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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빛을 따라서
권여름 지음 / 자이언트북스 / 2023년 10월
평점 :
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작은 빛을 따라서(권여름/ 자이언트 북스)" 속에는 평범한 여섯 식구들이 모여 살아가고 있어요.
정해진 시간에 열고 닫으며 365일 최선을 다하는 부모님
미술 학원을 다니면서도 더 많이 바라는 자존심 센 첫째 은세
연기자의 꿈을 조용히 단단하게 키우고 있는 만만한 둘째 은동
세상의 즐거움을 알아가기 시작한 여섯짤 셋째 은율
가족을 위해 무엇이든 최선을 다하는 욕쟁이급 할머니
간당간당한 필성 슈퍼
저녁 바람에 어느 집이 생선을 굽는지 고소하고 기름진 냄새가 실려 와요. 해가 지는 줄도 모르고 놀이터에서 노는 아이들의 새된 고함 소리가 들리는 작은 마을의 구멍가게 '필성 슈퍼'는 내장산 가는 길목이라서, 연립주택 앞에 위치하고 있어 매출에 대한 걱정은 없었는데요. 고모는 여기서 모은 돈으로 빌딩을 올렸으니, 아버지와 어머니도 같은 꿈을 꾸며 하루하루를 살아가고 있어요.
그런데 바로 옆 문구점과의 소소한 눈치 경쟁은 우스운 것이 되었네요. 대형마트, 프랜차이즈 마트까지 점점 커지는 주변 마트들에 작은 구멍가게 '필성 슈퍼'는 위기와 실패가 계속되어요. 파리만 날리는 위태로운 상황에서 부모님은 필성만의 차별성을 만들어내고요. 덕분에 생활은 간당간당 이어져 가요. 그 과정에서 아버지의 빛이 사그라드는 줄 알고 마음 졸이며 봤네요.
할머니와의 비밀 수업
사실 계속 나를 붙잡는 건 할머니의 마지막 한마디였다. 은세 언니가 집으로 들어오기 직전에 했던 말.
"섬에서 나왔더니만 육지는 온통 글자 세상이드라."
이 말을 떠올리면 가슴팍에서 뭔가가 쏴하고 쏟아졌다가, 흩어지는 기분에 휩싸였다. 바로 그 기분이 모든 것의 시작이 되었다. 비밀이 누설되면서 이야기가 끝나는 대개의 드라마나 영화와는 달랐다. 비밀의 끝에서 다시 새로운 이야기가 그 비밀보다 더 큰 사건이 시작되었다. 23
무엇이든 거칠 것 없는 할머니의 가장 큰 비밀을 알아챈 은동은 할머니의 말이 자꾸만 생각나요. 결국 은동이와 할머니의 비밀스러운 한글 수업은 시작되고요. 할머니 손에 쥐어 드린 연필은 겉돌기만 했어요. 힘이 잔뜩 들어간 손은 덜덜 떨리기만 했어요. 이마에 땀이 송골송골해진 할머니의 글자는 선이 구불구불 그어지더니 네모 칸 밖으로 치고 올라가버렸어요. 가로획 하나도 제대로 그어지지 않았어요.
"오메, 쩌죽겄다. 베란다 문이라도 열어봐라."
가르치는 은동이도 배우는 할머니도 대략난감이네요. ㅎㅎ
은동이의 학습법과 열혈 학습자 할머니의 만남은 결국 할머니에게 글자를 읽고 쓰는 즐거움을 알게 해 주는데요. 자신감 붙은 할머니는 '고창'이 써진 종이를 곱게 접어 동전 지갑에 넣고는 혼자서 혈육을 만나러 가는데요. 도착하고도 남을 시간이 되어도 돌아오지 않는 할머니 걱정에 온 식구들이 모였어요. 글자를 읽으며 걷는 기쁨에 찬 귀환에 은동이도 함께 환호하게 되어요.
폐허 은동이의 꿈
은동이의 비밀스러운 계획도 점점 가시화되는데요. 가장 가까운 배우 아카데미를 물색하고 돈을 모으고 드디어 친구 석희의 응원을 받으며 오디션을 보는데요. 은동은 탈락, 응원 갔던 석희는 합격. 이건 드라마가 분명하지요 ㅎㅎ
꽉 쥐었다가 들고 흔들었다. 감았다가 내동댕이쳤다. 내 마음속은 처참한 폐허가 되어버린 것 같았다. 그리고 잠시 후 놀라운 일이 일어났다.
그 헤집어놓은 폐허의 어느 틈에서 약간은 당돌하고 얄밉기도 한 것 같은 누군가가 '까꿍' 소리와 함께 얼굴을 내밀었다. 폐허 속에서 발견된 그 아이는 오들오들 떨고 있는 오은동을 대신해 또박또박 실장에게 이 말을 내뱉었다.
"연기를 여기서만 할 수 있는 건 아니잖아요. 어디서든 할 수 있는 거잖아요. 그쵸?" 202
폐허가 되어버린 은동, '괜찮아, 할 수 있어' 스스로를 다독이며 더 큰 사람으로 성장해 가요. 그렇지요. 꿈은 계속되어야지요.
가족들의 하루하루에 혼자 웃고 혼자 울고
저희 할머니 이름은 '정동순'이에요. 진라면 '순'한맛을 가리키며 할머니 이름에 글자라고 같이 즐거워했는데요. 지금은 혼자 거동하기가 힘드셔서 요양병원에서 간병을 받고 계세요. 조금 더 넓은 세상을 구경하실 수 있게 옆에서 도와 드릴 걸 혼자 아쉬움에 한숨을 쉬었어요. 은동이와 할머니의 관계를 보며 오래전 기억을 하나 꺼내 봤어요.
가족들의 하루하루에 혼자 웃고 혼자 울고 그랬어요. 책을 보는 내내 친근하고 훈훈한 기운이 가득했지요. 응답하라 시리즈를 보던 그 느낌을 오랜만에 느꼈어요. 웃음과 눈물이 함께한 책을 덮는데 어쩜 그리 아쉽던지요. 2권도 나왔으면 좋겠다 혼자 기대해 봐요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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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공받은 도서를 읽고 솔직하게 작성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