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회사에서 짤리면 지구가 멸망할 줄 알았는데 - 회사에서 뒤통수 맞고 쓰러진 회사인간의 쉽지도 가볍지도 않았던 퇴사 적응기
민경주 지음 / 홍익 / 2019년 9월
평점 :
요즘 같은 시대엔 '평생직장'이란 의미가 무색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책은 '회사에서 짤리면 지구가 멸망할 줄 알았는데'라는 제목을 썼다. 살펴보니 이 책은 30대 초반 젊은 청년이 쓴 책인데, 나이도 젊은데 뭐가 두려워 그런 표현을 썼을까 싶은 마음에 이 책이 궁금해졌다.
책의 저자는 '이것저것 다양하게 할 줄 아는데 특출난 것 하나 없는 사람이고 카피라이터, 홍보, 마케터 등의 직무를 하다 프로 퇴사러로 거듭나고 있다고 한다. 말을 못해 직장생활, 일, 연애가 잘 안 풀려 그로 인한 고통을 풀어보고자 글을 쓰고 그림을 그린다'고 한다.
그림을 그린다고 하더니 책의 곳곳에 앙증맞고 귀여운 사슴의 모습을 담은 그림이 숨어 있다. 참고로 이 저자의 별명은 '곶사슴'
목차를 살펴보면, 아래와 같다.
퇴사 1일 전부터 퇴사 후 200일까지의 이야기를 재미있게 풀었다.
나는 그 중 공감되고 기억남는 부분들 위주로 정리해보려 한다.
"회사는 주어진 업무 이상을 요구하는 경우가 많다. 직장 상사가 괜히 집에 가기 싫을 때 같이 사무실에 남아 일찍 가는 부하 직원에게 꼬장을 부리고, 뜬금없이 회식을 하자며 술을 같이 마셔야 하는 상황을 만드는 등 이미 많은 삶의 부분을 회사에 쏟고 있는데 그 이상의 삶을 회사를 위해 써주길 아무렇지 않게 요구한다. 그들이 삶을 유지 하는 동력을 쥐고 있다는 이유만으로." -본문p31
나는 다행히도 무리하게 회식을 요구받거나 일이 없을때 상사 눈치를 봐가며 남아있었던 적은 없었다. 하지만 결혼을 하고 가정을 꾸리고 아이를 낳아 기르고 있는중, 일명 어쩔 수 없는 사회생활이라는 명목으로 남편의 잦은 회식을 수용하고 홀로 단독육아를 감당해야했던 나로서는 참 씁쓸한 대목이 아닐 수 없었다.
"다음 회사를 빨리 알아보기보다 나라는 사람을 어떻게 사용하는 것이 스스로를 만족시킬 수 있는지를 먼저 고민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디 속하는가 보다 '무슨 일을 할 것 인지'를 우선 결정해야 했다." -본문 p32
![](https://image.aladin.co.kr/Community/paper/2019/0916/pimg_7866191182297995.jpg)
![](https://image.aladin.co.kr/Community/paper/2019/0916/pimg_7866191182297996.jpg)
![](https://image.aladin.co.kr/Community/paper/2019/0916/pimg_7866191182298004.png)
"회사와의 관계 단절은 메신저뿐만 아니라 국가와 나의 관계에도 영향을 끼쳤다. 국민연금, 국민건강보험 등 회사를 다니고 있다면 회사가 알아서 해주던 업무가 처음부터 끝까지 나 혼자의 힘으로 처리해야 하는 일이 되어 고스란히 돌아왔다...다시 한 번 고지서가 날아왔을 때 나는 국민건강보험료를 납부하지 않은 불량 시민이 되어 있었다....생면부지의 창구 직원에게 '나이 서른이 넘은 제가 또 망해버리는 바람에 소득이 0이 되어버렸어요! 그래서 부모님 밑에서 지내고 있답니다!'라고 고백하러 가야 하는 상황이니 말이다...."이거 신고하시려면 혼인 관계 증명서가 필요해요." "저는 결혼한 적이 없어서 필요 없는 서류인 줄 알았어요." "미혼인 건 저희도 확인할 수 있는데, 이혼 내역까지는 안 나오거든요. 30대가 되면 결혼했다가 이혼한 사람들이 생기기도 하니 서류가 필요해요." -본문p43
나도 위의 부분을 읽고 처음 알았다. 국민건강보험료 불입과 관련하여 제출할 서류중, 혼인을 안한 사람이어도 ' 혼인 관계 증명서'가 필요하다는 사실 말이다.
퇴사 이후엔 그동안 회사가 알아서 내주던 사대보험 관련해서 신경도 써야 한다는 건 참 귀찮은 일인 것 같다.
![](https://image.aladin.co.kr/Community/paper/2019/0916/pimg_7866191182298005.png)
"자연스레 나를 돌아보게 되었다."
지금은 방향이 아니라 움직임 자체가 없어서 슬픈 상황이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본문 p55
나는 첫 아이를 임신하고 낳기 전까지 일하다가 육아휴직을 내고 육아에 전념하고 지내다 아이 50일즈음 회사 복귀 여부를 묻는 물음에 적잖게 당황했었다. 내가 요청하고 수락받은 출산휴가&육아휴직 기간은 1년하고 3개월이었는데 1년이 되기는 커녕 아이 50일쯤 그 해 말에 복귀하지 못하면 퇴사해달라는 억울한 요청을 받고도 추후 같은 계통으로 일할 생각에 아무런 항의도 못한채 퇴사를 했다. 그 이후 육아에만 전념하다 둘째가 생겼고 일을 못하고 집에만 있으면서 나의 성장을 위한 발전적인 걸음을 걷고 있지 못하고 정체되어 있고 사회에서 도태되어 있단 생각에 자존감도 낮아지고 우울해졌다. 작가의 말대로 "움직임 자체가 없어서 슬픈 것"이 정말 공감갔다.
"퇴사를 하면 겨울은 따뜻하게, 여름은 시원하게 앉아 있을 수 있는 공간이 사라진다. 더 이상 수입이 없는 상황에 매일같이 카페에 앉아 있을 수도 없는 노릇이다. 공간은 사람의 생활과 기분까지 지배한다. 퇴사자가 있어야 할 공간은 어디인가. 그렇게 어떻게든 빨리 일을 해야 하는 이유가 늘어났다." -본문p63
"퇴사 후의 여행에서 마음이 편안하기 위해서는 여행 후의 삶을 낙관적으로 바라보게 해줄 무언가가 필요하다. 그렇지않다면 여행지에서 돈을 쓰는 일마저 하나하나 스트레스로 다가온다. 여행으로 업의 부재를 채울 수 없다. 두 개념은 그 성질이 너무 다르다." -본문 p67
역시 여행은 안정된 직장을 다니면서 정당한 휴식을 보상받아 휴가비(상여금이나 여름휴가비)까지 두둑히 챙겨 가는 여행이 즐거운 법이다.
퇴사자라면 그것도 비자발적 퇴사자라면, 과연 나는 회사에 쓸모있는 사람이였을까를 생각하게 되는 것 같다.
나도 지난 퇴사 경험을 비추어 생각해 봤을 때, 3번째 직장 기관장님께서 나와의 면담 중에 "자네, 동료들이 자넬 어떻게 평가하고 있는 줄은 아나?"하시면서 굳이 이야기하지 않아도 될 부분을 이야기해주시면서 무안을 주신 안 좋은 겅험이 떠올랐다. 후에 남아있는 동료들을 통해 내가 만든 프로그램들이 내가 퇴사한 후에도 사라지지 않고 지금까지도 지속된다는 것을 들어봤을 때 내가 그다지 일을 못하거나 동료들과 소통이 안 된다거나 하진 않은 것 같은데 굳이 저평가의 말을 했어야 했나 싶다.
![](https://image.aladin.co.kr/Community/paper/2019/0916/pimg_7866191182298012.png)
"어쩌면 나는 맛있는 스콘 굽기를 발판 삼아 베이킹의 킹이 되는 것이 목표가 아니라, 어떤 행동을 부지런하게 지속하면서 생산성이라고는 눈곱만큼도 없이 흘러가는 하루하루에 대한 불안을 잊고 싶었던 것일지도 모르겠다." -본문 p101
저자는 퇴사 후 얼마지나지 않아 '카페 창업'을 키운다. 그러면서 디저트 메뉴로 여러 가지를 시도해 보다가 창업 포기이후에도 지속적으로 '스콘굽기'에 열을 올린다. 앞의 문장을 보니 '아~' 바로 이해가 된다.
퇴사 후 한달을 훌쩍 넘기니 불안이 더욱 증폭되었나보다.
![](https://image.aladin.co.kr/Community/paper/2019/0916/pimg_7866191182298018.png)
![](https://image.aladin.co.kr/Community/paper/2019/0916/pimg_7866191182297999.jpg)
퇴사자로서 우울증은 스스로 잘 넘겨야 할 산 같은 것이다.
![](https://image.aladin.co.kr/Community/paper/2019/0916/pimg_7866191182298021.png)
![](https://image.aladin.co.kr/Community/paper/2019/0916/pimg_7866191182298000.jpg)
영화 <포레스트검프>의 이야기를 인용해 자신의 20대 후반은 운도 따르지 않고 30대도 마찬가지고 왠지 '꽝'만 가득했던 것 같은 기분이라고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 초콜릿 상자는 아직까지 '적어도 하나는 걸릴 수 있는 확률'이 남았다."라고 말한다.
다른 창업으로 제조업에 승률을 걸어보겠다는 의지였다.
![](https://image.aladin.co.kr/Community/paper/2019/0916/pimg_7866191182298026.png)
저자는 소설 <밤은 짧아 걸어 아가씨야>의 이야기를 예로 든다. 계속되는 실패 때문에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상황에 처해지자 지독한 감기와 외로움으로 우울증까지 극단으로 치닫고 미래에 대한 걱정을 토로하다가 벽장 어딘가 '재능의 저금통'을 놓고 자신이 재능이 있는 것을 찾을 때마다 하나씩 기록해두기로 한 것을 떠올리는데, 겨우 '할 수 있는 일부터 하나하나 꾸준히'란 쪽지 한 장만 발견된다.
저자는 그 주인공을 떠올리며 뭐라도 해보자고 스스로를 채찍질한다. 그리고 준비하던 창업쪽 일이 빠르게 진행되지 않으니 다른 일도 같이 하는 것이 좋겠다는 판단하에 몇 가지를 시도하는데 그 중 하나가 그림을 그리는 것이고 또다른 하나는 지금까지의 경력의 밑바탕에 있는 '글쓰기'를 시작하여 퇴사 후의 이야기를 써서 하루에 하나씩 연재하기 시작했다고 한다. 그것이 재밌는 콘텐츠가 되고 책을 출판하기까지에 이른다.
저자는 이렇게 이야기 한다.
앞으로 내 삶은, 내 글은 어떻게 될까.
이전처럼 별 반응없는 삶이 오래도록 지속되겠지만 조금씩 할 수 있는 일로
가득 찬 저금통 배를 갈라 보는 날이 왔으면 좋겠다. P195 라고.
나는 이 책의 저자가 앞으로 인생을 겪으면서 수많은 별들을 찍고 후엔 그것들이 어떤 모양으로든 다 연결되어 아주 견고하고 튼튼한 그만의 삶을 이뤄낼거라 의심치 않는다. 요즘은 빅데이터를 추구하고 자신을 브랜드화 할 수 있는 시대이기 때문에 저자의 재능으로 더욱 멋지게 성장할 거라 본다.
이 책은 사회에 갓 발을 내딛을 청년들부터 회사에서 끊임없이 살아남기 위해 애쓰는 청년들이 읽고 함께 힘을 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