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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딴방
신경숙 지음 / 문학동네 / 1999년 12월
평점 :
구판절판
지금 난 맨발이다.
한 여름이 아니고서는 집에서도 꼭끼는 양말을 신고 다녔는데 찬바람 선득거리는 이 거리를 맨발로 나섰다. 내 발에 자유를 부여하고 싶었는데 삶의 테에 너무 익숙한 발은 자꾸만 움츠려들고 나는 한 발짝도 이 사무실을 나설 수 없다. 모두가 내 맨발을 보려할 것만 같다. 발을 부벼 본다. 내 발의 온기를 그대로 느끼며 난 꼼짝할 수 없는 갇힌 자의 슬픔을 본다. 결국 길들여진 것들 속에서 한 발짝도 움직일 수 없다는 절망감에 사로잡힌다. 난 언제까지 내 사랑을 참아야만 하는가? 과연 분출의 순간은 올 것인가?
맨살을 다 보이고 나서야 내 몸의 흉터를 다 보이고 나서야 껍데기를 완전히 벗겨내야만 그 속살이 다시 돋아나는 그렇게 처절하게 벗겨내야만 하는 것인가. 그녀의 외딴방은 그녀가 열여섯살부터 시작되는 공장생활과 산업체 고등학교를 다니던 고교시절의 이야기이다. 나비가 변신을 거듭하고 뱀이 외피를 다시 만드는 고통 뒤에 아름다움과 성장을 기대할 수 있는 것처럼 신경숙은 그렇게 벗기로 작정했다. 삶의 가장 깊은 치부를. 그래야 새살을 볼 수 있는 뱀처럼.
'오빠, 나 좀 이곳에서 빨리 데려가줘' 신경숙의 외침은 나의 외침이 된다. 나도 누군가 여기서 날 데려가 줬으면 나의 바램이기도 하기에 오랫동안 그 한 줄에 목이 메인다. 왈칵 울어버릴 수도 없는 서른하나. 열여섯도 아닌 내가. 고립무원의 이곳에서 보이지 않는 그물망을 두르고 한쪽 귀는 'Yumeji's Theme'로 막아버리고 있어도 불안과 초조뿐인 이 자리. 이젠 섣불리 내 자리를 박차고 나설 수도 없는 현실 속에서 누가 내 다리에 쇠스랑이라도 찍어 줬으면 하는 바램. 그 바램으로 읽는다.
'글쓰기, 내가 이토록 글쓰기에 마음을 매고 있는 것은, 이것으로만이, 나,라는 존재가 아무것도 아니라는 소외에서 벗어날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은 아닌지' 그녀의 고백 속에서 울컥이는 내 소외가 느껴진다.
그녀가 말하는 초년고생. 그녀는 초년이 서른둘까지였으면 이라, 한다. 나도 늘 초년고생이라는 말이 따라다녔다. 나는 지금 서른 하나...., 나도 서른둘까지였으면 좋겠다라는 바램을 한다. 일년쯤이야 더 버티지 못할 것도 없다. 그러면 나도 이 지긋지긋한 곳에서 나를 데려갈 누군가를 만나게 될지도 모르니.
'가야 할 때가 언제인가를 분명히 알고 가는 이의 뒷모습은 얼마나 아름다운가.' '겨우 점심시간에 옥상에서 햇볕을 쬐는 창백한 그늘로' 구속은 더 깊은 갈증을 느끼게 한다. 숨통을 조여오는 답답증에 내 발이 어디로 가고 있는지 나도 주체하지 못하고 그 발자국을 따라갈 때가 있다. 그 길도 어느새 내가 다니던 길이었음을 알아버리는 내 몸의 기억력에 치를 떨 때가 있다.
'이 집은 좋아..... 누가 죽어도 모를 거야' 나는 옥상의 화분생각이 난다. 물을 줘야겠다. 그 화분에 나무가 죽어도 아무도 모를 것이..., 갑자기 슬퍼진다.
이렇게 수시로 그녀의 소설은 나의 일상을 파고든다. 딱히 아름다울 것도 없는 데 나는 자꾸 오버랩 되는 나를 본다. 그러나 그녀처럼 처절하지도 의지가 굳지도 않은 내 열여섯과 열일곱. 다시 돌아가면 나도 '글을 쓰는 사람이 되고 싶다'라고 주문처럼 외우고 다니며 모든 것과의 단절을 이룰 수 있을까? 나는 늘 그랬던 것처럼 다시 나에게 말한다. '지금도 늦지 않았어' 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