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험능력주의 - 한국형 능력주의는 어떻게 불평등을 강화하는가
김동춘 지음 / 창비 / 2022년 5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서평단 #도서제공 #창비 #시험능력주의 #김동춘

공정이란 무엇인가. 차별과 혐오의 시대에서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에서도 자기의 생존을 시시때때로 스스로 위협받으며 공정을 외치는 권민우와 같은 존재들이 밉상으로 취급되지만 사실은 아주 흔하디 흔한 요즘. 아마도 작가는 권민우를 통해 요즘 세대의 공정을 미러링하려고 한 것이 아닐까 싶다. 국내 최고의 대학 로스쿨에서 1등을 놓치지 않아도 취업이 되지 않았던 자폐인 우영우의 극적인 부정 취업에 불만을 품은 권민우가 익명 게시판을 통해서 사내 분위기를 선동하는 장면은 여러 의미로 많은 시사점을 주었다. 그렇다면 여기서의 공정은 시험에서 독보적 1등을 놓치지 않은 우영우를 법적으로 차별 금지 조항인 장애로 인해 탈락시킨 로펌에 두어야할까, 혹은 권민우의 말처럼 부정취업을 금지하는 데에 두어야 할까.

솔직히 이 책은 너무 어려웠다. 읽는 내내 생각이 점점 누적되고 가슴이 답답했다. 그것은 아마도 책에서 다루고 있는 내용이 저자의 말처럼 우리가 늘 당면해있지만 당장에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은 없고 누구도 그렇게 할 수 없기 때문일 수도 있겠다. ‘능력주의’라는 것은 비단 시험뿐 아니라 제한된 자리를 차지할 수 있는 능력에 관련된 것이라서, ‘문송’해진 요즘은 학력이나 학벌이 힘을 잃고 자격시험 혹은 노골적인 자본주의적 요소가 힘을 얻는다. 예전에는 학생들이 ‘땡땡 대학교 땡땡 학번’ 같은 것을 목표나 닉네임으로 삼고 추앙했다면, 요즘은 한동안 sns 이름의 미들 네임에 ‘한남 더 힐’ 같이 고가의 아파트 이름을 넣는 것을 유행으로 삼는다는 기사를 본 적이 있다. 지향점이나 추앙의 대상이 바뀐 것이다. 그렇게 생각하면 사람들의 ‘욕망’의 지향점이 어디냐에 따라 제한된 재화를 어떻게 재분배하느냐의 문제가 우리 나라에서는 시험 능력주의였었다는 것을 알 수가 있다. 그런 의미에서 시험은 어느 정도의 합리성을 갖는 합의된 도구이기는 할 것이다. 그러나 분명히 공정해보이는 시험이라는 것에도 불평등의 요소가 존재한다. 그 시험을 준비하거나 응시할 수 있는 능력치, 환경에 차이가 존재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능력주의는 불평등에 도덕성을 부여해버리는 경향이 있다. 꼬우면 공부하든지~ 꼬우면 시험 붙든지. 그러나 조선시대의 과거 시험 응시 자격은 ‘양반’만이 아닌 ‘양인’이었다. 그렇지만 일반적인 양인은 사농공상을 모두 포함하는 개념이나 모두에게 열린기회 같았던 이 시험은 열린 교회의 닫힌 문 같은 존재였다.

교육 일선에서 일하며 보는 ‘교육’과 ‘평가’의 비틀어진 관계는 더 뼈아프게 다가온다. 나는 아직까지는 공교육 기관에서 일하는 것이 훨씬 좋다. 학교는 그래도 아직은 좀 더 인간적인 관계와 교육적인 측면에 집중할 수 있는 곳이라는 믿음이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런 좋은 날들도 ‘평가’가 끼면 종종 어그러진다. 평가는 교육이 제대로 이루어졌는지를 알아보는 도구임에 불구하고 언젠가부터 1등급의 수에 목숨을 걸어야하는 아이들은 초조하게 사교육을 전전하고 소수점 문제를 가지고 상처를 주고 받는다. 가끔은 그 시험의 난이도 때문에 민원이 걸리고 학교가 휘청대기도 한다. 그럴 때면 시험이란 대체 뭘까 하는 생각이 든다. 수능이나 교사 임용 시험이나 공무원 자격 시험도 마찬가지다. 이미 충분한 자격을 갖춘 사람들이 많다보니 평가보다는 걸러내기 위한 킬러문항을 집어넣으면서 시험으로서의 한계를 보여준다. 하지만 여전히 많은 사람들이 그 체제에 순응할 수밖에 없고, 그 너머를 바라본다. 그리고 그 시험을 통과해낸 사람은 능력주의의 수혜자가 된다.

시험을 통과한 사람이 그 분야에서 시험을 통과하는 능력이 있다는 것은 여지없는 사실이다. 그러나 시험을 준비하고 응시할 수 있도록 뒷받침된 것들과 상황은 모두 공정했으며, 간발의 시험의 통과가 그의 자질을 다면적으로 평가하였고 앞으로도 훌륭할 것이라는 것을 보장할 수 있는가? 그런데 그렇지 않다면 대안은 무엇일까?

당장에 나이를 조금 먹고 보니, 사실 학벌이 대단히 큰 것이 아니었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사람들이 선망하는 자격시험을 통과한 사람들도 막상 그 자리에 올라가서는 자신에게 그 자질이 없다는 것을 깨닫고 그만두는 경우를 많이 보았으며, 20대 초반의 어린 나이를 지나서까지 수능의 영광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별다른 재주나 목적도 없이 추억팔이나 하고 있는 30대 이상을 보고 있으면 그렇게 한심할 수가 없다. 분명 문제는 있다. 그런데 그것을 어떻게 해결해야할지는 사실 묘연하다. 대체로 이것을 교육 문제라고 생각하지만 사실은 교육보다 노동, 더 나아가 사회 구조의 문제와 더 깊은 관련이 있기 때문에, 교육은 말초에서 이용당하는 도구일 뿐이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무력하지 않은가.

더 답답한 것은 한국의 시험 능력주의가 문제라면 미국이나 다른 나라는 답이냐면 그렇지는 않다는 것이다. 오히려 부의 세습을 대놓고 공고히 하는 시스템과 대놓고 사회적 차별을 인정하는 문제를 갖고 있기도 하다. 그리고 그 체제는 놓으려고 하지 않는 사람들이 절대 지킬 것이기 때문에 고민하는 입장에서는 더욱 무력해질 수밖에 없다. 그러나 머지않아 AI가 세상을 지배할지도 모르고, 결국 인간간의 경쟁이 문제가 아니라 인간의 파이 자체가 줄어들어버릴지도 모르는 세상에서 인류가 살아남는 방법은 아이러니하게도 경쟁을 통해 소수의 사람이 다수의 부를 차지하는 것이 아니라 공생해나가면서 인간의 파이를 지켜내는 것이 아닐까. 그렇기 때문에 더욱 더, 머리 복잡하고 답 안 나오는 문제라도 함께 고민해야하는 것이 아닐까. 저자가 바늘 구멍만한 희망이라도 찾아보려고 이리저리 파헤친 의도는 그게 아니었을까.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내가 잘못 산다고 말하는 세상에게 - 시대의 강박에 휩쓸리지 않기 위한 고민들
정지우 지음 / 한겨레출판 / 2022년 7월
평점 :
품절


#서평단
#도서제공
#하니포터4기
#하니포터4기_내가잘못산다고말하는세상에게
#정지우 #한겨레출판

내가 잘못 산다고 말하는 세상에게, 왠줄 알긴 하냐고 물어봐주는 책.

+ 정지우 작가의 재발견.

정지우 작가의 페이스북을 팔로우한 지 꽤 되었다. 둥글둥글하고 따뜻한 글이 주로 올라오는 그의 페이스북을 보고 있자면 세상에 아무리 문제가 많다고 하더라도 결국에는 따뜻함으로 수렴하는 것이 세상이다라는 굉장히 긍정적이고 몽글몽글하지만 어느 순간에는 찝찝하기도한(?) 느낌의, 마냥 핑크빛은 아니지만 인디핑크쯤은 되는 정도의 글을 많이 보게 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따스함과 인류애를 충전해야할 때에 그의 글을 많이 봤지만, 그만큼 인류애가 부족할 때는 그의 글이 멀게 느껴졌던 것도 사실이었다. 게다가 그는 글도 잘 쓰지만 이런 동글동글한 마음으로 그 독하게 공부해야한다는 변시까지 아이를 기르면서 붙은 고고한 사람이 아닌가? 하는 그런 생각도 들었던 것이 사실이다. 모날 일이 없었던 사람의 모나지 않은 글들이려니 생각했다.

그런데 내가 정지우 작가님을 제법 오해했던 것 같다. 혹은 정지우 작가님이 좀 더 성장하신(?) 것일지도 모른다. 그 전까지의 정 작가님이 물 위에 고고하게 떠있는 백조 같은 느낌이었다면, 이번 책에서는 그 아래에서 쉴 새없이 발을 저어야하는 모습을, 혹은 날기 위해 쉼없이 투명한 날개를 파닥이다가 불안하게 잎새에 앉아 쉬는 잠자리 한 마리 같은, 다소 뾰족한 모습도 가졌으나 그것을 뾰족하게 말하지 않는 작가님 특유의 몽글한 말투로 그렇지만 예리하게 말하며 시대와 함께 흔들린 흔적을 보여준 것이다. 확실히 철학한 사람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고, 페이스북에는 게중에 결론이 좋은 얘기만 쓰신 거였나 하는 생각이 들어서 작가님의 다른 책도 읽어보고 싶어졌다.

이 책은 '내가 잘못 산다고 말하는 세상에게' 무조건 반항하지도, 수긍하지도 않는다. 그렇다고 시원하게 답을 내주는 책이냐면 그렇지도 않다. 마구 편을 들어주거나 무작정 너 잘했다고 해주는 것도 아니다. 그러나 이 책은 길을 잃고 지도도 없이 삶 한가운데에 넋놓고 앉아 불안해하는 내 곁에 앉아 함께 불안해해주기도 하고, 함께 고민해주기도 한다. 짧지만 묵직한 에피소드들은 함부로 희망을 말하거나 절망을 말하며 끝나지 않는다. 왜 그런지, 무엇을 위해서 그래야하는지를 생각해보지 못한 영역까지 함께 사유하는 방식으로 함께 능선을 넘어가보지 않겠냐고, 조금 쉬엄쉬엄 가도 괜찮다고 말해준다. '실패를 규정하는 시간표'를 읽으면서는 조금 울었다. 나태해서가 아니라, 지도 없는 세상에서 구경꾼이 되지 않기 위해서 그런 거라고 되뇌면서 말이다.

글을 쓰는 사람에서 좀 더 생활인에 가까워진(?) 작가님의, 그래서 좀 더 묵직해진 사유와 함께 할 수 있어 좋았다. 나도 이 책을 덮는 순간, 한 발짝 더 성장했기를 바라며, 두 번 읽으면 두 번 성장하려나?하는 마음으로 다시 한 번 이 책을 가볍지만 무겁게 다시 읽어보려고 한다. 세상이 자꾸만 무작정 당신을 질책하는 것 같아 버거운가? 그럼 가만히 앉아 작가님과 정신과 시간의 방에서 함께 사유해보기를 추천한다. 조금은 내 탓만은 아닌 것 같아질 테니.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내돈 내산 내집 - 월세부터 자가까지 39세 월급쟁이의 내 집 득템기
김옥진 지음 / 흐름출판 / 2022년 6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서평단 #흐름출판 #브런치북프로젝트 #내돈내산내집 #김옥진 #재테크 #집 #내집 #내돈내산 #책추천 #북스타그램

'내돈 내산.....내집?'

내돈내산이라는 말이 이제는 너무나도 흔히 쓰이는 합성어이다. 얼마나 알짜배기 뜻만 모인 단어인가.

그런데 그 뒤에 '내집'이라는 말이 붙기가 얼마나 쉽지 않은 일인지. 작자보다 조금 더 늦은 나이에 정신차려야할지도 모르지만 이미 늦었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한 나로서는 너무나도 단비 같은 지침서였다. 이 책은 작고 쉽고 술술 읽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꽤 오래 걸렸다. 한 장 한 장 뼈맞아서 가루가 되느라고. 동시에 주눅도 들고 조금은 용기도 얻었다. 작가님이 너무 대단한 분 같으면서도, 그런 상황을 스스로 만들고 개척해나가면서 성장하신 것을 고스란히 써주신 덕분에, 어쩌면 나도 그렇게 성장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용기를 얻었다. 특히나 책의 구성이, 소설이나 드라마 같은 픽션이 아님에도 이렇게나 흥미진진할 수 있다는 게, 각 챕터마다 이렇게나 차근차근 밟아나가는 재미가 있으면서도 적절한 제목이 붙어있다는 게 신기했다. 글 쓰는 재능을 가진 사람이 자신의 성취를 이렇게 차곡차곡 기록해준다는 것이 얼마나 흥미로울 수 있는지를 알게해준 책이다.

요즘 마음 공부를 하면서 매일 감사일기와 함께 긍정확언을 하고 있다. 그것은 일종의 마음의 준비이다. 사실 한 발 더 나아가 실천하고 싶은데 그것을 준비하는 데에 용기와 시간이 필요한 것이다. 그렇게 대왕 캥거루로 삼십 대 후반까지 오고야 말았다. 삼십 대 초중반까지는 어떻게 도망치는 것을 스스로 방어할 수가 있었다. 그런데 그게 문제였다. 방어할 수가 있었다는 것이. 사실은 이렇게 큰 대왕 캥거루가 되기 전에 좀 더 어른이 되었어야 했는데. 요즘은 #우영우 를 보면서도 반성한다. 영우처럼 독립하겠습니다를 외치지 못한 내가. 그러나 생각해보면 그러기에는 너무 세상이 가혹했다. 아니 그렇게 생각하고 싶은걸까. 이 책은 나를 많이 흔들어준 책이다. 작고 가벼운 책이었지만 결코 그렇지 않은 책. 대왕 캥거루인 나에게 꺠달음과 실천 의지를 조금은 더 보태준 책. 그래서 내가 어떻게 공부해나가야할지를 옆에서 친한 언니처럼 조곤조곤 알려준 책. 시간에 구애 받지 않고 위로 받는 기분으로 읽었지만, 그저 위로일 뿐 아니라 어떤 지침서 같기도 해서 다시 한 번 꼼꼼히 읽고 조금씩은 나도 실전에 뛰어들어야겠다는 생각과 용기를 준 책. 그렇지만 나를 몰아붙이거나 늦었다고 가스라이팅하지 않은 책. 삼십 대 후반. 아직은 젋지만 젊지만은 않지만 그래도 한창 남은 나이인데 막연하게 불안해지는 때에 이 책을 만났다는 게 너무나도 감사하다. 두 번 더 읽고 조금 더 어른이 되어서, 감사의 편지를 작가님과 출판사에 보내는 꿈을 꾸며 오늘도 한 뼘 성장하였다. 이제는 꿈을 현실로 만들 시간이다.

너무나도 좋은 책, 좋은 작가님 만나게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흐름출판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똥차 일기
버드 지음 / 스튜디오오드리 / 2022년 6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서평촌_똥차일기 #똥차일기 #연애 #사랑 #결혼 #똥차

이것은 강력한 똥차 레이더, 뭔가 쎄한데 뭔지 모르겠고 그래도 우리 오빠는 다르다는 생각이 든다면 더욱더 읽어야 할 필독서. 물론 자기 일이 되어보고 지나가 봐야 아는 거라지만 그래도 아직 많은 연애를 경험해보지 못한 여성들이 읽는다면 굳이 찍어 먹어보지 않아도 될 것을 찍어 먹어보는 일은 피할 수 있을 고런 필독서. 내가 하면 꼰대 같을 거 같지만 꼭! 꼭! 후배 여성에게 이게 똥차라고 알려주고 싶으면 입을 닫고 지갑을 열어 조용히 선물해주면 딱 좋을 거 같은 고런 필독서.

몇 년 전엔가, 가스라이팅인 줄을 모르고 연인에게 가스라이팅을 당한 글을 보고 어?나도 한 적이 있다. 그걸 게시글로 올렸더니 여자인 제자들이 어? 저도 이런 거 당한 적 있는데??? 하고 분노의 댓글을 단 적이 있다. 더 놀라운 건 나는 그걸 삼십 대 중반이 되어서까지 당하고 앉아있었는데, 그 경험을 어느덧 성인이 된 제자들과 공유할 수 있더라는 것. 역시 연애나 결혼에는 태어난 순서는 의미가 없는가 보다. 암튼 지혜로우면 선배다. 누군가는 굉장히 불편하게 봤을 테지만, 그렇다면 너도 똥차 중 하나이거나 세상 대가리 꽃밭이리라.

일단 정말 쉽게 읽힌다. 슥슥 읽히는데 꽤나 긴 연애의 역사를 가지고 있고, 이거슨 똥차 같으면서도 그런 일이 내게 일어날까를 설마 하고 의심했으며, 그래도 얘는 좀 다르지, 사연이 있잖아를 생각해본 적이 있으며 사실 다 각설하고 이상한 줄 알면서도 내 사람이니까 끊지 못하고 우유부단하게 안고 가본 경험이 있는 사람으로서. 게다가 그걸 끊어내면서도 아 이게 맞나?하고 고민한 유구한 역사가 있는 사람으로서. 그때 그게 이런 유형의 똥차였구나 하는 확신의 깨달음을 주는 책이라고 말할 수 있겠다. 사실 나는 레이더가 무딘 편은 아니다. 눈치도 직관도 없지 않은 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꽤나 똥차 콜렉터였다. 지나간 연애가 좋게 기억되는 게 딱히 없는 거 보면. 그 레이더를 애써 무시하고 누른 쪽에 속하는 사람이었던 것 같다. 나도 한낱 사람이니까, 내가 모르는 서사가 있을지도 모르니까.. 라고 생각하는 사범대병 종특의 사람이 바뀔 거라 생각하는 인간. 혹은 내가 모르는 서사를 알아줘야 한다고 생각했던 인간. 착각하지 말자. 상대도 똑같은 인간이고, 나만 그의 서사를 알아줘야 할 필요는 없다. 나도 나로 존중받아야 한다. 또한 이 책의 좋은 점은 나쁜 연애와 이상한 연애뿐 아니라 좋은 연애에 대해서도 적어주었다는 것이다. 좋은 연애라고 해서 꼭 좋은 결론을 얻는 것은 아님을. 그럴 수 있음을 알려준다는 것이 좋았다. 끝난 연애라고 해서 꼭 나쁜 것은 아님을, 그것은 서로를 건강하게 할 수 있음을 자신의 사례로 알려주기도 할 수 있다는 것이.

자신의 흑역사를 글로 정리하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그것을 대중에 내보이고, 지침서로 써내리기는 더더욱 쉬운 일이 아니다. 게다가 개인의 경험을 많은 이의 공감을 사는 글로 써내기는 더욱 쉽지 않다. 그 어려운 것을 해낸 것이 이 책이다. 비록 세상의 모든 똥차를 쓰기에는 똥칼라파워가 너무 다양한 스팩트럼으로 분포해있을지 몰라도 굵직한 유형화는 충분히 해냈다. 연애가 쉽지 않은 모두에게, 자신의 선택에 확신이 없는 모두에게. 속는 셈 치고 읽어도 남는 책이고 두고두고 찾아보며 읽을 수 있는 강력 추천 도서라고 감히 말해본다.

좋은 기회 주신 #스튜디오오드리 와 #서평촌 님께 특히 감사드린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이것은 인간입니까 - 인지과학으로 읽는 뇌와 마음의 작동 원리
엘리에저 J. 스턴버그 지음, 이한나 옮김 / 심심 / 2022년 7월
평점 :
절판


#서평단 #도서제공 #푸른숲 #푸른숲가드너1기 #이것은인간입니까 #인공지능 #AI #도서추천 #북스타그램 #심심 #엘리에저j스턴버그

간만에 머리 많이 쓴 책이다. 과학과 철학 사이를 넘나들면서 '인간'의 본질에 대해서 자꾸만 물음표를 던지기 때문이다. 그저 슬렁슬렁 읽히기보다는 그래서 나는 사람인가 아닌가, 어디까지가 사람인가, 사람의 본질은 무엇인가를 자꾸만 생각해보게 하고, 내 나름대로의 결론을 내보게 한다. 그래서 인간이란 무엇일까?

이 책은 '의식'의 출처에 대해 계속 쫓아간다. 다양한 가설들이 등장한다. 인간만이 느낄 수 있는 감각질에 대해 이야기하며, '나로 사는 삶'은 그 누구도 알 수 없는 영역임을 말하는 철학적인 사유에 도달하는 과정은 감탄스러웠다. '나로 사는 삶'은 그 누구도 알 수 없는 영역이라는 점. 그런 나로 살고 있다는 것을 매 순간 잊지 말아야 겠다고 생각했다. 그것이, 인간이니까.

알파고를 통해 널리 알려진 AI는(나만 그런가) 이제 4차 산업 혁명을 타고 우리의 자리를 위협하고 있다. 산업혁명이 그러했듯, 우리의 발전은 우리를 편하게 하면서 동시에 우리의 파이를 잘라버리기도 했었다. 그런 고난을 다 헤쳐왔건만, 이번에는 좀 넘어서기가 쉽지 않아보이는 상대다. 그래도 그간은 사람을 흉내내지는 못해서 온기의 영역이 남아있었다면 이제는 그 영역조차 위협당하고 있지 않은가. 그러니 우리는 필사적으로 그 온기의 영역을 지켜야 하고, 온기만은 인간의 것이라는 것을 증명해내야한다. 그래서 이 책을 각잡고 읽어야 한다. 만약 우리 영역을 지켜내지 못하면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우리의 파이는 또 잘려나갈 것이다. 그것도 이번엔 아주 많이.

이 책을 보면서는 유독 #김초엽 작가님이 많이 생각났다. 그녀의 소설집 #우리가빛의속도로갈수없다면 에 수록된 작품 중에서 #스팩트럼 이라는 작품에 나오는 #루이 가 떠올랐기 때문이다. 루이는 죽으면 다음 루이에게 기억을 고스란히 넘겨준다. 그럼 그 루이는 어떤 루이일까. 외계인이긴 하지만 이 루이에게는 인간의 자격을 부여할 수 있을까 아닐까. 또한 작가님이 참여하신 책 #사이보그가되다 에서 언급되듯이 인간의 신체 일부는 기계로 대체되곤 한다. 한 가지일 수도 있지만 여러 가지일 수도 있다. 점차 대체될 수 있는 기관들이 많아지는 가운데 마침내 의식을 대체할 수 있는 무언가가 생긴다면? 물론 의식을 만들어낼 수 있다는 것이 전제이기 때문에 '나로 사는 삶'을 나만이 살아갈 수 있다면, 그래서 육체와 의식이 영원히 이원적이라면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다행이다.

그런데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우리의 의식은 아주 조그마한 것인데. 우리에게 의식이란 정말이지 아주 조그마한 것인데. 어쩌면 어느 날 갑자기 의식을 따라잡는 무언가가 나타날 수도 있고 의식을 흉내낸 무언가는 이미 등장했는데. 오히려 인간의 고유 속성은 무의식에 있을 수도 있지 않을까? AI도 의식을 흉내내려고만 했지 무의식을 흉내내려고 하지는 않지 않을까.....?

그러니까, 그래서, 이것은 인간입니까?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