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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주론 ㅣ 을유사상고전
니콜로 마키아벨리 지음, 신복룡 옮김 / 을유문화사 / 2019년 6월
평점 :

이 책을 읽고 난 지금 나는 그가 군주정 지지자니 공화정 지지자니, 그가 어떤 사람이었느니 하는 그에 대한 무수한 ‘오해’의 말들과 비난 등에 대해서는 이야기하고 싶지 않다.(이미 많은 책들에서 다루어졌기도 하거니와 후세 사람들이 저마다 자기가 처한 상황에 맞춰 구미에 맞게 이용하는 경우가 많았을 뿐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또한 마키아벨리가 살았던 15~16세기의 이탈리아는 나폴리, 교황, 피렌체, 밀라노 그리고 베네치아 등을 주요 세력으로 하는 도시국가의 형태였고, 이에 프랑스 및 에스파냐 왕가 등 외세의 끊임없는 영토 확장의 야욕에 많은 정치적 이해관계가 엮인 곳이었다. 마키아벨리는 통일 이탈리아, 이탈리아 중흥을 기치로 호소하고 있는 만큼 군주정 자체가 목적이었기 보다는 피렌체와 이탈리아의 구하기 위한 하나의 도구였을 뿐이다.) 어느 한 사람의 사상을 그가 살았던 시기와 장소를 떠나 생각할 수 없다. 그가 살았던 15~16세기 도시국가들로 이루어진 이탈리아와 글로벌 시대 운운하는 21세기는 500년이 넘는 간극만큼 엄연히 다르다. 그저 500년을 넘어 스테디셀러로 자리매김하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읽어볼 가치는 충분하다.
이 책은 내용상의 구성으로 보아 크게 네 부분으로 나눌 수 있다.
제1장~11장에서는 각종 통치권의 종류와 본질, 그것들이 가지는 장단점, 통치권의 획득 및 유지의 방법 등이 고찰되고 있다.
제12장~14장에서는 군대의 종류와 같은 군사론에 배당되고 있으며, 자국군의 필요성과 군주의 군사상의 의무가 설명되고 있다.
제15장~23장에서는 통치의 기술이 설명되고 있다.
제24장~26장에서는 이탈리아의 위기적 현상의 원인(군비와 내정 소홀)에 대해 거론되고 있고, 더욱이 그것으로부터의 해방이 호소되고 있다.

우선 표지의 그림은 르네상스의 화가 티치아노의 <신중함의 알레고리>라는 작품이다.
화면의 세 남자의 얼굴은 노년, 장년, 청년의 모습으로, 이는 인생의 세 단계이기도 하고 시간의 흐름을 나타내기도 한다. 그중 왼쪽을 보고 있는 노인이 티치아노의 자화상이고, 정면을 보는 장년의 인물은 티치아노가 가장 아꼈던 아들이자 조수였던 오라치오, 오른쪽의 젊은이는 조카이자 역시 조수였던 마르코라고 추정된다고 한다. 티치아노는 각 인물을 비추는 빛의 양으로 과거의 희미함과 미래의 불투명함, 현재의 확실함을 나타냈다.
또한 세 인물들 밑에는 이집트 전통에서 그 의미를 가져왔다는 동물 그림이 있다. 노인의 밑에는 과거의 기억과 교활함(혹은 노년의 지혜)을 상징하는 늑대를, 장년의 밑에는 현재의 용맹함(혹은 장년의 실권)을 상징하는 사자를, 젊은이의 밑에는 미래의 희망과 충성심과 청년의 성실함을 상징하는 개를 그려 넣었다.
그리고 이들의 머리 위에는 각각 왼쪽부터 <과거의 경험을 통해, 현재에 신중하게 행동하고, 미래에 경거망동하지 않도록 하라>는 글귀가 쓰여 있다. 즉, 과거에서 배워서 현재에 신중하게 행동해야 미래를 그르치지 않을 수 있다는 뜻이다.
굳이 책 리뷰에 표지 작품에 대한 설명을 장황하게 쓴 이유는 바로 아래의 헌사 때문이다. 마키아벨리가 말하고자 하는 바가 잘 드러난 그림을 표지로 잘 선정하지 않았나 싶다.
p.34 저도 전하를 뵈면서 전하에 대한 저의 충정을 다소나마 보일 수 있는 물건들을 바치고 자했으나, 저의 소유물 가운데에서는 눈앞의 일들에 대한 오랜 경험과, 옛것에 대한 끊임없는 탐구로써 얻어진 선현들의 행적에 관한 저의 지식보다 더 소중한 것이 없음을 알았습니다. 이제 저는 오랫동안 깊이 생각한 나머지 그와 같은 지식들을 하나의 작은 책으로 엮어 전하께 드리는 바입니다.(‘메디치 전하께 드리는 헌사’ 중에서)
‘군주론’을 읽다보면(그리고 그의 저작들의 면면을 살펴보면) 그가 문필가이자 사상가를 넘어 이탈리아 역사에 대한 해박한 지식과 통찰력을 지닌 탁월한 역사가이기도 하다는 것을 알게 된다.

p.90 사려 깊은 사람이라면 항상 위대한 선지자의 발자국을 따라가야 하며, 특별히 탁월했던 옛 사람들을 본받아야 합니다. 그의 장점을 따르다 보면, 그와 똑같이는 되지 못한다 할지라도 적어도 어느 정도는 그의 체취를 맡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사려 깊은 궁수는 자기가 맞히고자하는 목표물이 너무 멀고 또 자기 활의 위력이 어느 정도인가를 알게 되면 목표물보다 더 높은 곳을 향하여 겨냥하게 되는데, 이는 그 궁수가 목표물보다 더 높은 곳을 맞히려 함이 아니요, 화살을 더 높이 씀으로써 목표했던 것을 맞히고자 함입니다.
군주의 이상(理想) 또한 이와 같습니다.
(⇒ 제6장 자신의 군대와 능력으로 획득한 새로운 통치권에 대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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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히 목적을 위해 수단을 가리지 않는다는 뜻으로 ‘마키아벨리즘’을 이야기하는데 이는 정치를 도덕이나 종교의 시각에서 벗어나지 못한 채 바라보는 것이다. ‘군주론’을 읽다보면 무수한 조건문들을 보게 된다.(현명한 군주라면, 사려 깊은 사람이라면, 그 둘 가운데 하나를 포기하지 않을 수 없을 경우에는, 군주가...넘보지 않는다면, 어쩔 수 없는 사정으로 말미암아 어떤 나라를 공격하지 않을 수 없는 경우가 아니라면, 등) 이런 조건들을 간과하고 읽는다면 역시 그를 냉혈한이자 비도덕적인 인물이라고 평가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p.274 사례가 깊다는 것은 자기가 겪고 있는 난관의 본질이 과연 어떤 것인가를 인식할 수 있는 능력과, 해독이 작은 쪽을 기꺼이 받아들일 수 있는 능력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 제26장 군주가 신망을 받는데 필요한 방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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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지나 초한지를 읽어 보면 다양한 인물 군상들의 모습과 인간의 본성에 대해 알게 된다. 역시 ‘군주론’에서도 인간 본성과 권력 투쟁에 대한 마키아벨리만의 통찰을 엿볼 수 있다. 이는 인정하고 싶지 않은, 부끄럽지만 어쩌면 인간 보편의 본능일 수도...
p.56 반드시 명심해야 할 점은 그곳(새로 정복한 영토) 원주민들을 잘 대접할 것이냐 아니면 완전히 박살을 낼 것이냐 하는 점입니다. 왜냐하면 인간이란 가벼운 피해에 대해서는 복수를 할 수 있지만 치명적인 피해에 대해서는 그럴 수 없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원주민에 대한 억압은 복수를 할지도 모른다는 마음을 가질 수 없을 만큼 철저해야 합니다.(⇒제3장 혼합된 통치권에 관하여 중에서)
p.210 인간은 남을 해치면서 남들로부터 두려움을 받고 있는 사람보다는 남들로부터 사랑을 받는 사람을 더욱 얕잡아 봅니다. 왜냐하면 인간의 사랑이란 의무라고 하는 쇠사슬로 묶여 있는 것인데, 인간이란 본시 사악한 존재여서 의무라는 것도 자기에게 유리하다고 생각될 때에는 언제라도 깨어버리는 것입니다.(⇒제17장 무자비함과 인자함, 사람을 받는 것과 두려움을 받는 것의 우열에 관하여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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웬만한 사람이라면 마키아벨리라는 이름을 한 번쯤은 들어봄직하고, 읽진 않았어도 집안 책꽂이 어딘가에 그의 책 ‘군주론’이 꽂혀 있지 않은 집도 드물리라 생각한다. 시중에 이미 출간되어 있는 책이 많음에도(따라서 번역의 완벽성을 논한다는 것은 어쩌면 쓸 데 없는 일일지도...), 이번 을유문화사에서 마키아벨리 탄생 550주년에 맞춰 내놓은 전면개정판은 1980년 초판이 발행된 이후 40여년에 걸친 개역, 이 책 자체가 메디치가에 헌정되었던 책이라는 데서 착안한 서간체로 기술하고 각 장과 단락을 구분하여 가독성을 높인 점, 비록 흑백이지만 독자들의 이해를 돕기 위해 실은 도판 등은 이탈리아어 원전 번역이 아니라는 아쉬움을 달래고도 남음이 있다.(판본이 바뀔 때마다의 서문을 읽는 것도 묘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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