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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조의 비밀편지 - 국왕의 고뇌와 통치의 기술 키워드 한국문화 2
안대회 지음 / 문학동네 / 201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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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 권이 한꺼번에 나온 '키워드 한국문화' 시리즈 중 [정조의 비밀편지]를 선택한 이유가 있습니다. 그것은 국사에 별 관심이 없던 제가 유일하게 관심을 가지고 있는 시대가 바로 정조가 다스리던 시대였거든요. 꼭 그 부분에만 관심을 가졌던 이유도 있습니다. 저는 수원에서 태어나 자랐거든요. 태어난 곳, 유년 시절을 보내고 학교를 다니고 걸어다니며 생활한 곳, 거의 전부에서 정조가 세웠다는 화성을 볼 수 있었거든요. 심지어 학교 교가에도 의례 화성과 서장대의 존재가 들어갔죠.
정조의 최대 작품이 눈으로 확인되었기 때문에 정조라는 인물을 모를래야 모를 수가 없었습니다. 

버스를 기다리다가, 혹은 주말에 느긋하게 놀러갔다가 본 표지판의 설명들을 통해 화성이 지어진 이유를 보고, 정조라는 인물에 대해 상상해보았습니다. 나중에 정약용 위인전(어린이 용)과 한중록을 소재로 한 드라마 등을 보면서 상상한 정조의 이미지는 굳어졌습니다. 제가 가진 정조의 이미지는 지적인 선비 타입에, 이성적이며 참을성이 많은 사람이었습니다. 그리고 연약하고 착한 사람이라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효성이 지극한 모습은 - 능을 옮기고 성을 쌓고 아버지 묘소에 들렀다 서울가기 싫어했다는 이야기라던지- 점잖고 지적이며 섬세한 이미지를 주었고, 연산군처럼 억울하게 부친을 잃었으면서도 연산군과 똑같이 복수하지 않은 모습은 연약하면서 지나치게 착한 느낌을 주었습니다. 이렇게 굳어진 이미지는 작년에 적이라고 알려진(정조가 너무 착해서 억지로 참아냈다고 여겼던) 신하에게 무려 300여통이 넘는 편지를 비밀리에 보냈다는 뉴스를 보고 깨졌습니다.  
이전에는 동화 속에서 시련을 당하고 극복하는 이상적인 착하고 영리한 '왕자'였는데, 목적을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착한 왕자의 가면을 쓴 '왕(혹은 마녀/왕비)' 로 여겨지게 되었던 거죠.
[정조의 비밀편지]는 작년부터 바뀌기 시작한 정조를 동화 속 인물이 아닌 실존했던 인물로, 더욱 인간적으로, 더 실재했던 인간으로 만들어주었습니다.
  
[정조의 비밀편지]는 정적으로 알려져있던 신하 심환지에게 정조가 보낸 350여통의 비밀편지을 분석, 정리한 책입니다. 어떻게 해서 이 편지들이 보관/공개되게 되었는지부터, 조선시대 왕의 편지인 어찰의 의미과 조선시대 간찰(편지 주고받는) 문화, 심환지가 누구이고, 정조가 어떻게 편지를 쓰고, 주로 무슨 내용을 썼으며, 그 편지들로 알 수 있는 것들이 무엇인지들에 대한 것들이 서술되어 있습니다.  

비밀을 전제로 보낸 편지여서인지 정조의 실재 모습이 명확히 드러나더군요. 편지 글의 속어와 욕설도 '성인군자'의 이미지를 깼지만, 정적이라는 심환지에게 비밀 편지를 보낼 정도를 심환지와 벽파를 믿고 편들었다는 것이 더 큰 충격을 주었습니다. 
정조는 편지를 통해 여론과 신하들의 발언을 주도적으로 조작/조절했던, 현대 정치인과 별로 다를 바 없는 모습을 보여줍니다.
실록 등에서 정적으로 알려진 벽파와 심환지가 정조가 하는 일에 반대하던 행동도 결국 정조가 시켜서 한 일인 경우도 있었고, 표면적으로 좋다고하고 편지로는 반대 상소를 올리라고 요청하기도 했습니다.

착하고 가련한 이미지는 깨졌지만 실망스럽지는 않았습니다. 자기 마음을 억누르고 하고싶은 일을 제대로 하지 못한 임금인 정조보다 신하들의 행동과 사건을 직접 통제하며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제대로 했던 임금인 정조가 더 마음에 들더군요. 융건릉과 화성으로 표현되는 효성지극한 정조 뿐만 아니라 현실적인 정치인으로서의 정조를 알게 되어 좋았습니다.

[정조의 비밀 편지]는 기록 속에 표현된 인물과 실제 인물이 다르다는 것을 보여준 증거물같습니다. 때문에 정조 외의 다른 왕들도 조선왕조실록이나 승정원 일기에서 표현된 것과 다르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저절로 들더군요.

책 중간 중간 '키워드 속 키워드'라는 참고 부분이 있어, 편지에서 언급된 사건의 내용을 알려주는 부분이 있어 당시 상황을 판단하는데 도움을 많이 주었습니다. 워낙 몰라서 도움은 많이 되었지만, 다 이해하기는 어려웠습니다. ㅜㅜ 

아, 읽으면서 들은 생각 중 하나는 '심환지가 정조의 정적은 정적이었구나.'입니다. 그토록 없애라 한 편지를 고스란히 남겼으니, 결국 심환지는 정조를 믿지 않은 것이겠지요. 심환지의 식구까지 걱정하며 보낸 편지나 심환지로부터의 편지를 독촉하는 내용을 보면 너무 친밀에서 간질간질한 느낌이 들 정도인데, 그런 정조의 신신당부를 저 버리다니 말이죠. 
물론 그렇게 편지들을 남겨줘서 얼마나 다행인지라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고맙기도 하구요. 심환지가 이렇게 왕의 명령을 어기고, 치밀하게 보관해놓지 않았다면, 인간적이고 현실적인 정조의 모습을 알지 못하고 지나갔을 테니까요. 

뱀꼬리 : 키워드 한국문화는 여러 시리즈가 나오는 것 같은데, 근간이라는 '처녀귀신'이나 '노출과 은폐의 문화사'는 나오면 읽어보고 싶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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