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킬 박사와 하이드 씨 클래식 리이매진드
로버트 루이스 스티븐슨 지음, 티나 베르닝 그림, 이영아 옮김 / 소소의책 / 202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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빨간 선홍빛 핏물이 지킬 박사의 머리에 쏟아지다.

그림이 예사롭지 않다. 지킬 박사의 악한 본성이 그를 덮쳐 이제 선한 것은 보이지 않는다. 표지 그림이 인상적이다. 슈베르트 '마왕'이 연상되는 그림이다.

다른 자아에 대한 두려움. 두 자아의 공존을 느낀다는 것은 희망이 있는 것 아닐까?

첫 장 흰 페이지에 선명한 빨간 드로잉.


이 책 그림 너무나 마음에 든다. 그림을 그린 티나 베르닝이 누군지는 모르지만 내가 생각한 지킬의 캐릭터를 직관적인 색과 거친 드로잉으로 파괴적인 악의 본성을 잘 표현해 주고 있다. 스타일이 살짝 에곤 실레가 연상되는 그림체다.


이런 책은 스토리를 읽어 보기 전에 그림부터 차례대로 촤락 넘겨본다. 아. 좋다. 그림책 보는 것처럼 말보다 이미지로 스토리를 말해준다.

마치 주인공이 이미지이고 글이 곁들여 쓰인 글처럼 글자 포인트는 작다. 보통의 다른 책과 비교할 때 한두 포인트 더 작은 것 같다.

classic reimagined 고전 재창조

이 책을 끝까지 정독했다. 이미 어렸을 때부터 여러 번 읽었던 기억이 있는데 다시 읽어도 재미있는 책이다. 읽을 때마다 옮긴이가 다르고 한국말의 글맛을 다르게 표현하시니 책마다 읽는 맛이 있다.

이 책에서는 특히, 줄거리를 이미 알고 있는 독자도 흡인력 있게 읽을 수 있는 소스를 그림으로 제공해 준다.

이런 책이면 예술 작품 감상하듯이 나는 한 페이지에 오랫동안 머물 수 있다.

마치 글의 내용과 분위기가 그림에 다 담겨 있는 듯하다.

소설 속의 가상, 추상성, 괴기스러움, 빅토리아 시대, 고딕풍 소설, 런던의 분위기, 안개, 가스등, 지킬 박사의 서재와 실험실, 하이드씨 집, 지킬 박사의 두 친구 어터슨과 래니언 박사, 커루 살인 사건 등이 눈앞에 다 그려진다.

고전은 언제 읽어도 질리지 않는 탄탄한 내용이 있고 구성이 있다. 꼭 교훈이나 필독서라 불리는 점 말고도 언제 읽어도 변하지 않는 가치, 인간의 속성, 본질에 다루기 때문에 읽을 때마다 읽는 이에게 메시지를 던진다. 자신의 상황에 딱 들어맞게 그때그때 생각나고 떠오르는 점이 있다. 그건 정말 신기하다. 책은 항상 내게 말을 걸어온다. 그래서, 책 읽을 때가 제일 재미있다. 새로운 생각을 할 수 있는 자극제? 촉진제가 되어준다.

지킬 박사와 하이드 씨에 관해서는 항상 느끼는 점이지만 소름 끼치지만 어느 정도 공감이 가는 부분이 있다. 선과 악으로 분리했지만 선과 악을 동시에 마음속에 품고 살아가는 인간이라면 누구나 인간의 양면성에 대해 생각해 보지 않은 사람은 없을 것이다. 다만, 그것이 극한으로 가고, 정말 파괴적인 행위로까지 이어진다면 범죄자나 사이코로 불리는 것.

나를 죽이는 것과 타인을 죽이는 것의 선과 악을 생각해 본다.

나를 죽이는 것은 살인이 아닌가?

그러면, 나를 죽이는 것과 타인을 죽이는 것을 동시에 하는 것은 살인인가?

그 밑바탕에 담긴 감정의 크기는 같다고 생각한다. 안으로의 분노, 밖으로의 분노?

이 책 지킬 박사와 하이드 씨를 읽어보면, 지킬 박사의 원래 어렸을 적 본성은 쾌락을 추구하는 사람이라고 나온다. 그런데 여기에서 말하는 쾌락은 정상적인 쾌락이 아닌 듯싶다. 그래서, 사람의 본성 중 다른 사람이 가지고 있지 않은 기절적인 본성도 타고난다고 생각이 들었다. 괘락을 추구하는 것이 다른 사람을 고통에 이르게 하는 것이라면 그것이 진짜 쾌락인가? 내가 볼 때는 정상적이지 않는 감정 같다. 그래서, 범죄를 저지르거나 극단의 행동을 하는 사람들은 일반인과 다를 것이라 생각해 본다.

지킬 박사의 멈추지 못하는 하이드 씨로의 변신은 지킬 박사의 억제되어 온 그 쾌락주의의 씨앗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처음에는 호기심으로, 이후에는 자신의 본능과 숨겨 있는 자신의 무의식의 발현으로 쾌락을 즐겼고, 이후에는 더 이상 원래 표면적으로 내세웠던 겉포장된 자신의 모습을 유지하지 않고 겉껍데기를 버리고 선한 것은 더 이상 힘을 쓰지 않는다. 여기에서, 이상하게 중독자로 되는 과정을 보여주는 것 같아 섬뜩했다. 중독자들이 처음에는 호기심에 담배를 피우고 술을 마시고 마약을 한다. 하지만, 더 이상 걷잡을 수 없이 계속 그 물질을 찾게 되고 점점 그 물질이 없이는 살아갈 수 없는 형국에 이르게 된다. 그것 없이는 살아갈 힘도 없고 살아갈 수도 없는 빈 껍데기뿐인 자기 자신을 발견할 때마다 좌절하고 우울해진다는 중독자의 이야기가 생각난다. 지킬 박사도 처음에는 그 작은 호기심에 자신의 창조성을 위배한 실험에 내맡겼을지 모르지만, 다시는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넌 것처럼 느껴졌다. 선과 악의 줄다리기에서 악에 패하고 선의 끈을 놓아버린 꼴 아닐까? 악의 마음을 자신이 조절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는가? 지극히 오만한 인간의 말로다.

지킬 박사에서 말하는 선과 악. 일반적인 사람에서 나타나는 선과 악의 마음이 아니라, 극단적인 범죄자나 사이코의 사람에게서 발견되는 선과 악을 생각하면, 다른 해석이 나온다.

지킬 박사는 속으로는 어쩔지 몰라도 사회적으로 명망 있는 의사로서 자신의 체면과 부를 이루며 잘 살아가고 심지어 기부도 하며 선한 사람의 모양으로 잘 살아간다. 하지만, 그렇게 평온한 삶이 지루하다고 생각할 때쯤 인생의 재미를 다르게 실험한다. 약품으로 진짜 사람과 사람이 변하는 것이 아니라, 실제 우리는 이런 사람을 많이 본다. 앞에서는 선한 척을 하고, 뒤에서는 온갖 악행을 저지르는 사람들을 종종 뉴스에서 보지 않는가? 그 위선과 거짓 삶이 금세 들통날 것을 모르는지. 여전히 사회에서는 명망 있는 사회 인사, 유명 인사들의 부조리, 범죄 행위들을 마주한다. 그래서, 이 소설은 인간의 본성을 너무나 꿰뚫고 있어서 재미있다. 시공간의 초월이 있는 내용이라서 언제 봐도 현 상황과 대입이 충분하다.

이 책에서 하이드로의 변신을 알아차리고도 방조한 인물들이 나온다. 나는 여기서도 꽤 많은 생각이 들었다. 진짜 몰랐을까? 지킬 박사가 하이드인지? 알았더라고 하더라도 친한 측근이어서, 혹은 내가 신분이 낮아서, 혹은 당사자와 경제적으로 얽혀 있어서 등의 이유로 진실을 가리고 제발 아니기를 바라면서 가만히 있는 경우가 있지 않은가?

이 소설을 읽을 때마다 느끼는 것은 이렇게 방조, 방관한 사람들이 현시대에도 많다는 사실이다. 거기에서 자유로울 수 있는 사람이 몇이나 되겠는가? 그런 면에서 나도 내 주위의 일들을 다시 생각해 보고 성찰해 본다.

사람의 마음을 이루고 있는 것이 악함과 선함으로 딱 이분법으로 나누는 것은 어불성설이라고 생각하지만,

악한 마음이 있다는 것을 부정하는 이는 없다고 생각한다.

하루하루 내가 악한 것을 취하지 않고 선하게 살아야겠다는 의지적인 선택이 있어야 함을 느끼고 악한 것에는 아예 발길조차 하지 않아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하이드씨의 신체 묘사가 흥미롭다. 요즘 악인의 외모는 아주 평범하고 오히려 호감형의 외모를 가진 사람이 많던데.

그 시대는 찰스 다윈의 '진화론'이 나와서 그런지 이 책에서는 악인의 묘사가 뭔가 기형적이고, 신체 불균형 묘사로 기술되고 있다. 시대마다 선입견이 있구만. 그 시대에 찰스 다윈의 진화론은 얼마나 충격적이었을지 상상이 간다. 기독교적인 세계관에서 인간은 변하지 않는 모습인데 인간의 태초가 원숭이라는 것이 얼마나 충격적으로 다가왔을지가 가늠이 된다. 그래서 인간의 최초 원형의 형태를 뭔가 진화가 안된 동물이나 기형으로 소설 속 인물로 묘사되는 것이 이상하지가 않다.


'그가 숨는 자라면 나는 찾는 자가 되어주지.'

38쪽 어터슨의 언어유희 . 하이드씨를 기다리는 어터슨.

하이드는 창백하고 난쟁이처럼 작달만했으며, 어디가 잘못됐는지 꼭 짚을 순 없어도 기형인 듯한 인상을 주었고, 미소 짓는 얼굴조차 보기 거북했고, 소심함과 배짱이 흉악하게 뒤섞인 태도로 어터슨을 대했으며, 약간 툭툭 끊어지는 쉰 목소리로 속삭이듯 말했다. 그를 싫어할 만한 이유는 이처럼 넘쳐낫지만, 그 모든 점을 다 합친다 해도 어터슨이 지금껏 몰랐던 혐오와 증오, 두려움을 그에게서 느꼈던 이유를 설명할 순 없었다.

어터슨이 바라 본 하이드의 모습 , 40~42쪽

삶에 대한 혐오와 염증이 일었다.

곧 풀이 돌아와 지킬 박사가 집에 없다고 알리자 어터슨은 부끄럽게도 마음이 놓였다.

어터슨의 심리, 43쪽

이 책을 읽으면 항상 같이 생각나는 작품이 있다. 오스카 와일드의 <도리안 그레이의 초상>이다.

만약, 이 책<지킬 박사와 하이드씨>을 재미있게 읽었다면 오스카 와일드의 <도리안 그레이의 초상>을 추천한다.

섬뜩한 대사. 죄인들의 우두머리라면, 피해자의 우두머리이기도 하다는. 사이코 범죄자의 심리가 이럴까? 살인을 하고 쾌락을 느끼는.

이렇게 책이 아름다울 수가. 보랏빛이 물드는 안개 핀 풍경에 검은 숲. 나는 이렇게 생각이 들었다. 사람의 마음 같다. 나는 마지막 이 그림에서 퍼플과 블랙을 같이 사용함으로 결말 짓는 이야기의 정점이 아주 마음에 들었다.




이 책의 그림을 그린 티나 베르닝은 원래 여성 인물화를 그린 사람이라고 한다. 책을 다 읽고 나서 그녀의 그림들을 검색해 보았다.

출처: 티나 베르닝의 인스타









#지킬박사와하이드씨#로버트루이스스티븐슨#소소의책#클래식리이매진드#티나베르닝#컬처블룸#컬처블룸리뷰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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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세상이여, 그대는 어디에 아르테 오리지널 24
샐리 루니 지음, 김희용 옮김 / arte(아르테) / 202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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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명의 주인공

저자 : 샐리 루니

<친구들과의 대화>, <노멀 피플>, <아름다운 세상이여, 그대는 어디에>를 출간했다. 앞선 두 권은 이미 드라마 시리즈로 각색되어 BBC에서 방영되었다. 2022년 <타임스>는 그녀를 전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문화계 인사 100인 중 한 명으로 선정했다.

책 제목이 어디서 많이 듣던 구절이었다. 슈베르트의 가곡 '아름다운 세상이여, 그대는 어디에'곡으로 나는 가사로 접했다. 이 책 398쪽에서 저자가 말했듯이, 이 책의 제목은 독일의 시인 실러의 시 <그리스의 신들>의 한 구절을 직역한 것이다. <그리스의 신들>시의 내용은 신들과 인간들이 함께 어우러져 살던 세계가 사라진 현실을 안타까워하고 슬퍼하며 그리워하는 내용으로 되어 있다. 프리드리히 실러는 괴테와 쌍벽을 이루는 독일의 문호이다. 우리가 아는 베토벤의 9번 합창 교향곡 4악장의 '환희의 송가'를 작사한 사람이기도 하다. 실러의 시 <그리스의 신들> 중 "Schöne welt wo bist du?" 아름다운 세상이여, 그대는 어디에?에 Schubert가 1819년에 곡을 붙였다. 아래의 곡이다.


두 여자 주인공이 편지를 주고 받는 문체가 있고 3인칭 시점으로 쓴 부분이 있어 살짝 왔다 갔다 하는 느낌이 있지만, 구어체가 간간이 있고 현실을 배경으로 한 소설이라 금방 읽을 수 있고 책장을 넘길 때마다 드라마 장면이 그려지는 소설이다.

이 책은 작가 자신이 투영된 더블린 출신의 앨리스 켈리허, 앨리스의 대학 동창이자 친구 사이인 아일린 라이든, 각각 그들의 연인이 펠릭스 브래디와 사이먼 코스티건이라는 4명의 삶을 통해 이야기가 전개된다.

성공한 소설가인 앨리스와 물류 창고 노동자인 펠릭스의 만남, 성공한 소설가와 대조적으로 문학잡지에서 보조 편집자로 일하는 아일린과 의회 보좌관인 사이먼의 이야기가 나온다.

삼 심대의 두 주인공 여자는 완벽해 보이지만 심리적으로 불안하고 이기적이며 초조한 현시대의 젊은이들을 반영했다.

두 주인공의 캐릭터를 서로 대조적으로 설정하고 앨리스는 성공해서 부를 이루고 있지만 아일린은 보조 편집자로서 경제적으로 다른 위치에 있다. 앨리스는 이미 자신이 몸담고 있는 문학계와 대중문화계의 문제점을 거론하고 있지만 아일린은 이별의 상처로 방황할 때 사이먼을 만나 위로를 받는다.

젊은 날의 초상처럼 4명의 이야기가 펼쳐지면서 젊은이의 우정과 사랑, 또 그 시기에 맞물리는 고민, 심리적 불안감을 현실적인 자신의 이야기로, 혹은 3자의 시선으로 이야기를 꺼내 놓는다.

이 책을 읽으며 젊었을 때의 방황과 혼란스러움, 앞으로의 시간들에 대한 두려움이 일었던 젊은 날의 나와 같이 여행하는 느낌이었다. 그러면서도 주인공들이 끊임없이 이야기하는 것이 계속 사랑하라고, 절망과 낙담보다는 희망이 있다고 이야기해 주는 느낌이다.

인생의 어느 한 시기만 불안하고 혼란스럽고 걱정스럽겠는가. 이 책을 누가 보느냐에 따라 젊은이들은 현재의 치열한 젊음과 같이 읽어내려갈 것이고, 나이 지긋한 사람은 젊었을 때의 혼돈과 방황, 사랑과 상처, 이별, 삶의 문제 등 그 아름다웠던 시간들을 반추해 보는 소설이 될 것이다.

내 편을 들어준 적이 없는 유일한 사람

아름다움

소설가

나는 그들과 함께할 것이며, 내가 낳을 수도 있는 어떤 아이라도 그들의 아이들과 함께할 거야.



#아름다운세상이여그대는어디에

#샐리루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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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로운 사람들을 위한 정치 수업 - 한나 아렌트, 성난 개인들의 시대에서 인간성 회복의 정치로
이인미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2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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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나 아렌트의 생각에 저자 이은미 님의 생각이 같이 담긴 책.

사유하는 사람은

고독하지만

홀로 있지 않다

외로운 사람을 위한 정치학 책 中

한때, 아렌트의 책이 유행한 적이 있었다. 내가 기억하기로는 tv프로그램 중 패널들이 책을 읽고 한 유명 인사가 책에 대해 이야기하는 프로그램이었던 것 같다. 그전에 나는 한나 아렌트의 책보다 그녀의 사생활(철학자 하이데거의 연인)에 대해서 알게 된 점이 있어서 관심을 갖고 <예루살렘의 아이히만>을 읽었던 기억이 있다. 책 내용은 대충 유태인 학살을 한 아이히만을 분석하면서 그 사람이 특별히 악인이라고 생각되는 것이 아니라 그냥 히틀러의 복종에 따랐을 뿐 평범한 사람에 지나지 않았다고 하는, '악의 평범성'에 관련된 이야기였고 그녀의 해석을 아주 인상 깊게 봤던 적이 있다. 인간은 누구나 악인일 수 있다는. 혹은 가스라이팅이 한참 이슈일 때도 같이 생각이 났다.

아무튼, 한나 아렌트의 책은 딱 한 권 읽었는데 그녀의 책들이 이렇게나 많다는 것도 이 책의 책날개에 소개된 주제별 저서를 통해 알게 되었다.

한나 아렌트는 정치 철학자로 불리는데 정작 그녀 자신은 그런 호칭을 거부했다고 한다.

이 책의 저자는 한나 아렌트의 저서 15권의 내용을 5개의 카테고리에 담아 아주 친절하게 잘 설명해 주어 읽기 편했다. 요점 정리를 해 준 느낌?

책 앞날개에 소개된 아렌트의 책

차례

처음에는 제목을 보고 조금 의아스러웠다. 왜냐하면 외로움은 개인의 감정이고 그 감정을 느끼는 개인의 현상이라고 생각한 내가 뭔가 훅 생각할 거리가 있음을 느꼈기 때문이다. 외로움은 개인의 문제라고 생각했는데 이 책에서는 그 시대의 사회적, 정치적 문제들과 밀접하다고 말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 화두를 던지는 것이 굉장히 나한테는 신선했기 때문에 끝장까지 재미있게 읽었다.

이 책은 현시대를 외로움의 시대로 표현하면서 그 외로움이 어떻게 정치와 결부되는지 또, 혼자 있음과 외로움을 아렌트는 어떻게 구분하는지 이 책의 저자가 잘 이야기해 주고 있다.

그리고, 정치에 대한 통찰과 인간에 대한 통찰이 같다고 이야기하는데 아주 많이 동감한다. 정치에 인간의 속성이 낱낱이 다 들어있고 그 인간의 마음을 움직이는 것이 정치이기 때문이다.

이 책에서 한나 아렌트는 외로움의 시대에 각자도생하지 말고 서로 소통하고 협력하고 사랑하자고 이야기한다. 전화, 문자, sns를 이용해 시공간을 초월해 소통할 수 있는 현대인들이 정작 외롭다고 느끼는 것은 진정한 소통이 아닌 기능적인 소통에만 초점을 두고 있고 그렇게 편리성만을 추구하는 현시대를 이미 예견하며 쓴 책 같다.

이 책을 읽으며 한나 아렌트가 던져 준 각각의 주제에 대해 생각해 볼 수 있어서 좋은 시간이었고 특히, 2장 정치라는 문제와 3장의 공동체라는 문제를 읽고 많은 생각이 들었다.

내가 속한 세계에서 진정한 의사소통이 이루어지고 있는지 아직도 권위주의적이고 전체주의적인 행태가 있는 것을 종종 목도하는데 그런 점이 굉장히 불편하고 아직도 내가 살아가는 세계는 한참이나 개선해야 될 점이 많음을 느꼈다. 그리고, 평소 정치에 무관심했고 정치는 나와 상관없는 세계라고 살짝 물러난 이유가 내가 속한 조직 내에서 강요당하고 있다는 사실을 새삼 느끼게 되었다. 정치라는 것이 나의 삶이 반영되고 나의 의견을 말할 수 있는 통로가 되는 것인데 한 개인으로서 무력감을 느끼는 경우가 많다 보니 자연스레 손을 놓을 때가 많았음을 고백한다.

그리고, 관점에 따라 공동체의 행동이 혁명이 될 수도 있고 테러일 수도 있다는 것이 와닿았다. 그리고, 무언가를 이루기 위해 즉 대의라고 말하는 정의를 이루기 위해 폭력이 정당화될 수 있는지에 대한 생각도 해 보았다.

여러모로 이 책을 읽으며 잠자고 있는 내 의식에 불을 지친 책이 돼 주었다. ​





#외로운사람들을위한정치수업#이인미#위즈덤하우스#컬처블룸#컬처블룸리뷰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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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자책] 페어리 테일 1 페어리 테일 1
스티븐 킹 지음, 이은선 옮김 / 황금가지 / 202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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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화 1이란 제목. 거짓으로 꾸며 낸 이야기라는 뜻을 가진 제목. 이미 영화화된다고 한다.


오타 발견 동틀 무렵 아닌가?

스티븐 킹은 할리우드가 사랑한 작가이다. 그의 작품은 영화화된 작품이 많다. 왜 그런지 이 책을 읽다 보면 느낄 수 있다. 그가 이야기를 이끌어 가는 방식이 딱 영화화할 수 있도록 다음 장면을 기대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특히 책으로 보는 그의 이야기는 상상력과 몰입감을 선사한다.

나는 스티븐 킹의 작품 중 《쇼생크 탈출》을 인상 깊게 본 기억이 있다. 그 작품도 처음에는 소설이었다고 생각하니 책으로 만나면 또 다른 재미가 있었겠다 생각이 들었다.

이 작품은 화자(찰리)가 7살 때 어머니를 여읜 이야기부터 시작된다. 첫 장면은 죽음이다. 찰리의 엄마는 시카모어 다리 끝에 있는 치킨 가게에 걸어서 치킨을 사고 집에 오는 중에 트럭에 치여 다리에서 죽게 된 시점부터 풀어나간다. 그 이후로 찰리는 아빠(리드)와 단둘이 살게 된다. 엄마와 살 때는 아빠와 엄마가 반주처럼 마시던 술이었고 엄마가 죽을 때쯤 아빠의 상태를 찰리는 애주가로 기억하고 있지만, 주인공(찰리)의 엄마가 죽자 아빠는 아들은 뒷전 인체 알코올 중독으로 악화되고, 결국 직장에서 해고된다. 그 이후 AA12 단계 모임(알코올 중독자 치료 모임)에 매일 가면서 알코올 중독 회복에 노력을 기울이지만 번번이 실패하고 마는 모습도 보인다. 주인공 찰리가 어른의 도움을 받지 못하고, 자기 자신을 돌보고 아빠마저 돌봐야 했던 10살의 모습도 그려진다. 아빠가 토한 것을 치우고 아빠의 식사를 챙기고. 그 이후로 아빠가 알코올 중독에서 차츰 회복되어 직장을 다시 얻게 되고 찰리는 힐뷰 고등학생이 되어 야구, 농구를 즐기는 소년으로 성장한다.

2013년 3월, 찰리가 17살이던 해 파인가와 시카모어가가 만나는 지점에 사이코 하우스라고 별명 붙인 집이 있었는데 그 집 주인 보디치가 사다리에서 떨어져 다리가 다친 것을 911에 신고하고 구하면서 그 집의 개인 레이더와도 만난다. 보디치가 병원에서 수술을 받고 그가 키우던 개 레이더를 돌봐주며 원래 흥미를 느꼈던 야구부 연습도 안 하고 팀에서 나와 보디치의 반려견 레이더를 돌봐 준다. 주인공 찰리의 미담이 사진과 함께 신문에 실리고 찰리는 퇴원 후 보디치의 보호자 역할까지 하게 된다. 병원에서 생활하던 보디치는 주인공 찰리에게 "너는 훌륭한 선물이고 믿어 봐야겠다고 한다."라는 의미심장한 말을 건넨다.

용감한 사람은 다른 사람을 돕는다. 겁쟁이는 선물만 주지만.


훌륭한 선물. 자랑스러운 아들. 행복한 하루.


화가 난 아이들은 말썽을 일으킨다.


브래드버리 소설을 좋아하는 찰리, 그리고 작가?

여기서 이야기는 시작된다. 어찌 보면 많은 복선이 있는 소설 같기도 하고, 다양한 이야기가 얼핏 보이기도 하다. 그렇지만, 초반부에 책을 읽는 내내, 과연 보디치는 어떤 인물일까? 초반부 묘사는 그저 혼자 살고 광장공포증이 있어 은둔생활하며 옛것을 좋아하고 저장강박증이 있는 깔끔한 노인이라는 객관적인 단서의 조합만 머릿속에 둥둥 떠다닐 것이다. 그런데, 이야기를 읽다 보면 왜 그런 인물의 성격 묘사와 배경이 나오는지 살짝 짐작이 간다. 초반부에 찰리의 아빠가 병원에 입원한 보디치를 알아본 바로는 거의 아무 정보도 없고 컴퓨터도 휴대폰도 없고 현실 세계와는 담을 쌓은 인물로 나온다. 그리고, 찰리의 아버지가 추측하건대 보디치는 자신의 아버지가 매입한 언덕 꼭대기 집 부지가 6000제곱미터에 달한다 집에 혼자 살며 운전면허증도 없이 차는 있고, 세금은 꼬박꼬박 낸다는 것. 그리고 그의 정체를 알 수 없지만 수입이 있다는 것? 이쯤 되면 보디치와 왠지 모를 보디치 집의 정체가 자꾸 궁금해질 수밖에 없다. 궁금해서 페이지는 계속 넘어간다.

주인공 찰리는 처음에는 아빠를 돌본다. 그 이후에는 또 보디치와 개를 돌본다. 소설의 내용 전개와 전혀 관련이 없지만 알코올 중독자 가정에서 자란 아이들은 이렇게 아이가 아이로 자라지 못하고 어른을 돌보는 아이로 자라게 된다. 그러면, 찰리도 결국 누군가를 돌봐야 하는 어른 아이로 크게 되는 것일까? 아니면 제대로 어른이 되는 과정을 그린 걸까? 내내 궁금해하면서 읽을 수밖에 없다.

시간과 사건의 흐름대로 쭉 이야기가 펼쳐지고 스토리 전개가 뒤 내용을 궁금케 하는 면이 있어서 빨리 익힌다. 그리고, 장면 장면을 상상하게 하는 필력이 있어서 자꾸 읽으면서 이미지를 생각하게 만든다.

동화라는 제목이고, 화자가 어린이 시절부터 나오는 것이라서 동화의 주 독자층인 어린이가 읽으면 좋을 책은 아니고 모든 연령이 읽을 수 있는 책이다. 중간중간에 우리가 아는 동화(이야기)도 언뜻언뜻 나온다. 잭과 콩나무. 잭과 콩나무에서 그 나무를 베는 나무꾼의 정체군은 누구였는지 기억하는가? 이 책에서도 나무꾼이 나온다.

이 책을 읽으면서 기억에 남는 문장이 있었다. 찰리가 어려운 환경, 즉 어머니의 부재와 아버지의 중독에서도 굴하지 않고 꿋꿋하게 잘 살아가는 모습을 마치 응원하는 듯한 문장이 있다.

"용감한 사람은 다른 사람을 돕는다. 하지만 겁쟁이는 선물만 준다." 나는, 이 말에 오래 머물러 있었다.

그리고, 화자가 성장하는 과정과 심리 묘사, 자신의 상태를 솔직하게 이야기해 줘서 공감할 수 있는 대화가 많이 있었다. 아빠가 어떤 모습이든, 아빠를 사랑하는 찰리의 모습과 아빠가 언제 다시 술을 마실지 모르는 그 불안감이 느껴져서 공감했고, 아빠가 알코올 중독에서 회복되기를 바라면서 자신이 선을 행한다고 생각하는 것도 다 이유가 있어서 측은했다.

내가 본 동화는 실제 파헤쳐 보면 정말 잔혹한 내용이 많다. 그래서 동화라고 하면 살짝 선입견부터 생긴다. 요즘 들어 거의 어린이가 주인공인 판타지 소설이나 동화 속 부모들은 나쁘거나 부족하거나 부재중이다.

소설 앞 부분은 찰리의 현실 세계이다. 후반부로 가면, 보디치의 사이코 하우스를 물려받게 되는데 그 하우스 안에서 동화 속으로 들어가게 된다.

내가 읽은 이 책은 1권이다. 1권을 다 읽고 나니 저절로 2권의 내용이 궁금해졌다. 결말이 어떻게 날까?

오타인가?


오타인가? 잘 몰라서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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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다른 현대미술 - 진짜 예술가와 가짜 가치들
뱅자맹 올리벤느 지음, 김정인 옮김 / 크루 / 2023년 11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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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표지는 두꺼운 양장본이고 앞표지에는 화가의 그림이 있다. 다만, 표지는 하드보드 질감이어서 뭔가 견고한 느낌이 었는데 읽는 사람 입장으로서는 갈피끈(가름끈)이 있으면 더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런 질감의 책에서는 꼭 있었던 가름끈이 생각나는 것 보면 그것도 책에 대한 고정관념인가? 총 183쪽 분량이어서 방대한 분량은 아니다.

저자 : 뱅자맹 올리벤느

1990년생. 프랑스 파리 소르본 대학교에서 철학 학사 학위, 파리 팡테옹-소르본 대학교에서 현대 철학 석사 학위 취득. 뉴욕의 콜롬비아 대학교에서 수업하며 문학 박사학위를 준비하고 있다.


책의 구성

저자는 장 클레르의 기존 입장을 옹호하며 자신의 의견을 책으로 냈다. 저자는 전쟁 후 태어난 예술가를 주목하고 민족 화파 개념에 대해 개인적 견해를 제시했다. 장 클레르는 유럽의 예술적 전통을 깨뜨린 현대미술의 흐름과 제도화된 아방가르드 미술을 비판해 온 프랑스 미술사학자이자 전 피카소 미술관 관장이다.

책에 그림이 직접 수록되어 있지 않다. 다만, 큐알 코드로 작품에 대한 정보를 제공하고 있다.


큐알 코드로 직접 검색했더니, 쿤스 <풍선 개>를 볼 수 있었다. 직접 큐알 코드로 작품을 검색해야 되는 점을 한 번 더 손이 가 번거롭다. 미술 작품에 대해 많이 아는 사람은 작품 제목만 들어도 연상이 되겠지만 잘 모르는 사람은 직접 검색해야 한다.

이 책의 저자는 현대 미술의 주류로 나온 작품들에 대해 예술성과 작품 가치에 대해 정면으로 반박한다. 자신의 생각과 다른 현대 미술 작품들이 주류를 이루고 고가에 팔리는 것들에 의심을 품고 진짜 예술 작품과 진짜 예술가에 대한 자신의 관점을 책으로 엮어 놨다. 나는 이 저자의 의견에도 많은 부분 동의하지만, 이렇게 생각하는 것 자체가 예술의 흐름을 자신만의 관점으로 해석해서 생기는 일인 것 같다. 그 거대 주류를 움직이는 것도 현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이고 이유가 있을 것이다. 시대별로 유행한 작품이 다른 것도, 어떤 사조가 한 시대를 풍미하면 여러 가지 사회적 조건, 역사, 문화적 배경, 가치에 따라 새로운 사조가 탄생되기도 하고 다시 같은 사조가 반복되면서 재유행을 하기도 한다. 그것은 자연스러운 현상이고 그 거대한 흐름을 개인이 좌지우지할 수는 없다. 현대 미술의 다양한 작품 속에서 자신이 원하고 취향 하는 바를 찾아서 감상하고 작품을 소유하면 될 것이라 생각한다. 예술의 가치를 논한다는 것 자체가 어불성설이다. 예술의 가치라니. 많은 사람이 인정해야 예술인가? 아니다. 아니면 예술성이라는 것 자체가 무엇인가? 나는 전적으로 예술의 가치는 감상자의 몫이라 생각한다. 미술 작품의 가치와 미술 작품이 경매에 매겨지는 값이 일치하는가? 그것도 아니라고 본다. 특히나, 미술은 현대에 와서 더 그런 것 같다. 실물의 바나나를 벽에 붙이고 예술이라 한다. 그것도 예술이라고 인정받는다. 그런 사회에 우리는 살고 있다. 현대 미술에서 진짜 예술가와 가짜 가치라는 말 자체도 나는 많은 의견 중 하나의 의견이라고 생각한다. 예술의 개념도, 가치도 정답은 없다고 생각하고 옳고 그름도 없다고 생각한다.

이 책은 20세기부터 오늘날까지 이어지는 또 다른 미술사를 소개하고 현대 미술의 범주에 속하지 않은 예술가들을 재평가하고 미술과 미술사에 관한 또 다른 시각을 피력한다. 그리고 저자의 나라인 프랑스의 문화 상황과 맞물린 예술가와 작품들에 논하고 있다. 대중의 관심을 끌지 못하지만 비주류의 예술가들을 소개하고 다른 시각으로 예술 작품을 소개한다는 점에서 흥미로웠고 재미있었다.

이 책은 내가 평소 가지고 있는 현대 미술에 대한 생각들을 글로 잘 표현해 주셔서 감사하게 잘 읽었다. 일정 부분 동의하고 아닌 부분도 있어서 저자의 의견을 곰곰이 헤아리며 열심히 읽었다.

이 책에서는 현대 미술에 반대한다는 의미를 미술을 지배하는 권력에 저항한다는 표현을 썼다. 미술이어서 가능하지 않을까? 마치 어떤 현대 미술 작품을 보고 "어머나! 어런 것도 예술 작품인가? 하면서 의아스러움을 느끼거나 주류의 미술에 반박할 어떠한 비평도 할 수 없을 때 그냥 유명하니까 고가의 작품이니까 좋은 작품이구나를 암묵적으로 인정하는 분위기가 판을 치면 그럴 수 있다고 본다. 현대 미술의 주류 예술 작품이 위대하고 추앙받는 이유를 거대담론의 시각, 혹은 사회적 이데올로기, 미술 수집가들의 거대 흐름에 맡겨 좌지우지된다는 느낌을 받으면 그런 생각이 들 수 있다.

음악에서도 현대 음악은 기존의 음악과 다른 정의를 내린다. 어떤 사조를 내세우려면 그 이전 시대와는 차별적인 특성을 가지고 있고 변화된 예술 가치를 설명해야 되는 건지 아니면 자연스럽게 그런 음악들이 나와서 현대 음악이라 일컫는지는 딱 꼬집어 말할 수 없다. 어떤 시대나 다양한 음악이 존재하고 수요자는 다양한 음악을 듣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현대음악의 특징도 그 이전 음악과는 다른 차별적인 특징이 존재한다고 생각하는 것은 그 이전과 다른 음악의 나타남이고 새로운 음악의 정의가 내려진 덕분이라 말할 수 있다. 예를 들면, 존 케이지의 '조작된 피아노 prepared piano' 나 '4분 33초', 아놀드 쇤베르크의 '12음기법'을 평소에 자주 듣거나 애호하지 않지만 현대 음악이라 칭하고 한 시대의 음악적 특징이라고 말한다. 그렇다고 각 시대의 음악을 갖고 음악의 가치를 따지는 일은 하지 않는다. 음악도 각 시대별 특징이 있고 현대 음악이라고 칭한 음악이 있지만 현대 음악만 연주되는 현재는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이 책의 집필 의도도 알고 어떤 의미에서 현대 미술에 대해 비판하는지는 이해는 하지만, 처음에 전제로 하는 예술의 가치, 즉 진짜와 가짜의 구분 짓는 것 자체를 별로 의미 없다고 생각한다. 당연히 내가 창작자가 아니고 일개 개인적인 감상자라서 그런 것도 있겠지만, 현대 미술이 아무리 주류로 밀고 있고 고가의 낙찰가로 나오고 있는 작품도 개인의 감상자가 보기에 아닌 것은 아니니까. 너무 단순한 원리지만, 예술 작품과 예술가를 분리시켜 생각하는 것도 의견이 분분할 것이다. 나는 작품에 투영된 예술가의 삶을 보고 감동을 느끼는 경우도 있기에 꼭 분리시켜 감상하는 것이 옳다고 보지 않는다. 그리고, 현대에 와서 예술 작품과 상업 제품의 경계가 모호해진 시점에서 꼭 예술이 소수만 향유해야 하고, 한 개의 작품으로 복제 불가능이어야 한다는 점도 나는 동의할 수 없다. 명품을 소유하는 것처럼 예술 작품도 사람들이 그 작품의 깊이와 창작 의도와는 상관없이 소유할 수 있고 감상할 수 있다고 본다. 작품의 창작자는 창작할 뿐이고 감상자는 감상자의 몫이다. 나는 예술 작품과 대중 기성품과의 콜라보를 나쁘게 생각하지 않는다. 그래서, 현대 미술 작품이 노력도 없고, 딱하니 기성 제품을 전시하고 예술이라고 칭하는 것도 개인의 인식과 관점 차이라고 생각한다.

현대라고 이름 붙여진 예술작품 혹은 음악이 전부다 그런 것도 아니고, 그냥 현대 미술, 현대 음악이라고 정의 내려진 미술사, 음악사가들의 정리일 뿐이라고 생각한다.

현대를 사는 우리는 어떤 예술이건 그 값어치를 매기는 것은 개인의 자유이고, 향유하는 것도 자유라고 생각한다.

단지, '현대'라고 이름 붙여진 미술, 음악에 관심이 없고 즐기지 않는 것은 개인차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현대 미술이라고 붙여진 작품을 폄하할 생각도 없고 그것에 대해 좋다고 말하고 싶지도 않다. 그냥 현대 미술이라고 붙여진 작품이구나.라고 하면 될 것 같고. 나는 현대 미술에 대해 별다른 감흥이 없으면 꼭 유명한 작품이어도 나한테는 유명한 작품으로 와닿지 않을 수 있는 문제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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