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죠리퐁은 있는데 우유가 없다 - 가난은 일상이지만 인생은 로큰롤 하게!
강이랑 지음 / 좋은생각 / 2022년 5월
평점 :
죠리퐁은 있는데 우유가 없다 / 강이랑
(가난은 일상이지만 인생은 로큰롤하게!)
‘좋은 생각’ 밴드를 통해 알게 되어 처음 이 책을 찾아서 읽게 된 건, 순전히 제목이 재미있어서다. ‘친구가 별로 없어서, 아님 책이 좋아서’. 무엇이 먼저인지는 알 수 없으나, 늘 책을 친구삼아 살고 있는 것은 아마 재미도 있지만, 책에서 받는 위로가 만만치 않기 때문이다.
책을 찾아보니 내가 몇 달째 근무(시간제 근로자로 일시적으로)하고 있는 도서관에는 없어서, 상호대차로 신청해 다른 도서관 책을 빌리게 되었다. 받아보니 보통의 다이어리(크기가 워낙 다양하긴 하다) 정도로 크기가 작고 페이지 수도 그리 많지 않아, 앙증스럽다. 술술 읽혀 가볍게 읽어 나가는데, 뒤로 넘어갈수록 이 책≪죠리퐁은 있는데 우유가 없다≫가 너무 좋아졌다.
도서관에 있다보면, 책이 여러 분야에 걸쳐 참 다양하게 많다는 생각과 자연스레 많이 대출되는 책에 관심이 간다. 여러 다양한 책이 대출되지만, 단연 인기 있는 책의 선두는 투자에 관한 책이다. 그만큼 자본주의 사회에서 덜 불편하게 살아가기 위해서는 반드시 돈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이와는 다르게 강이랑 작가는 ‘어린이와 햇살과 석양을 사랑하고, 혼자 있는 시간을 즐기고, 사람들과 함께하며 마음을 탐구하는 시간을 좋아한다.’고 자신을 소개하는 아동문학 연구자이자 번역가이며 동화를 쓴다. 아마 그런 그가 사랑하는 게 한 가지가 더 있는 것 같다. 바로 가난이다.
저자의 자서전이나 마찬가지인 이 에세이 글에서 그는 너무 가난해 선풍기로 버티며, 사람들에게 물질보다는 영혼의 자양분이 되기를 소망한다. 우유 살 돈이 없어, 지인이 보내 준 죠리퐁만으로 끼니를 대신하다가 우유를 사서 함께 먹을 때의 짜릿함을 이야기 한다. 때로는 가난해서 부끄러움도 모른 채, 지인들에게 도움을 받기도 한다고 고백한다.
일본 유학시절, 장학금을 받아 공부하느라 학비와 생활비만으로도 벅찼다고 한다. 다른 이들은 예뻐서 물건을 사기도 하는데, 그는 마음에 든 물건이 있어도 꼭 필요하지 않으면 살 수가 없어 친구로부터 지갑을 잘 열지 않는 사람이라는 소리도 들어야 했다. 또한 그림책을 내고 싶은데 돈이 없어, 부모님을 투자자로 끌어 들이기도 하는… 가난하지만 구차스럽지는 않다.
그는 이렇게 소소한 행복의 의미와 가치를 너무 잘 알고 있어, 가난하지만 결코 가난하지 않고, 사람들을 사랑하고, 아이들을 사랑해 좋은 사람들과 좋은 그림책을 찾아 우리글로 옮겨 소개하는 작업을 하며 결코 가난하지 않은 삶을 살아가고 있다.
오늘도 가난한 나는 선풍기 바람으로 더위를 달래며 내가 나눌 수 있는 넉넉함에 대해 곰곰이 생각해 본다. 이름모를 그 식물처럼 나 역시 마음 아픈 사람들이 입맛을 찾고 삶의 빛을 발견하도록 돕는 먹을거리가 되고 싶다. 물질이 아니라 영혼의 자양분이 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나눠도 가난해지지 않는다_015)
시간은 계속 흐르는데 연구비 입금 소식은 아직이었다. 나는 수시로 현금 인출기를 들락거리며 통장 잔고를 확인했다. 이제는 우유 살 돈도 없다. 죠리퐁은 있는데 우유 살 돈이 없다. 그러자 우유가 더 먹고 싶어진다. 그냥 죠리퐁만 먹기는 싫다.(죠리퐁은 있는데 우유가 없다_022)
가난한 나는 부끄러움도 없이 받는다. 그들이 건넨 한두 꼭지의 강의와 한두 마지기의 연구 주제는 나의 한달 벌이, 한 해 벌이가 된다. 그런데도 나는 아픈 엄마 일로 정신 없다며 논문 심사 의뢰도 거절하고, 만나자는 약속도 지키지 못하고 있다. 나는 가난한데다 염치도 없는 모양이다.(동심을 내어 주는 사람들_025)
마음을 내어 주는 사람이 이리도 많으니 나도 동심을 지키고 나누며 살아가고 싶다. 집 근처 작은 도서관 창가에 홀로 앉아 여름 소나기가 한차례 휩쓸고 지나간 거리를 바라보면서, 역시 나는 가난한 사람이 아니라는 걸 깨닫는다.(동심을 내어 주는 사람들_026)
마음에 든 물건 앞에서 고민할 때 유카가 날 보며 말했다. 언니는 지갑을 잘 열지 않는다고.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장학금을 받아 공부하는 나는 학비와 생활비만으로도 벅차서 귀엽다는 이유로 물건을 살 수는 없었다.(도시락과 세 친구_027~028)
푹푹 찌는 서울 시내 한복판을 걸어와 땀범벅이 된 나는 집에 들어서자마자 서둘러 에어컨을 켰다. 순식간에 방 안 공기가 바뀌면서 생각으로 들끓던 나의 머릿속도 평정을 되찾았다. 오늘 받은 마음은 온전히 내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안다. 다시 누군가에게 보내야 비로소 내것이 될 마음이다.(우리집에도 에어컨이 생겼다_035)
선생님에게 칭찬까지 받고나니 어느 새 일본어 수업 시간은 내가 좋아하는 시간이 됐다. 그때부터 일본어로 쓰인 것이라면 소설, 영화, 드라마, 노래 등 무엇이든 읽고 보았다. 일본어가 놀이터이자 세계를 확장시키는 도구가 된 셈이다.(그래도 할 줄 아는 게 하나 있어서_044)
‘앞으로 무엇을 하며 어떻게 살 것인가,’ 하는 고민이 시작됐다. 미래를 상상하고, 동화와 그림책을 읽고, 글을 쓰는 데 매진했으나 앞길은 여전히 막막했다. 남들에 비해 잘하는 일도 없는 것 같고, 안갯속에 갇힌 듯 마음이 흐려지고 불안감에 짓놀렸다.(그래도 할 줄 아는 게 하나 있어서_045)
그림책은 혼자보다 둘이 보는 게 유익하고, 둘보다는 셋이 보는 게 재미있다. 그렇다 보니 유독 그림책을 매개로 꾸준히 만나는 동료가 많다. 연령대도, 성향도, 각자 하는 일도 다르지만 그림책을 중심에 두고 어린 시절의 기억이나 부모와 친구, 과거와 지금의 나에 대한 이야기를 주고받다 보면 자연스레 끈끈한 감정이 생겨났다.(울림을 주고받는 동료가 생겼다_048)
아이들과 그림책을 읽으면서 알았다. 아이들이 그림 하나하나에 얼마나 집중하는지. 아이들은 줄거리뿐 아니라 그림 속 작은 특징, 등장 인물의 성격 하나하나까지 세심하게 뜯어 보고 새로운 부분을 찾아내 어른과 이야기하고 싶어 했다. 나 혼자 그림책을 읽을 때는 몰랐던 즐거움과 발견의 연속이었다.(아이들 덕분에 그림책을 만났다_054)
글쓰는 내게는 출판사가 골대나 마찬가지다. 수도 없이 공을 던졌지만, 골대를 맞고 엉뚱한 곳으로 튕겨나가기 일쑤다. 그물망만 살짝 건드리고 빗나갈 때도 있지만 골대에 한참 미치지 못하는 경우도 많았다.(7년 동안 한 골을 못 넣었다_062)
돈이 없어도 좋다. 피 터지게 가난해도 괜찮으니 좋아하는 일을 계속하고 싶다. 부모님이 실망하더라도 어쩔 수 없다. 주위 사람들이 어떤 시선으로 보든, 나는 나만의 길을 가련다.(갑자기 공황 장애가 찾아왔다_067)
나는 아이들이 좋다. 현실에서 만나는 아이도 좋고, 텔레비전으로 보는 아이도 좋고, 그림책 속 아이도 좋다. 조카의 어린 자녀도 좋고, 친구의 자녀나 조카도 좋고, 일로 만나는 아이도 좋다. 어린이 문학을 공부하길 잘했다고 자주 생각한다.(어른으로 사는 법_072)
저자는 때로 환상 같은 미래를 꿈꾸기도 했지만, 현재 하루하루를 충실하게 채우며 내일을 꿈꾼다. 그런 그의 잔잔한 삶을 따라가며, 현실에 끌려가기보다, 조금 가난하지만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하며 살고자 하는 청춘들이 많이 읽고 고민해 보는 시간을 가지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아동문학’에 관심이 있는 이들에게는 반드시 도움이 될 책이다.
※ 김이랑 작가가 소개하는 책
하세가와 슈웨이 지음: 우리가족· 가슴이 콕콕/ 권윤덕 지음: 고양이는 나만 따라 해/ 사노 요코 지음: 좀 별난 친구/ 키티 크라우더 지음: 메두사 엄마
그림책은 함께 읽어야 제 맛이고, 다른 사람에게 읽어 줄 때 빛을 발한다. 함게 읽을 때 내가 못 본 이미지가 보이고 스쳐 지나간 낱말이 내면으로 들어와 의미가 된다. 그림책은 관계를 이어주는 매개체다.(14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