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디 얀다르크 - 제5회 황산벌청년문학상 수상작
염기원 지음 / 은행나무 / 201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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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좋아하지 않았던, 아주 오래전의 나는 책을 읽어도 가볍게 읽을 수 있는 에세이나 자기계발서, 소설책 등을 주로 읽었다. 
비로소 엄마가 되어 책을 좋아하게 되었을 때 나는 오랫동안 소설책은 멀리하고 육아서나 자기계발서와 시대흐름의 변화와 관련된 책들을 자연스레 읽게 되었다.
오랜만에 접한 소설인 이번 책, 「구디 얀다르크」라는 신선한 제목의 책은 나에게 또 다른 책읽는 재미를 주었다. 책을 들자마자 몰입해서 읽게 되는게 놀라웠고 저자가 남자분일거라고 추측하고 보는데도 여자 주인공의 상황과 심리묘사를 보면서 저자의 실제 경험을 이야기하듯(역시나 저자는  IT산업현장에서의 오랜 경험 을 가지고 있었다) 자연스럽게 쓰여서 여자 작가님이 쓰셨나 싶을 정도였다. 

'버스안의 승객들 관찰'을 소재로 시작한 이야기는 현재 시점과 과거 시점을 오가며 정말 그 장면을 보듯 이야기가 물흘러가듯 진행된다. 주인공이 나와 동시대를 살아서 그런지 더 생동감이 느껴졌다. 

주인공의 가족사에 대한 이야기를 볼때는 가슴이 먹먹했다. IMF위기 때 아버지가 스스로 목숨을 끊고 종교생활로 겨우 마음붙잡고 살던 어머니도 1년간 술에 의지하며 살다, 다단계사업을 야심차게 시작했으나 그도 잘 되지않고 힘들어하다가 결국 생을 마감했다. 

★p73

주인공 사이안에겐 다행히도 대학 고학년때 만난 멋진 남자친구가 삶의 위로가 되어 주었다.  2002월드컵으로 한창 나라가 들썩이고 흥분의 도가니가 되었을 때 응원하러 갔던 호프집에서 만난 서울대를 다니닌 외모도 준수한 사람이다. 그와의 데이트장면을 엿볼때는 나의 꽃다운 시절, 연애할 때가 떠올라 주책맞게 미소가 절로 나왔다. 

★p69


그런 그와 달콤한 연애기간도 얼마되지않아, 이안의 졸업식날 어머니의 부고 소식을 듣고 이안은 급작스런 장례를 치르게 되는데 연락이 닿지않자 119에 신고하겠다고 하는 그에게 부고사실을 알리고 그는 그녀의 곁을 유일하게 지켜준다. 그리고 납골당에 안치할 수 있도록 친구들을 데려와 운구를 돕는다.

과거시점에서 언급한 그, 강영민과 현재시점의 남자친구인 12살 어린 야구선수인 남자친구 이야기와 '6820'이라는 숫자에 얽힌 엄마의 이야기를 보며, 이 책이 노동소설이란 걸 잊고 중반부까지는 가볍고 재밌게 읽어나갔다. 

★p111

야심차게 들어간 IT기업의 신입사원 사이안은 기획팀에 배치됐으나 실제론 CS의 역할을 해, 욕을 먹고 버그를 고치고 장애보고서를 쓰는 기획자로 일했다. 입사2년차에는 제대로 일하고 싶어서  1년동안 발생 했던 버그의 시스템 개선안을 내놓게 되고 처음 제대로 된 직장인이 된 듯한 느낌을 받는다.

책에 나오는 주변인물 '상지, 혁진, 진주, 성 과장, 천 과장.'등의 이야기를 살피는 재미도 솔솔하다. 그 중 '천 과장'은  「그 자신감은 기어이 술 취한 척 내 무릎에 손을 올리는 것으로 이어졌다. 내가 그렇게 우습게 보였는지 수치심과 자괴감이 함께 들었다.」 -p140와 
「다시 혁진이에게 시비를 걸기 시작했다. IT바닥이 얼마나 좁은지에 대해 한참을 얘기하더니 우리 본부장과 자신이 전 직장부터 함께 일한 사이라는 걸 강조했다. 그 말이 뭘 뜻하는지 아느냐는 질문에 혁진이는 시큰둥하게 고개를 저었다.」 -p144
에서도 복 수 있듯이 회사내에서 성희롱을 일삼고 자신의 정치적인 태도를 자랑시하는 인간으로 묘사된다. 소설속만에서가 아니라 현재 실존하는 인물중 이런 사람이 꽤나 있다는 것이 씁쓸하다. 



위의 사진들 속의 내용은 주인공 사이안이 첫 직장에서 느낀바 들이다. IT업계의 현실을 보여준다.

「가난이 감정에 미치는 영향을 둘로 나누자면 가난해서 화가 나는 분노가 있고, 화도 낼 수 없게 가난한 슬픔이 있다. 건물 로비에 있는 의자에 털썩 앉아 구두를 확인해보니 가운데 부분마저 너덜거렸다. 얼마 버티지 못하고 남북으로 분단되기 일보 직전이었다.」 p213

사이안은 첫 직장을 그만두고 성 과장과 스타트업에 뛰어든다. 그리고 가디, 즉 가산디지털단지와 구디, 구로디지털단지를 오가며 일하게 되고 삶은 점점 나아지지 않고 여전히 힘들게 출퇴근을 하고 야근을 하며 불면증에까지 시달린다.  

아래의 두 단락은 가디와 구디에서의 현실을 이야기 한다. 

「그녀가 도움을 구하기 위해 찾아왔을 때 나는 가디에서 시작한 SI업체 유랑기를 마친 뒤었다. 수많은 공장 노동자가 근무했던 가리봉동, '공순이'가 눈물을 흘리며 미싱을 돌리던 동네다. 가산동으로 이름을 바뀌었고 높은 빌딩이  들어섰지만, 공장은 여전히 돌아가고 있다. 미싱대신 노트북으로 장비가 교체됐고, 섬유 공장이 IT공장으로 변했다. 나 역시 노트북 하나를 받아 파워포인트나 엑셀과 씨름하며 하루 열다섯시간씩 노동했다. 여행사이트를 구축하고 쇼핑몰 앱을 만들었다.」



「조직이라는 것에 속한 대부분은 자신이 원하는 것이 아닌, 사람들이 자신에게 원하는 것을 하며 산다. 역할놀이는 속한 회사, 부서, 직위, 직급에 따라 다르고 특히 회사 고위층의 정치적 상황에 의해서도 좌우된다. 그렇게 자신의 본래 모습과 영혼을 출근과 함께 내려놓고 가면을 쓴 채 살아가는 껍데기들이 오전부터 밤까지 있는 곳이 회사다.」 -p139

대학입학, 취업이라는 큰 관문을 통과하고 한 창 돈 벌고 자신의 커리어를 멋지게 쌓을 생각에 꿈에 부푼 사회초년생이 위의 글을 보면 얼마나 자괴감이 들까싶다. 

5년간 열심히 다닌 첫 직장을 그만두려 하자 바로 시련이 닥친다. 바로  '융자금 상환문제'가 닥친것.

이 책의 중, 후반을 넘어서야 왜 책 제목이 '구디 얀다르크'인지 알았다. 그리고 왜 꿈 속에서 본 '잔다르크'를 언급했는지.

「"너 그 표정 뭐야?"
"연습하는 거야. 승리자의 표정."
오영일은 가끔 거울을 보며 승리자의 표정을 연습하곤 했다. 이제야 잔다르크가 전쟁에서 연승했던 이유를 알았다. 그녀가 지었던 승리자의 표정이 떠올랐다. 그 모습을 본 병사들은 자신 있게 전진할 수 있었다. 나는 그런 표정을 지어본 적이 있는가? 전투에 승리했을 때에도 다음 전투를 준비하느라, 닥쳐올 위기를 걱정하다가 전쟁에서 패배했고 이렇게 늙어버렸다.」 p238

그녀가 얼마나 앞만 보며 치열하게 살았는지 여실히 느낄 수 있는 대목이다. 그리고 녹록치않았던 삶 속에 진국같은 남자친구 오영일이 그녀가 삶을 놓아버리고 싶은 순간을 돌이키게 하는 역할을 해주어 괜시리 고마웠다. 그녀마저 저 세상으로 가는 결말이었다면 그 슬픔과 절망감이 배가 되어 나에게 전해져 올 것만 같았기 때문이다. 

결말부분이 다소 어둡다가 다시 전환되어 책을 덮고나서도 그 우울한 여운이 가시실 않았다. 너무 주인공에게 몰입했나보다. 
혹자는 이 책에서 사랑이야기가 적나라한 현실을 잊혀지게한다고 할 수 있지만 나는 사랑이야기가 가미됨으로 다소 무거운 현실 이야기를 중화시키고 소설로서의 역할을 하지 않았나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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