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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학의 위로 - 점과 선으로 헤아려본 상실의 조각들
마이클 프레임 지음, 이한음 옮김 / 디플롯 / 2022년 11월
평점 :
#수학의위로 #디플롯 #수학 #기하학 #프랙탈 #위로 #비탄 #이별
한 줄 평 : 이과와 T 사람을 위로하는 확실한 방법. 매일 이별하며 살고 있는 우리를 위한 지적인 위로.
기하학적으로 비탄과 위로의 관계를 정의하고 증명하시오[10점]
사실 이런 내용이 아닐까? 하고 생각했다. 수학과 위로라니? 바야흐로 MBTI의 사회가 도래한 것은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타인을 이해하려는 끊임없는 시도의 소산이 아닐까 생각한다. 그 중에서 T유형과 F유형의 공감능력에 대한 일화들은 프랙탈구조처럼 무한 생성되면서 둘이 평행선을 달리는 존재라는 것을 알려주곤 한다. 일단 무조건 공감해주기를 바라는 F와 해결책을 주고 싶어 하는 T의 서로를 향한 무한한 삽질은 일면 웃음을 주면서도 일면으로는 소통 부재의 씁쓸함을 자아내기도 한다. 다행인 것은 T와 F의 성질이 양자택일이나 고정형이 아니라는 것? 노력 여하에 따라, 혹은 살아가는 모양에 따라 그 비율이 조정되어가고 깎여나가는 것이라는 것이 다행스러운 일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그 첫 순간에, 우리는 책에서 말하는 처음 ‘아하!’의 순간을 겪을 것이다.
그리고 한 세계가 닫히면 한 세계가 열린다. 하나의 사실에 대한 첫 ‘아하’의 순간은 다시 오지 않고, 한 세계가 닫히고 새로운 세계가 열리면 다시는 그 길로 돌아갈 수 없다. 이는 기하학뿐 아니라 모든 인생에 관한 이야기였다. 이를 작가는 기하학의 프렉탈, 자가복제성으로 설명한다. ‘여의다’라는 단어가 있다. 헤어짐이되 다시는 되돌릴 수 없는 헤어짐에 대한 단어이다. 비탄이란 그런 것이다. 그러나 우리의 삶은 매일 순간과 이별하고 있고, 새로운 세계의 문을 열고 있다. 그러면 지나온 세계의 문은 닫힌다. 돌아갈 수 없다. 돌아갈 수 없는 것이 얼마나 소중한 존재냐에 따라 그 감정이 씁쓸함에 그칠 것인지 비탄의 영역에 미칠 것인지가 정해질 수 있겠지만 확실한 것은 우리가 매일 매일과 이별하고 살고 있다는 것이다. 상실한다는 것은 다시 만날 수 없는 누군과와의 이별을 말하기도 하지만, 다시 만날 수 없는 어제의 나를 말하기도 한다. 늘 자신있었던 것이 낯설어지는 순간을 경험해본 적이 있는데, 작가의 기준으로는 좀 빠른 일이었지만 그 일의 정체를 새삼스럽게 깨달을 수 있다는 것이 놀라웠다. 또한 그런 비탄의 감정이 수학적으로 설명될 수 있다면, 단순히 언어를 가진 존재인 인간을 뛰어넘어 모든 존재들의 비탄을 읽어내고 위로할 수 있다. 인간을 뛰어넘은 유정 명사인 존재들이 슬픔을 표현하는 장면들을 짧은 클립으로 가끔 접한다. 그때는 찡하게 감동하면서도 동시에 언어를 갖지 못한 존재들의 비탄에 무지한 우리들에게 수학이 설명하는 비탄은 깨달음을 준다. 비탄과 위로는, 언어를 뛰어넘어 존재하는 존재임을 수학/과학적으로 증명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고. 여기서 최근 디플롯이 #다정한것이살아남는다 에서부터 쭉 이어온 정체성을 다시 한 번 확인할 수 있었다.
작가는 이밖에도 우리가 추상적으로 떠올려온 감정에 대해서 축을 통한 분석을 시도한다. 두려움과 편안함, 차분함과 화남 등을 축으로 만들어서 ‘편안하면서 화가날 수도 있지 않을까?’하는 재미있는 질문을 던진다. 정말 그럴 수는 없을까? 곧이어진 예시는 무릎을 탁 치게한다. 사실 나도 며칠 전에 우연히 탄 앵그리버드 택시기사 아저씨의 택시를 타고 오면서 느낀 감정이었는데 이게 이렇게 그래프화될 수 있다니? 놀랍고 신기했다. 복잡한 감정상태를 해체하고, 여러 개의 축 사이의 어느 지점에 놓는다면, 우리의 복합적인 감정도 어딘가에 점으로 찍힐 수 있을 것이고, 그 성분을 분석해낼 수 있을 것이라는 점을 더 이해하고 싶었다.
뼈문과로서, N사람으로서, 수학이 딱 떨어지는 S사람의 영역, 정답의 영역이 아니라 확장하는 생각의 영역이라는 것이 왜인지 모르게 편안했다. 돌고 돌아 끝과 끝에서 만난 동지와 두 손을 맞잡은 기분이랄까. 책이 주는 메시지를 온전히 다 이해하지 못했다고 생각하고 싶다. 두 번, 세 번 읽으면서 더 깨닫고, 더 탐구하고 싶은 책이다.
위로하고 싶은 사람이 지적이고 사유하기를 좋아하며, 그러나 매우 이과사람에 T사람이라서 어떻게 위로해야할지 모르겠다면? 이 책을 조용히 내밀어보기를. 그리고 함께 책에 대한 대화를 나누어보기를 추천한다.
+당신이 이 책을 선물받았다면 당신이 상대에게 꽤 지적인 대화가 통할 것 같은 사람으로 보였다는 뜻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