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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그런 말은 쓰지 않습니다 - 더 나은 내일을 위해 새로고침이 필요한 말들
유달리 지음 / 포레스트북스 / 2022년 10월
평점 :
#이제그런말은쓰지않습니다 #유달리 #포레스트북스 #표현 #말 #단어 #혐오표현
밑줄 안 칠 말이 없다. 사고 하나하나가 생각지도 못했던, 그러나 너무나도 타당한 지점을 적확하게 가리키고 있는데 문체까지도 심히 매끄럽고 유쾌하다. 예시도 너무나 적절하고, 에피소드마다의 기승전결이 깔끔하고 완벽하다. 최근에 읽은 비슷한 책으로 #말을부수는말 이 있었는데, 그보다 훨씬 쉽고 간명하다. 읽으면서 중요한 부분만 북마크하고 밑줄을 쳐야지 했는데 정말 밑줄을 쫙쫙 치면서 읽고 3/4가 넘는 페이지에 북마크를 할 수밖에 없었다. 무엇보다 이거 아닌데 싶은 표현에도 '왜?'냐고 물으면 뭐라고 답해야할지 막막할 때가 많았는데, 이렇게나 명확하고 분명하고 설득력있게 설명할 수가 있다니 놀라울 따름이었다. 작가소개에서부터 밑줄칠 말이 생기는 작가님은 역시 다르구나 싶었다. 내가 작가소개에서 밑줄친 말은 이거였다.
-졸업 후 부산으로 돌아가 학생들을 가르쳤다. 성적이 낮다고 꼴통이라고 불리고, 부모가 없다고 차별받는 아이들을 보며, 적어도 낡은 편견으로 상처주는 어른은 되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좋은 어른이 되고 싶은 교사인 것은 나와 같은데, 너무나도 분명한 목표를 가진 분이었다.오늘도 갈 길이 멀다는 것을 한 번 더 느꼈다.
서문에 들어가기 전에 나오는 선택장애, 몰래카메라, 분노조절장애, 출산률, 주린이, 여자여자, 한국 사람 다 됐네 등은 너무나도 흔하게 들은 말들이고 심지어 나조차도 문제가 뭔지 모르고 썼던 말들이라서 자못 부끄러웠다. 물론 나도 끊임없이 성장한다. 10년전의 나보다 지금의 나는 적어도 언어적인 측면과 인권적인 측면에서는 꽤 많이 성장했다. 지금의 내가 좋은 사람이 되었다는 뜻이라기보다는 10년 전의 내가 부끄러울 정도로 무지했다는 뜻이다. 심지어 출산률이라든지, 한국 사람 다 됐네 같은 것이 뭐가 문제인지는 책을 읽으면서 무릎을 탁 칠 정도로 명쾌한 문제를 나는 몰랐던 것이었다. 아직 갈 길이 한참 멀었다.
서문에서 작가는 소크라테스처럼 계속 본인에게 질문하며 성장한 과정에 대해 말한다. 누군가 프로불편러의 삶을 감수하며 어떻게 사냐고 물은 것에 그는 "말은 어떻게 대화가 될 수 있는가?"라는 질문을 통해 답을 찾았다고 한다. 대화는 '듣는 이'가 존재하지 않으면 혼잣말로 남겨지고 말 것인데 듣는 이가 들어주어야 비로소 대화가 되는 것이라면 그 문장을 대화로 완성해주는 이에게까지 불편함을 감수하게 해서는 안된다는 것, 발화 속 메시지가 중요하면 중요할수록, 듣는 이가 많으면 많을수록 화자가 한 번 더 생각을 거치는 게 청자를 위한 거라면 그 번거로움은 감수할 가치가 있다고. 차별 단어를 가려내어 잘 손질된 문장을 대접하는데 발화자가 손해볼 일은 단 하나도 없다는 것이 그 답이었다. 명쾌하다.
바야흐로 분노의 사회다. 분노로 서로를 할퀴고 상처내는 것이 유머나 밈이라는 단어로 유행이 되어버린다. 당장의 분노를 표출하기 위해 잼민이, ~린이, 틀딱, 꼰대 등의 단어로 자신의 과거와 미래를 끊임없이 부정하면서 상처뿐인 분노의 유행에 탑승해서 가만히 있어도 움직여도 온통 두들겨 맞기만 하는 피곤한 사회를 만들고 그게 사회적 기준이라며 강요하며 이에 맞지 않는 사람들을 잘라내기보다는, 그렇게 유행에 편승하는 것 같지만 모두가 모두를 타자화해서 결국 모두가 외로워지는 사회를 만들기보다는 혐오표현과 차별표현을 더는 쓰지 않음으로 인해 그 분노 유행의 힘을 빼고 각자의 삶의 모습을 존중함으로써 애써 분노하지 않아도 사회의 일원으로 당당하게 살아갈 수 있는 사회를 만드는 것이 우리의 과제가 아닐까 싶다.
그러는 데에는 사고를 지배하는 언어의 역할이 정말 크다. 언어 하나가 바뀌는 게, 생각을, 사회의 흐름을 바꾸는 영향력을 갖기 때문에 '프로불편러'라는 말로 자꾸만 뭔가 이상함을 말하고자 하는 사람들의 입을 막으려고 하는 게 아닐까.
이 책은 정말 전 국민이 다 읽고 한 번쯤 생각해보고 잘 되지 않더라도 실천하려는 노력이라도 해보았으면 좋겠는 책이다. 사실 알고보면 나도 모르게 혹은 알면서 남에게 상처를 주고 있었던 자신도, 그리고 남에게 상처를 받고 있었던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공기중에 분노하고 있었던 자신도 발견하게 될 것이다. 그리고 재밌는 책이 깨닫게 하는 바도 커서 어느 새 두 번 읽고 있는 자신을 발견할 것이다. 정말 강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