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을 가면 테마를 가지고 하는 여행을 좋아합니다. 서울은 궁투어로 적합한 도시로 궁투어를 너무 해 보고 싶습니다.
이 책 《궁궐로 떠나는 힐링여행: 경희궁》은 경희궁의 역사와 경희궁에 대한 모든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경희궁지는 서울시 종로구 새문안길의 위치하고 있습니다. 오랫동안 일반인들에게는 새문안로에 궁궐이 있었다는 사실조차 알려지지 않았습니다.
이름조차 생고한 경희궁을 지금 시민단체의 문화재지킴이들이 역사적 의미를 일반 시민들에게 안내하고 있습니다.
경희궁의 이름은 원래 경덕궁으로 광해군 때 지어졌고 경희궁은 영조 때 고쳐 불리게 되었습니다.
조선 후기 경복궁, 창덕궁과 함께 조선왕조의 3대 궁궐 중 하나로 규모가 큰 궁궐이었지만 일제강점기에 대부분의 전각이 경복궁 중건을 위해 헐려 나갔습니다.
1592년 광해군은 전쟁 상황 속에서 떠밀려 세자가 되었으나 부왕으로부터 제대로 인정받지 못했던 광해군은 콤플렉스로 고통스러웠습니다.
광해군은 15년 재위 내내 궁궐을 짓고 또 지었습니다. 당시 국가 재정으로 보아 신료들의 반대를 무릎쓰고 무리한 궁궐 신축을 추진했습니다.
새 궁궐 경덕궁은 광해군 9년부터 짓기 시작하여 인경궁, 자수궁과 함께 광해군 12년에 완공되었습니다.
영조 36년에는 인조의 생부 원종의 시호인 경덕과 음이 같다고 하여 경희궁으로 고쳤습니다. 영조는 경희궁에 가장 오랜 기간 임어하였습니다.
18세기 조선 국왕은 창경궁과 경덕궁을 이궁으로 사용하였으며 처음부터 국왕이 경덕궁에 임어하는 기간이 길었던 것은 아니었습니다.
경덕궁에 누구보다 애정이 많았던 숙종은 재위 46년 중 서궐에서 13년을 기거했고 대대적인 수리 공사를 시행하였습니다.
일제강점기 경복궁 중건을 위해 전각 대부분이 철거되면서 궁궐로서의 기능을 상실한 경희궁에는 승정전을 비롯하여 남아 있는 전각 5채가 남았습니다.
경희궁이 궁궐로서의 면모를 완전히 상실하게 된 것은 경성중학교가 이곳에 들어서면서부터입니다.
일본 관료 자제들의 학교인 경성중학교가 설립되면서 경희궁 서편에 교사를 지었고 몇 개 남아 있던 전각마저 외부에 매각됩니다.
경희궁 건물은 완전히 사라졌습니다. 한일병합이 되면서 경희궁지는 총독부에서 관리했고 궁궐의 지위를 완전히 상실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광복이 된 후에도 경희궁 훼손이 진행되었고 서울시에서 경희궁 복원 비용에 대한 문제점을 제기하면서 복원 공사는 중지되었습니다.
서울시에서는 경희궁 터에 서울역사박물관을 세우면서 다시 훼손되었고 서울시교육청, 서울시립미술관 등을 짓는 과정에서 기존 경희궁 유적과 유구에 대한 발굴과 보존 조치를 거의 취하지 않아 유적지가 파괴되었습니다. 하지만 경희궁은 우리 역사에서 차지하는 비중을 생각하면 회복되어야 할 명분이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