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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은 왜 문화재를 돌려주지 않는가 - 문화재 약탈과 반환을 둘러싼 논쟁의 세계사
김경민 지음 / 을유문화사 / 2019년 8월
평점 :

프랑스 군이 조선을 침략한 병인양요가 일어난 지 153년. 당시 강화도 외규장각에 있던 조선 왕실의 보물들이 대거 약탈당하고 불에 탔다. 그 중 대표적인 것이 조선왕실 의궤(외규장각 의궤)이다. 그리고 박병선 선생이 프랑스 국립도서관에서 이것을 발견한 것은 1975년. 이후 각고의 노력 끝에 2011년, 무려 145년 만에 외규장각의궤가 우리나라로 반환되었다. 하지만 소유권까지 이전된 것은 아니다. 정확히는 ‘5년 단위로 연장이 가능한 일괄 대여 형식’으로 돌아왔다. 당시 국립중앙박물관 전시를 찾았던 나는 단순히 강제로 수탈했으니 아무 조건 없이 돌려주는 게 당연한 것 아니냐며 분개했던 기억이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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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후 다른 역사 서적들을 읽었고 최근 이노우에 야스시의 ‘둔황’과 유홍준의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중국편’을 읽으면서 단순 감정적 논리로는 문화재 반환 문제를 풀 수 없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그런데 이번에 때맞춰 을유문화사에서 김경민 교수의 ‘그들은 왜 문화재를 돌려주지 않는가’라는 책을 선보였다. 이는 저자의 『영국의 문화재 약탈과 문화재 반환 문제에 대한 고찰, 1790~1980』이라는 박사학위 논문을 바탕으로 쓰여졌는데, 그럼에도 논문 같지 않게 어렵지 않은 용어 사용이라든지 친절한 역사 서술로 역사나 고고학 분야에 대한 특별한 지식이 없어도 편안하게 읽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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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대적 ‘문화재’ 개념은 19세기 유럽의 민족주의 의식의 성장과 더불어 열강들의 정복 전쟁과 식민 지배로 인해 식민지 국가에서 민족의식 고취와 독립 운동이 자국의 역사와 문화를 담고 있는 과거의 물질 유산에 중요한 가치를 부여하면서 생겼다(p.63).
그 전까지는 특별히 문화재라는 개념이 없거나 희미했다고 볼 수 있다. 그러던 것이 서구 열강들이 본격적으로 영토를 확장하여 그 영향력을 유럽 대륙 밖으로까지 팽창시키고자했던 19 세기의 정복 전쟁과 제1·2차 세계대전이 무력을 바탕으로 한 문화재 약탈, 대규모 문화재 유출 사태의 직접적인 역사적 배경이 되고, 문화재 반환 문제는 문화재를 한 민족의 정체성을 상징하는 것으로 인식하게 되면서 생겨났다고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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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의 1부에서는 문화재 약탈의 역사를 영국을 중심으로 알아보고(당시 문화재 약탈을 주도했던 서구 열강들 중 가장 ‘제국주의’적이고, 세계적으로 주목받는 다수의 주요 문화재를 소유하고 있으며, 이후 원산국들의 반환 요구에 일관되고 단호하게 반환 불가 태도를 고수하고 있는 나라이므로), 2부에서는 제국시대 이후 문화재 보호에 대한 노력으로 (1954 헤이그 협약, 1970 유네스코 협약, 1995 UNIDROIT 협약) 국제법 제정 등과 문화재 약탈에 대한 세계의 시각을 알아본다. 끝으로 3부에서는 많은 문화재를 약탈당한 원산국 입장인 우리나라는 이를 어떻데 바라볼 것인가? 우리가 본의 아니게 가지고 있는 ‘실크로드 문화재’의 반환 문제는 어떻게 할 것인가를 이야기한다. 저자는 이 책을 통해 문화재 반환 문제의 본질을 명확히 이해하고 오늘날 갈등의 쟁점을 분석하여 문제 해결에 보탬이 되고자 했다고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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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는 문화재 '반환'은 결국 서로의 입장을 이해하고 상대의 역사적 아픔을 공감하는 데서 비롯되는 한쪽의 전적인 양보와 협력의 결과(p.29)라고 이야기 하면서도 원산국들이 '약소국에 주어지기 마련인 단순한 동정론에 머무르지 말고, 역사적 사실에 근거한 논리적인 소유권 주장을 펼칠 필요가 있다(p.49)'고 말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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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동안 문화재의 개념부터 오늘날 문화재의 반환의 어려움까지 문화재 약탈의 역사에 대해 종합적으로 기술한 책이 있었는지 모르겠다. 다만 이 책을 읽은 독자들로 하여금 ‘문화재가 담고 있는 역사는 과연 누구의 역사인가?’라는 물음에 답을 찾아가도록 한 것만으로도 이 책의 소임은 다하지 않았나 감히 생각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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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재가 지닌 역사에 대한 광범위한 이해와 그에 따른 반환 정당성에 대한 정교한 이론 구축 없이, 단순히 현재의 국경과 민족을 가르는 경계선에 근거한 반환 요청은 영국의 견고한 법적·이념적 방어막을 무너뜨리는 데 한계가 있을 수 밖에 없을 것이다. - P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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