쾌락의 옹호
이왕주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0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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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미되지 않는 삶은 살아갈 가치가 없다' 나는 이 말이 단박에 맘에 들었다. 단박에란 어느 날 갑자기 만들어지는 게 아니다. 오랫동안 내 안에 잠재되어지고 형성되어진 것들이 어느 순간 그 빛을 발하는 순간이다. 저자는 소크라테스의 위와 같은 말을 인용해 삶을 음미한다는 건 날카로운 자의식이 있을 때 가능하다고 말한다. 난 그런대로 내 자의식이 맘이 들어지기 시작했다. 더불어 책을 가지고 떠날 수 있는 이번 휴가가.

나는 나를 맘껏 음미시키고 싶다. 휴가라는 달콤한 이름에 '쾌락의 옹호'라는 멋진 소스를 제공할 책을 들고 물이 흐르는 계곡의 평상 위에 친 텐트 속에 발을 외로 꼬고 누워 책을 읽다가 나를 단박에 매료시킨 구절들에 밑줄을 그어가며 한눈팔 듯 내 맘을 하늘에도 팔고 울창한 활엽수의 잎싹에도 팔고 흐르는 물에도 팔며 내 온 몸의 오감을 열어 호흡하길 원한다. 지금! 바로 이 순간.

거창한 계획 같은 건 애초에 없다. 아니, 난 계획되어진 내 삶의 테두리를 던져버리고 온전히 내 몸에 가학과 피학을 위해 최소한의 짐을 꾸렸다. 자연과 가장 가깝게 잘 수 있는 텐트와 된장국거리, 쌀, 김치, 과일, 그리고 술. 쉽진 않았다. 모두가 몰려오는 계곡에서 나의 이상을 현실로 만족시키기에는. 꽤 운이 좋아 각시소라는 작은 沼 앞의 평상을 얻을 수 있었고 그 앞엔 피라미가 살고 있는 맑은 폭포가 있었다. 딱딱한 구두에 굳은살이 진 나의 발을 우선은 계곡물에 풀고 꿈꿔본다. 영화 천국의 아이들에서 마라톤을 마치고난 지친 꼬마의 발 주위로 몰려들던 물고기들처럼 내 발에도 피라미들이 몰려들었으면 하고...., 그러나 수박내 같은 풋풋함은 없고 세상의 공해에 찌든 나의 발을 꼬집어줄 피라미들은 경계의 눈치만 살피고 있다.

나는 내 몸과 마음을 아주 느리게 깊은 곳까지 호사시켜주고 싶다. 첫 번째로 저자가 말한대로 숨쉬기부터 연습하기로 한다. 내 발을 애도는 계곡의 물소리와 바람소리 구름이 흘러가는 소리에 숨쉬고 느끼고 음미하는 삶을 위해 서서히 숨을 고른다. 두번째로 그림자처럼 따라다니는 나의 문제, 가족의 문제, 미래의 문제 등 남겨진 숙제들에 골몰하는 허튼수작 같은 건하지 않는다. 그저 계곡에 발을 담그고 텐트에 누워 가끔 하늘을 보는 호사를 누리며 이왕주의 산문집 '쾌락의 옹호'를 읽으면 그뿐이다. 부끄러움의 아름다움과 불온한 욕망들, 축제같은 삶들에 대해 내 평소생각들을 확신시키면 그만이다. 그리고 나와 같은 생각들이 결코 현실을 어긋내는 허상이 아니었음을 그리고 그렇게 살아도 된다고 다시 한 번 확신시키고 거기에 만족하기만 하면 된다.

저자는 공자의 말을 많이 인용했다. 일찍이 너무 일찍이 현자라는 이름을 달고 산 공자에게 늘 경외감보다는 경계심이 앞섰는데 이제 보니 꽤 멋진 자이다. 그의 말 몇 구절을 옮겨놓고 싶을 정도로. 그의 제자 자공이 묻는다. '가난하되 비굴하지 않은 것은 어떠합니까' 그때 공자왈 '좋다. 그러나 가난하되 즐거움을 잃지 않는 것만은 못하다' 이것이 저자가 말하는 핵심이다. 어떠한 경우에도 삶의 즐거움을 잃지 말라는..., 이 말도 좋다. '배우고 때때로 익히니 기쁘지 않은가. 먼 곳의 친구가 찾아오니 이 또한 즐겁지 않은가' '아는 자는 좋아하는 자만 못하고, 좋아하는 자는 즐기는 자만 못하다 ' 스콧 니어링의 이 말도 좋다. '덜 갖고 더 많이 존재하라' 사위는 어두워져가고 나는 내 오랜 친구와 술을 사이에 두고 앉는다. 덜 갖고 더 많이 존재하자고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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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디슨 카운티의 다리
로버트 제임스 윌러 지음 / 시공사 / 199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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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끔 나는 통속을 꿈꾼다. 내가 가지고 있는 허울스러운 것들과 도덕의 잣대들을 내 던져버리고 지극히 원초적 본능에 가까운 에로티시즘을 느끼고 싶을 때가 있다. 나는 그런 기분으로 읽고 있던 무거운 책들은 던져버리고 가볍게 하룻밤이면 끝내겠지. 하며 은근한 통속을 기대하고 책을 펼쳤다. 제목부터가 낭만적이지 않은가? '매디슨 카운티의 다리'

똑같은 불륜(나는 개인적으로 불륜이란 말을 싫어한다. 개인에 따라 그건 아름다운 사랑일 수도 있는데 불륜은 불결과 같은 뉘앙스를 준다. 불결한 것을 사랑이라고 하기엔 좀 그렇지 않겠는가? 더불어 프란체스카와 로버트 킨게이드의 사랑도 漢字로 표현하면 不倫이기에, 그러나 그들의 사랑은 불결하지 않다. 앞으론 이루어지기 힘든 사랑이라는 내면의 뉘앙스를 가지고 이해해줬으면 하는 개인적인 바램이 있다.) 을 가지고 얘기를 이끌어 가면서도 어떤 것은 유치할 정도로 인간의 말초신경만을 자극시키다가 뒷맛이 떨떠름해 읽었던 것을 다시 토악질이라도 하고 싶은가 하면 어떤 것들은 일생을 살면서 이런 사랑한 번 못하고 죽어야 하는 억울함을 누구에게 보상해 달라고 하나 할 정도로 가슴 깊은 아픔을 줄 때가 있다. 매디슨카운티의 다리에 프란체스카와 로버트 킨케이드의 사랑은 완벽한 후자이다.

더불어 매력적이며 성숙한 인간의 사랑이 어떤 것인지 알게 해준다. 로버트는 내셔널 지오그래픽에 사진을 의뢰받을 정도의 유능한 사진사이며 작가이다. 인간의 야생성과 원초적 본능을 가지고 있는, 한마디로 사랑을 얘기하기에 충분한 조건을 가진 남자이다. 프란체스카 역시 매력적이며 성숙한 사랑을 하기에 충분한 지성미를 가진 여인이다. 더불어 그녀는 현명하다. 아이오아라는 작은 시골에서 별 재미도 없는 농부의 아내로 두 아이의 엄마로만 만족하기엔 그녀가 잠재우고 있는 열정과 꿈은 소중한 것이었기에. 그러나 그녀는 당장 뛰어 갈 수 있는 그 길을 접고 아내와 두 아이의 엄마로써의 자신의 길을 걷는데 일생을 건다.

마흔다섯살과 쉰두살. 이미 일렁임이란 격정을 만들어 내기엔 터무니없다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들은 죽을 때까지 서로를 사랑한다. 나흘간의 격정적 삶의 한 부분. 그들의 삶은 그렇게 지배당하고 만다. 그 나흘간에. 그들의 사랑이 아름다운 건 어디에서 연유하는 것일까? 난 그가 그녀에게 떠나자고 했을 때 그녀가 한 말을 인용할 수밖에 없다.

''그래요. 이렇게 사는 것은 지겨워요. 내 인생말이에요. 낭만도, 에로티시즘도, 촛불 밝힌 부엌에서 춤을 추는 것도, 여자를 사랑하는 방법을 아는 남자의 멋진 감정도 여기에는 존재하지 않아요. 무엇보다도 이 생활에는 당신이 없으니까요. 하지만 내게는 지독한 책임감이 있어요. 리처드에게, 이들에게. 내가 그냥 떠나버리면, 내 육체적인 존재가 사라지는 것만으로도 리처드에겐 너무나 힘들 거예요. 그것만으로도 그를 파멸시킬지도 몰라요.......'. '길과 책임감과 죄의식이 그녀를 어떻게 변하게 할 것인가에 대한 그녀의 말을 이해했다. 어떤 면으로는, 그녀가옳다는 것을 그는 너무도 잘 알고 있었다. 그는 창 밖을 내다보면서 자신과 싸웠다. 그녀의 감정을 이해하기 위해 싸웠다.'

'우리는 쉽게 싸우는 것을 포기한다. 자기자신과의 싸움. 인간의 감정은 갈수록 솔직해진다. 어쩔 땐 인간임을 포기하고 싶어질 정도로. 그런 솔직함들로 인해 상처받을 타인에 대해 생각하지 않는다. 그래도 갖고 싶다면, 정말 포기할 수 없다면 난 적어도 인간으로서의 성숙함을 보여줘야 한다고 생각한다. 상대를 배려하고 기다려주고 아껴주는 마음은 자신의 감정만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사람들과는 차이가 있다.

상처없는 이별이 어디있겠는가? 프란체스카는 아들과 딸에게 이런 유언장을 남긴다. '나는 내 가족에게 인생을 주었고, 로버트 킨케이드에게는 내게 남은 것을 주었다.' 지키고자 했던 프렌체스카의 노력과 지켜주고자 했던 로버트 킨케이드의 성숙한 사랑이 있다.

그래서 이 소설은 아름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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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늘
천운영 지음 / 창비 / 200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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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의 소설에 나오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기형이다. 머리가 지나치게 크거나 곱추이거나 남자로 하여 성적 욕망이 일지 않을 정도로 추녀이거나 지나치게 비대하거나 남편을 살풍경이 느껴지도록 구타하거나 강한 육식성으로 인해 피비린내가 나는...., 대부분 그런 사람은 여자들이었다.

'독하다는 것' 무조건 악한 것이라 배우던 열여섯살이 있었다. 내 몸에 꼭 맞는 책상과 의자에 나를 결박시키고 하얀 분필가루에 입술버캐를 하얗게 뿜어대며 선과 악의 본질을 얘기하고 그 철통같은 도덕성에서 독하다는 건 늘 악의 편에 있음을 강조하던 열 몇 살의 기억.

그러나 세상은 나에게 무시로 '독해야 산다'고 말한다. 독하다는 건 그저 갑각류의 외피와 같은 것이며 거미나 전갈, 벌 같은 작고 유약한 곤충이나 벌레의 마지막 생존 수단과 같은 나약한 것임을 알아버린 스물몇살. 나는 낙서와 칼집으로 지저분한 책상을 하얀 책상포로 덮기를 강요하던 선생의 긴 지휘봉을 뚝 불질러내던 날 이후에 가능했던 일이었으리라. 내가 이렇게 삐딱한 것은 분명 그녀의 소설을 읽은 느낌이 숙성되기 이전, 날것의 싱싱함을 그대로 가지고 있기 때문일게다.

이 소설의 제목이기도 한 '바늘'. 신춘문예 당선작이다. '바늘을 잘게 잘라 매일 마시는 녹즙에 넣어봐. 가늘고 뾰족한 바늘 조각은 내장을 휘돌아다니면서 치명적인 상처들을 만들지. 혈관을 따라 심장에 이르면 맥박을 잠재우며 죽음을 부르는데, 아무런 외상도 없어. ...... 그는 이제 세상에서 가장 강한 무기를 가슴에 품고 있다. 가장 얇으면서 가장 강하고 부드러운 바늘'

내 가슴에도 티타늄으로 그린..., 아주 작아서 틈새같은 그러나 우주가 빨려들어갈 것 같은 그런 바늘하나 가슴에 품고 살았으면 싶다. 가장 강하면서도 부드러운 바늘. 그녀의 가슴에 박힌 바늘은 세상의 허를 찌르기에 충분했다. 그녀의 다른 소설 눈보라콘은 2002년 이상문학상 후보작이었다. 건질 것도 읽을꺼리도 없었던 그 책에서 나는 당선작 권지예의 소설과 유일하게 천운영의 눈보라콘이 그래도 위로를 주었지 싶었다.

사실 인연이라는 것도 그런 책임감에서 오는 것이지 싶다. 한 작품을 내 보이면서 부수적으로 따라오는 부가가치. 그래서 나는 그녀의 소설을 다 읽고 싶어지기도 했다. 그러나 다른 작품들은 고른 상승세를 타기엔 좀 부족한 면들이 있었다. 그런 중에도 그녀의 소설에 내가 몇 가지 토를 달 듯 이렇게 오랜만에 느낌을 쓰게 됨은 그녀가 보여준 인간의 포악성과 육식성에 대해 묵과하기 싫음이기 때문이다.

나는 여린 짐승으로 태어났다. 타고나길 유약하여 늘 내 앞엔 나를 잡아먹으려 하거나 존재가치가 없어 그저 치여살기 일수이다. 떳떳하게 으악 소리 한 번 지르지 못하고 기껏 발길질한다는 게 제 발등이나 다치기 십상이다. 그런 나에게 외피를 하나 더 둘렀다고 해서 강한 흡입력을 가진 눈을 좀 가졌다고 해서 목숨을 내건 독침하나 가진다고 해서 가짜를 진짜처럼 생각한다고 해서 독해진다고 해서..., 늘 가진 자의 포만감만으로 배를 둥둥거리며 살 수 없는 유약한 짐승.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내 답답한 조급증이 이는 것은 그저 그들이 그렇게 살 수 밖에 없는 상황 속에서 그저 그렇게 살고 있기 때문이다.

소설 중에 곱추여인의 남자가 등뒤에서 그녀를 안아주는 대목이 나온다. 멀쩡한 사람에게선 앞에서 안든 뒤에서 안든 큰 의미가 없겠지만 상처를 뒤에 달고 다니는 그녀의 몸을 뒤에서 안아줄 수 있는 남자. 결혼하려던 그 남자는 사라졌다. 도처에서 불쑥거리던 그녀의 그 남자. 그녀의 남은 생애를 그렇게 지배하고 말아버린 그녀의 남자. 우린 모두다 어쩜 잃어버린 희망을 찾고 있을지 모른다. 다시 오지 않을 그 남자를 도처에서 맞이하는 그녀의 몽상속처럼. 결국은 찾지 못할 희망들을 찾아 떠도는 떠돌이들 같아 난 그녀의 소설 끝이 개운하지 않다. 나는 그녀가 끊임없이 갈등하는 인간의 모습을 보여줬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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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전거 도둑 한빛문고 6
박완서 글, 한병호 그림 / 다림 / 199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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늘 나에게 위안을 준다. 박완서라는 작가는, 난 70을 넘긴 이 아름다운 작가가 만약 세월의 힘에 의해 이 세상을 떠난다면 얼마나 슬플까? 그녀의 작품을 읽으며 감동을 느낄 때마다 그런 안타까운 생각을 한다. 그녀가 빨리빨리 다음 작품을 내놓길 기다리며...,그녀에게 불로초라도 바치고 싶은 심정으로. 나는 분명 그녀를 사랑하고 있는 것이 틀림없다. 내 가슴의 작은 떨림들. 작가의 책을 읽고난 다음엔 다른 책을 읽는데 뜸을 들인다. 내 안에 숙성된 마음들이 나를 차분히 가라앉힐 때까지 걸러내는 감정의 무게를 내리 누르며...., 소설을 읽으며 난 너무나 닮은 내 마음의 속내를 들키는 그래서 작가와 함께 공모하는 삶의 이면들에 쾌감을 느끼곤 하는 것이다.

작가가 아이들을 위해서 쓴 자전거 도둑도 같은 선상에 있다. 자전거 도둑 속의 수남이는 정말 이름처럼 착한 소년이다. 수남이가 꾸린 짐속엔 아버지에 대한 그리움과 순수함과 수남이의 꿈이 들어있다. 우리 모두에게도 자신이 꾸려야할 짐들이 있다. 내 보따리에 싸져있는 것들이 늘 한결같이 나 스스로를 견제시켜 줄 수 있는 그리고 수남이가 바람에 물결치는 보리밭을 그리워하는 것처럼 근원의 힘들이 담겨져 있길..., 그리고 부조리함 앞에서는 과감히 싸들고 떠날 수 있는 내 양심이 존재하는 그래서 떠날 수 있는 짐을 꾸려놓아야지 하는 생각을 한다. 누런 똥빛같은 세상 속에서 유달리 빛나는 청초함이 함께하길...., 수남이의 순수하고 아름다운 마음처럼.

'시인의 꿈'은 모두가 똑같아지려하는 세상 속에서 내 생각을 갖는 것이 얼마나 아름다운 일인가에 대해 생각하게 한다. '네 나름대로의 것들을 갖게 되는 것' 그것은 시인만이 꿀 수 있는 꿈이 아니라 그런 꿈을 꿀 수 있을 때 우리 모두는 시인의 마음이 될 수 있다는 얘기다. 그리고 모두가 닮아가려는 세상 속에서 자아찾기. 우리가 다 가졌다고 생각되어지는 것들의 기준이 나 자신의 것이 아니라 상대적 잦대 속에 숨겨져 있는 타인의 것이었음을 깨닫게 될 때 너무나 끔찍스럽지 않은가.

시인을 꿈꾸는 할아버지와 소녀의 마지막 대화를 잊고 싶지 않다.
'할아버지, 이상해요. 할아버지 말씀을 듣고 있으려니까 괜히 가슴이 울렁거려요. 이런 느낌은 처음이에요'
'아이야, 고맙다. 할아버지가 이제부터 말을 얻어다 시를 써도 늦지는 않겠구나. 시인의 꿈은 가슴이 울렁거리는 사람과 만나는 거란다.'
가슴이 울렁이게 할 수 있는 사람....., 나도 누군가의 가슴을 울렁이게 할 수 있을까? 아니면 그런 사람을 만나게 될 수 있을까?

옥상의 민들레꽃을 읽으며 내내 개복동 화재사고에서 죽어간 윤락녀의 죽음을 생각했다. 그녀들이 쇠창살과 열 수 없는 자물쇠에 갇혀 살면서 얼마나 많은 시간들을 죽음에 대해 생각했을까? 그녀들을 살 수 있게 하는 것은 콘크리트뿐인 도시 속에서 먼지 같은 작은 흙더미에 꽃을 피우는 민들레꽃 같은 희망이 있어야 하지 않았을까 누구도 죽음의 끝에 다다른 이에게 희망이라는 꽃을 피울 토양을 준비해주지 않는 세상. 아이만은 알고 있다. 다시 살게 하는 힘들은 그렇게 하찮게 보이는 진실 됨에 있다는 것을.

책을 가슴에 품어본다. '어느 순간에도 내가 내 자신을 배신하는 일이 없게 하소서. 설사 내가 나를 배신하는 일이 있더라도 나를 너무 미워하지 않게 하소서. 무엇보다도 타인을 먼저 사랑하게 하시고 작은 마음들을 소중히 생각하며 자만하지 않게 하소서. 다시 한번 간절히 바라옵건대 어떤 바람이 나를 휘몰아치더라도 내가 나를 잃어버리는 어리석은 일들은 체험하지 않게 하소서' 내가 이렇게 스스로에게 기도문을 외우는 것은 수시로 내가 나를 팔아먹는 유다 같은 삶을 살고 있음을 부인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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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그림에서 인생을 배웠다
한젬마 지음 / 명진출판사 / 2001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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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읽으면서 내내 언니가 나에게 말을 걸어온다는 행복한 생각을 했지. 책장을 쭈욱 훑어가며 누군가의 정갈한 마음밭처럼 참 이쁘고 정성스럽게 만든 책이구나. 라는 생각을 했어. 가끔씩 내 시선을 끌어당기는 강렬한 그림들이 있어 나름대로의 내 생각들을 넣어보기도 하고 읽는 시간들이 대부분 형광등의 미세한 음색까지 고막을 울리는 조용한 새벽시간 이었고 그 사이사이 창 밖에선 비가 내렸고, 창문을 뜯어대는 바람소리도 있었지.

가끔씩 좋은 구절을 읽으면 가슴이 더워지는 느낌을 받기도 하고 한참을 활자 속에 눈이 박혀 다음 길을 갈 생각을 못할 땐 적잖이 마음이 외로워지기도 하더군 나도 그랬으면,
왜 나는 저러지 못할까 싶어지면서...특히, '꿈의 창공에 뛰어올라 빛을 파종한 화가, 윤석남'을 읽으면서는 한참동안이나 가슴이 먹먹해져서 혼났지 뭐야. 그녀의 목각막대 속에 갇혀있는 그 많은 여인들이 꼭 나를 보는 것 같아 오래도록 슬프게 하더라고. 그러면서 나는 나이 마흔에 과연 뭘 할 수 있을까 라는 생각도 했어. 그리고 그녀가 뱉은 말 한마디 '하고 싶으면 그냥 하는 거지, 뭘 따져요? 정말 사람들 이해 못하겠어요' 그녀가 이해 못하는 그 사람들 속에 한사람으로 살면서 나는 목구멍에서 마른기침을 아무리 토해내도 여전히 뒤끝이 개운하지 않는 그런 느낌으로 '나는 나이 마흔에 뭘하고 있을까?' 라는 화두를 놓치 못하고 있어.

'인생이 예술이 된 화가 최종태'에서도 그랬지 윤석남씨가 마른기침을 뱉어내는 갈증에 대해 얘기했다면 최종태씨의 얘기는 내 삶의 끈을 다시 한번 여미게 만들었다고 할까 '좋은 그림을 그리고자 서두르기보다 먼저 바른 것, 좋은 것, 아름다운 것 그런 것들이 안심하고 찾아와 서식할 수 있는 마음을 닦는 일이 선행되어야 한다' 라는 말. 사뭇 좋은 그림에 국한된 이야기이겠어? 우리네 삶이 다 그렇듯 먼저 선행되어야 하는 것들이 바로 인간에 대한 예의와 바르고 좋고 아름다운 마음들이 그 사람에게 먼저 깃들여 있어야 한다는 그런 말이잖아. 작가의 말대로 정말 어렵지만 가장 큰 힘이 되는 버팀목이 되기에 얼마나 현명한 표현인가라는 생각이 들더라고.

요즘에 난 나를 자꾸 비우는 연습을 하고 있었는데 오늘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어. 내 마음을 너무 속없이 비우니까 타인의 못된 마음들도 서슴없이 내 자리를 차고 들어오려 하는구나라는... 내 처음의 의도와는 상관없는 출현들이 그러면서...., 내 속은 내 것으로 채웠을 때 가장 나답다라는 생각을 했지. 사소한 것들과 작은 일에 쉽게 분노하지 않으려고 하는데 함께 어울려 산다는 것은 그렇게 부대끼며 사는 것이라는 사소한 생각들도 들었고. 그리고 내가 간직해야할 소중한 나를 남에게 임대해 주듯 그렇게 살지 말아야지 라는 생각도 했어.

책의 마지막장을 덮으며 꿈틀거리는 떨림들이 못내 언니에게 편지를 쓰게 하는 새벽이야. 과잉된 감정의 물결들이 새벽엔 더욱 용기가 백배해 사람을 터무니없이 자신 있게 만들지. 그러나 나는 오늘 그러고 싶네. 책을 덮으며 다시 열리는 내 마음을 이렇게 그 새벽의 정령에 몸을 맡기고 용기 백배하여 두드리고 싶네. 춘심(春心)도 내 창문을 자꾸 두드리네 / 봄은 저렇게 시샘 많은 봄바람과 함께 오는 것인가 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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