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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거서 크리스티 전집 73 (완전판) - 잠자는 살인 ㅣ 황금가지 애거서 크리스티 전집 73
애거서 크리스티 지음, 김윤정 옮김 / 황금가지 / 2013년 5월
평점 :
추리소설의 플롯이 악한 ‘기운’을 동력으로 작동하기 시작할 때, 소설은 본격 추리물을 읽는 독자가 응당 기대하는, 말미에 가서 범죄를 저지른 연유―물론 범죄가 항상 논리적으로 설명되지만은 않을 수도 있다는 현대적 관점을 차치한 지극히 이야기적 관점에서―를 ‘납득’시키는 단계에서 “뭐야, 겨우 이런 거였어?”라는 반응을 얻기 쉽다. 그 또는 그녀가 범인인 이유를 독자가 납득하지 못한다는 게 아니라, 맥이 빠진다고 해야 하나? 지금껏 마음에 새기며 읽은 수많은 장치들이 다 뭐였던가 싶은…. 이건 허탈함과는 약간 다른데, 작가가 배치한 장치들이 불필요했다는 게 아니라, 내 예상이 빚나갔음을 알게 되더라도 어떤 분위기로 조각되는 범인과 그(/그녀)가 저지른 범죄의 이미지보다는, 손에 잡히는, 맞아떨어지는 그 무엇을 얻었다는 독서의 쾌감이 없다는 뜻이다. 그게 결국 결말을 접한 뒤의 허탈감이 아니냐고 묻는다면, 그럴 수도 있겠다고 여겨지지만….
제인 마플 시리즈가 쭉 그래왔듯, 뭔가 알 듯 말 듯한 상황 속에서 ‘당신은 현 상황을 제대로 보지 못하고 있다’는 투로 사건의 추이를 좀 더 지켜보자는 마플 양의 태도는 더 이상 문제 삼을 게 못 되지만, 후기 작품에서 유독 ‘사악한 기운’을 감지해내는 마플 양의 기질적 특성에 기댄 서술이 많은 것은, 이 작품을 추리물보다는 오컬트 쪽으로 분류하고 싶게 만든다.
추리소설인 만큼 결말에 대해 쓰진 않겠으나, 이 작품의 소재, 즉 범죄의 방향성 자체가 문제인 듯싶기도 하다. 마쓰모토 세이초가『검은 수첩』에서 설파(!)한 대로, 추리소설은 마지막에 가서 모든 걸 해결해야 하는 숙명을 지닌 장르이기에 이『잠자는 살인』에서의 범죄 동기는 세이초 말마따나 추리소설로서는 ‘수지가 안 맞는’ 제재題材일 수 있다. 사랑을 포함해 아련한 감정들이 출몰하지만『끝없는 밤』을 읽고 맥이 빠지진 않았으니 말이다. 대프니 듀모리에 식으로 푸는 게 나았을 재료―허나 실제 우리 사는 세상에서는 드물지만 왕왕 살인 사건화 되는 일이다―를 크리스티가 갖다 쓰면서 빚어진 시답잖은 결과물이라고 하면 너무 가혹한 평가이려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