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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아하게 가난해지는 방법
알렉산더 폰 쇤부르크 지음, 김인순 옮김 / 열린책들 / 2006년 7월
평점 :
품절
리먼 사태 이전에 나온 책이란 사실을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우리가 (당시의) 미래에 처할 문제들을 내다보고, 당연히 그에 그치지 않고 ‘교양과 유머’―내가 개체로서의 인간에게 감히 기대하는 모든 것!―를 제대로 버무려 인류(!)의 나아갈 바를 제시하는 책이다. 나는 이 책을 수년 전 고향집 지근거리에 위치한 시립도서관에서 처음 읽은 걸로 기억하는데, 최근 별생각 없이 신촌 알라딘 중고서점에 들렀다 발견하고는, 흐뭇했던 옛 독서의 기억에 이끌려 사고 말았다. 이 책이 줄곧 주장하는 바에 반하는 행동이긴 했지만, 그런 우연한 행운―뭐 ‘세렌디피티’ 개념에 딱 들어맞는다고도 할 수 있을―은 자주 오는 것이 아니기에, 이 날의 충동구매는 수용 가능한 범위에 포함시키기로 했다. 즉 한 푼이 아쉬울 때 ‘읽은 책’을 왜 굳이 사서 ‘소유’하려 드는가, 따위의 반성은 하지 않겠단 뜻이다.
2006년을 돌아보자면, 개인적으로 인생의 방향 전환에 가까운 일을 추진 중이던 때라, 세계 경제는 물론이거니와 한국 경제조차 어떻게 돌아가는지 하등 신경 쓸 겨를이 없었기에, 정말 아무것도, 핵심 키워드 같은 것도 떠오르는 게 없다(그러고 보니 독일 월드컵이 열린 해였군). 훗날, 리먼 쇼크 이후에 이것저것 들춰보고 읽을 일이 생기다 보니, 2006년의 활황―생기와 역동성이라고 부를 수 있으려나?―은 세계 경제로서도 상당히 유례가 드문 것이었다는 평가들을 볼 수 있었다. 그래서 그런가 보다, 아 그랬었구나, 하는 것이다. 하지만 작가 같은 구 언론계 종사자에게는, 또 그가 속했던 무리 안에서는 그 전에 벌써 감지되는 바가 있었는지도 모르겠다는 음흉한 생각을 품게 된다. 허나 그건 또 다른 얘기다.
한국어판이 나온 게 2006년이요, 쇤부르크 씨는 딱 10년 전인 2005년에 이 책을 펴냈는데, 최근 읽은 가타다 다마미의 쉽게 읽히나 그 주제는 한없이 무거운『철부지사회』가 지적하는 ‘대상 상실을 어떻게 받아들일 것인가’(갈망하던 것을 잃는 데 대한 현대인의 심리적 면역 강화 내지는 마음 근육 단련 문제 탐구) 하는 문제와 놀라울 만큼 연결되는 부분이 있어, 문자 그대로 소스라치게 놀랐다. 내가 굳이 지금 이런 책을 연달아 읽게 된 데 무슨 계시 같은 게 작용―원래 우연이 거듭되면 그 안에서 ‘의미’를 찾으려 하는 게 인간인 관계로―했나 싶었던 거다. 더불어 ‘무한하다는 불굴의 장점’을 지닌 ‘미덕’을 지적한 마지막 장에 가서는, 역시 최근 3개월 만에 극장에 가서 본 ‘따끈따끈한’ 영화「인턴」의 그 ‘인턴’인 벤(로버트 드니로 분)의 대사가 자연스레 겹쳐졌다. 벤이 페이스북 계정을 만들며 올린 모토, “옳은 일을 하는 게 잘못일 수는 없다.”가 그것. 쇤부르크는 책에서 미덕에 대해 좀 더 부연한다. ‘누군가가 도를 넘어서 현명하거나 용감하거나 정의롭거나 신중했다는 말은 결코 들어 보지 못했다 (…) 결핍의 시대에 우리는 미덕만큼은 자책하지 않고 마음껏 활용해야 할 것’이라고. 최근 이렇게 멋진 말을 들어 본 일이 있는가?
요즘 같은 때 분명 다시 읽어야 할 책이다. 유럽적인 것에 사전 지식이 없는 독자라면 초반에 “뭔 소리?”―작가가 많이 좋아한다는 헬무트 베르거를 모르는 한국인은 아주 많을 것이므로―야 할 게 없진 않으나, 나무보다 숲을 보면 된다. 일단 숲부터 받아들이면 저절로 나무들을 품게 될 것이다. 다시 열린책들―나는 타사가 펴낸 2013년 판의 존재를 지금껏 몰랐다―이 판형(특히 세로 길이)을 약간 줄이고, 본문 서체를 명조 계열로 해서 내 줬으면 좋겠다. 물론 나는 2006년 초판을 이미 소유한 상태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