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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정도 우산이 필요해
신소담 지음, 유재엽 그림 / 키큰도토리(어진교육) / 2024년 4월
평점 :
처음 몇 장을 읽고 내 얘기를 쓴 건가 싶었다. 주인공 찬우의 우산이 없어졌다. 분명히
집에 가지고 온 것 같은데, 어디서 어떻게 없어졌는지도 모르게 없어졌다. 찬우의 우산만 없어진 게 아니었다. 혜진이와 주현이의 우산도 제우의
우산도, 경비 할아버지의 우산도 없어졌다. 이건 없어진 거다. 잃어버린 게 아니다. 나도 그랬다.
내 우산도 없어졌었다. 나는 분명히 우산을 쓰고 나갔다 잘 들고 왔는데 없어진 일이 한
두 번이 아니었다. 어린 나는 잃어버린 게 아니라고 항변했지만 엄마에게는 전혀 먹히지 않았다. 우산이 없어진 다음날에 비가 오면 엄마는 집에서 제일 낡은 우산을 들고 가라고 내주셨다. 거의 검은색이었고 높은 확률로 살이 하나쯤 부러지거나 휘어 있는 우산이었다.
엄마들은 우산을 잃어버린 아이에게 어떤 우산을 주어야 하는지 어디서 교육이라도 받는 모양이다.
책을 읽으면서
주인공 찬우가 얼마나 멋진 어린이인가 하는 생각을 내내 했다. 찬우는 어린 나보다 문제 해결 능력이
있는 아이다. 번개맨에 대한 애정이 더해서 좀 더 적극적이 된 것 같긴 하지만 우산이 없어졌다고 속상해하고
있기만 하지는 않는다. 찬우는 잃어버린 우산을 찾으려고 애쓴다. 문구점과
분식점에도 가 보고 경비 할아버지도 찾아 간다. 놀이터와 아파트 주변도 살펴본다. 하지만 해답은 아주 가까이에 있었다. 우산 꽂이 주변을 다시 살펴보다
요정의 모자를 발견한다. 찬우는 호기심도 많고 관찰력과 기억력도 좋으면서 준비성과 실행력까지 있는 아이다. 그냥 나뭇잎이라고 지나칠 수도 있는 것을 자세히 살펴서 모자라는 것을 발견한다. 그리고 언젠가 읽었던 책에 나온 요정의 이야기를 기억해 낸다. 거기다
망원경과 돋보기까지 들고 아파트 주변 풀숲에 요정을 찾으러 간다.
찬우는 배려심과
탐구심이 있으면서 입까지 무거운 아이다. 요정을 찾아내지만 요정들에게서 우산을 뺏지는 않는다. 요정들이 자신의 우산과 친구들의 우산을 가져간 것을 보고도 우산이 없는 요정들이 우산 대용으로 사용하는 버섯이나
나뭇잎이 제 역할을 하지 못한다는 데까지 생각이 미친다. 그래서 없어진 우산을 도로 가져오기 보다는
우산 만드는 법을 알려주는 쪽을 택했다. 직접 우산을 만들어 보면서 설계도를 그리고 재료까지 준비해
준다. 사실 이게 제일 어려운 부분이고 그래서 너무나 기특하다. 물고기를
주기보다 물고기 잡는 법을 알려주어야 한다고 다들 알고 있지만 실천을 하기는 쉽지 않은데 어린 찬우는 이걸 해냈다. 경비 할아버지는 나이를 먹어서 정신이 깜빡깜빡해 우산을 잃어버렸다고 생각해서 속 상해하실 것을 알지만 요정들의
이야기는 비밀에 붙였다. 어린 시절에 ‘ET’같은 외계인이나
요정이 정말 있고 다른 사람들은 그 존재를 아무도 모르고 나만 알게 된다는 그런 황당무계한 생각을 해 본 적이 종종 있었다. 하지만 나라면 그런 어마어마한 사실을 누구에게도 말하지 않을 수 있었을까? 찬우가
요정의 이야기를 비밀로 한 것과는 관계없이 요정들은 자신들의 존재를 들켰다고 생각해 이사를 간 것 같다. 하지만
가져갔던 우산은 모두 돌려주었다. 찬우에게 감사의 인사를 한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책표지에서는 귀여운
요정과 못지 않게 귀여운 나뭇잎 우산에 정신이 팔려서 눈에 띄지 않았지만 면지에 그려져 있는 찬우의 우산을 보고 반가운 마음에 든 사람들이 있을
것 같다. 사실 나는 정말 반가웠다. 저작권 때문인지 작가는
‘번개 용사’라고 했지만 누가 봐도 번개맨이다. 작가도 다들 그렇게 생각할 걸 알았는지 찬우의 책상 위에 있는 연필깎이에는 ‘번개맨’이라고 그려 놓았다. 찬우는 번개맨의 열성 팬이 틀림없다. 찬우의 방에는 번개맨 포스터가 붙어 있고 책상 위에는 번개맨 피규어가 있다.
번개맨 연필깎이에 깎은 연필을 번개맨 필통에 넣어 가지고 다닌다. 번개가 그려진 티셔츠를
입고 비가 오는 날에는 번개맨 우산을 쓰고 나간다. 지금은 대학생인 딸아이가 어렸을 때 번개맨을 무척
좋아했었다. 번개맨 티셔츠를 입고 다니지는 않았지만 번개맨이 다 함께 ‘번개 파워’를 외쳐 달라며 도움을 청하면 외면하는 법이 없었다. 딸아이가 번개맨에게 애정을 가진 시간은 짧았고 나도 따라서 관심이 멀어졌다.
지금은 번개맨 역할의 배우가 몇 번 바뀌었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딸아이는 언젠가 우연히
텔레비전에 나온 번개맨을 보고 그 때 그 번개맨이 아니라면서 섭섭해했었다. 번개맨은 사춘기 소녀에게도
동심을 자극하는 존재였던 것 같다.
우산을 잃어버린
경험이 없는 사람은 없을 거라고 생각한다. 아이들만 잃어버리는 것도 아니다. 어른들이 잃어버리는 우산이 더 많을지도 모른다. 작가는 누구나 경험했을
일로 정말 깜찍한 상상력을 보탰다. 마지막으로 나는 찬우가 만든 우산이 아주 마음에 든다. 찬우는 미적 감각도 있는 아이다. 요정이 커지는 가루를 뿌려서 우리집
문 앞에 하나 두고 가면 좋겠다는 깜찍한 상상을 해 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