북극곰 폴라스키. 그들의 능력과 경력으로는 직업 찾기가 어렵다며 현실적인 조언을 해 주는데요. 제 마음을 보는 것 같아 한편이 따끔따끔하네요.
그렇지만, 도움이 필요한 이를 내치는 건 예의 바른 생명체 답지 못한 거지요. 예의 바른 고양이 그냥 씨는 그들의 장점을 살려 키즈 카페, 편의점, 냉동 창고에서의 면접을 추진해요.

비닭이(비둘기)부부와 황조롱이 부부, 어미 너구리와 다섯 아기들, 홀로 남겨진 아기 너구리까지 저마다 살기 위해 도시에 모였어요. 그냥 씨의 도움이 있었기에 도시에서 조금이나마 안전하게 살아갈 수 있게 되었어요.
전달하려는 메시지가 조금 무거워요. (하지만 재미를 잃진 않았어요.) 제대로 된 휴식을 취하지 못하는 쿠마짱, 월급을 제대로 받지 못하고 근무 환경 속 질병으로 고통받는 폴라스키의 모습들을 보게 되면서 법적 가족, 사회적 소수자, 이주 노동자, 동물권, 노동 윤리, 생태 환경, 문화 다양성, 생활 안전, 사회 갈등, 의료 문제, 다문화 등등의 단어를 떠올리게 돼요.


"야생 동물이 자연 속에 있으면, 즉 인간의 구역인 도시로 넘어오지 않으면 아무 문제가 없어. 그런데 도시로 오는 순간, 공포의 괴물이 된다 이거지."
'자기들이 먼저 선을 넘어왔는데?"
이건 쿠마짱의 말.
"야생에서 살 만하면 굳이 왜 여기까지 왔겠어?"
으르렁대는 폴라스키의 말. p.17

'선넘은' 인간들로 인해 생존의 위협을 받게 된 동물들은 사람들의 구역으로 내려올 수밖에 없었지만, 사람들에게 피해를 주기 때문에 "유해"동물이 되어 버렸네요. 그들이 한자리에 모였어요. 쿠마짱, 폴라스키, 그리고 그냥 씨와 아기 너구리. 그들의 도시 생활 분투기에 눈물 찔끔, 짠한 마음도 드는데요.
그들에게 응원의 목소리를 더해 주고 싶어요. 함께 하는 친구들과 좋아하는 일을 계속해 나가며 다음 단계로 나아갈 수 있기를요. 그들이 내딛는 걸음걸음마다 작은 싹이 트고 잎이 무성해지며 꽃이 피어나기를 응원해요.

생선을 보자 오랜만에 나도 호들갑스러워졌다. 맛있는 음식을 앞에 두고 기분이 좋아지는 건 당연하니까.
"그거 알아? 사람도 생일날 생선 주는 거."
카페 손님들은 생일 축하 자리에서 선물을 줄 때 '생선'이라고 했다. 생일 선물을 줄여서 하는 말이지만, 나는 좀 아는 척을 했다.
"음, 생선은 모두가 만족하는군."
쿠마짱이 흐뭇하게 생선을 잡았다. 흰곰도 검은 곰도, 너구리도 고양이도 좋아하는 생선을 실컷 먹으며 떠들었다. 우리는 꿈처럼 행복했다. p.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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싹이 트고 잎이 무성해지는 그 나무에 '관심'이라는 이름으로 물 한 번 주고 싶어요. 저 또한 그 속에서 아름다움을 함께 즐길 수 있겠지요.
내가 잘 가고 있는 건지 계속 관찰하고, 확인해야 다른 누군가도 힘들지 않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어렵다면 멈추기도 하고 속도를 줄이기도 하면서 그렇게 가 봐야지요. 오늘도 조금은 나은 방향으로 갈 수 있게 노력해 봐요.


#그냥씨의동물직업상담소 #안미란 #유시연 #창비 #소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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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일주일 전으로 갔다 라임 청소년 문학 62
실비아 맥니콜 지음, 이계순 옮김 / 라임 / 2024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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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나간 일을 뼈저리게 후회해 본 적 있는가? 수백만 번을 곱씹으며 지금과 다른 결말을 상상해 본 적은.....
p.7

'범생이 땅콩' 나오미는 반려견 디젤의 죽음, 부모님의 별거로 혼란스러움이 가득한 여름방학을 보내요. 나오미는 같은 반 친구인 모건을 따라 호수로 가는데요. 잘나가는 친구들은 모두 물속으로 뛰어들며 놀아요. '범생이 땅콩'에 '썩은 달걀'까지 더하고 싶지 않은 그 마음에 나오미도 깊게 숨을 들이 마시고는 물속으로 과감하게 몸을 던지지만 칠흑 같은 어둠 속으로 가라앉게 돼요.
죽는다는 게 바로 이런 느낌일까? " 멀리서 들리는 모건의 목소리를 들으며 모건을 믿지 말아야 했다는 생각과 함께 죽음을 맞이해요.

그런데 어찌된 일인가요. 눈을 뜨니 집이네요. 반려견 디젤의 목소리가 들리고, 머리에 혹이 난 것을 제외하고는 멀쩡하게 살아 있는 자신을 발견해요. 죽기 딱 일주일 전으로 돌아 왔어요. 나오미는 모건이 자꾸만 가까이 다가 오는 것도 한편으로는 좋기도 하지만 자신을 죽게했다는 사실이 떠올라 부담스스러워요. 디젤이 무지개 다리를 건너지 않게 챙겨야 하고, 엄마 아빠와의 관계도 회복시키고 싶은 나오미는 일주일의 시간이 바쁘기만 해요. 나오미가 혼자서 모든 일을 할 수 있을까 걱정스러운데요. 죽기전과 조금은 다른 변화가 생겼어요.

그때와는 달리, 지금은 이런 일을 도와줄 친구가 생겨서 더 든든했다. 엄마처럼 여자 형제는 없지만 내 곁에는 모건이 있었다. 디젤까지 합치면 친구가 둘이나 되는 셈이었다. 지금까지 나는 내가 혼자 있는 걸 좋아하는 줄로만 알았다. p.159

아무도 믿지 못했던 나오미가 다른 이와 함께한다는 것이지요. 언뜻 보면 어렵고 힘든 일이지만 결국 내 마음에서 시작되는 거지요. 자신의 말을 멈추고 다른 이의 말에 귀 기울이는 일이 먼저 아닐까 해요. 오래 걸리고 지난한 일일 수도 있지만, 그 속에서 믿음과 신뢰를 느낄 수 있어요. 함께 이야기 나누며 교감하는 시간이 곧 나를 이해하고 타인을 받아들일 수 있게 만들어요. 나오미도 모건의 말과 행동에 기대와 실망을 반복하며 결국 그와의 관계를 받아들여요. 그 속에서 이해와 배려를 배우는 모습이 좋아요.

타인과의 관계 속에서 배우는 것이 결국 내 삶과 온전히 연결되는 시간인지도 모르겠어요.

#나는일주일전으로갔다 #실비아맥니콜 #라임 #라임서포터즈 #청소년소설 #라임청소년문학 #재미있는책 #타임슬립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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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 놓을 용기 - 관계와 문화를 바꾸는 실전 평어 모험
이성민 지음 / 민음사 / 202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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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존중한다는 의미로 여전히 '도랑 씨'라고 부르는 남편에게 책의 서문을 읽자마자 바로 평어를 설명하고 같이 쓰자고 했지요. 이건 반말과는 조금 다른 '평어'라고 이야기했지만, 섣부른 시도였나 봐요. 책 다 읽고 다시 이야기하겠다고 말하고 조용히 읽기 시작했어요.
[말 놓을 용기(이성민, 민음사)]를 꺼내들고 차례를 훑어보고 책을 한 장 한 장 넘기는데, 음.. 분명 우리말인데 이해하지 못하고 있는 자신을 발견했지요.

무슨 글자인지 알지만 무슨 뜻인지 모르겠다. '까막눈'은 아니나 '실질 문맹'이다. 이게 다 호모 사피엔스의 후손답게 자연스럽게 산 탓이다. 그러기에 아리스토텔레스도 경고하지 않았던가. 품성의 덕 중 그 어떠한 것도 우리 안에서 저절로 생겨나지 않는다고. 책을 읽으려면 상당히 의식적인 노력이 필요하다는 소리다. 자연스럽게 머리에 들어오지 않는 게 도리어 당연하다.
_어른의 어휘력 24쪽/유선경 지음/ 앤의 서재

이 책을 보면서 내가 '실질 문맹'에 포함된다는 걸 절실히 느꼈는데요. 그래도 한번 정리해 봅니다. 지금 이해하지 못해도 후일 다 읽으며 되새김질해 볼 수 있게요. 평어는 저자가 디자인 대안학교 '디학'에서 처음 사용하기 시작했고 사용하는 사람들이 많아지고 있어요. 존댓말과 반말로 이루어진 우리말 체계를 디자인적인 관점으로 보고 그 속에서 발생하는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한 방법으로 '평어'를 제안하고 있어요.

서로가 함께 사용하는 말, 평어
= 이름 호칭 + 반말
= 예의 있는 반말

길동아, 안녕(X) 길동, 안녕(O)

이름 호칭의 중요성을 영어학자 김미경은 이렇게 말한다. "존대법에서 벗어나서, 누군가를 이름으로 부른다는 것은 상대를 개성을 가진 한 개인으로 인식한다는 뜻이기도 하다." 그렇기에 평어의 이름 호칭이라는 부품은 아주 중요하다. 115쪽

평어를 구성하는 두 가지 부품은 이름 호칭과 반말이다. 반말을 선택한 여러 이유를 다시 한번 종합해 정리해 보자.
첫째, 존댓말이 있는 언어는 한국말과 일본말 말고는 없다. 권위주의적 문화를 가졌다고 하는 중국의 언어도 존댓말은 없다.
둘째 권지현이 예리하게 지적하듯, 반말은 "우리에게 가장 자연스러운 언어"이다. 우리는 극존칭을 사용할 때도 생각은 반말로 한다. 생각을 자연스럽고 자유롭게 표현하려면 반말을 써야 한다.
셋째, 평등의 가치는 높이거나 낮춤으로써 실현되는 것이 아니라 동등할 때 실현되는 것이다. 반말은 평등이라는 시대정신에 부합하는 말이다. 우리는 한국 사람의 숙명과도 같은 숙명과도 같은 언어적 불평등 상황을 바꿀 때도 되었다. 끝으로 한국 사람도 싸움이 격해질 때는 서로 반말을 쓴다. 싸움을 구경하는 사람도 그것을 이상하게 여기지 않는다. 한국 사람에게 없는 언어적 평등은, 정확히 말해서, 적대를 통해 생겨나는 평등이 아니라 우호를 통해 생겨나는 평등이다. 나는 이 우호를 통해 생겨나는 평등이 - 모험의 낡고도 유구한 모형인 전쟁이 아니라 - 새로운 삶의 모험 내지는 프로젝트를 위해 필요하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131-132쪽

존댓말 속에 갇혀 행동도 사고도 제한적이 될 수 밖에 없다는 저자의 말에 공감하며 새로운 한국말인 '평어'에 다가갈 수 있는 시간이었어요. 아르떼 365에서도 관련 기사를 볼 수 있어서 더 반가웠네요. 저도 차곡차곡 저장해 두었다가 사용해 보고 싶어요.

말 에너지를 매일매일 차곡차곡 아끼다 보면, 그 에너지가 꼭 필요할 때, 예를 들어 친구에게 아름다운 말을 선물하고 싶을 때, 말 저금통에서 에너지를 꺼내 쓸 수 있을 것이다.
"말도 저축이 가능?"
"응, 가능."
왜냐하면 사람에게는 타고난 비례의 감각이란 것이 있으니까. 중간 길이의 문장들이 지속되는 말 생활은 사실 지루하다. 그렇지만 짧고도 명료한 말들을 맛보면서 사는 사람이라면, 길고도 세련된 말들의 빈자리가 느껴질지도. 73쪽

#말놓을용기 #이성민 #민음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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색깔 없는 세상 라임 그림 동화 35
쥘리에트 아담 지음, 모렌 푸아뇨네크 그림, 김자연 옮김 / 라임 / 2024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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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린의 엄마와 아빠는 오래전에 색깔을 잃어버렸어요.
아빠는 원래 사탕처럼 분홍색이었던 것 같고,
엄마는 체리처럼 빨간색이었던 것 같아요.
그런데 지금은 그런 모습이 잘 상상이 안돼요.
엄마와 아빠는 항상 회색이거든요.
언제나 슬프고 심각한 표정을 짓고 있지요.
_색깔 없는 세상 중에서

친구들은 회색빛을 머금기 시작했지만 솔린은 여전히 해바라기처럼 반짝이는 노란색이에요. 부모님은 남들과 다른 솔린을 걱정해요.
솔린은 씁쓸해 박사님의 '회색 되기' 프로그램에 참여하게 되는데요. 프로그램에서 맞닥뜨리는 좌절의 순간들마다 솔린은 새로운 방법을 찾고, 주변의 아름다움에 집중해요. 딱 봐도 씁쓸해 박사님의 처방이 실패로 돌아갈 것 같지요.

"솔린, 오늘 어떤 걸 배웠니?"
엄마가 물었어요.
"세상이 매우 아름답다는 걸 배웠어요."
솔린이 고양이를 끌어안으며 대답했어요.
"그렇구나, 다른 건?"
아빠가 초조한 목소리로 물었어요.
"다른 건 없어요. 세상은 언제나 아름다워요. 그게 다예요."
_색깔 없는 세상 중에서

어떤 일이 하고 싶은지에 대해 질문을 했더니, 직업별 연봉 순위를 먼저 검색하는 아이들이 많아요. 딱히 하고 싶은 것도 없고, 재미있는 일도 없는 그들에게는 '돈'이 중심이 될 수밖에 없어요. 스펙 쌓기에 여념이 없는 지금의 청년들이 떠올라요. 하고 싶은 일도 없고 재미있는 일도 없는 이들에게 [색깔 없는 세상]은 너무 당연하겠지요. 세상의 기준에 맞춰 모두가 다 같은 목표를 향해가는 회색이요.
내가 가진 감정, 생각, 느낌은 다른 사람과는 분명 다르잖아요. '내 색깔 찾기' 프로그램을 시작해 보는 건 어떨까요. 하고 싶은 이야기는 무엇인지, 나에게 재미있는 일은 무엇인지 나 자신을 들여다보며 구분하기 미묘했던 나만의 색깔에 이름을 붙여줘 보는거예요. 그리고 내 색깔을 지켜가는 일을 해 보는 거예요. 그 어떤 형식에도 얽매이지 않고 다양한 방법들을 시도해 보는 '하이브리드한 도전해 보기', 생각만 해도 재미있지요. 더불어 서로의 색깔을 대우하고 세심하게 존중해 준다면 우리의 세상은 한층 더 생기 있고 아름다워질 거예요.
모두가 세상 모든 사물을 있는 그대로 정확하게 그릴 필요는 없어요. 자유롭고 주관적인 눈으로 보면 어때요. 새로움을 발견하고, 해석해 보며 자신의 감성을 표현하는 즐거움을 알아가는 거예요. 모두가 고유의 색을 잃어버리고 무채색으로 살아가는 세상 속에서 자신의 색깔을 지켜가는 솔린의 이야기가 그래서 더 좋아요.


#색깔없는세상 #쥘리에트아담 #모렌푸아뇨네크 #김자연 #라임 #라임서포터즈 #자신만의색깔 #개성 #자존감 #성장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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