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학 바람이 불면서 인문학에 대해 궁금했고 조금 알아보려고 해봤습니다. 하지만 인문학이 워낙에 광범위한 학문이라 중도에 포기하게 되었습니다.
인문고전을 읽으라고 하지만 실제로 읽고 보니 너무 지루해 완독하는 데 조금 힘들기도 하고 시간이 올래 걸리기도 했습니다.
그러다 그만 두었습니다. 고전책이 지루하고 취향에 맞지 않아 더 이상 읽을 수가 없었습니다.
그렇게 인문학에 대해 흥미를 가지고 있지만 정확하게 무엇인지, 어떤 것인지 모르고 있습니다.
이 책 《이어령의 강의》에서 2022년 2월에 별세한 이어령 선생님의 글을 한 권의 책에서 읽을 수 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인문학으로 성공할 수 있었다고 합니다. 특히 유명 인사나 정치인, 경제인 들까지 인문학을 공부하고 필요하다고 합니다.
변화의 핵심을 찾아가면 인문학이라는 수원지에 도달하게 됩니다. 인문학이란 분야는 인간이란 무엇이며 어디에서 와서 어디로 가고 있는지 밝히고 깨닫는 학문입니다.
인문학은 단순히 실용적인 도구 학문과는 궤를 달리하는 학문입니다. 인문학은 시스템을 중시하는 다른 학문과는 달리 기계가 할 수 없는 일을 합니다.
그것은 공감의 능력을 길러주는 데 오늘의 큰 역할이 있습니다. 공감은 타자에 대한 열림과 소통의 기능을 가져다주는 힘입니다.
전 세계가 하나처럼 글로벌화하는 세계 환경 속에서 절대에 가까운 힘을 지니고 있습니다.
타인에 대한 관용과 다른 문화에 대한 이해, 그것이 바로 인문학의 토대 위에서 있는 힘이고 인간의 문명을 움직이는 힘입니다.
새로운 것을 만드는 창조는, 창조하는 것, 창조 정신, 창조 마인드라는 것이 있습니다. 모든 창조는 힘든 울음 끝에 나온다고 할 수 있습니다.
창조는 눈물 끝에서 생겨나는 것입니다. 편안한 잠을 자고 곱게 자는 사람들은 절대로 창조가 일어나지 않습니다.
창조는 억압과 모순, 구석, 이 속에서 나옵니다. 자연과학을 하든 인문학을 하든 모든 인간의 창조의 기본은 언어입니다.
언어에서 창조와 숫자가 나옵니다. 창조는 융합 속에서 나옵니다. 모든 것을 통합하는 융합 학문, 부정을 긍정으로 돌리는 긍정학, 모든 것을 소통하는 소통학의 세 가지는 중요한 요소입니다. 옛것과 새로운 것을 융합하고 부정을 긍정으로 옮기고 막힌 것을 소통해서 풀어나가야 합니다.
결국엔 창조라는 것이 인문학에서 온다는 것을 결론에 도달하게 되었습니다. 변화도 창조의 한 종류라는 생각이 들면서 변화 역시 인문학에서 시작됩니다.
이런 결론에 이르자 이 책 《이어령의 강의》와 같은 인문학 책을 앞으로도 많이 읽고 싶고 읽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