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갱이들 - 제6회 박지리문학상 수상작
황보나 지음 / 사계절 / 2026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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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갱이들 - 황보나



 

*본 도서는 출판사로부터 제공받았습니다.*



 

고등학생인 주인공 권현비는 제일 친한 친구인 정미가 죽었다. 그리고 정미의 언니인 유미가 현비를 찾아와 자신의 동생 죽음에 대해 묻는 장면으로 시작된다. 그리고 거의 1년이 지났지만 유미는 약속도 없이 계속 현비를 찾아내 불편한 만남과 질문을 시작한다. 심지어 현비는 학교도 옮기고, 집도 이사했다.

당연히 가족을 잃은 슬픔, 친구를 잃은 슬픔 경중을 따질 수는 없을 테다. 그런데, 왜 자꾸 찾아오는 건데, 현비가 뭘 잘 못했다고. 그런 생각이 첫 장을 읽는 순간 부터 치밀어 올랐다. 어른스러운 현비는 그냥 <또 왔네>정도에서 마무리하긴 하지만.

아무리 떠올려도 정미가 죽음에 이르게 된 경위를 현비는 모른다. 다른 점 이상한 점을 생각하려 했을 때도 생각한 건 삼각 김밥을 먹었고 정미의 최애 맛인 참치마요를 자신에게 양보했다는 것 뿐이다. 평소 같았으면 자신이 훨씬 더 많이 양보했었다는 사실과 함께 말이다.

엄마 아빠는 맞벌이로 너무 바쁘고, 할머니는 틈만나면 잘못한 것도 없는 나에게 참회하라는 말만 되풀이 한다. 고모는 고모부가 맨홀에 빠지는 사고로 사망했고, 고모와도 왕래를 끊다 시피 한 할머니도 의아하다. 그렇게 마음에 안들어서 결혼도 반대했으면서, 또 사고로 간 사람을 못잊어 슬퍼하는 딸에게는 앞세운 사람 프레임을 붙여 버린다. 그래서 틈만 나면 술독에 빠져 있는 고모와 현비와의 대화가 그나마 가장 인간다운 인상을 주었다. 아직 가버린 사람을 개새끼라 원망하는 고모긴 하지만 말이다.

전학한 학교에서 새로 사귄 친구 소윤은 김라희라는 같은 반 애한테 학폭을 당하고 있다. 욕설과 폭력 그 사이에서 자신은 투명 인간 취급을 받으니 이건 또 뭐라고 해야할지. 소윤은 폭력과 폭언을 당하고 나면 현비에게 들었던 말이 아니라고, 자신은 그런 사람이 아니라고 반복해서 말해달라고 한다. 마치 그런 일은 당하지 않았다는 세뇌를 하고 싶은 것 처럼 보였다. 그러다가 주위 사람들에게 휩쓸려 또 현비를 버려버리는 이 친구는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그만큼 청소년 시기는 미완성과 불완전이니 그려려니 해야 하는 것인지. 나는 쎄하지 않다고 자조하는 현비가 안타까웠다.

김라희와 관계된 일로 이예준의 집에 찾아가게 된 소윤과 현비. 정확하게 말하면 이예준을 만난 것은 우연이고, 이예준의 동생인 이예영의 커플링 중 한 개를 되찾으러 왔다. 김라희의 외사촌인 권민아가 이예영의 전여친이고 그 커플링 돌려달라고 말이다. 그냥 들러리로 자기 심심하다고 소윤과 현비를 데려온 것이다. 그렇게 얼굴을 트게 된 예준의 집 소파 밑에서 뜻밖의 영혼인 고모부를 만나게 된다. 죽었지만 죽고 싶지 않았다는 고모부의 말이 퍽 딱하다. 그래서 현비에게 죽고 싶은 마음을 모아달라는 영혼의 요청에 그러기로 한다. 물론 이 고모부를 예준의 집에서 나오게 하기 위한 현비와 예준의 거래가 또 화가 나지 않는 것은 아니었지만. 가까운 사람을 잃고 무엇이든 했었던 시절을 떠올리면 또 그럴 수 있겠다고도 생각한다. 그런 시기에는 그 어떤 것도 이상해지지 않았다는 생각을 하면서. 그래도 예준의 양아치 같은 거래의 시작과 껄끄러운 대화와 그 이상의 것은 좀 아니라고 생각하지만 말이다.

아무튼 계속해서 유미는 현비를 찾아온다. 현비가 마음속에서 일었던 파장이 버려지는 껍질과 동일시된 자신이었던 것을 감지했던 것일까. 일년여간 지켜본 현비에게 그러지 말라고 이야기 한다. 생각해 보니 이 소설에서 또 완전히 무결한 사람은 없는 것 같다. 현비를 지켜주는 유미도 자신의 연애는 도덕관이 일그러져 있으니까.

그 다음에도 유미가 현비를 찾아올까. 내 바램은 그만 찾아와 줬음 한다. 정말이지 정미가 보고 싶은 현비가 안타깝다. 그렇지만 정미와 같이 살아가고 있을 현비가 그 점을 알게 되어 다행이다. 얼마나 그리웠을까. 그렇지만 돌아오지 못한다는 것은 참 슬픈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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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로 읽는 스페인
백인필 지음 / 디이니셔티브 / 2026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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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로 읽는 스페인 - 백인필


 

*본 도서는 출판사로부터 제공받았습니다.*


 

올해면 사라지는 마일리지가 많은데 갈 곳을 아직도 정하지 못했다. 가까운 곳이야 얼마든지 가겠지만 가고 싶은 곳이 미국이나 스페인처럼 먼 곳인 탓이다. 무려 15년 전에 다녀온 바르셀로나가 생각나면서 물론 갔지만 일행 때문에 너무 양보해서 들어가보지 못했던 곳곳에 대한 아쉬움이 다시금 생각났다.

스페인의 명소로 타호 협곡 사이에 건설된 론다의 상징인 누에보다리를 보러 가고 싶다. 이름 자체가 <새로운 다리>라는 뜻이고, 협곡 아래에서부터 돌을 쌓아올려 아치를 만들었다고 한다. 굉장한 높이던데! 구시가지와 신시가지를 잇는 다리이고 인생샷을 위해 많이 방문한다고 한다.

책은 건축물과 건축가 미술을 지역별로 묶어서 보여준다. 스페인 여행을 한다면 개괄적으로 고려해볼만한 랜드마크와 보석같은 작품들이다.

세비야 대성당의 종탑 히랄다는 상부 1/3은 고딕양식을, 하부 2/3는 이슬람양식으로 되어있어 스페인의 역사까지 한 눈에 보여준다.

다시금 추억여행을 하게했던 바르셀로나는 바둑판 모양의 계획지구인 에이샴플레(카탈루냐 어로 확장을 의미)를 알려주는 것 부터 시작한다. 1854년 구시가지의 성벽을 철거하고 방사형 도로와 모따기를 한 건물들로 이루어져 있다. 한 구획의 사각형에 건물이 조금씩 잘려나간 모양으로 건설된 것이다. 이는 마차가 코너를 돌때 건물에 가려서 보이지 않는 사람을 치는 경우가 많았기 때문에 생겨났다고 한다. 블록의 잘라진 모퉁이 덕에 사람은 시야를 확보하게 되었다. 지금은 차를 잠시 세우거나 짐을 내리는 공간으로 이용한다고 한다. 그러고 보면 걸으면서 완전한 직각이 아니라 유연한 느낌이었던 것을 기억해냈다.

가우디가 만든 6갈래의 가스등을 다음번에는 더 잘 보고 와야겠다는 생각이다. 가스등 윗부부분은 에르메스를 상징하는 날개달린 투구로 장식되어있다. 기둥을 휘감고 있는 두 마리의 뱀은 에르메스의 지팡이인 케이케리온을 형상화 하였다고 한다. 지금이야 가스등이라 하면 가스라이팅이라는 말이 더 많이 알려지긴 했지만, 1842년에 스페인에서 최초로 가스등이 설립된 것이라 한다. 심미성과 기능성이 둘 다 조화를 이룬 아직까지 남아있는 작품이리라.

카사 바트요, 카사 밀라, 사그라다 파밀리아, 구엘 공원 등은 다 직접 보고 왔다. 물론 들어가 보지 못한 곳들이라 다시금 버킷리스트가 되긴 했지만 말이다. 가우디의 초기작인 직선을 살린 <카사 비센스>는 책을 통해 처음 알게 된 건물이라 지도에 가고 싶은 곳으로 등록해 두었다. 모자이크 기법인 줄 알았던 구엘공원의 트렌카디스 기법에 대해서도 공부해 보았다. 모자이크가 더 포괄적으로 쓰이긴 하지만, 타일등의 조각으로 양감을 나타낸 장식기법을 트렌카디스라고 한단다. 구엘공원 다주실의 구름같은 천장은 기억이 나는데, 태양이 사계절로 4개나 있었다고 하니 다시 방문한다면 모조리 확인하고 올테다.

디에고 벨라스케스의 <시녀들>이 있는 마드리드로 넘어오면 확실히 미술관의 풍년이 이어진다. 직접 보지는 못했어도 그 구도의 특이함 덕분에 알려진 <시녀들>은 3미터가 넘는 그림이라고 한다. 이 작품은 <프라도 미술관>1층 12번 전시실에 있다. 책을 통해 새롭게 알게된 것은 펠리페4세의 딸 마르가리타 테레사에게 전해지는 붉은점 토의 그릇이다. 한 번도 눈여겨 보지 못한 오브제였다. 부카로라고 불리는 이 그릇은 주로 향수를 담는 작은 점토 용기였다고 한다. 하얀 피부가 아름다움의 상징이던 17세기 여자들은 진흙 속에 함유된 중금속 중 납성분으로 빈혈과 얼굴이 극도로 창백해지는 효과를 위해 이 그릇을 먹었다고 한다! 수은이 들어도 얼굴에 바른 분과 다름이 무엇인가! 그런데 이 작은 오브제에 그런 역사가 숨어있었을 줄이야. 시녀들에 대한 미술사 관련 책 중 처음 알게 된 사실이라 작가가 확실히 시녀들을 사랑하는 마음이 느껴졌다. 이제 시녀들을 볼 때마다 마르가리타에게 전달되는 붉은 그릇만 더 도드라지게 보일 것 같다. 그런데 어린 공주에게도 그런 미적 기준을 적용해야 하는 것인가.

그리고 마야라고 알고 있던 작품의 표기가 좀 달랐는데 <옷을 입은 마하>, <옷을 벗은 마하>도 프라도 미술관에 있다.

티센보르네미사 미술관은 얀 반 에이크의 <수태고지>라는 작품이 있다. 책에는 현대미술이고 스페인 사람이 아니라 나와 있지 않지만 에드워드 호퍼의 <호텔룸>도 있으니 참고해보자. 현대인이라면 누구나 공감할 만한 분위기의 작품이라 내가 사랑하는 작가다.

스페인 여행을 계획한다면 건축과 예술에 대한 이야기가 있는 <예술로 읽는 스페인>으로 예습하면 좋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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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은 기세다
제니퍼 루이스 지음, 김정현 옮김 / 페이지2(page2) / 2026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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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은 기세다 - 제니퍼 루이스



 

*본 도서는 출판사로부터 제공받았습니다.*



 

<인생은 기세다>라는 책의 표지와 제목의 서체가 경쾌하다. 일단 미국의 할머니 역할로 유명한 배우라는데 얼굴을 모르니 그녀의 이름을 유튜브에 쳐보았다. 아니 이런! 이름만 쳐봤을 뿐인데 <자존감>과 <모닝루틴>이라는 500만뷰 영상이 떴다. 안볼 수 없지 않은가. 아침에 일어나자 마자 제니퍼 할머니는 이를 닦고, 뱉은 후, 입가를 정리하고, 거울 앞에 기대서서 자신에게 말한다고 했다. “Pretty Bitch(이쁜 년)“ 그녀가 입은 의상은 정말 노랗고, 핫핑크색에 엄청 두꺼운 금목걸이까지 하고 있었는데, 이 말의 힘이 얼마나 강한지 수십 번을 보고 나서야 그녀의 형형색색의 옷이 눈에 띌 정도였다. 이정도의 기쎈 할머니의 이야기라면 길게 들어보고 싶지 않은가. 그리고 실제로도 미녀다!

어릴 적부터 진흙놀이나 하면서 천방지축으로 지냈다지만, 지금은 시트콤에서 간판스타를 맡고 있다고 했다. 게이인 사촌과 에이즈 관련 모금행사도 많이 했다고 한다. 초반에는 사기꾼에게 걸려 로맨스 스캠을 당한 이야기를 정말 실감나게 풀어준다. 오천만원에 당하는 금액을 사기꾼의 사업자금으로 밀어 넣어 줬다고. 네이비씰이라고 우기는 그 남자에게 반해 집에도 들이고, 사업도 하게 해줬지만 결국 지인의 정보력으로 사기꾼 퇴치에 성공한다. 그리고 다른 사람들이 당하지 않도록 그 사람을 벌주는데 앞장선다. 얼굴이 알려진 사람으로서 쉽지 않은 결정이었을 텐데 풀어낸 기개가 놀라웠다. 그 무렵 어머니의 임종과도 맞물리고.

이외에도 오바마를 좋아하고, 트럼프를 싫어하는 것을 정말 여러장에 걸쳐 설명했다. 흑인이기에 그럴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트럼프를 거의 트럼프라고도 표현하지 않고 오렌지맨이라고까지 이야기 하는데, 이렇게 말하고 책을 내도 이 사람의 커리어가 문제는 없을까하는 오지랖이 들었다. 그 정도로 표현의 자유를 인정해주는 것인가.

70년대에 피아노 반주자와 비행기를 타려다가 그녀의 말실수로 경찰에 연행된 에피소드는 정말이지 인생이 시트콤이구나 싶었다. 아무리 그래도 안전을 위협하는 말에 공항 직원들의 엄격한 신고정신은 미국이구나 싶었다. 그 이후 몇 십년동안 만나지 않았다는 것을 보면 사회봉사 500시간만의 갭은 아니었을 거 같은데, 정말 괴짜 할머니에 (그때는 할머니가 아니었지만) 기이한 이야기들 천지다. 그만큼 그녀의 인생은 재미있다. 손주들이 와서 집을 물바다로 만들어도 이제 그려려니 하면서 읽게 된다. 책의 말처럼 웃음은 세상이 침몰한다는 기분이 들 때 우리를 지켜주는 든든한 구명조끼 인 것이다. 화를 내서 뭐하겠는가.

코로나 시절에는 죽음의 문턱에 선 불안한 친구를 위해 기꺼이 달려가는 의리파이기도 하다. 혐오의 사슬을 깰려고 노력하고, 슬픔의 인생의 사슬 안에서도 기쁨을 찾으려 노력하는 그녀의 인생 모토를 본받고 싶다. 이번 주 나의 일터도 엉망진창 똥이었지만, 그래도 어쩌겠는가 세상사 이런 거 안다면 털고 일어나 내일도 참전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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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신 사과해드립니다 ㅣ 새소설 24
고요한 지음 / 자음과모음 / 2026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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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신 사과해드립니다 - 고요한



 

*본 도서는 출판사로부터 제공받았습니다.*



 

잘생긴 서호수 사장님이 스타벅스에서 여자분께 대신 사과해드리는 장면으로 시작한다. 이 분이 하는 일이 바로 <사과 대행 서비스>이기 때문이다. 정중하게 쏘리 플라워라고 이름 붙여진 꽃다발과 함께 사과를 하고 싶은 위임인을 대신해서 사과한다. 첫 등장은 지금 다쳐서 병원에 있는 로또 1등을 맞아놓고 아내와 몰래 이혼을 한 남자의 의뢰다. 결국 시켜놓은 밀크티가 부어지고, 무릎을 꿇고(사과 받는 사람이 시킴), 사람들의 시선을 온 몸에 받는다. 종국에는 사과를 다 하고, 사과 받았다는 증명서까지 야무지게 받아간다.

결국 사과라는 것이 잘못한 사람의 마음 편하자고 하는 것이긴 하지만, 때를 놓쳐서 못하는 경우가 생긴다. 그런 사람들을 위해 자신이 대신하는 것이다.

사과 대행 서비스가 진짜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한때 일본에 이색 직업으로 등장했던 것을 본 기억이 있다. 심지어 맞아주는 서비스까지 있었던 것으로 아는데, 책은 그정도로 선을 넘지는 않는다. 그러나 폭력을 받아주는 것 보다 더 스펙트럼이 넓었으니 살인자의 사과도 받아주기로 한 것이다. 사람을 죽인 죄를 사과로 씻을 수 있다고 생각하는가? 물론 이 의뢰는 호수 사장님이 받은 것은 아니고, 쏘냐가 신부님을 통해서 받아왔다. 친구를 차로 치어서 죽게 만든 남철은 자신의 무죄를 호소한다. 그렇지만 실제로 친구를 사망에 이르게 했으므로 사과를 하고 싶어한다. 실은 이 사람의 행태를 보면 정말 미안한 마음이 있어서인지 자신의 억울함을 어필하고 싶은 것인지 그 무엇도 아니라 형량을 줄이고 싶어서인지 모르겠다. 정말 짧은 12분간의 면회에서 간간히 나오는 대화 때문이다. 그래서 그 손자가 죽은 할아버지를 찾아가 쏘냐와 호수사장님은 사과를 하기로 한다. 이런 심각한 사안에 삼고초려 이상은 당연한 일이겠지. 스파이 전법, 미인계, 등등을 다 사용해 본다. 그러면서 계속 호수사장님의 돌아가신 어머니의 죽음과 관련된 이야기의 한 축도 돌아간다. 사람이 사람에게 사과를 하면 받아줘야 하는 것인지. 어떤 사과가 진정한 사과인지. 실은 잘 모르겠다.

나 역시도 가능하다면 풀고 싶었던 문제가 있어서 최근 연락한 사람이 있는데 결국 회신을 받지 못했다. 사과의 사자도 꺼내지 못했다. 마음속 일부는 시시비비를 따지고 싶기도 하고, 미안한 감정으로 포장하고 싶었던 것도 있었다. 그 어떤 것보다도 사과를 하려는 뻔뻔한 나 자신에 대해 조금 환멸이 나기도 했고, 그래도 시도는 해봤다는 홀가분함 양가 감정이 들었던 기억이 난다. 이렇게 가해자들은 우야무야 지나가버리는 게 아니었을까. 이 앙금이 시간이 희석시켜 주기를 바라면서 말이다.

아무튼 책속에서는 다리를 다치게 한 개에게 사과해달라는 노란 레깅스도 등장하고, 이상하지만 호수사장님은 그 의뢰도 받아들인다. 그리고 자신이 사과를 받아야 할 입장에도 놓여본다. 이 일은 사과로 될 일이 아니라고 생각하지만 말이다.

결과적으로 사과를 받아들이는 것은 전적으로 받는 사람의 마음이다. 그 마음을 녹이기가 얼마나 힘든지. 그리고 어떻게 닿을 수 있을지에 관해 생각해보게 되었다.

사과를 하고 받아도 다시 되돌릴 수 없는 일들과 함께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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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자에 담긴 세계사 - 나폴리에서 뉴욕과 할리우드까지, 한 조각의 피자가 바꾼 300년의 역사
루카 체사리 지음, 이현경 옮김 / 한즈미디어(한스미디어) / 2026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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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자에 담긴 세계사 - 루카 체사리

 

*본 도서는 출판사로부터 제공받았습니다.*

 

피자를 좋아하는가. <피자에 담긴 세계사>를 읽으며 내가 떠올린 피자는 당연히 미국식 피자였지만, 그래도 피자의 종주국이 이탈리아임을 잊고 있지는 않았다는 생각이 든다. 물론 더 많이 먹고, 익숙하고, 좋아하는 것은 미국식 피자의 한국화된 버전이지만 말이다. 음식의 세계화가 많이 이루어진 지금, 다양한 변주가 이루어지는 음식 중의 하나가 피자라고 생각한다. 물론 이태리 현지에서 먹어봤을 때는 고전적인 느낌이 제일 강했다. 파스타도, 피자도 마찬가지였다. 오늘도 피자에 담긴 세계사를 읽으며 불고기 피자를 먹었는데, 나폴리 사람이 본다면 이걸 피자로 생각할지는 의문이다. 나폴리는 특히나 피자의 전통을 보호하기 위해 열심이다. 원산지만을 인증하는 게 아니라 전통적인 제조 방식과 제품의 특성 모두를 보호하는 것이 방점이다. 그래서 2010년 유럽연합의 전통 특산물 보증(STG) 인증을 받았다. 피자의 지름은 최대 35cm여야 한다. 둥근 형태여야 하고, 전통적인 반죽, 발효, 성형 절차를 따라야 한다. 토마토, 올리브유, 모차렐라, 바질 등을 사용하면서 말이다.

책의 초반에는 1800년 초반부터 피자장수(피자이올로)가 문학 등에 등장했다고 알려준다. 초반에는 기름진 부침개 같은 느낌의 서민들이 먹는 음식으로 시작했다고 한다. 핏제리아가 있기도 했고 가판을 가지고 돌아다니며 파는 피자장수들도 있었다. 1800년대부터 상인 길드에 피자장수들도 가입해 있었고, 최소금액에 해당하는 조합료를 내면서 연합이 이루어졌다.

초기 피자는 라드와 마늘, 소금, 안초비 등을 얹은 하얀 피자가 주류였다. 우리가 생각하는 토마토 베이스의 피자는 그 이후 등장한다. 굉장한 변화다.

이탈리아식 피자에서 굉장히 대척점(가장 이질적으로 보일)에 있는 피자가 어떤 거냐고 묻는다면, 시카고의 딥디쉬 피자와 스터프드 피자일 것이라고 작가는 말한다. 딥디쉬 피자는 내가 무척 좋아하는 팬이 깊고, 치즈를 흐를 듯이 쌓아주는 피자라 잘 알고 있었다. 스터프드 피자는 속을 꽉 채운 피자의 윗면에 도우가 한 장 더 얹어있는 형태를 말한다. 외형 말고 재료로 따진다면 단연 파인애플을 얹은 하와이안 피자라고 할 것이란다. 물론 나는 고구마 피자도, 불고기 피자도, 하와이안 피자도 다 좋아한다. 그리고 이탈리아 국기를 닮은 마르게리따도 좋아한다. 처음 가는 피제리아에서는 기본을 통해서 맛이 어떤지 가늠해야 해서 꼭 시켜보는 메뉴이기도 하다.

마지막에 등장하는 영화에 등장한 피자들에 대해서도 기생충이 등장해서 반가웠다. 물론 피자가 나오지는 않고 등장인물들이 빠르게 피자박스를 접는 장면이었지만 말이다. 피자 자체가 아니라 피자가 저렴한 음식이라는 상징성을 드러내는 장면이었다고 말해준다.

피자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피자의 기원과 변화하는 그 변화무쌍한 음식을 더 사랑하게 될 것이다. 우리나라에서는 초기 피자처럼 좀 더 서민이 먹는 음식처럼 가격만 낮아졌으면 더할나위 없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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