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내 인생의 초콜릿
사랑하기 좋은날, 이금희입니다 제작팀.서재순 지음 / 경향미디어 / 2009년 10월
평점 :
절판
KBS 2FM '사랑하기 좋은날, 이금희입니다' 라는 프로그램에서 읽혀지던 서재순님의 원고를 이렇게 책으로 엮어냈다. 한번 읽혀지면 날아가버리는 글들이 아까워 제작을 하게 되었다고 한다. '내 인생의 초콜릿' 이란 제목이 참 인상적이다. 인생은 초콜릿 상자 같은 것이라는 말에서 힌트를 얻었다고 한다. 그 초콜릿은 단맛 뿐 아니라 쌉쌀한 맛, 신맛, 쓴맛등이 있다. 하루 하루 우리는 다른 맛의 초콜릿을 먹고 있는 것이다.
이 책을 읽으며 서재순 작가가 내 맘 속에 들어온것 같은 느낌이었다. 내가 일상 속에서 소소하게 느꼈던 것들, 잊고 있던 것들을 생생하게 되살려 지금까지 살아온 인생을 돌아보게 한다. 잔잔한 일상 속에 이런 큰 감동이 있는지 미처 알지 못했는데...사소한 일에 우리는 웃고 울고 화내고 감동하고 섭섭해 한다. 그런 순간들에 느꼈던 여러 감정들이 이 책 속에 다 녹아 있다. 두 세 페이지의 길지 않은 많은 글들을 지금 다 담아내고 싶다. 어느것 하나 버릴것 없이 알멩이만 가득한 이 글들을 다 보여주고 싶지만 그렇지 못한것이 안타까울 뿐이다. 꼭 사서 읽어보라고 권하고 싶다. 함께 읽고 같이 공감하고 싶을 뿐이다. 하나의 글을 읽으며 다음글로 책장을 넘기기 전 아주 깊은 여운이 남는다. 이렇게 짧은 글에서 긴 여운을 느낄 수 있다니...
항상 아니다 싶었던 일들이 어느 순간에 그런 생각들이 편견이었음을, 무심코 했던 내 행동들이 아주 무례했다는 것을, 내가 더 사랑한다고 투정을 부렸지만 사랑의 표현이 저마다 다를 뿐이었음을, 상대가 변한 것인가 하고 느꼈지만 그것은 상대를 느끼는 각자의 마음이 변한 것임을, 엄마에게 필요한 것은 돈이 아닌 말벗이었음을, 내가 좋아한다고 다른 사람도 좋아하는 건 아니라는 사실 외에 많은 것들을 이 책을 읽으면서 공감하게 된다.
아이의 성장은 자아가 강해지는 것도 포함되지만 어른의 성장은 자아를 포기할 때, 남의 말에 귀 기울이고 자기 자신을 내려 놓을 때, 자기 주장이 사실은 고집도 아닌 아집에 지나지 않고 편견일 뿐이라는 걸 깨달을 때 비로소 이루어진다는 말이 왜이리 가슴에 와닿는지 모르겠다.
내가 살아온 날동안 느꼈던 것들이 이 책안에 함축되어 있다. 지금 30대에 느끼는 것보다는 40대에, 50대에 이 책의 깊이를 더 느끼지 않을까 싶다. 각박한 세상이지만 많은 것을 느낄 수 있는 글을 통해 따뜻함을 느낄 수 있는 시간이 되어 너무 흐뭇하다. 지금 내가 사는 인생은 어떤 맛일까? 생각해본다.
많은 글들을 다 옮기고 싶지만 몇개만이라도 공감하고 싶어 올려본다.
『평일 오전에 영화를 보러 갔다. 나 포함 다섯명, 모두 혼자 온 사람! 그럴때 대개는 표에 적힌 좌석대로 앉지 않는다. 더구나 자기 자리 옆에 누군가 이미 앉아 있을 땐 모든 사람이 다른 자리를 간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어떤 남학생이 저벅 저벅 걸어 들어오더니 내 옆에 바짝 붙어 앉았다. 불편했다. 본능적으로 방어적이 된 것이다. 그렇다고 옮겨가기도 그렇고 불편함을 감수하며 앉아 있는데 학생이 부스럭거리며 가방에서 귤을 꺼낸다. 뜻밖에도 반을 잘라 내게 건넨다. 의아한 표정으로 돌아보는 나에게 "하나밖에 없어서요. 좀 드세요. 혼자 먹기 그래서..." 학생이 참 맑아 보인다. 그 학생보다 나이가 두 배 가까운 나는 공격적이면서도 방어적이고 까칠하면서도 세상을 항상 경계하는데 이 아이는 어떻게 이렇게 편안한 거지? 나도 그 나이 땐 그랬나? 생각하느라 영화를 제대로 보지 못했다.』
『자동문이 날 거부했다. 너무 멀리 섰나? 하는 마음에 한발 가까이 내디뎠지만 그래도 열리지 않았다. 고개를 갸우뚱하는데 누군가 말했다. "너무 가까이 서서 그래요" 그렇구나. 너무 가까이 서도 열리지 않는구나. 건물에서 나와 거리를 걷는데 너무 가까이 서서 그래요, 라는 말이 사무친다. 그녀가 떠난 것도 그 때문일지 모른다. 내가 너무 가까이 서서! 이 세상 모든 관계에는 '거리'가 필요하다. 태양과 지구 사이에 이만큼의 거리가 없었다면 지구에는 생명체가 살 수 없었을 거다. 실제적인 거리도 필요하고 심정적인 거리도 필요하다. 사랑하는 사람들 사이는 더 그렇다.』
『수입은 20%정도 줄고 물가는 오르고 어머니 병원비와 아이들 학원비는 더 많이 들어가고. 어디 가서 아르바이트는 못하더라도 인형 눈을 붙이거나 가방에 장식 다는 부업이라도 해야 할 판에 철이 없는 걸까. 도피하고 싶은 걸까? 문화센터 수채화 반에 등록했다. 오래전부터 배우고 싶기는 했지만 최악의 상황인 지금 등록할 게 뭐람. 자신도 이해가 되지 않아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았다. 나도 나를 이해 못하는데 누가 이해해주랴, 싶었던 것이다. 일주일에 두시간. 캔버스 앞에 앉아 있는 동안은 행복했다. 행복했다기보다 평온했다. 죄의식이 느껴지기도 했다. 그런데 오늘 문화센터에서 고등학교 동창을 만났다. 나쁜 짓하다 들킨 사람처럼 깜짝 놀랐다. 모든 얘기를 다 해버렸다. 신게 먹고 싶으면 비타민이 필요한거래. 고기가 먹고 싶으면 단백질이 부족한 거고 멸치가 맛있으면 칼슘이 필요한 거래. 우리가 알아차리지 못해도 우리 몸은 우리가 필요한 걸 알고 섭취한대. 네가 지금 그림을 배우는 것도 비슷한 걸 거야! 친구의 말이 그렇게 고마울 수 없다. 맞다. 영양소는 몸에만 필요한 게 아니다. 마음과 정신에도 필요하다. 이 어려운 시기를 헤쳐나가려면 마음과 정신에 풍부한 영양을 공급해야 한다. 어디 돈 안드는 영양 공급법 없을까? 있다. 이해, 배려, 관심, 사랑, 따뜻한 말 한마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