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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해야 하는 비밀 - 성폭력 예방 그림책 한솔 마음씨앗 그림책 125
카롤리네 링크 지음, 자비네 뷔히너 그림, 고영아 옮김 / 한솔수북 / 202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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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해야 하는 비밀>(카롤리네 링크 글, 자비네 뷔히너 그림/고영아 옮김/ 한솔수북/ 2024)의 책표지 오른쪽 위쪽 구석에는 말할 수 있는 용기를 키워 주는 성폭력 예방 그림책이라고 작은 글씨로 써 있다. 아마도 심부름을 하는 듯 해맑은 표정을 하고 두 손으로 망치를 들고 있는 주인공과 모습을 보이지 않지만 그림자만 봐도 늑대라는 것을 알 수 있는 누군가를 올려다보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그림만 봐도 시커먼 늑대 그림자가 마음에 걸리는데 성폭력 예방 그림책이라는 단어는 앞표지에서 책의 내용에 대한 과도한 정보를 주며 그림에 대한 상상의 여지를 없애 버렸다.

아이들이 읽는 책인만큼 볼프강 삼촌의 나쁜 짓은 아이들이 받을 충격을 최소화하는 선에서 멈춘 것 같아 좀 안심이 되었다. 어른들은 앞표지만 봐도 이 해맑은 어린 여우에게 무슨 일이 일어날지 짐작이 된다. 그래도 설마설마 하면서 책을 읽지만 역시나 그렇다는 사실에 안타깝고 답답하다. 이런 정도만으로도 혹시나 너무 많은 정보를 아이들에게 주는 것은 아닐까 걱정이 되기도 했다. 하지만 몰라서 당하는 범죄가 많다는 것을 생각하면 어떻게 하면 아이들에게 이것을 알려줄 수 있을지를 고민하는 것이 맞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그런 점에서 이 책은 아주 좋은 그림책이자 성교육 교재가 될 수 있다고 본다.

이 책의 글작가인 카롤리네 링크는 독일의 영화감독이자 작가이다. 어린 주인공의 성장기를 다룬 영화를 많이 만들었다. 주요 작품으로 〈비욘드 사일런스〉, 〈웬 히틀러 스톨 핑크 래빗〉, 〈올 어바웃 미〉 등이 있으며 〈러브 인 아프리카〉로 제75회 미국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외국어영화상을 수상했다. 어린이에게 많은 관심을 가지고 어린이를 위한 다양한 활동이 참여하고 있다. 그림 작가인 자비네 비휘너는 커뮤니케이션디자인과 애니메이션을 공부하고 일러스트레이터로 활동하고 있으며 아동복지시설에서 수년간 사회복지사로 일한 경험이 있다. 두 작가 모두 아이들에 대한 애정이 깊다고 생각된다. 예쁘고 밝은 모습만이 어린아이의 본모습이 아니다. 어두운 면을 드러내는 것은 어른들에게도 쉬운 일이 아니다. 하지만 그런 어려움을 겪는 아이들이 분명히 존재하기에 도움의 손길 또한 필요하다. 필요하지만 선뜻 나서기 쉽지 않은 일에 앞장 선 두 작가가 무척 존경스럽다.

정말 다행히도 그런 일을 겪었음에도 피니는 참 운이 좋은 아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특히 부엉이 선생님이 계서서 얼마나 다행한 일인지 모른다. 엄마, 아빠는 평소와 다른 피니의 모습을 눈치채지만 심각하게 생각하지는 않았다. 영문도 모르고 피니를 걱정하는 친구들이 기특하지만 피니에게 도움이 되지는 못한다. 하지만 부엉이 선생님은 피니의 모습이 평소와 다르다는 것을 눈치 채고 도움을 주려고 한다. 어려움에 처한 아이들은 스스로 문제를 해결할 수 없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부엉이 선생님과 같은 어른이 반드시 필요하다.

엄마, 아빠도 좋은 부모라고 생각한다. ‘어떻게 부모가 선생님이 눈치 채는 것도 모를 수가 있어?’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부모는 가장 가까이에서 아이를 지켜보고, 아이에 대해 가장 많은 것을 알고 있을 것으로 생각하지만 부모라고 해도 아이의 모든 것을 다 알 수는 없다. 조력자 부엉이 선생님의 도움에 피니의 입장에서 즉각적으로 행동하고, 피니가 죄책감을 느끼도록 행동하지 않는다. 볼프강 삼촌이 나쁘다는 것과 피니의 잘못이 없다는 것을 분명히 말해 주고 용기를 낸 피니를 칭찬한다. 나무 위의 집은 엄마, 아빠와 함께 완성하자는 말로 피니 마음 속에 남은 마지막 작은 걱정까지 살펴주는 모습이 정말 보기 좋았다. 앞으로 피니가 살면서 여러가지 어려움을 겪을 것이고, 용기를 내서 무언가를 해야 하는 일도 분명히 생길 것이다. 하지만 이런 일을 겪으면서 피니는 그럴 때 도움을 청하고, 주저하지 않고 말 할 힘을 길렀다고 생각한다.

아이들에게 나쁜 일이 하나도 생기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은 하지 않는다. 자잘한 병치레를 해야 면역력이 생긴다. 일부러 예방 접종도 한다. 아이들도 힘든 일을 겪고 이겨내는 과정을 통해 더 큰 산을 넘어갈 수 있는 용기를 배운다고 생각한다. 다만 어려운 일을 겪는 아이들이 그것을 이겨낼 수 있기를, 그리고 돌이킬 수 없을 만큼의 나쁜 일은 생기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이다. 이런 일의 당사자가 될 수 있는 아이들에게도, 아이들의 조력자가 될 어른들 모두 꼭 읽었으면 하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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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이 아니라 감이라고요!
이진희 지음 / 키큰도토리(어진교육) / 202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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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이 아니라 감이라고요!>(이진희 그림/키큰도토리/2024) 꼬리 아홉 달린 여우 이야기의 어린이용 공포물이라고 해야할 같다. 아니면 꼬리 아홉 달린 여우 이야기에서 말장난이나 거창해 보이지만 꼬리 아홉 달린 여우 이야기의 재해석이라고 해도 좋을 같다. 작가의 전작이자 작품인 벼룻물에서는 주인공의 이야기를 십장생도에 녹여 넣었는데 다음 작품도 구미호가 떠오르는 이야기인 것을 보면 우리의 것에 애정이 많은 작가인 같다.

오래된 책은 시기에 맞지 않는 점들이 있게 마련이다. 우리나라의 전래동화도 서양의 이야기도 마찬가지다. 딸아이가 어릴 나는 전래동화의 상당부분을 읽어주지 않았고 전집에 포함된 서양의 설화나 옛이야기도 슬쩍 빼냈다.  그러다 북스타트 자원활동가 양성과정 수업을 들으면서 강사분께서도 아이에게 전래동화를 읽어주시나요?’ 라는 질문을 하시며 전래동화에 대한 이야기를 시작하셨다. 분도 나와 같은 고민을 하셨다는 말을 듣고 내가 유난스러운 아닌가 보다 싶어 조금 안도했었다. 강사분도 아이들에게 전래동화를 읽어주어야 하는지를 고민하다 미취학 아동에게는 읽어주지 않는 것을 선택했다고 하셨다.

전래 동화에 대한 이런 우려를 가진 입장에서 <간이 아니라 감이라고요!> 같은 작품은 아주 반가운 책이다. 아이에게 전래 동화를 읽어 주지 않은 것이 전래 동화의 시대 착오적인 점이 마음에 들지 않는 것일 우리 것에 대한 불만은 아니기 때문이다. 작가는 소품에 신경을 많이 것으로 보인다. 건조함을 유지할 있는 방법으로 쌓아 놓은 장작이나 처마에 매달아 놓은 씨옥수수, 지게와 솥뚜껑, 새댁이 이웃과 음식을 나눌 사용하는 함지박과 소쿠리도 요즘 아이들은 민속박물관에서나 있다. 미리 엄마가 널고 있는 이불, 장독대와 옆에 널어 놓은 시래기, 빨래터의 풍경, 상투와 망건도 그렇다. 닭장과 도롱이는 박물관에서도 흔치 않은 같다. 아는 만큼 보인다고 한다. 어른인 나는 여기서 소소한 재미를 느끼지만 아이들은 그렇지 않을 것이라 생각한다. 아이와 함께 책을 보며 이런 물건들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원작의 잔인함을 말장난을 이용한 유머로 덮은 점은 가장 마음에 드는 부분이다. ‘ 먹는 알았던 새댁이 알고 보니 먹은 것이라고 오해를 풀어주더니 마지막 장면에서 다시 한번 반전을 보여 준다. 나는 새댁이 자신을 아끼는 마을 사람들의 사랑에 마음이 움직여 조용히 마을을 떠난 것이라고 생각한다. 처음에는 같은 작은 동물을 잡아먹다가 점점 돼지나 소같이 동물을 먹게 되고 결국 사람을 해치게 된다는 것이 구미호 이야기의 기본 설정이지만 책은 이런 클리셰를 가볍게 무시한다.

마을 사람들이 새댁이라고 부르는 것을 보면 혼인을 얼마 지나지 않았다는 뜻이고, 아마도 마을에 나타난 지도 오래되지 않았을 것이다. 그럼에도 새댁은 동네에 칭찬이 자자하다. 친절하고 예의 바르고 음식 솜씨까지 훌륭한데 이웃과 나눌 줄도 안다. 그런 새댁을 질투하는 마음이 있던 미리 엄마는 밤에 새댁에 뭔가를 먹는 것을 발견하고 다음날부터 새댁에 대한 흉흉한 소문이 퍼지는데 다음 전개되는 이야기는 의외였다. 전래 동화의 클리셰에 따르면 소문은 꼬리에 꼬리를 물고 점점 커져 수습할 없는 지경이 되어야 한다. 하지만 마을 사람들은 없는 말을 덧붙이지도, 섣불리 마녀사냥을 하지도 않았다. 마을의 어른이자 지식인으로 생각되는 훈장님을 찾아가 의논을 하고 사실 확인부터 하려고 한다. 새댁이 먹은 것이 아니라 이라는 것을 확인한 사람들은 아주 기뻐한다. 내심 새댁에 대한 소문이 사실로 밝혀질까 걱정을 같다.  새댁도 아마 마을에 계속 살면서 선배 구미호의 전철을 밟을 계획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마을 사람들의 사랑에 조용히 마을을 떠나는 것으로 보답을 것이라고 생각된다.

<간이 아니라 감이라고요!> 누구나 만한 구미호 이야기를 너무나 유쾌하게 풀어낸 작품이라고 생각한다. 영국 속담에 신사는 우산과 유머를 가지고 다녀야 한다는 말이 있다. ‘전설의 고향 주역을 꼽자면 빠지지 않을 구미호를 소재로 이런 유머를 발휘할 있는 이진희 작가의 다음 작품이 아주 기대된다. 요즘 아이들에게도 옛날 사람이라 놀림당하는 어른들에게도 추천하고 싶은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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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가야, 코 자자!
이소진 지음 / 키큰도토리(어진교육) / 2024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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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가야, 코자자!>(이소진 지금/키큰도토리/2024)는 책표지에 써 있는 것처럼 잠자기 놀이 그림책이다. 보드북으로 제작된 정사각형에 가까운 아담한 판형의 이 책은 몇 안 되는 캐릭터가 같은 패턴을 반복한다. 온라인 서점에서는 북스타트 선정 보드북이라는 홍보 문구도 보인다. 영유아용 잠자리 그림책으로 제작된 것이 분명해 보인다. 사실 잠을 잘 자는 것은 사실 아기의 건강과 성장에도 중요하고, 그날 그날의 컨디션에도 큰 영향을 미친다. 아기 본인에게도 큰 일이라는 뜻이다. 하지만 책을 읽을수록 어쩐지 아이를 재우는 사람들을 위로하는 책처럼 보인다. 강아지도, 아기 코알라도, 아기 얼룩말도, 아기 박쥐까지도 이렇게 잘 자니 너도 이렇게 잘 잤으면 좋겠다는 소원을 비는 것 같기도 하다.

   누가 나에게 아이를 키우면서 무엇이 가장 힘들었냐고 묻는다면 나는 1초의 망설임도 없이 이라고 대답할 것이다. 만성적인 수면 부족에 시달렸고 아기의 불규칙한 수면 패턴과 취침 시간에 대한 궁금증은 지금까지도 풀리지 않으며, 내가 그것에 무조건적으로 따라야 한다는 것이 나를 힘들게 했다. 그리고 아기의 등에는 각도를 감지하는 센서가 달린 것이 아닌가 하는 강한 의심이 들만큼, 눕히려고 하는 시도를 하기만 해도 눈을 번쩍 뜨는 이 놀라운 평형 감각을 설명할 방법이 없다고 생각했다.

작가 이소진에 대해 알아보니 대자인을 전공하고 어린이책에 그림을 그리고 있다는 것 이상의 정보를 찾기가 힘들었다. 하지만 나는 어쩐지 이 작가가 아기를 재우는 것에 상당한 고난의 시간을 보낸 사람이 아닐까 하는 합리적인 의심을 해 본다. 강아지부터 시작해 아기 코알라, 아기 얼룩말, 아기 박쥐 모두 아가야, 코 자자.’ 이 한 마디에 각자의 방법으로 쌔근쌔근 잠이 든다. 어른들의 사정은 보여주지 않으니 자세히 알 수는 없지만 말만 하면 알아서 잠드는 것처럼 보인다. 아기 동물들은 정말 저렇게 잠드는 걸까 궁금하면서도 부럽다. 작가도 그런 마음이 아닐까?

이 책을 처음 볼 때는 미처 몰랐다가 한 번 더 읽으면서 눈에 들어온 것이 두 가지 있다. 하나는 화자에 따라 폰트가 다르다는 것이다. ‘아가야, 코 자자.’라는 말은 손 글씨 같은 폰트를, 그 뒤에 따라오는 아기 동물은 이렇게 잔다는 말은 인쇄된 것 같은 폰트를 사용했다. ‘아가야, 코 자자.’는 아기 동물들에게 이제 잘 때가 되었음을 알려주는 말이고 인쇄된 것 같은 폰트는 엄마가 아기에게 설명을 해 주는 말이다. 강아지는 이렇게 자고, 아기 코알라는 이렇게 잘 자고, 얼룩말은 서서도 잘 자고, 아기 박쥐도 거꾸로 매달려 잘 잔다는 안타까운 외침처럼 들린다. 마지막에 모든 부모의 바람처럼 우리 아기도 아기 침대에 혼자서 벌렁 누워 잔다. 엄마는 그 옆에서 그림처럼 바라보며 웃고 있다. 미소가 저절로 나올 만하다.


또 다른 하나는 모두 잘 때를 안다. 잘 시간이라고 아기 동물들을 부를 때보다 쌔근쌔근 자고 있는 아기 동물들을 보여줄 때의 배경이 더 어둡다. 아기 동물들의 마지막 순서로 박쥐를 넣은 것도 이런 이유로 보인다. 낮에 생활하고 밤에 자는 다른 동물들과는 다르게 박쥐는 야행성이다. 밤에 활동하고 낮에 자는 박쥐의 생활방식에 맞게 환한 낮에 자고 있다. 우리 아기도 잘 때를 알았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말하고 있는 것 같기도 하고, 이 책을 읽어줄 아기에게 잠 잘 시간을 지켰으면 좋겠다는 부탁을 하는 것 같기도 하다.

내가 이 책을 읽으며 작가의 입장이라고 예상되는 화자의 입장에 너무 몰입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점점 더 들었다. 이 책을 읽어줄 아이들이 책 읽어주는 소리를 들으면서, 그림을 보면서 무슨 생각을 할 지는 나는 알 수 없다. 하지만 나는 육아를 경험한 어른이라 사실 책을 읽기 전부터 이미 화자의 입장이었다. 이 책을 읽어주는 사람이 네가 얼른 잠들어서 나도 좀 쉬었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하겠지만 그보다는 잘 자야 내일도 재미있게 놀고 건강하게 쑥쑥 자랄 수 있단다라는 마음이 더 크다고 생각한다. 잠자리에서 이 책을 함께 읽으며 모든 아기와 아기를 돌보는 사람들이 행복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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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정도 우산이 필요해
신소담 지음, 유재엽 그림 / 키큰도토리(어진교육) / 202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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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몇 장을 읽고 내 얘기를 쓴 건가 싶었다. 주인공 찬우의 우산이 없어졌다. 분명히 집에 가지고 온 것 같은데, 어디서 어떻게 없어졌는지도 모르게 없어졌다. 찬우의 우산만 없어진 게 아니었다. 혜진이와 주현이의 우산도 제우의 우산도, 경비 할아버지의 우산도 없어졌다. 이건 없어진 거다. 잃어버린 게 아니다. 나도 그랬다. 내 우산도 없어졌었다. 나는 분명히 우산을 쓰고 나갔다 잘 들고 왔는데 없어진 일이 한 두 번이 아니었다. 어린 나는 잃어버린 게 아니라고 항변했지만 엄마에게는 전혀 먹히지 않았다. 우산이 없어진 다음날에 비가 오면 엄마는 집에서 제일 낡은 우산을 들고 가라고 내주셨다. 거의 검은색이었고 높은 확률로 살이 하나쯤 부러지거나 휘어 있는 우산이었다. 엄마들은 우산을 잃어버린 아이에게 어떤 우산을 주어야 하는지 어디서 교육이라도 받는 모양이다.

책을 읽으면서 주인공 찬우가 얼마나 멋진 어린이인가 하는 생각을 내내 했다. 찬우는 어린 나보다 문제 해결 능력이 있는 아이다. 번개맨에 대한 애정이 더해서 좀 더 적극적이 된 것 같긴 하지만 우산이 없어졌다고 속상해하고 있기만 하지는 않는다. 찬우는 잃어버린 우산을 찾으려고 애쓴다. 문구점과 분식점에도 가 보고 경비 할아버지도 찾아 간다. 놀이터와 아파트 주변도 살펴본다. 하지만 해답은 아주 가까이에 있었다. 우산 꽂이 주변을 다시 살펴보다 요정의 모자를 발견한다. 찬우는 호기심도 많고 관찰력과 기억력도 좋으면서 준비성과 실행력까지 있는 아이다. 그냥 나뭇잎이라고 지나칠 수도 있는 것을 자세히 살펴서 모자라는 것을 발견한다. 그리고 언젠가 읽었던 책에 나온 요정의 이야기를 기억해 낸다. 거기다 망원경과 돋보기까지 들고 아파트 주변 풀숲에 요정을 찾으러 간다.

찬우는 배려심과 탐구심이 있으면서 입까지 무거운 아이다. 요정을 찾아내지만 요정들에게서 우산을 뺏지는 않는다. 요정들이 자신의 우산과 친구들의 우산을 가져간 것을 보고도 우산이 없는 요정들이 우산 대용으로 사용하는 버섯이나 나뭇잎이 제 역할을 하지 못한다는 데까지 생각이 미친다. 그래서 없어진 우산을 도로 가져오기 보다는 우산 만드는 법을 알려주는 쪽을 택했다. 직접 우산을 만들어 보면서 설계도를 그리고 재료까지 준비해 준다. 사실 이게 제일 어려운 부분이고 그래서 너무나 기특하다. 물고기를 주기보다 물고기 잡는 법을 알려주어야 한다고 다들 알고 있지만 실천을 하기는 쉽지 않은데 어린 찬우는 이걸 해냈다. 경비 할아버지는 나이를 먹어서 정신이 깜빡깜빡해 우산을 잃어버렸다고 생각해서 속 상해하실 것을 알지만 요정들의 이야기는 비밀에 붙였다. 어린 시절에 ‘ET’같은 외계인이나 요정이 정말 있고 다른 사람들은 그 존재를 아무도 모르고 나만 알게 된다는 그런 황당무계한 생각을 해 본 적이 종종 있었다. 하지만 나라면 그런 어마어마한 사실을 누구에게도 말하지 않을 수 있었을까? 찬우가 요정의 이야기를 비밀로 한 것과는 관계없이 요정들은 자신들의 존재를 들켰다고 생각해 이사를 간 것 같다. 하지만 가져갔던 우산은 모두 돌려주었다. 찬우에게 감사의 인사를 한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책표지에서는 귀여운 요정과 못지 않게 귀여운 나뭇잎 우산에 정신이 팔려서 눈에 띄지 않았지만 면지에 그려져 있는 찬우의 우산을 보고 반가운 마음에 든 사람들이 있을 것 같다. 사실 나는 정말 반가웠다. 저작권 때문인지 작가는 번개 용사라고 했지만 누가 봐도 번개맨이다. 작가도 다들 그렇게 생각할 걸 알았는지 찬우의 책상 위에 있는 연필깎이에는 번개맨이라고 그려 놓았다. 찬우는 번개맨의 열성 팬이 틀림없다. 찬우의 방에는 번개맨 포스터가 붙어 있고 책상 위에는 번개맨 피규어가 있다. 번개맨 연필깎이에 깎은 연필을 번개맨 필통에 넣어 가지고 다닌다. 번개가 그려진 티셔츠를 입고 비가 오는 날에는 번개맨 우산을 쓰고 나간다. 지금은 대학생인 딸아이가 어렸을 때 번개맨을 무척 좋아했었다. 번개맨 티셔츠를 입고 다니지는 않았지만 번개맨이 다 함께 번개 파워를 외쳐 달라며 도움을 청하면 외면하는 법이 없었다. 딸아이가 번개맨에게 애정을 가진 시간은 짧았고 나도 따라서 관심이 멀어졌다. 지금은 번개맨 역할의 배우가 몇 번 바뀌었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딸아이는 언젠가 우연히 텔레비전에 나온 번개맨을 보고 그 때 그 번개맨이 아니라면서 섭섭해했었다. 번개맨은 사춘기 소녀에게도 동심을 자극하는 존재였던 것 같다.

우산을 잃어버린 경험이 없는 사람은 없을 거라고 생각한다. 아이들만 잃어버리는 것도 아니다. 어른들이 잃어버리는 우산이 더 많을지도 모른다. 작가는 누구나 경험했을 일로 정말 깜찍한 상상력을 보탰다. 마지막으로 나는 찬우가 만든 우산이 아주 마음에 든다. 찬우는 미적 감각도 있는 아이다. 요정이 커지는 가루를 뿌려서 우리집 문 앞에 하나 두고 가면 좋겠다는 깜찍한 상상을 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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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듀, 백설 공주 The 그림책 1
베아트리체 알레마냐 지음, 김시아 옮김 / 한솔수북 / 2024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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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제목을 봤을 때는 현대에 와서 수동적 여성으로 비판을 받던 백설공주에게 작별을 고하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을 했다. 그래서 진취적인 여성의 시각으로 다시 쓴 백설공주의 이야기인가보다 지레짐작을 했었다. 그런데 첫 페이지를 읽다 보니 계모 왕비의 목소리로 이야기가 전개되고 있었다. 뭔가 왕비의 편을 드는 건가? 왕비에게 변명의 기회를 주는 건가? 아무리 다른 방향으로 생각해 보려고 해도 왕비의 악한 행동에는 변명의 여지가 없는 것 같은데 어쩌려고 하는 건가 싶었다. 어둡고 사실적이다 못해 기괴하기까지 한 그림도 왕비와 목소리로 이야기하는 것과 같은 맥락인가 하는 생각도 들었다.

백설공주를 한 마디로 말하자면 아름답다. 백설공주는 달라진 게 없었다. 아름다움도 그냥 아름다운 정도가 아니라 세상에서 제일 아름답다. 어찌 보면 아름다움은 백설공주에게는 양날의 검과 같다. 아름다움은 백설공주에게 일어나는 나쁜 일의 가장 큰 원인이다. 거기에 어리석음이 더해져 문제를 더 크게 만든다. 왕비는 자신보다 백설공주가 아름답기 때문에 사냥꾼을 보내 죽이려고 했고, 살아 있다는 것을 알게 되자 계속해서 살해를 시도한다. 하지만 백설공주는 자신의 아름다움이 가져올 위험을 예측해 피할 줄 모르고, 죽을 뻔한 위기를 넘기고도 전보다 나은 판단력을 보여주지 못한다. 난장이들이 다른 사람을 들이지 말라고 그렇게 신신당부를 했음에도 불구하고 스스로 자기 발등을 찍는다.  아이러니하게도 백설공주의 문제를 해결하는 것도 백설공주의 아름다움이다. 백설공주가 아름다웠기 사냥꾼의 손에 죽임을 당하지 않았고, 난장이들의 집에 머무를 수 있었으며 왕자와 결혼할 수 있었다. 하지만 이것은 백설공주가 아름답기 때문에 저절로 해결된 것이다. 백설공주는 자신의 아름다움을 이용해 어떤 이익을 취할 만큼 영리하지도 못하다. 결혼식장에서 왕비를 벌주는 것도 백설공주가 주도적으로 한 일이 아닐 것이다. 백설공주는 그냥 아름답게 존재하기만 한다.

왕비는 디즈니 애니메이션에서도 한 마디로 설명하기 힘들었는데 『아듀, 백설공주의 왕비는 훨씬 더 복잡해진 느낌이다. 거기다 우리는 언제나 백설공주의 입장에서 써 진 책만 읽었지 왕비의 입장은 생각해 보지 않았다. 왕비는 아름답고 싶은 욕망이 있지만 이것이 진정 왕비 본연의 욕망인가 하는 의문이 들었다. 그 욕망으로 인해 집착과 광기와 잔인함을 보이지만 이것 또한 온전히 왕비에게만 책임을 물을 수 있나 하는 의문도 같이 들었다. 아름답게 가만히 있는 백설공주보다는 자기가 원하는 것을 위해 적극적으로 행동하는 왕비가 자신의 인생에 더욱 충실한 사람이 아닌가? 그것이 범죄에 해당하는 행동이기에 모두 왕비를 비난하지만 동기 자체가 악하지는 않다. 작가의 말처럼 무엇이 인지 확신을 하기 힘들고 어째서 아름다움아 이 되고 대척점에 있는 늙고 추한 모습이 이 되어야 하는지는 더욱 더 이해하기 힘들다. 우리는 너무 오랫동안 백설공주와 왕비의 선악구조를 당연하게 받아들였다. 여기에는 디즈니의 역할이 상당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하지만 너무 굳어버린 사고 방식을 좀 풀어줄 필요가 있다.

사실 이 책을 읽으면서 가장 마음에 걸렸던 것은 그래도 그림책인데 아이들과 함께 볼 수 있을까 하는 염려였다. 빅북인가 싶은 사이즈와 한 손으로 들기 버거운 중량감, 흔치 않은 누드 제본과 어두운 분위기의 표지와 비슷한 분위기의 원제목 폰트까지, 이건 어른들을 위한 그림책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거기다 아이들에게는 뭔가 밝고 아름다운 걸 보여주어야 할 것 같은 의무감과 선입견까지 보태니 더욱 확신이 들었다. 하지만 번역을 하신 김시아 교수님의 말씀을 들으니 마음이 훨씬 가벼워졌다. 김시아 교수님은 트라우마가 개성이 된다는 토미 웅거러의 말을 인용하셨다. 세상은 아름답지만은 않고 사람들도 모두 선하고 현명하지 않다. 아이들에게 아름다운 세상을 보여주는 것은 좋지만 아름답지 않은 부분을 일부러 숨기거나 미화시키는 것은 옳지 않다고 생각한다. 추한 현실이 트라우마로만 남지 않도록 어떻게 하면 아이들의 눈높이에서 이해할 수 있도록 도와줄 수 있는가 하는 점은 여전히 고민이다.

처음부터 의문이었던 책의 제목 『아듀, 백설공주』는 왕비와 독자인 우리 모두가 백설공주로 대변되는 너무나 익숙한 선입견에게 건네는 인사가 아닐까 한다. 왕비는 죽음을 맞으며 질투와 분노의 대상인 백설공주에게 작별을 고하고 마음의 평화를 얻었다고 생각한다. 독자인 우리는 주입식 교육처럼 받아들였던 백설공주의 이미지 작별을 고하고 다른 인물의 입장에서 다른 시각에서 다시 한번 생각해 본 기회를 가지게 되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이 책을 읽으며 당연하게 생각했던 백설공주와 왕비의 관계에 대해서 다시 한번 생각해 봤던 것처럼 당연하게 생각해왔던 여러 다른 책의 등장인물들에 대해서도 다시 한번 더 생각하게 되는 기회를 가질 수 있을 것 같다. 익숙한 이야기를 새롭게 보고 싶은 어른들과 디즈니 애니메이션이 식상해진 아이들과 함께 볼 책을 찾는 분들에게 추천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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