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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그림에서 인생을 배웠다
한젬마 지음 / 명진출판사 / 2001년 2월
평점 :
절판
책을 읽으면서 내내 언니가 나에게 말을 걸어온다는 행복한 생각을 했지. 책장을 쭈욱 훑어가며 누군가의 정갈한 마음밭처럼 참 이쁘고 정성스럽게 만든 책이구나. 라는 생각을 했어. 가끔씩 내 시선을 끌어당기는 강렬한 그림들이 있어 나름대로의 내 생각들을 넣어보기도 하고 읽는 시간들이 대부분 형광등의 미세한 음색까지 고막을 울리는 조용한 새벽시간 이었고 그 사이사이 창 밖에선 비가 내렸고, 창문을 뜯어대는 바람소리도 있었지.
가끔씩 좋은 구절을 읽으면 가슴이 더워지는 느낌을 받기도 하고 한참을 활자 속에 눈이 박혀 다음 길을 갈 생각을 못할 땐 적잖이 마음이 외로워지기도 하더군 나도 그랬으면,
왜 나는 저러지 못할까 싶어지면서...특히, '꿈의 창공에 뛰어올라 빛을 파종한 화가, 윤석남'을 읽으면서는 한참동안이나 가슴이 먹먹해져서 혼났지 뭐야. 그녀의 목각막대 속에 갇혀있는 그 많은 여인들이 꼭 나를 보는 것 같아 오래도록 슬프게 하더라고. 그러면서 나는 나이 마흔에 과연 뭘 할 수 있을까 라는 생각도 했어. 그리고 그녀가 뱉은 말 한마디 '하고 싶으면 그냥 하는 거지, 뭘 따져요? 정말 사람들 이해 못하겠어요' 그녀가 이해 못하는 그 사람들 속에 한사람으로 살면서 나는 목구멍에서 마른기침을 아무리 토해내도 여전히 뒤끝이 개운하지 않는 그런 느낌으로 '나는 나이 마흔에 뭘하고 있을까?' 라는 화두를 놓치 못하고 있어.
'인생이 예술이 된 화가 최종태'에서도 그랬지 윤석남씨가 마른기침을 뱉어내는 갈증에 대해 얘기했다면 최종태씨의 얘기는 내 삶의 끈을 다시 한번 여미게 만들었다고 할까 '좋은 그림을 그리고자 서두르기보다 먼저 바른 것, 좋은 것, 아름다운 것 그런 것들이 안심하고 찾아와 서식할 수 있는 마음을 닦는 일이 선행되어야 한다' 라는 말. 사뭇 좋은 그림에 국한된 이야기이겠어? 우리네 삶이 다 그렇듯 먼저 선행되어야 하는 것들이 바로 인간에 대한 예의와 바르고 좋고 아름다운 마음들이 그 사람에게 먼저 깃들여 있어야 한다는 그런 말이잖아. 작가의 말대로 정말 어렵지만 가장 큰 힘이 되는 버팀목이 되기에 얼마나 현명한 표현인가라는 생각이 들더라고.
요즘에 난 나를 자꾸 비우는 연습을 하고 있었는데 오늘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어. 내 마음을 너무 속없이 비우니까 타인의 못된 마음들도 서슴없이 내 자리를 차고 들어오려 하는구나라는... 내 처음의 의도와는 상관없는 출현들이 그러면서...., 내 속은 내 것으로 채웠을 때 가장 나답다라는 생각을 했지. 사소한 것들과 작은 일에 쉽게 분노하지 않으려고 하는데 함께 어울려 산다는 것은 그렇게 부대끼며 사는 것이라는 사소한 생각들도 들었고. 그리고 내가 간직해야할 소중한 나를 남에게 임대해 주듯 그렇게 살지 말아야지 라는 생각도 했어.
책의 마지막장을 덮으며 꿈틀거리는 떨림들이 못내 언니에게 편지를 쓰게 하는 새벽이야. 과잉된 감정의 물결들이 새벽엔 더욱 용기가 백배해 사람을 터무니없이 자신 있게 만들지. 그러나 나는 오늘 그러고 싶네. 책을 덮으며 다시 열리는 내 마음을 이렇게 그 새벽의 정령에 몸을 맡기고 용기 백배하여 두드리고 싶네. 춘심(春心)도 내 창문을 자꾸 두드리네 / 봄은 저렇게 시샘 많은 봄바람과 함께 오는 것인가 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