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서는 클래식스라는 학문이 아주 낯설었습니다. 클래식스는 최고 계급의 로마 서민을 가리키는 말로 옥스퍼드 대학에서 오래전부터 가르쳐 온 과목입니다.
이 책 《내 불운은 어디서 오는 것일까》의 저자는 영국에서이 클래식스를 공부한다고 합니다.
클래식스를 한국에서는 인문학으로 부를 수 있습니다. 니체나 키에르케고르, 오스카 와일드 등 클래식스를 공부했다고 합니다.
저자는 인문학자는 정원사라고 합니다. 새로 나무를 심기도 하지만 정원사 일의 대부분은 살아 있는 것을 계속 가꾸는 것입니다.
정원을 가꾸는 일은 끝도 없고 식물이 시들 때까지 돌보는 일입니다. 인문학을 읽는 사람은 그 안에서 지혜를 찾고 지혜로 마음을 돌리고 싶어합니다.
책제목 《내 불운은 어디서 오는 것일까》처럼 내 불운은 어디서 오는 것일까요? 우리는 뭔가 불운이 온다고 느낄 때 재수가 없다고 생각합니다.
거기서 고통이 더 커지면서 뭔가 불공평하다고 불평불만을 말합니다. 인도에서는 불운을 카르마라고 합니다. 우리말로는 업보입니다.
이 불운, 카르마, 업보는 다른 죄와 연결되어 있습니다. 유심히 관찰하면 일상생활 속 시시한 일도 유심히 관찰하면 카르마와 엮여 있는 게 보입니다.
고대 그리스 신화에도 이런 카르마의 비극이 많습니다. 부모를 죽이고 자식을 죽이고 복수를 위해 또 죽이고 악령들에게 쫓깁니다.
이런 일들을 보면 불운, 카르마는 어느 사회에서나 일어나는 일입니다. 자유로운 의지가 우리에게 주어져 있는지 아닌지는 철학의 오래된 토론 주제입니다.
현대인들에게 휴식은 아주 중요하고 권리입니다. 현대인의 상징이고 일과 휴식을 구별되어야 합니다.
휴식하는 사회가 계몽된 사회같이 느껴지기도 하고 일만 하는 것은 어리석은 일입니다. 먹으면서 휴식하고 영화나 TV를 보며 휴식합니다.
하지만 니체는 휴식을 갈망하는 것은 노예의 본성이라고 말했습니다. 노예는 힘이 없고 노예의 삶으느 당하는 삶이라고 했습니다.
노예에게 가장 큰 행복은 휴식으로 숨을 돌릴 수 있는 기회입니다. 멍하니 쉬는 것, 평화, 안정, 수동적인 순간입니다.
권력자는 힘을 가지고 있고 넘치는 힘은 자연스럽게 행동으로 이어집니다. 휴식을 원하는 대부분의 직장인들의 현대판 노예이기도 합니다.
이 책 《내 불운은 어디서 오는 것일까》는 읽으면서 역시 인문학이라는 분야에서 많은 지식을 얻게 된다는 것을 다시 한 번 증명하는 기회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