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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구라 마구라 1
유메노 규사쿠 지음, 마이너스(Miners) 옮김 / 해밀누리 / 2025년 9월
평점 :

나는 망연자실했다.
나는 여전히 미지의 세계에 있는 미지의 나였다.
나 자신도 누구인지 모르는 나였다.
텅 빈 기억 속에, 텅 빈 내가 살아 있다.
이 얼굴은 누구지?
눈을 뜨고는 벌떡 일어섰다.
하지만 이름도, 정보도, 그 무엇도 없었다.
내가 누구인지, 왜 여기 있는지도 몰랐다.
옆방에선 '오라버니'라고 하며 자신이 되살아났다는 말을 하고,
음식을 주던 이는 자신의 물음에 대답 대신 울음을 터트렸다.
병실에 찾아온 와카바야시 박사는
이름이 무엇이냐고 물었지만, 기억나는 건 아무것도 없었다.
이름을 떠올려야 말을 해줄 수 있다는 박사는
'광인 해방 치료'에 대해 말하며 기억을 떠올릴 수 있게
이전 담당이었던 마사키 선생의 서류를 보여주는데....
이곳에 기록된 것들로
청년은 자신의 기억을 떠올릴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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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구라 마구라.
논문인 듯, 기록인 듯, 소설 같은 작품.
책을 펼치면 기억을 잃고서 깨어난 청년이 나온다.
그렇게 청년이 기억을 되찾아가는 과정을 그릴 줄 알았지만,
1편은 내가 대체 무엇을 읽고 있는지에 대해 의심을 들게 만든다.
기억을 찾기 위해 서류를 읽는 청년.
자신의 이름이 무엇인지도 나와있지 않은
기록의 첫장을 읽다보면 끝 문장을 이어받으며
정신병에 대한 인식과 처방을 꼬집는 비판을 볼 수 있다.
1편에 담긴 마사키 선생의 논문이라는 '태아의 꿈'은 좀 흥미로웠는데,
10개월 동안 태아는 전생의 기억을 꿈으로 꾸며 다양한 경험을 한다는 논리인데
모든 걸 이해할 수는 없지만, 꿈을 꾼다는 것 하나는 흥미로워서
꽤 집중해서 읽어내려갔다.
마사키 선생이 남긴 기록의 끝에는 비로소 청년의 이름이 나오고
2편으로 넘어가면 사건이 어떻게 일어났는지를 서술하고 있어서
추리 소설 같은 시작이었다.
1편에서 수없이 이야기하는 연구 결과와 정신병에 대한 이야기를 지나
2편에서는 그로 인하여 몽유 증세가 발현되어 범죄를 저질렀다는 식으로 전개되는데,
다양한 인물의 증언이 나오면서 흥미를 돋는다.
몽증유행, 심리 유전, 이혼병 등 알 수 없는 단어가 많다.
게다가 2편 중반부가 되면 그 이름마저 진짜인지 아닌지 모호해진다.
마사키 선생이 하는 말을 듣고 있자면, 이거야말로 가스라이팅이 아닌가 싶기도.
2권의 후반부에는 이 일의 '범인'이라 할 수 있는 고백과
청년이 진상을 향해 가는 걸 볼 수 있지만,
그걸 읽고 있음에도 이게 정말 진실인가? 라는 의심이 생긴다.
일본의 3대 기서라고 하는데,
2권까지 다 읽고나면 왜 그런 명칭이 붙었는지를 알겠다.
아----아. 이 이야기를 단번에 말하라면 혼란이라 하겠네.
스카라카, 차카포코 차카포코
집필하는데 10년이 걸렸다는 미스터리 소설.
다양한 지식을 총망라한 듯한 이야기에
한 번의 읽음으로는 좀처럼 다 이해할 수가 없어서
시간을 들여 다시 읽어봐야 될 것 같지만,
그렇게 해도 온전히 다 이해할 수 있을지는 잘 모르겠다.
난해한 내용에 집중력을 자주 깨뜨리지만
문득 문득 놀라는 포인트가 있는
그런 작품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