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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본주의의 적
정지아 지음 / 창비 / 2021년 4월
평점 :
자본주의는 우리의 사회체제중 비교적 성공적으로, 많은 나라들이 상대적으로 성공적인 체제인 자본주의를 통해 국가들을 이루고는 있지만, 인간의 무한한 욕망을 동력으로 삼아 대량생산과 대량소비의 확대재생산속에 괴물처럼 팽창하고 있다는 치명적인 단점 또한 존재합니다. 또한 조금 더 편리하게 살기 위해 단적으로 더 크고 화려한 집과, 더 빠르고 멋진 자동차와 기능조차 제대로 알지 못하는 새 스마트폰 등 많은 것을 가지기 위해 사람들은 무한경쟁 속에 자신을 내던집니다.
그렇다보니 우리는 자본주의 체제인 사회에서 살고있지만 우리가 살고있는 자본주의에 대해서 한 마디로 어떻게 정의해야 할까?라는 질문은 꽤 대답하기 어렵다고 느껴지기도 합니다.
반면 자본 주의에 결국 패배했지만 유일하고 오래된 적이었던 사회주의는 새 것을 갖기보다 낡은 것이라도 다 같이 나눠갖자는 주의였습니다. 저자가 생각하는 자본주의는 이런것인것 같습니다. 욕망을 동력으로 삼아 끝없이 확대 재생산하는 시스템, 그런 자본주의의 적은 단순하게 사회주의가 아닌 욕망을 제거하는 것, 아니 욕망하지 않는것. 이것이야말로 자본주의의 적이라고 표현됩니다. 그러므로 작품속의 자폐가족의 무욕망, 무욕구는 자본주의의 적으로 볼수 있습니다.
자폐가족은 자본주의의 동력 그 자체인 욕망을 부정하는 자들로 나옵니다. 욕망을 이성으로 통제하여 평등하게 함께 누리자는게 사회주의인데, 자폐가족은 보다 근원적인 욕망 그자체가 부재함으로써, 자본주의의 전원을 끕니다. 자본주의에 이보다 강력한 적은 없었습니다. 그리고 사회주의자인 부모를 둔 저자의 평생 화두는 빨치산의 딸 이었습니다. 그녀의 어머니와 아버지 두 부모 모두 사상적인 이유로 복역하였다고 하니, 이들의 만남은 어쩌면 사상과 이념의 만남이라고 볼수도 있습니다.
그런 부모밑에서 자랐던 저자는 부모님의 사상을 대체한 새로운 사상이나 마찬가지였습니다. 사상이 무너진 자리에 딸이 사상이 되었고 딸이 살아갈 힘이 되어주었습니다. 사회주의자였던 엄마가 원했던 세상은 여자도 똑같이 공부할수 있는 세상이었는데, 그 간절한 소망이 이루어진 시대가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상이라니 아이러니하게 느껴집니다.
작품을 읽으며 웃다가 또 어떤때는 거룩해졌다가, 어떤 묘사에서는 발산하지 못한 욕망의 어두운 그늘에 서글퍼졌다가.... '자본주의의 적'은 다양한 감정이 용솟음치는 작품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