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랍어시간을 읽으며 라틴어를 공부해봐야겠단 생각을 했다. 어느 누구도, 지금 이 순간 일상으로 쓰지 않는 죽어버린 언어를 배운다는 것.물론 실제 희랍어는 현재 그리스에서 쓰고 있다. 다만 책에서 다루는 희랍어는 플라톤이 쓰던 고전 희랍어라 현대의 희랍어와는 많이 다를 것이다.빛을 잃어가는 남자와 말을 잃어버린 여자가 어떻게 소통할 수 있을까 했는데 닿음으로써 가능했다는게 소설을 보며 생각났다. 평소에 잘 쓰이지 않는다고 여겨지는 미세한 감각, 간지러움.한강 작가의 책 중 채식주의자와 흰을 읽어본 사람으로서 말하자면 이 책은 그 둘의 중간지대쯤 되는 것 같다. 그렇기에 출판사에서도 ‘디 에센셜 한강‘에 이 소설을 넣었겠지. 물론 비교적 짧은 소설인 것도 한몫했으리라.
이런 장르의 소설은 처음 읽어보았다. 작년 초에도 도전했던 것 같은데 결국 올해에 심기일전해서 결국 다 읽었다.십이국기 시리즈에 본격 들어가기 전 외전이라고 해야 할지 모르겠다. 일단 출판사에서는 그렇게 의도한 것 같다.(에피소드 0이니까)아마 십이국기는 그 세계관 내의 이야기겠지만 마성의 아이는 현대 일본을 배경으로 한다.처음에는 살짝살짝 맛만 보여주다 점점 스케일을 키워간다. 중간중간 나오는 제3자의 에피소드도 점점 본 스토리에 가까워지는 것도 꽤 재밌는 접근법 같다.
맨 처음에 나오는 우화에 대한 얘기인가 했는데 좀더 정확히는 카프카의 단편과 아포리즘이라고 봐야 할 거 같다.카프카가 왜 어렵단 건지 좀 알 거 같다. 반복과 부정으로 끊임없이 모순, 역설, 반어를 만들어내니 어려울 수밖에 없다.필사하고 싶은 문장이 여럿 나온다.
명작은 명작이다. 뒤로 갈수록 손을 떼기 어렵다.가장 어려운 건 라스콜니코프(열린책들의 다른 버전으로 읽어 표기법이 다르다)의 심리다. 하지만 역자 해설에서 중간중간 생각했던 지점이 맞아들어갈 때는 일종의 쾌감도 느껴진다.내 인생 처음으로 끝까지 다 읽은 러시아 소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