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찬란한 역사의 동남 아시아, 슬픈 오늘을 걷다 (양원옥 씀) 몇 년을 벼르고 벼르던 캄보디아 여행을 운 좋게 남편의 직장 동료들과 함께 가게 되었다. 2008년에 갈려고 책도 여러 권 사보았는데 여의치 않았다가 2009년 2월에 드디어 베트남행 비행기에 몸을 실을 수 있었다. 그것도 남편과 함께. 해외여행은 몇 번 있었지만 남편과는 처음이었다. 지내다 보니 남편과의 여행이 좋은 것도 많았다. 일단 무거운 짐 가방을 힘센 남편이 들어주고, 다른 사람들과 함께 방을 써야하는 불편함은 겪지 않아도 되었다. 1. 작지만 강한 나라 베트남을 가 보다 4시간 정도 비행을 하다 노이바이 하노이 공항에 내리자 한국과 2시간의 시차를 보였다. 베트남의 천년이 수도라는 하노이는 홍강과 호안끼엠(호수)에 기대어 천만의 인구를 안고 있었다. 내가 아는 베트남은 아주 단편적이다. 최근 베트남 사람들이 한국에 와서 많이 공부하고 결혼하고, 일한다는 것, 베트남 전쟁에서 세계 최강 미국을 이겼다는 것. 그 전쟁에서 우리나라는 미국의 편으로 참전했다가 등을 졌다는 것(그때 만들어진 라이따이한이 2만명 정도라니 우리가 베트남에 진 빚이 얼마나 많은지 짐작이 된다). 그 이전 베트남은 중국의 영향력 아래 동아시아문화권 속에서 우리나라와 여러 가지 면에서 비슷하다는 것 정도. 이동하는 버스의 창문으로 보이는 것은 수많은 오토바이 행렬, 빵빵거리는 자동차 소음(이나라는 자동차들이 깜박이 신호대신 소리로 신호를 보내다 보니 연신 경적소리가 울린다), 넓게 펼쳐진 논(3, 4모작이 가능한 날씨와 넓은 논 덕분에 쌀 수출이 세계 2위란다. 안남미라 불리는 날리는 바로 그 쌀) 하노이. 베트남의 혁명수도. 베트남의 모든 권력은 하노이에서 나온다. 총과 사상이 하노이에 있기 때문이다. 하노이는 지난 반세기이상 베트남을 지배해온 상징이며 실체이다. 이 도시는 또 세계사에 기록된 가장 유명한 전쟁과 혁명의 진지였다. 바딘 광장은 그런 하노이를 대변한다. <메콩의 슬픈 그림자, 인도차이나 中> 바딘 광장은 1945년 9월 2일 호찌민이 베트남의 독립과 민주 공화국의 수립을 선언한 곳이다. 여기에 호찌민의 묘와 박물관, 대통령 궁이 있다. 불행하게도 문을 열지 않는 날이라 호찌민의 묘는 들어가지 못하고 바깥 구경만 하였다. 레닌처럼 방부 처리된 호찌민의 시신을 볼 수 없어 아쉬웠다. 베트남의 국부! 정신적 지주! 로 존재하지만 호 아저씨라는 애칭으로 불렸던 호찌민은 평생 독신으로 베트남의 독립을 위해 애쓰며 살다 갔다고 한다. 인민복 몇 벌, 그가 보던 책들 몇 권(그중에 정약용의 목민심서가 있다) 폐타이어로 만든 슬리퍼, 타자기 하나가 그가 남긴 전부로 권력에 연연하지 않았던 지도자의 청빈함을 느끼게 한다. 장기집권으로 얼룩진 우리네 현대사와 비교되는 장면이다. 하지만 화장되길 원했던 호찌민은 흙으로 돌아가지 못하고 그의 후광을 이용하려는 살아있는 사람들에 의해 이렇게 살아 있다. 호찌민에게는 영애롭지 못한 무덤이리라. 호찌민의 묘 옆에 번쩍거리는 황금색 건물이 있어 무조건 카메라를 들이 밀었더니 멀리서 공안이 뛰어온다. 말은 안통해도 사진 찍지 말라는 것 같아 미안한 표정을 지었더니 봐준다. 하지만 이미 셔터는 눌려졌고 아무도 못 찍게 하는 대통령 궁을 나는 찍고 말았다. ㅎㅎㅎ 호찌민 묘의 뒤편에 일주사. 베트남의 국화인 연꽃을 본떠 만들었다는 호찌민의 묘와 연꽃처럼 지어진 일주사는 묘하게 통한다. 기둥이 하나라서 지어진 이름 일주사는 독특한 절이다. 암자라고 해야 더 맞는 표현일까? 리(李)왕조의 황제인 리따이톤(李太宗)이 1049년에 지은 이 사원은 익숙한 사연을 갖고 있다. 아들을 갖지 못한 리따이톤은 연꽃에 앉은 관세음보살이 아들을 건네주는 꿈을 꾸고 우연히 농부의 딸을 만나 비로 삼았는데 그 뒤 아들을 얻었고 감사의 뜻으로 이 절을 지었다 한다. 흑단나무로 만든 일주사는 왼쪽으로 돌면 딸을 오른쪽으로 돌면 아들을 얻는다는 이야기가 남겨져 많은 사람들을 찾게 한다. 아들과 딸을 다 가진 나와 남편은 일주사를 돌면서 마음이 불안 불안했다. 이 절의 영험을 얻지 않길 바랄뿐... 점심을 먹기 위해 시장으로 갔다. 36개 골목으로 유명한 시내. 근데 집들이 다들 좁게 높게 서있다. 주택도, 상점도 모두모두. 이유는 사회주의 국가가 땅과 건물을 민영화 하면서 제한을 두었다 한다. 가로 4m, 세로 12m 그러니 가능한 높이 올라갈 수 밖에 없다. 집들이 다닥다닥 붙어있어 아예 옆벽은 칠도 하지 않는단다. 옆벽을 칠하지 않은 건물을 자주 볼 수 있었다. 처음으로 베트남에서 먹은 음식은 퍼(Pho, 쌀 국수), 배가 고파서 그런가 국물 맛이 칼칼하면서도 깔끔한 것이 아주 좋았다. 이후에 퍼를 먹을 기회가 되면 우린 계속 퍼를 먹었을 정도로 한국인 입맛에 맞았다. 퍼는 보트피플 이라 불리는 베트남 난민에 의해 세계적인 음식으로 소개가 되었다 한다. 두 번째 목적지 하롱베이로 버스를 타고 이동했다. 4시간 정도. 우째 하루 종일 비행기와 버스로 이동만 하는 것 같았다. 베트남이 길게 뻗은 나라이므로 이동을 하려면 길게 길게 갈 수밖에 없다. 이 나라는 도로 사정이 여의치 않아서 고속도로라도 2차선이고 제한 속도도 60km라 한다. 위반 시엔 엄격한 처벌을 받으므로 사고는 오히려 안 난단다. 기나긴 이동 시간동안 사진도 찍고 수다도 떨지만 중간에 같이 간 스님께서 사주신 빵이 제일 기억에 남는다. 맛은 바케트였지만 엄청 부스러기가 생기고, 내 얼굴보다 큰 빵이었다. 호텔에 도착하자 벌써 깜깜했다. 밤이 되자 제법 싸늘해졌다. 우리나라는 지금 영하의 날씨일텐데 여긴 그래도 늦여름, 초가을 날씨이다. 방을 잡고 나서 시장 구경을 갔다. 뭐니 뭐니해도 여긴 열대과일의 나라다. 듣도 보도 못한 열대과일들을 맘껏 맛 볼 수 있었다. 특히 크림맛이 강한 두리안은 역하게 느끼는 사람도 있고 가장 기억에 남는 맛이었다. 다음날 일찍이 준비하고 나선 길은 대한항공 cf로 유명해 졌다는 하롱베이였다. 내가 감동에 마지않았던 영화 ‘인도차이나’의 마지막 장면이 여기 하롱베이였다. 프랑스의 지배를 받고 저항했던 베트남의 아픈 역사가 녹여진 영화였다. 상처속의 하롱베이가 이제 이색적인 풍광을 보고 싶어 하는 관광객들의 방문처가 되어있다. 배들이 즐비한 선착장에서 커다란 배를 타고 한참을 가자 기암괴석으로 둘러싼 호수 같은 바다가 나왔다. 아무리 심한 폭풍우가 몰아쳐도 여기는 조용하단다. 그 속에 수상족이 사는 배들로 이루어진 마을이 있었다. 이 사람들은 배위에서 태어나서 배위에서 죽는다 한다. 이 배들 속에는 학교도 있고 운동장도 있어서 축구도 한단다. 신선한 물고기를 잡아서 바로 요리해 준다. 오염되지 않고 자연의 일부가 되어 살아가는 사람들이 마치 신선의 세상에 사는 사람들 같다. 육지의 도시생활에서는 살아가는 데 필요한 것이 너무도 많을 것이지만 세상과 동떨어져 최소한의 것만 가지고도 행복하게 살아가는 사람들을 이번 여행에서 자주 많이 보게 되었다. 과연 내가 살아가는데 꼭 필요한 것은 무엇이고 필요이상으로 벌리고 훼손시키고 있는 것들은 또 얼마나 많은지 마음이 쪼그라드는 느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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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과 아들이 거의 연년생이라 이제까지 다 크도록 목욕탕에 함께 데리고 다녔다. 

두 놈을 데리고 목욕탕에 가면 내 한몸 건사하기도 힘든데 녀석들은 거의 참여의 의의를 둘뿐 제대로 때도 못밀어 준다. 

뽀독뽀독 때 미는 것에 특별한 애착이 없는 성격에 목욕이야 맨날 하는거 오늘 못 씻으면 다음에 씻지 뭐. 이런 식이라 대충 때를 밀뿐이다. 

그런데도 두 녀석을 굳이 다 데리고 한 목욕탕에 가는 것은 둘이서 놀면 엄마의 목욕 시간이 확보되기 때문이다. 

장난이 좀 심하고 혹시나 하는 걱정은 있지만 눈만 아이들에게 맞춰놓고 있으면 왠만큼 목욕을 즐길수 있으니까. 

그래도 이제 다 컸다고 목욕가는게 힘든 고역은 아니다. 

주말에 쉴 수 있는 하나의 이벤트가 될 정도로..  

지난 주말에 자주 찾던 목욕탕에 갔다. 

아빠는 회사가고 딸은 목욕탕 갈 기대로 그 많던 숙제도 다 땡겨하고, 튜브에 바람도 넣고, 

비가 오길래 택시를 콜했는데 연결되는 것이 없어 기냥 각자 우산 하나씩 받쳐들고 비바람을 뚫고 큰길로 갔다.  

축축하고 으슬으슬하고 이것저것 짐도 무겁지만 온천욕 할 생각에 이까짓거쯤이야.. 

사실 세수도 안하고 나선 길이었다. 

추운 겨울 댓바람에 커다란 튜브까지 바람넣은 채 들고 아이들 델꼬 택시를 탔다. 

결혼식으로 온천장 주변이 너무 많이 막히고 급기야 100m 전방에서 과감하게 내렸다. 

무려 택시비 7000원을 내고 우산 받쳐들고 앞으로 앞으로,,, 

드디어 도착. 다행히 줄은 안서 있어서 얼른 뜨거운 탕속으로 몸을 던지려 했는데 태클이 걸렸다. 

아들이 키가110cm이상 이면 남탕으로 가야 한단다. 우리 아들 갑자기 많이 커서 113cm. 

이럴 수는 없다.   ㅠ.ㅠ.  

몇주 전에도 와서 잘 놀았는데 갑자기 이러시면 안되지. 

하필 오늘은 아빠도 못왔는데. 

전화로 아빠를 찾았지만 올수 없는 상황이란다. 

집으로 가라니!!! 

아무리 사정하고 쫄라도 안된단다. 

갑자기 나이 제한을 강화한단다.  

눈물이 앞을 가린다. 급기야 아들은 울었다.  

이 몰골로 다시 비바람을 뚫고 집으로 가라고.  

이 노란 튜브를 들고, 우산을 받쳐 들고 집으로 돌아가라고...

밖으로 나와 이 난감한 상황을 분개하고 있는데 녹천탕이라는 굴뚝이 보인다. 

어찌나 반가운지. 

그래 여기는 온천장. 널린 것이 목욕탕이다. 

천일탕도 있지. 

예전에 녹천탕 가족탕을 간 적도 있었지... 

그래 물은 녹천탕이 더 좋아. 

착한 녹천탕 주인은 아들도 여탕에 넣어 주었다. 

시설은 영 떨어지지만 아들딸 구분않는 착한 목욕탕. 

근데 명성때문인지 대중탕은 할머니들 투성이다. 

아줌마 정신 제곱이 할머니 정신이랄까! 

무시무시한 할머니들의 목욕문화.  

 

무사히 목욕은 했으니 다행이다.  

하지만 이제 아들과 헤어져야 할 때가 된 것 같다.   

앞으로 이런 아들과의 이별은 또 어떤 것들이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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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역사교사모임 싸이트에서 퍼온 글-
"정권이 바뀌었다고 역사도 바꾸려 하나"
 
부산 부흥고, 역사교과서 교체 압력에 역사교사 등굣길 1인시위
 

작은책

 

지 난 11월 25일 아침, 소식을 듣고 찾아간 곳은 부산 해운대구에 있는 부흥고등학교였다. 조금 일찍 학교 정문 앞에 도착해 기다렸지만 예정된 시각인 7시 30분이 지나도 선생님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정문 말고 다른 문이 있나 해서 정문 안으로 들어서니 자그마한 체구에 다정한 미소를 지닌 여선생님 한 분이 ‘정부는 역사교육의 정치적 중립성을 보장하라’라고 쓰인 피켓을 들고 서 있었다.




△ 부산 부흥고 교문에서 1인시위 중인 홍혜숙 선생님. <아름다운 생각 가치있는 행동>이라는 교훈이 새겨진 바위는 아름다운 생각도 가치있는 행동도 가르치지 못하고 있는 학교를 더욱 부끄럽게 한다. ⓒ 작은책



이 학교의 역사교사인 홍혜숙 선생님. 그녀는 근현대사 교과서를 교체하라는 교육청과 교장의 압력에 맞서 어제(24일)부터 학교 정문에서 등굣길 1인시위를 시작했다. 부흥고는 이른바 ‘좌편향’ 내용으로 교육과학기술부의 수정 권고를 받았던 금성출판사의 근현대사 교과서를 교재로 사용해 왔다. 하지만 지난 11월 14일 부산교육청 교장단 회의 이후, 그 날로 금성출판사의 근현대사 교과서를 사용하고 있는 부산의 49개 학교에 근현대사 교과서를 다른 출판사의 교과서로 교체하라는 지시가 내려졌다고 한다. 이 학교에 있는 세 명의 역사교사 가운데 나머지 두 명은 교장의 압력에 못 이겨 지시를 받아들였지만, 홍 선생님은 ‘정권의 지침에 따라 교육의 중립성이 흔들려서는 안 된다’는 생각에 끝까지 거부하다 1인시위까지 마음먹게 됐다고 했다.

필자가 반갑게 알은 체를 하며 다가서니 홍 선생님은 잠시 부끄러운 듯 몸을 돌리다가, 등교하는 학생들이 곁으로 지나가자 다시 당당한 모습을 되찾았다. 필자가 들고 있던 카메라 때문이었는지 아니면 홍 선생님 바로 앞에 팔짱을 끼고 자리 잡은 학생부장 선생님 때문이었는지, 학생들은 홍 선생님 쪽을 오래 쳐다보지 않고 빠른 걸음으로 그 곁을 스쳐 지나가고는 했다. 그럴 때마다 홍 선생님은 종종걸음으로 학생들 앞으로 가서 “야들아, 이거 읽고 가라.” 하고 외치며 학생들의 눈길을 불러 세웠다.




△ 왼쪽부터 부흥고 국어교사 안정옥 선생님, 역사교사 홍혜숙 선생님, 사회교사 김동일 선생님. ⓒ 작은책


그 모습을 사진으로 몇 장 담고 있을 때, 이 학교 사회교사인 김동일 선생님과 국어교사인 안정옥 선생님이 어느새 홍 선생님의 양 옆에 나란히 자리했다. 8시를 지나자 교문으로 들어오는 학생들의 수도 훨씬 많아졌다. 낯선 사람이 카메라를 들고 있길래 누군가 싶어서 한 번 나와 봤다는 교무부장 선생님과의 짧은 대화가 끝나갈 무렵, 등교를 하던 한 여학생이 가방에서 보온병을 꺼내들고 홍 선생님 앞으로 다가왔다. “선생님, 추운데 이거 드시고 하세요. 유자차에요.” 하며 선생님들께 차를 한 잔씩 따라 드리고는, 보온병 채로 홍 선생님의 손에 쥐어 드리고 인사를 꾸벅 하고는 교실로 뛰어갔다.

1인시위를 마치고 인터뷰를 위해 진학지도실로 자리를 옮겼다. 홍 선생님은 아까 학생에게서 받은 유자차를 필자에게 한 잔 나누어 주면서, 이 귀한 것을 막 나눠 줘도 괜찮으냐는 필자의 물음에 “애들이 어제 준 초콜릿이며 음료수가 제 책상에 잔뜩 있어요. 애들은 저보고 애국자래요.”라고 대답하며 쑥스럽게 웃었다. 이어서 “고등학생의 상식으로 보기에도 교육청이나 학교에서 하는 얘기가 그만큼 어처구니없다는 거죠.” 하며 교육청과 학교를 향해 마음에 품었던 이야기를 꺼내 놓았다. “나한테도 ‘금성 말고 다른 책 쓰면 안 되겠냐’ 했던 걸 다 기억하는데, 이제 와서 교장 선생님은 그런 거 지시한 적도 없고 압력 넣은 적도 없대요. 그나마 있었던 교장 선생님에 대한 존경과 신뢰가 와르르 무너졌죠. 교사나 교장이나 공무원이기 이전에 교육자인데, 이건 교육자적 양심의 문제라고 봐요.”




△ 선생님들에게 직접 준비한 유자차를 전해주는 한 학생. 고등학생의 눈에도 이 나라의 정권은 제 정신이 아니다. ⓒ 작은책


김동일 선생님은 지금 부흥고에서 일어나고 있는 것과 같은 마찰이 부산 시내 전역에서 동시에 진행 중이라고 말을 거들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많은 학교에서 교육청의 지시대로 근현대사 교과서가 교체될 것으로 보이고, 이런저런 마찰이 부담스러운 일부 학교들에서는 선택과목인 근현대사 과목을 아예 포기하고 세계사 과목으로 전환하는 일도 일어나고 있다고 했다. 김 선생님은 “교장 선생님 스스로 ‘내 생각은 교육청과 다르다. 하지만 어쩔 수 없다.’라고 말하고 있는데, 그래 가지고 어떻게 애들한테 아는 만큼 실천하라고 가르칠 수 있겠습니까? 학교가 아이들한테 비겁을 가르치고 있는 겁니다.”라며 씁쓸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오는 28일에 열리는 학교 운영위원회에 근현대사 교과서를 다른 출판사의 교과서로 교체하는 안이 상정되어 있다고 한다. 물론 그 안은 홍혜숙 선생님을 제외한 나머지 두 교사들의 의견으로 만들어진 안이다. 나머지 교사들의 동의하에 운영위원회까지 상정된 이상 사실상 그 안이 통과될 가능성이 높지만, 홍 선생님은 운영위원회에 참석해 마지막으로 호소해 볼 생각이라고 했다. 그리고 다른 두 선생님의 의견만으로 교과서 교체가 결정된 과정에 대해 법적인 문제 제기까지 준비할 생각이라고 덧붙였다.




△ 등교시간이 막 지난 후의 모습. 아침마다 무릎을 꿇리고 꿀밤을 때리는 학생부 선생님들보다 오른쪽 눈밖에 없는 외눈박이 인간이 되기를 강요하는 한 권의 교과서가 더 무섭다는 것을 저 학생들은 알고 있을까. ⓒ 작은책


“정권이 바뀌면 역사도 바꿀 수 있다는 발상 자체를 일단 절대 받아들일 수 없어요. 그리고 다양성이 없는 사회는 민주주의가 아니잖아요. 외눈박이가 보는 시각으로 만든 교과서로는 애들한테 진짜 역사를 가르칠 수가 없어요.”라고 당차게 마지막 말을 맺고 1교시 수업이 있다며 교실로 들어가는 홍 선생님의 모습을 보니, 교과서 교체 지시를 받고 너무 속이 상해 남몰래 눈물을 쏟았다던 이야기는 꼭 다른 사람의 이야기 같았다.

‘좌편향’ 교과서와 보온병, 그리고 피켓까지 챙겨 들고 교실로 향하는 홍 선생님에게 김 선생님이 수업 가면서 피켓은 뭐 하려고 들고 가냐고 묻자, 홍 선생님은 밝은 웃음과 함께 돌아보며 대답했다. “수업 할 때 교탁 앞에 세워 놓으려고요. 애들은 다 내 편이잖아요.”

요즘 전국이 시끄럽다. 일선학교는 더 시끄럽다.

우리학교는 처음부터 천재교육 출판의 교과서라 별 말이 없다.

대통령이 바뀌면 교과서도 강제로 바꾸게 하는가 생각하면 한심하다.

더 한심한 것은 몰지각한 몇 사람들 아무생각없이 왜 말 많은 교과서를 그냥 두는가 확 없애버리지라는 막말을 하는 것이다.

나서기 좋아하고 발끈한 성격인 나도 그 말에는 입을 닫았다.

입이 더러워 질까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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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서연이 꿈이 오랜만에 바뀌었다.

피아노 막 배우면서 피아노선생님이 꿈이더니 미술학원 다니면서 미술선생님이었다.

최근에 4행시를 멋지게 짓고 칭찬받더니 시인이 되겠단다.

참 그럴듯해 보이긴 하지만 또 어떻게 바뀔지...

언젠가 서연이가 지은 시가 참 좋았다.

 

- 버드나무 -

나무에서 분수가 쏟아진다.

초록물이 쏟아진다.

 

엄마가 문예반 활동한 경험상 시인을 꿈으로 갖는 것도 좋을 듯하다.

 

최근에 도서관 못가는 죄로 전집을 여러 질 사줬다.

덕분에 마루에 책장도 하나 들였다.

이리저리 책 꽂으니 또 공간이 부족하다.

다시 책장을 들여야 할 형편이다.

열심히 창작동화 전래동화 위인전을 읽던 서연이

어제는 갑자기 이상한 이야기를 한다.

"엄마 난 훌륭한 사람이 못 될것 같아"

아니 이게 왠 패배적인 시각! 깜짝 놀라 상당히 당황했다.

뭐 역사에 길이 남을 위인이야 어디 쉽게 되겠냐만은 어린 아이가 왜 이런 패배적인 말을!!

'왜 그렇게 생각하냐'라는 질문에

"내가 책을 보니까 훌륭한 사람들은 다 가난한 사람들이던데. 난 가난하지 않잖아""나이팅게일은 귀족이었지만"

그렇구나! 이전에 위인들은 다 가난한 사람들로 시작했구나.

지나치게 위인을 만들려다 보니 더 상황을 비참하게 설정한 경우도 있겠고...

"서연아 잘 사는 사람들이 좋은 형편에 위인이 된 경우보다 가난한 상황에서 휼륭한 사람이 된 경우에 더 훌륭해서 책에 나오는 거야. 그런데 책에 나오지 않지만 좋은 형편에 휼륭한 사람이 된 경우도 많단다. 서연이도 휼륭한 사람 될 수 있단다."

"그렇구나"라는 서연.

수긍하는 아이를 보면 안심했지만 씁쓸한 기분...

우리 서연이는 우리가 잘 사는 형편이라 생각하나 보다.

승자독식이라는 대한민국 현실에서 개천에서 용은 이제 안난다.

엄청난 사교육비에 무한경쟁의 구도에서 절대 좋은 형편에 놓여 있지 못한 현실을 알게 되면 우리 서연이는 또 어떤 고민을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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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돌이 2008-11-26 23: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서연이 시 좋다. 멋지네... ^^
난 위인전은 무조건 미루고 있는데... 그놈의 위인이라고 선정된 사람들도 맘에 안드는 인간들 투성이고 게다가 그 과장법까지... 그냥 3학년될때까지는 미뤄볼려고... ^^
 

요즘 내가 사는 낙은 베드민턴이다.

지지난 학교에서 베드민턴 열풍이 불때 함 배워볼라고 채도 새로 사고 레슨도 받았는데 한달도 안되 둘째를 가지고 그만 뒀다.

그 채가 썩은지 6년째. 볼때마다 저걸 한번 써야 되는데.

맘은 있지만 학교에 강당이 없다보니 계속 미련만 남다가 올해 새로 옮긴 학교가 강당에 베드민턴 동호회까지 있다길래 욕심을 내어봤다.

근데 욕심은 욕심일뿐 다들 날고 기는 선수들이라 내같은 초짜에 운동신경이라고는 전혀 없는 몸치 아줌마가 끼어드는 것은 그 자체로 민폐더라.

성격이 뭘 배우기에 좋은 것이 못되 공이 떨어지면 미안해하고 더욱 안으로 소극적이 되는 편이라 기냥 아이들 사이에서 동네 베드민턴만 쳤다.

점심시간마다 아이들 꼬드겨서 채도 일부러 집에서 갖다주고 놀았다.

근데 이놈들이 날아다니는 독수리마냥 마구 스매싱에 선생님 공 맞추는 재미를 즐기는 지라 오기가 생겼다.

그래 내가 수련받아 너희들을 평정하리라.

작년 레슨때 마음에 상처만 받고 탈락했던 자칭 운동치  여교사들을 끌어모아 겨우 레슨반을 조직했다.

이게 웬떡이냐! 강사가 20대 중반에 잘생긴 미남에 친절하기까지 하다.

일단 출발 좋게 월수금 점심시간마다 레슨을 받았다.

진짜 우리 스스로도 우리 자세를 못봐주겠다.

강사 선생님 착하기도 하지.

그리 못하는 우리 여교사들을 일일히 격려 해주신다.

그러면서 연신 "허허허 운동 많이 하셔야 겠어요"

"춤을 춰도 예쁘게 춰야지요"   ㅠ.ㅠ.

그렇게 우리의 수련은 계속 되었다.

난 한번 빠지면 뿌리를 뽑는다.

강습없는 날엔 거울보면서 누가 봐도 저게 현대무용이가 고전무용이가 할 자세를 열심히 자습한다.

처음 몇 주는 숨이 턱에 차서 딱 죽을 것 같더니만 이제 매일 운동을 해서 그런지 숨은 안찬다.

뭉친 다리와 어깨에 케펜텍을 붙이고 남편에게 나 죽는다고 다리 주무르라 했지만 점점 강해지는 나의 체력...

자세 나쁘고 아직 폼도 안나지만 숨도 안차고 지구력, 체력 하나는 정말 좋다는 강사의 칭찬아닌 칭찬을 든는다.

점심시간을 기다린다. 시험기간이 끝나고 다시 체육관에 모여든 우리 반 아이들

"선생님 실력이 좀 늘었어요."

"옛날의 샘이 아니에요."

"어허 샘 쩌네요."

 

그럼 이녀석들아 내가 얼마나 열심히 수련했는데

나의 놀라운 실력을 보여주마.ㅎㅎ

 

하지만  나의 놀라운 실력은 아직 보여지지 않는다.

아이들과 베드민턴 치다 보면 아이들 성격도 다 안다.

얕게 치는 녀석, 젠틀하게 치는 녀석, 개구장이 식으로 치는 녀석, 멋있게 치는 녀석...

 

이제 한달째.

점심시간 체육관은 어디선가 몰려든 아이들과 여러 교사들로 북적거린다.

완전히 학교가 베드민턴 열풍에 휩싸였다. 다들 원인제공자로 날 지목한다.

 

어제는 혹시 유니폼이나 전용 신발이 없어서 실력이 늘지 않나 해서 거금을 긁었다.

그래도 즐겁다.

수련이 더 되면 녀석들과 대등하게 게임을 할 수도.

그땐 아이스크림 내기 승부를 신청한 효*이도, 울반 반장도 내가 다 평정할 것이다.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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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돌이 2008-10-28 23: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서라... 네가 무슨 힘으로 저 펄펄나는 아이들을 따라잡겠다고?
그러다 다치지 말고 기냥 살살 치지... (내 배드민턴에 미쳤다가 팔다리 부순 사람들 무지 봤다.... ^^)
근데 학교에 오는 배드민턴 강사샘들은 왜 하나같이 다들 잘생겼지?

아사히 2008-10-29 08: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앗 아직도 이 사이트를 잊지않고.
어제 저녁에 발등에 또 케펜텍을 붙였어요.ㅠㅠ
힘이나 실력으로 안될때는 협박도 해요.
"너 성격이 왜 그래" ㅎㅎ

바람돌이 2008-10-29 10:38   좋아요 0 | URL
여기 즐겨찾는 서재 등록 해놓으면 네가 글 올릴때마다 바로 내 서재에 브리핑이 뜨기 때문에 잊을수가 없지롱.... ^^
그래 그냥 성질로 이기는게 나을 것같다. ^^ 11월 둘째주 여행가기 전에 어디 부수지만 말기를 간절히 바란다. 동흔이 없으면 해아가 심심해지거든.... ^^

바람돌이 2008-10-31 00: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해아가 동흔이 준다고 커플반지를 샀더구만.. 커플반지는 친한 친구랑 나눠갖는거라네.. ^^
근데 오늘 동흔이 주니까 동흔이가 지 누나 줄거라고 하나 더 달라고 해서 안줬다던데,
정작 해아는 그놈의 커플반지 오늘 벌써 잃어버리고 없다. ㅎㅎ

아사히 2008-10-31 10: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눈치없는 동흔이가 해아에게 상처를 준거네.
다행히 씩씩한 해아가 담아 두지 않고 털어버린거네.ㅠ.ㅠ.
정작 엄마한테 그 커플 반지 안보여주던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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