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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 - 지구에서 가장 특이한 종족
디트리히 슈바니츠 지음, 인성기 옮김 / 들녘 / 2002년 4월
평점 :
절판
난 너무 오랫동안 '남자'를 끄리고 있다. 이제 '난 늬가 지겨워' 라고 말하고 싶다. 내 안에 내가 아닌 또 다른 나를 '남자'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알고 싶었다. '지구에서 가장 특이한 종족' 그것은 가장 본능적이면서 현학적이었다. 무지하게도 난 깊은 이해를 한답시고 적거나 생각하거나 해석하려했다.
그래도 천만다행인 건 내가 이 책을 다 덮기 전에 알아버린 것이다. '해석을 반대한다' 수전 손택의 '해석의 자리에 쾌락과 관능을 도입하라'는 주문을 받아들인 것이다. 온갖 상징과 치밀한 구조적 글쓰기에 단련된 내 온 몸의 관행 속에서 자유가 허락되지 못했던 것처럼 분석하고 상징을 굳이 이해하려 애쓰는 글읽기 또한 나를 억압하고 있다는 것을. 책읽기와 글쓰기 속에서 체질처럼 되어버린 관행들을 훌훌 벗어 던지고 나를 규제하려는 논리로부터 자유로워질 것을 먼저 주문한다. 적어도 '남자'를 읽는 그 순간만큼이라도.
우리는 가끔 사람에 대한 환상에 사로잡힌다. 여자는 남자에게 남자는 여자에게. 이 책을 읽고 난 후에 가장 나를 번민스럽게 하는 것은 내가 이 책의 '남자'를 기준으로 하여 '남자'를 보려한다는데 있다. 리얼리티를 좋아하지만 그 리얼리즘에서 꿈틀거리는 희망이라는 환상을 갖고 싶은 것이다. 그러나 이 책은 시종일관 그런 환상은 '집어치워!'라고 말한다.
책 안에 특별한 남자는 없다. 우리가 누대에 걸쳐 익히 들어왔던 전형적 남자가 있을 뿐이다. 거기에다가 투정부리기까지 한다. '이런 남자를 좀 이해하고 폭 넓게 포용해야 한다고' 조금은 과장된 동물적 본능과 상황대처. 남성의 초상화를 우선 제인 오스틴의 <오만과 편견>이나 <피그말리온> 또는 근래의 통속버전인 <귀여운 여인>에서 클린턴과 모니카 리윈스키의 행각에 이르기까지 남자가 여자를 구원한다는 차원으로 낯추거나 '남자는 항상 여자의 알몸을 보고 싶어하는 반면에 여자는 항상 남자의 벌거벗은 영혼을 보고 싶어한다'랄지 '여자는 태어날 때부터 여자이고 남자는 추후에 남자로 만들어진다' 까지 여성과의 의사소통이 이루어지지 않을 때 굳이 의사소통을 하려하기 보다는 남자의 특성을 이해하라는 투다.
남자의 섹스는 <착한 사마리아인>이라 하면서 외도를 정당화시키는 뻔뻔함도 자연스럽게 끌어낸다. 그리곤 끝내 이렇게 말한다. '모든 악순환에서 벗어나는 길은 하나뿐. 그것은 모든 분노를 벗어 던지고 자신의 권리와 주장에 대한 모든 생각과 결별하는 것이다' 가장 본능적으로 행동하라고 말한다. 왜냐면 그것이 남자이니까.
교육되어진 남자는 없다. 그저 본능에 입각하여 여자를 판단하려는 남자가 있을 뿐이다. 다시 절망하게 됨은 그런 남자가 우리 주변에 숱하게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난 앞에서도 얘기했듯이 진화하는 남자를 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