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사 쩐의 전쟁 - 어디에서도 볼 수 없던 조선인의 돈을 향한 고군분투기
이한 지음 / 유노책주 / 2024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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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사 쩐의 전쟁 이한



 

*본 도서는 출판사로 부터 제공받았습니다.*



 

지금 소위 미국을 보고 <소송의 나라>라고 한다. 만약 맥도날드에서 뜨거운 커피에 내 실수로 화상을 입었어도 주의 문구가 없었으면 이에 해당하는 손해배상소송에서 승소하기도 한다. 그만큼 미국 하면 소송의 이미지가 강한데, <조선사 쩐의 전쟁>을 읽으며 조선에 이렇게나 <>관련 소송이 많았다고? 하는 믿기지 않는 현실과 기록이 등장했다. 원고와 피고도 다양해서 엄연히 신분제가 존재하는데도 노비가 양반에게 송사(소송)을 당당하게 진행하기도 한다.외지주라 해서 벼슬은 못한 양반들이 변호사의 역할을 하기도 했다. 반상의 구분이 엄연한데 세금을 회피하기 위해 내가 실은 노비 신분이요 하고 갑자기 신분 변신을 꾀하기도 하더라. 많은 돈 관련 전쟁들을 총 6파트로 묶었다. 1장은 유교의 고요한 나라에서 지극히 돈 때문에 일어난 일들에 대한 초석이다.

2장은 형제간의 유산 다툼, 3장은 친척 간의 유산 다툼, 4장은 친척 간의 유산 다툼, 5장은 노비를 두고 벌어진 싸움, 6장은 부당한 세금과의 전쟁이다.

개인적으로 작가도 구)허모지리(겸 김모지리) )허계지의 행보에 따라 조선 초기의 방향이 어떻게 바뀌었을지 <만약에>하고 궁금해하더라. 후반부의 주인공 허모지리씨의 일화를 얘기해보겠다. 사람이름이 모지리라고 하니 정말 부르기 민망한데, 예전에는 이름을 험하게 지으면 잘 산다고 그리 지었다 하니 이해하고 넘어가기로 하자. 그렇지만 본인도 모지리라고 불리는건 원치 않아서 개명하였다는 것. 암튼 허모지리(이후, 허계지)는 허안석과 노비 충개 사이의 자식이다. 그런데 어머니인 충개는 사실 남편이 따로 있었다. 같은 허안석 가문의 노비인 김승재였다. 주인양반의 생물학적 자식이면서 별도로 노비 아버지가 있는 아이러니한 상황이다. 그러다 허안석이 죽고나서 허모지리는 본인이 허안석이 자식이니 제사를 받들겠다며 친자소송을 겸한 유산다툼이 시작된다. 결론적으로는 당시 임금인 문종의 수사 어명에 이어 결론적으로는 허안석의 자식으로 인정받게 된다. 이후 허계지는 허안석의 재산을 기반으로 본인의 의지로 권력층과의 유착을 일삼으며 세금 대납(=방납)에 손을 댄다. 이후 예종때 다시한번 신분문제가 불거지며 유배가 확정된다. 그렇지만 사람 기질이 어디 가던가 또 청탁하려다가 딱 걸리고 만다. 그렇지만 참 대단한 사람인 게 유배령 받기 전에 도피하면서도 사면요청과 유배를 간다손 쳐도 가능하면 울산이나, 영월 지역으로 보내 달라는 청탁을 또 한 것이다.

이 외에도 사료가 실려있는 한글편지를 읽으며 정말 배꼽 잡고 웃었다. 때는 숙종때 저명한 학자 송규림이 보낸 독촉장이다. 송시열과 어깨를 나란히 할만한 유명한 학자라고 한다. 노비가 소작료(=도지)를 내지 않으니 그에대한 독촉장을 작성한 것이다. 노비가 친히 읽을 수 있도록 한글로 써준 배운사람 칭찬한다. 내용은 네놈이 나에게 바쳐야 할 소작료를 내지 않으니 내가 몹시 분노하였고, 분한 마음이 쌓인지 오래되었으며, 큰일을 낼 것이니 그리알라고 끝맺는다. 마지막까지 정말 뒤끝있다.

비슷한 에피소드로 정약용도 자신의 노비의 집에 하룻밤 머물게 되면서 시를 지어낸 장면이다. 때는 정약용이 유배 받아 한양을 떠나면서 헤어진지 오래된 노비 최씨의 집에 머물게 되어서다. 자기는 권력자였다가 지금은 빈털터리로 쫓겨나는데, 너는 나보다 잘사는구나 하는 내용이다. 본인의 권력의 롤러코스터에 대한 심정과 그래도 평탄하게 잘 지내며 세간도 많이 마련한 노비의 처지를 재치 있게 비교한 것이다. 이런 것을 보면 노비 신분이라도 외거노비의 경우 자신의 수완에 따라 사유재산을 소지할 수 있게 되었다. 그렇지만 조선시대는 노비라는 신분은 사람이 아니다. 주인의 재산이다. 그래서 노비에 대한 소송이 상당하게 많이 일어난다. 조선 초에는 노비 관련한 소송을 걸면 걍 공평하게 반씩 나누기로 하는 희안한 해결책이 만능인 적도 있어서 엄청나게 소송이 증가했다고 한다. 노비란 농업기반 국가에서 노동력으로서 엄청난 가치를 지닌 것이었다. 전세(토지에서 농사지어 얻은 소출의 일부 납부), 공납(지역 특산물 바치기: 현물원칙), (몸으로 때우기 군역 및 요역) 조선의 세금은 실로 엄청난 것이었다.

노비를 부려서 일을 시켜야 하는 양반들도 가문의 재산이자 노동력인 그들을 부리는 게 만만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보통 양반집 아내가 결혼할 때는 친정에서 부리던 노비를 데리고 시집을 온다. 그러다가 그 같이 온 노비들이 다 늙어서 죽거나 도망가거나 하고 나면 데면데면한 시가의 노비들을 부려야 한다. 책에서는 그런 신세를 한탄하며 잘 모르는 아랫것을 부려야 하는 걱정을 하는 편지도 등장한다. 노비의 경우 부모의 제사를 지낸다는 명분 하에 상속해달라고 하는 소송도 많더라. 그런데 이런 것은 또 유교의 나라라 억지춘향이라도 인정을 해주는 경우가 많았다.

마지막으로 전후 사정은 알 수 없지만 35냥에 혼인관계를 정리해주는 현대의 <이혼>을 수결을해준 최덕현씨가 안타까웠다. 사료 이름도 <최덕현 이혼합의서>. 상대는 남의 아내를 큰 돈을 사주고 데려올 만큼 소위 재력과 권세가 대단했던 것 같다. 무슨 이유인지는 몰라도 두 눈 시퍼렇게 뜨고 이혼이라는 게 성사되기가 극도로 어려운 조선에서 그런 문서를 작성했던 걸까.

13세의 어린아이를 시켜 격쟁을 하게하고, 70이 넘어도 소송을 걸고, 자본주의의 형식으로 이권이 있는 경우 되찾기 위해 엄청 조선 사람들은 쩐을 위해 치열하게 살았더라. 앞으로도 이런 역사의 다양한 면모를 찾아서 눈을 뜨게 만드는 새로운 타입의 역사서가 더 출간되었으면 하는 바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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