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냥 씨의 동물 직업 상담소 창비아동문고 329
안미란 지음, 유시연 그림 / 창비 / 202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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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잡러 고양이 그냥 씨가 낮 근무를 시작했어요.
카페에 들어오는 손님을 맞이하고, 손님들의 사진 모델 서비스도 제공하는 카페 영업을 담당해요. 해 질 무렵이 되면 두 번째 일을 하기 위해 사무실로 이동해요. 동물 직업 상담소 소장이 되어 도움이 필요한 동물들을 위해 직업이나 집을 소개해 주고, 도시 생활에 필요한 일들을 안내해 주는 생활 안내자 역할을 하고 있어요.

"인간이 동물을 싫어할 때는 두 가지 이유가 있어. 첫째, 원래 있어야 할 곳을 떠나 마음대로 돌아다닌 것. 사실 이건 인간 탓이지만 걔들은 그렇게 생각 안 해."
쿠마짱과 폴라스키는 입을 꾹 다물었다. 첫 번째 이유가 자기들을 가리킨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둘째, 인간에게 이용당하기 거부한 것. 고라니처럼 지나치게 예민해서 우리에 가둬 기르기 힘들거나, 코알라나 판다처럼 편식이 심하고 까탈스러운 경우야. 그것도 아니면 호랑이나 표범처럼 포악스럽거나."
포악스럽다는 말을 할 때 슬그머니 폴라스키를 보았다. 사냥꾼이라는 자랑스러운 마음이 다치지 않기를 바랐다. p.17

그냥 씨에게 쿠마짱과 폴라스키가 찾아왔어요. 줄어든 숲에서 먹을 것을 찾아온 일본 출신 흑곰 쿠마짱, 빙하가 녹아 물범 사냥이 힘들어져 도시의 찻길을 헤맨 러시아 출신 북극곰 폴라스키. 그들의 능력과 경력으로는 직업 찾기가 어렵다며 현실적인 조언을 해 주는데요. 제 마음을 보는 것 같아 한편이 따끔따끔하네요.
그렇지만, 도움이 필요한 이를 내치는 건 예의 바른 생명체 답지 못한 거지요. 예의 바른 고양이 그냥 씨는 그들의 장점을 살려 키즈 카페, 편의점, 냉동 창고에서의 면접을 추진해요.

비닭이(비둘기)부부와 황조롱이 부부, 어미 너구리와 다섯 아기들, 홀로 남겨진 아기 너구리까지 저마다 살기 위해 도시에 모였어요. 그냥 씨의 도움이 있었기에 도시에서 조금이나마 안전하게 살아갈 수 있게 되었어요.
전달하려는 메시지가 조금 무거워요. (하지만 재미를 잃진 않았어요.) 제대로 된 휴식을 취하지 못하는 쿠마짱, 월급을 제대로 받지 못하고 근무 환경 속 질병으로 고통받는 폴라스키의 모습들을 보게 되면서 법적 가족, 사회적 소수자, 이주 노동자, 동물권, 노동 윤리, 생태 환경, 문화 다양성, 생활 안전, 사회 갈등, 의료 문제, 다문화 등등의 단어를 떠올리게 돼요.


"야생 동물이 자연 속에 있으면, 즉 인간의 구역인 도시로 넘어오지 않으면 아무 문제가 없어. 그런데 도시로 오는 순간, 공포의 괴물이 된다 이거지."
'자기들이 먼저 선을 넘어왔는데?"
이건 쿠마짱의 말.
"야생에서 살 만하면 굳이 왜 여기까지 왔겠어?"
으르렁대는 폴라스키의 말. p.17

'선넘은' 인간들로 인해 생존의 위협을 받게 된 동물들은 사람들의 구역으로 내려올 수밖에 없었지만, 사람들에게 피해를 주기 때문에 "유해"동물이 되어 버렸네요. 그들이 한자리에 모였어요. 쿠마짱, 폴라스키, 그리고 그냥 씨와 아기 너구리. 그들의 도시 생활 분투기에 눈물 찔끔, 짠한 마음도 드는데요.
그들에게 응원의 목소리를 더해 주고 싶어요. 함께 하는 친구들과 좋아하는 일을 계속해 나가며 다음 단계로 나아갈 수 있기를요. 그들이 내딛는 걸음걸음마다 작은 싹이 트고 잎이 무성해지며 꽃이 피어나기를 응원해요.

생선을 보자 오랜만에 나도 호들갑스러워졌다. 맛있는 음식을 앞에 두고 기분이 좋아지는 건 당연하니까.
"그거 알아? 사람도 생일날 생선 주는 거."
카페 손님들은 생일 축하 자리에서 선물을 줄 때 '생선'이라고 했다. 생일 선물을 줄여서 하는 말이지만, 나는 좀 아는 척을 했다.
"음, 생선은 모두가 만족하는군."
쿠마짱이 흐뭇하게 생선을 잡았다. 흰곰도 검은 곰도, 너구리도 고양이도 좋아하는 생선을 실컷 먹으며 떠들었다. 우리는 꿈처럼 행복했다. p.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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싹이 트고 잎이 무성해지는 그 나무에 '관심'이라는 이름으로 물 한 번 주고 싶어요. 저 또한 그 속에서 아름다움을 함께 즐길 수 있겠지요.
내가 잘 가고 있는 건지 계속 관찰하고, 확인해야 다른 누군가도 힘들지 않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어렵다면 멈추기도 하고 속도를 줄이기도 하면서 그렇게 가 봐야지요. 오늘도 조금은 나은 방향으로 갈 수 있게 노력해 봐요.


#그냥씨의동물직업상담소 #안미란 #유시연 #창비 #소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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