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년도 더 전에 나온 책이다. 하지만 아직도 경제분야의 스테디셀러를 차지하는 데에는 이유가 있다.일단 어떤 경제현상, 예를 들면 물가상승, 통화량 증가에 대한 예시가 알기 쉽게 되어있다. 다큐멘터리를 책으로 만든거라 그림이 많다는 것도 장점이다.다만 단점은 뒤로 갈수록 다소 힘이 빠지는 것 같다는 점. 복지자본주의를 대안으로 얘기하지만 그 복지자본주의의 예시나 방향성 제시가 조금 아쉽다.
이 책을 읽은 이유는 내가 아주 게으른 사람이기 때문이다. 버트런드 러셀씩이나 되는 분도 게으름을 찬양하지 않았는가 하는 마음이 있었다.이 책은 사회주의자로서의 러셀이 잘 나와있다. 1930년대 책이라고 하니 거의 90년이 넘은 책임에도 현재에 공감가는 바가 많다.하지만 이 책에 나오는 정치, 경제체계나 이론을 보며 이게 과연 가능한가 싶기도 했다. 너무 이상적이라고 해야 할 것 같다. 사람들은 생각보다 이기적이니까.
역시 무신론자에게 무신론에서 유신론으로 전환한 사람은 안 맞는다.인문학에도 예술에도 나름대로 관심이 많지만 근본적으로 나는 과학도였다. 지금도 과학을 좋아한다.과학도의 눈으로 봐서 잘못된 부분이 나올 때마다 뒷목 잡는 기분으로 읽었다.이어령이란 분을 나는 잘 모른다. 책에서 88올림픽 굴렁쇠소년 얘기가 자주 나오는데 나는 88올림픽 당시 엄마 뱃속에 있었을 거라 전혀 모르는 얘기라 공감하기 어려웠다. 말그대로 쌍팔년도 얘기니까.또한 인터뷰어인 저자는 너무 감상적이고 올려치기 한다는 느낌이 강하게 든다. 개인적으로 인터뷰는 좀더 건조한 문체를 선호한다.
이 책을 읽게 된 경위는 단순하다. 제임스 미치너의 소설을 읽었고, 에즈라 파운드가 나왔고, 이 책의 뒷면에 에즈라 파운드의 추천사가 있다. 하지만, 그와 별개로 제임스 조이스의 이름은 그 자체로 도전정신을 불러 일으킨다. 하지만 바로 율리시스나 피네간의 경야를 읽을 자신이 없어 초기작이자 상대적으로 읽기 쉬운 편이라는 더블린 사람들을 집었다.나는 초보 독자라 작품해제에 등장하는 제임스 조이스의 의도는 반도 알아채지 못했다. 특히 현현 또는 에피퍼니라 부르는 기법은 거의 알아채지 못했다. 다만, 중간에서 뚝 자른 듯한 마무리 같은 건 느꼈다.첫 단편인 자매의 경우에는 한번 읽고 뭔 소린가 싶어서 다시 읽었는데 작품 해제에 따르면 거의 유일하게 제임스 조이스의 의도대로 읽었던 단편이라 할 수 있다.이제 작품해제와 별개의 내 감상을 말하자면, 미묘하게 일제강점기의 냄새가 살짝 났다. 가끔은 19세기 말에서 20세기 초 아일랜드에서 21세기의 대한민국을 느끼기도 했다. 영국의 아일랜드 지배가 어떠했는지는 모르지만. 언제가 될지 모르지만 다시 읽을 만하다.
제목은 가장 파란 눈이고 파란 눈을 가진 흑인 여자아이에 대한 얘기라고 해서 그렇게 태어난 아이에 대한 얘기인 줄 알았다. 아니다. 정작 파란 눈은 뒤에 가서야 나온다.다 읽은 지금은 마음이 아프다. 이렇게 차별의 온상을, 겹겹이 쌓인 차별을 보여주는 소설이 있을까싶다. 물론 그렇다고 작품에서 등장하는 폭력을 옹호하는 것은 아니다.그와 동시에 차별을 벗어나는 것, 진정한 평등은 무엇인가 고민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