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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필적 고의
기윤슬 지음 / 한끼 / 2025년 9월
평점 :

11년이 지나, 악몽이 찾아왔다.
행복한 삶을 눈앞에 두고 있었다.
유명 로펌의 변호사인 남자친구에게 프로포즈를 받던 그 날,
누군가로부터 받게 된 카톡 메시지가 모든 걸 무너뜨리기 시작했다.
11년 전 그날, 호프집에서의 사건.
그리고 자신이 꽁꽁 감추고 있던 그때의 욕망.
점점 옭아매는 과거의 기억 속에서 현주는
자신의 눈앞에 다가온 행복을 끝까지 지켜낼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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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돌아가도
나는 같은 선택을 할 거야.
타인의 불행 위에 세운 행복.
하지만 그때는 현주도 절실했다.
이 지옥을 벗어나기 위한, 절호의 기회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이붓동생 유미를 버렸다.
유미에게 줘야할 돈을 움켜쥔 채로,
유미가 위험한 곳에 가는 걸 알면서도,
사고가 났다는 걸 알았는데도.
기억하기 싫은 과거를 깨끗이 지워내듯이
그렇게 그날의 기억을 잊은 채 살았다.
그런데 11년이 지나, 행복이 눈앞에 왔을 때
누군가 자신을 불행으로 끌고 가려한다.
그럴 수는 없다.
내가 어떻게 손에 넣은 행복인데!
현주를 위협하는 협박범의 정체는 누구일까.
그날의 사건을 알고 있는 누군가의 소행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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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을 위해 어디까지 할 수 있니?
이 이야기는 그런 질문을 던지는 것만 같다.
나의 행복을 위해 타인의 행복을,
인생을 버리는 선택을 할 수 있을까?
극 중에서 현주는 지옥과도 같은 삶에서 벗어나기 위해
어떻게든 인 서울을 해서 상류층 사회로 가기 위해
자신을 좋아하고 웃어주던 이붓동생 유미를 버렸다.
죽을 줄은 몰랐지만, 죽었으면 했었고
위기에 빠진 걸 알았지만, 위험하다 말하지 않았다.
자신의 행복이 더 중요했기 때문에,
피를 나눈 사이도 아니었기 때문에,
처음부터 마음에 들지 않았기 때문에
현주는 그렇게 그날의 기억을 잊었다.
하지만 그날의 기억은 결코 지워지지 않는 것이었다.
언제 어느때든 불현듯 찾아와서
자신을 옭아맬 수 있다는 것을 그녀는 몰랐다.
알았더라도 그날과 같은 선택을 했을 거라는 현주를 보며
나는 그런 상황에서 그런 선택을 할 수 있을까, 생각했다.
누군가에게 빚을 지고 나면
마음이 불편하고 계속 생각하는 성격상
절대 그러지 못했을 것 같지만,
절박한 상황에 닥치면 어떻게 될지 모르는게 사람일이라
내가 그 상황이면 어떨지는 잘 모르겠다.
그래도 몰래 훔쳐들었던, 호프집의 상황에 대해 언질은 주지 않았을까?
후반부에 몰아치는 특수한 상황은 경악을 자아냈다.
그런 일이 없었더라면, 그렇게 되지 않았더라면.
사람은 누구나 자신을 좋아해주는 이에게 끌린다.
시간의 차이만 있을뿐, 언젠가는 현주도 유미를 받아들였을지도.
그렇게 되었다면 그날의 일은 없었을테고,
현주가 절망에 빠지는 일도 없었을지도 모른다.
현주가 자초한 선택의 결과가 찾아왔지만,
그럼에도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다.
그러지 않았더라면, 이라는 생각이 계속 머릿속을 맴돌았다.
행복이라는 욕망이 만들어낸 과거의 잘못.
타인의 인생 위에 세워진 모래성 같은 행복은
절대 끝을 맺을 수 없다는 현주의 이야기에
깊이 빠져들어 여운을 느끼게 만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