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과 아들이 거의 연년생이라 이제까지 다 크도록 목욕탕에 함께 데리고 다녔다. 

두 놈을 데리고 목욕탕에 가면 내 한몸 건사하기도 힘든데 녀석들은 거의 참여의 의의를 둘뿐 제대로 때도 못밀어 준다. 

뽀독뽀독 때 미는 것에 특별한 애착이 없는 성격에 목욕이야 맨날 하는거 오늘 못 씻으면 다음에 씻지 뭐. 이런 식이라 대충 때를 밀뿐이다. 

그런데도 두 녀석을 굳이 다 데리고 한 목욕탕에 가는 것은 둘이서 놀면 엄마의 목욕 시간이 확보되기 때문이다. 

장난이 좀 심하고 혹시나 하는 걱정은 있지만 눈만 아이들에게 맞춰놓고 있으면 왠만큼 목욕을 즐길수 있으니까. 

그래도 이제 다 컸다고 목욕가는게 힘든 고역은 아니다. 

주말에 쉴 수 있는 하나의 이벤트가 될 정도로..  

지난 주말에 자주 찾던 목욕탕에 갔다. 

아빠는 회사가고 딸은 목욕탕 갈 기대로 그 많던 숙제도 다 땡겨하고, 튜브에 바람도 넣고, 

비가 오길래 택시를 콜했는데 연결되는 것이 없어 기냥 각자 우산 하나씩 받쳐들고 비바람을 뚫고 큰길로 갔다.  

축축하고 으슬으슬하고 이것저것 짐도 무겁지만 온천욕 할 생각에 이까짓거쯤이야.. 

사실 세수도 안하고 나선 길이었다. 

추운 겨울 댓바람에 커다란 튜브까지 바람넣은 채 들고 아이들 델꼬 택시를 탔다. 

결혼식으로 온천장 주변이 너무 많이 막히고 급기야 100m 전방에서 과감하게 내렸다. 

무려 택시비 7000원을 내고 우산 받쳐들고 앞으로 앞으로,,, 

드디어 도착. 다행히 줄은 안서 있어서 얼른 뜨거운 탕속으로 몸을 던지려 했는데 태클이 걸렸다. 

아들이 키가110cm이상 이면 남탕으로 가야 한단다. 우리 아들 갑자기 많이 커서 113cm. 

이럴 수는 없다.   ㅠ.ㅠ.  

몇주 전에도 와서 잘 놀았는데 갑자기 이러시면 안되지. 

하필 오늘은 아빠도 못왔는데. 

전화로 아빠를 찾았지만 올수 없는 상황이란다. 

집으로 가라니!!! 

아무리 사정하고 쫄라도 안된단다. 

갑자기 나이 제한을 강화한단다.  

눈물이 앞을 가린다. 급기야 아들은 울었다.  

이 몰골로 다시 비바람을 뚫고 집으로 가라고.  

이 노란 튜브를 들고, 우산을 받쳐 들고 집으로 돌아가라고...

밖으로 나와 이 난감한 상황을 분개하고 있는데 녹천탕이라는 굴뚝이 보인다. 

어찌나 반가운지. 

그래 여기는 온천장. 널린 것이 목욕탕이다. 

천일탕도 있지. 

예전에 녹천탕 가족탕을 간 적도 있었지... 

그래 물은 녹천탕이 더 좋아. 

착한 녹천탕 주인은 아들도 여탕에 넣어 주었다. 

시설은 영 떨어지지만 아들딸 구분않는 착한 목욕탕. 

근데 명성때문인지 대중탕은 할머니들 투성이다. 

아줌마 정신 제곱이 할머니 정신이랄까! 

무시무시한 할머니들의 목욕문화.  

 

무사히 목욕은 했으니 다행이다.  

하지만 이제 아들과 헤어져야 할 때가 된 것 같다.   

앞으로 이런 아들과의 이별은 또 어떤 것들이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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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서연이 꿈이 오랜만에 바뀌었다.

피아노 막 배우면서 피아노선생님이 꿈이더니 미술학원 다니면서 미술선생님이었다.

최근에 4행시를 멋지게 짓고 칭찬받더니 시인이 되겠단다.

참 그럴듯해 보이긴 하지만 또 어떻게 바뀔지...

언젠가 서연이가 지은 시가 참 좋았다.

 

- 버드나무 -

나무에서 분수가 쏟아진다.

초록물이 쏟아진다.

 

엄마가 문예반 활동한 경험상 시인을 꿈으로 갖는 것도 좋을 듯하다.

 

최근에 도서관 못가는 죄로 전집을 여러 질 사줬다.

덕분에 마루에 책장도 하나 들였다.

이리저리 책 꽂으니 또 공간이 부족하다.

다시 책장을 들여야 할 형편이다.

열심히 창작동화 전래동화 위인전을 읽던 서연이

어제는 갑자기 이상한 이야기를 한다.

"엄마 난 훌륭한 사람이 못 될것 같아"

아니 이게 왠 패배적인 시각! 깜짝 놀라 상당히 당황했다.

뭐 역사에 길이 남을 위인이야 어디 쉽게 되겠냐만은 어린 아이가 왜 이런 패배적인 말을!!

'왜 그렇게 생각하냐'라는 질문에

"내가 책을 보니까 훌륭한 사람들은 다 가난한 사람들이던데. 난 가난하지 않잖아""나이팅게일은 귀족이었지만"

그렇구나! 이전에 위인들은 다 가난한 사람들로 시작했구나.

지나치게 위인을 만들려다 보니 더 상황을 비참하게 설정한 경우도 있겠고...

"서연아 잘 사는 사람들이 좋은 형편에 위인이 된 경우보다 가난한 상황에서 휼륭한 사람이 된 경우에 더 훌륭해서 책에 나오는 거야. 그런데 책에 나오지 않지만 좋은 형편에 휼륭한 사람이 된 경우도 많단다. 서연이도 휼륭한 사람 될 수 있단다."

"그렇구나"라는 서연.

수긍하는 아이를 보면 안심했지만 씁쓸한 기분...

우리 서연이는 우리가 잘 사는 형편이라 생각하나 보다.

승자독식이라는 대한민국 현실에서 개천에서 용은 이제 안난다.

엄청난 사교육비에 무한경쟁의 구도에서 절대 좋은 형편에 놓여 있지 못한 현실을 알게 되면 우리 서연이는 또 어떤 고민을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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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돌이 2008-11-26 23: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서연이 시 좋다. 멋지네... ^^
난 위인전은 무조건 미루고 있는데... 그놈의 위인이라고 선정된 사람들도 맘에 안드는 인간들 투성이고 게다가 그 과장법까지... 그냥 3학년될때까지는 미뤄볼려고... ^^
 

아침에 눈을 뜨니 어제 밤에 읽어주다 졸다 그냥 잠들어 버린 책들이며 흔적들이 흩어져 있다.

치울 겨를도 없이 바쁜 출근 준비를 하는데 어느새 비시시 눈을 뜨는 딸.

아침 인사를 하면서도 얼굴을 닦고 다듬는 손길은 더욱 바빠진다.

돌아와 보니 엎드려서 어제 밤에 읽던 책을 읽고 있는 딸.

동생은 여전히 드르렁이다.

저도 빨리 빨리 할머니 집으로, 유치원으로 갈 준비를 해야 하건만 여유롭게 엎드려 책읽는 모습을 보면서 차마 재촉을 못하겠다.

가끔씩 딸이 책을 도피처로 생각하는 것은 아닐까라는 생각도 해본다.

한번 빠져들면 엄마가 아무리 볶아대도 무아지경이다.

 

옷을 매매 챙겨입었건만 바깥 날씨는 꽤 춥다.

아 쌀쌀하다.

엄마 왜 날씨가 쌀쌀한지 알아요?

왜?

햇님이 쌀쌀맞게 말해서 바람이 찬거예요.

으응? 햇님이 쌀쌀맞게 말해?

그것 참 재미있는 말이다.

가을에는 햇님이 참 쌀쌀맞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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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10-18 15:39   URL
비밀 댓글입니다.

아사히 2007-10-18 21:08   좋아요 0 | URL
아침에는 그렇게 쌀쌀맞던 햇님이 오늘 날엔 오히려 과잉 친절로 땀났습니다.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