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늘
천운영 지음 / 창비 / 200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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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의 소설에 나오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기형이다. 머리가 지나치게 크거나 곱추이거나 남자로 하여 성적 욕망이 일지 않을 정도로 추녀이거나 지나치게 비대하거나 남편을 살풍경이 느껴지도록 구타하거나 강한 육식성으로 인해 피비린내가 나는...., 대부분 그런 사람은 여자들이었다.

'독하다는 것' 무조건 악한 것이라 배우던 열여섯살이 있었다. 내 몸에 꼭 맞는 책상과 의자에 나를 결박시키고 하얀 분필가루에 입술버캐를 하얗게 뿜어대며 선과 악의 본질을 얘기하고 그 철통같은 도덕성에서 독하다는 건 늘 악의 편에 있음을 강조하던 열 몇 살의 기억.

그러나 세상은 나에게 무시로 '독해야 산다'고 말한다. 독하다는 건 그저 갑각류의 외피와 같은 것이며 거미나 전갈, 벌 같은 작고 유약한 곤충이나 벌레의 마지막 생존 수단과 같은 나약한 것임을 알아버린 스물몇살. 나는 낙서와 칼집으로 지저분한 책상을 하얀 책상포로 덮기를 강요하던 선생의 긴 지휘봉을 뚝 불질러내던 날 이후에 가능했던 일이었으리라. 내가 이렇게 삐딱한 것은 분명 그녀의 소설을 읽은 느낌이 숙성되기 이전, 날것의 싱싱함을 그대로 가지고 있기 때문일게다.

이 소설의 제목이기도 한 '바늘'. 신춘문예 당선작이다. '바늘을 잘게 잘라 매일 마시는 녹즙에 넣어봐. 가늘고 뾰족한 바늘 조각은 내장을 휘돌아다니면서 치명적인 상처들을 만들지. 혈관을 따라 심장에 이르면 맥박을 잠재우며 죽음을 부르는데, 아무런 외상도 없어. ...... 그는 이제 세상에서 가장 강한 무기를 가슴에 품고 있다. 가장 얇으면서 가장 강하고 부드러운 바늘'

내 가슴에도 티타늄으로 그린..., 아주 작아서 틈새같은 그러나 우주가 빨려들어갈 것 같은 그런 바늘하나 가슴에 품고 살았으면 싶다. 가장 강하면서도 부드러운 바늘. 그녀의 가슴에 박힌 바늘은 세상의 허를 찌르기에 충분했다. 그녀의 다른 소설 눈보라콘은 2002년 이상문학상 후보작이었다. 건질 것도 읽을꺼리도 없었던 그 책에서 나는 당선작 권지예의 소설과 유일하게 천운영의 눈보라콘이 그래도 위로를 주었지 싶었다.

사실 인연이라는 것도 그런 책임감에서 오는 것이지 싶다. 한 작품을 내 보이면서 부수적으로 따라오는 부가가치. 그래서 나는 그녀의 소설을 다 읽고 싶어지기도 했다. 그러나 다른 작품들은 고른 상승세를 타기엔 좀 부족한 면들이 있었다. 그런 중에도 그녀의 소설에 내가 몇 가지 토를 달 듯 이렇게 오랜만에 느낌을 쓰게 됨은 그녀가 보여준 인간의 포악성과 육식성에 대해 묵과하기 싫음이기 때문이다.

나는 여린 짐승으로 태어났다. 타고나길 유약하여 늘 내 앞엔 나를 잡아먹으려 하거나 존재가치가 없어 그저 치여살기 일수이다. 떳떳하게 으악 소리 한 번 지르지 못하고 기껏 발길질한다는 게 제 발등이나 다치기 십상이다. 그런 나에게 외피를 하나 더 둘렀다고 해서 강한 흡입력을 가진 눈을 좀 가졌다고 해서 목숨을 내건 독침하나 가진다고 해서 가짜를 진짜처럼 생각한다고 해서 독해진다고 해서..., 늘 가진 자의 포만감만으로 배를 둥둥거리며 살 수 없는 유약한 짐승.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내 답답한 조급증이 이는 것은 그저 그들이 그렇게 살 수 밖에 없는 상황 속에서 그저 그렇게 살고 있기 때문이다.

소설 중에 곱추여인의 남자가 등뒤에서 그녀를 안아주는 대목이 나온다. 멀쩡한 사람에게선 앞에서 안든 뒤에서 안든 큰 의미가 없겠지만 상처를 뒤에 달고 다니는 그녀의 몸을 뒤에서 안아줄 수 있는 남자. 결혼하려던 그 남자는 사라졌다. 도처에서 불쑥거리던 그녀의 그 남자. 그녀의 남은 생애를 그렇게 지배하고 말아버린 그녀의 남자. 우린 모두다 어쩜 잃어버린 희망을 찾고 있을지 모른다. 다시 오지 않을 그 남자를 도처에서 맞이하는 그녀의 몽상속처럼. 결국은 찾지 못할 희망들을 찾아 떠도는 떠돌이들 같아 난 그녀의 소설 끝이 개운하지 않다. 나는 그녀가 끊임없이 갈등하는 인간의 모습을 보여줬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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