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린책들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받았습니다.)번역서가 아니라 한국어로 쓰인 한국 저자의 서양철학사 책이 나왔다는 것부터 일단 기쁘고 감사하다.책에서 철학사에 신비주의를 포함해 설명해주는 점이 반가웠다. 이성 중심의 서양 철학사란 실은 조작되고 배제되어 만들어진 이미지였다. 물론 전체 분량에서 신비주의가 차지하는 비중이 크진 않지만 무시하지 않고(?) 다뤄주어 좋았다. 솔직히 그 부분이 재미있기도 했고.책의 마지막 장은 페미니즘이어서 이 또한 반가웠다. 여덟 장 정도의 가벼운 분량이지만 더 공부해 보고 싶은 마음을 주므로 입문자용으로는 적당하다고 생각된다. 내 생각이 나의 것이 아님을 의식하게 되면서 철학에 관심이 생겼으나 워낙 방대하고 어려운 분야라 늘 곁눈질만 하고 있었는데 이번에 좋은 책을 만난 것 같다. 지금은 온전히 이해하지 못했어도 시간을 두고 다시 찾아보며 도움 받기에 유용한 책이다.
(서평단/도서협찬)“다른 사람들과 연결되지 않은 사람에게는 삶이 없는 것과 같죠. 운이 좋아 다른 사람과 깊이 연결되면, 삶은 단지 가능해질 뿐 아니라 좋은 것이 돼요. 우리가 가진 것은 좋은 거지만 이제는 이 정도 좋은 걸로는 충분하지가 않아요. 어쨌든 나에게는 충분하지 않아요.” 바움가트너가 주디스에게 청혼하는 장면에서 나온 대사이다. 주디스는 승낙하지 않았고 둘의 연애는 오래가지 않아 끝났지만 참으로 낭만적인 말이다. 솔직히 처음에 나는 그가 굳이 결혼하려는 이유를 이해할 수 없었다. 일주일에 두세번 만나는 연애로는 만족할 수 없다니. 아직도 죽은 아내의 기억을 끌어안고 사는 일흔살의 바움가트너가 왜 청혼을 해야 했는지. 그는 과거와 현재를 오가며 산다. 미래는 ... 가진 시간이 별로 없는 그에게 미래는 기대할 것이 못된다. 그게 이유였을 것이다. 충분치 않은 시간을 사랑하는 사람과 온전히 누리고 싶은 것. 청혼이 그의 절박함에서 나온 것이라면 이 장면에선 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지 잘 모르겠다. 생에 대한 의지가 나타났다는 점에선 기쁜 일이지만 그 생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것과 청혼이 거절당했다는 점은 슬픈 일이라서. 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지 모르겠는 건 결말에서도 마찬가지다.바움가트너는 죽었을지 살았을지 분명치 않지만 일단 난 죽음을 암시하는 것으로 읽었는데 그렇다면 그가 베브를 맞이하기 위해 쏟은 온갖 수고와 차사고의 위험을 걱정하며 베브에게 그토록 잔소리를 해댔던 수고 역시 헛수고가 되는 것일까.인생은 계획대로 되지 않는 우연 투성이라는 점. 그 우연은 좋기도 나쁘기도 하다는 점. 어짜피 통제되지 않는 제멋대로이고 수수께끼인 인생을 그려내려 했던 걸까.난 폴 오스터의 소설은 처음이지만 이런 아리송함이 이 작가의 매력일 수 있겠다 짐작해 본다. 또 말이 참 많은데 신기하게 지루하지 않게 읽히는 것도 매력 중 하나 아닐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