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것은 한 방향으로 흘러가도록 정해져 있는 화살표였으며, 승혜는 이 화살표의 방향에 불만을 품어본 적이 한 번도 없었다. 그래서 하필이면 고기가 들어간 이 요리에 기묘하다 할 만큼 비밀스러운 집착을 품게 된 자신을 깨달았을 때 적잖이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그건 승혜로서도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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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많은 것들에서 떨어져 나온 이 거리감은 생각보다 나쁘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이상하게도 마음이 평온해졌다. 나는 이불 속으로 다시 들어가 혼자만의 고독을 찬미하며 낄낄거리다가 다시금 잠에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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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내게 술병을 건넸고 우리는 함께 어울리며 금방 친해졌다. 외계인을 목격한 사람들이 초면이어도 금방 친해지듯이. 그게 전부였다. 아무도 내가 왜 그 자리에 있는지 따지지 않았다. 특히 키지가. 정말 굉장하고 이해할 수 없는 일이었다. 그래서 좋았다.

나는 집단에 친밀감을 느끼는 법을 몰랐다. 관계를 맺어본 집단이라고는, 죽음의 집에 사는 끔찍한 오이디푸스 이야기 같은 가족뿐이었다. 그리고 수영팀. 물속에서는 대화할 필요가 없다.

자비는 하늘에 계신 아버지에게서 오지 않았다. 책 속에서 왔다.

시에나가 말했다. "나쁜 짓 하니까 좋지." 그러고는 웃었다. 나는 기침하거나 토하지 않으려고 볼 안쪽을 씹었다. 나쁜 짓을 하려고, 좋아지려고.

우리가 내리는 결정은 종종 옹졸하고 초라한 질투에 기반을 둔다. 하지만 그런 결정은 무엇보다 진실한 것이다.

밤의 물속에서는 사람이면 느껴야 하는 것들을 느낄 필요가 없었다. 그곳에는 어두운 평화가 있다. 급류가 끝나는 곳에 모든 것이 정지한 듯한 지점이 있다.
물 속에 들어갈 때는, 책에 빠져들 때처럼, 삶을 땅에 버려두어도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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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복하게 눈이 쌓인 바닥에는 발자국이 하나도 찍혀 있지 않다. 밤에는 아무도 돌아 다니지 않는다는 증표이자 잠을 자야 한다는 약속이고 합의다. 여자는 세상의 합심에 잠시 시무룩해진다.

냉장고 속을 감돌던 냉기처럼 차갑고 싸늘한 손이었다. 엄마가 마지막으로 전하고 싶은 말은 무엇이었을까. 결국 잘살라는 말이었겠지. 이것저것을 다 합해도 삶은 사는 것밖에는 아니고, 거기서 잘 살면 성공한 거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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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코르셋 운동은 모든 개인이 타인의 시선을 의식하지 않는 방식, 즉 마치 자신의 몸이 타인에게 보이지 않는 듯 오로지 자신의 욕구대로 차림새를 결정하자는 접근과는 정반대의 방식을 취한다. 오히려 자신의 몸이 타인에게 보인다는 사실을 적극 활용한다. 꾸밈 없이 다양성은 없다고 느꼈듯 예쁘지 않으면 보이기를 포기하는 것이라고 여겼던 여성들은, 자신의 생애 기획을 여성해방이라는 정치적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활용하듯 미감만을 담았던 몸을 전광판으로 사용할 수 있음을 처음으로 깨닫는 것이다. 탈코르셋은 외형에 대해 무심해지기를 목표하지만, 동시에 규범적 여성성 외에는 어떤 이미지를 구사할 것인지 생각해본 적 없었던 여성들에게 외형으로 드러낼 수 있는 이미지의 종류에도 다양한 길을 열어주었다.

오롯이 자기가 저지른 일은 아니지만 오로지 자기만 열 수 있는 해방구가 있음을 안 그에게 이제 중요한 것은 결말을 바꾸는 일이다.

역부족이라는 생각에 포기하고 싶을 때마다 오래도록 궁금해했던 얼굴을 마주하고 있다는 생각으로 마음을 다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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