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혜초 2
김탁환 지음 / 민음사 / 2008년 7월
평점 :
품절
달이 조금씩 차오르고 있다.
달이 기울고 차오르는 순간순간 신라의 스무 살 어린 불제자는 바랑을 메고 반도의 꼬리인 서라벌을 떠나 바다를 만나고 이글거리는 사막의 한 낮과 얼음장 같은 밤을 보내고 설산을 넘어간다.
나는 늘 길이 궁금했다. 저 길을 넘어서 가면 과연 뭐가 나올까? 저 산마루를 지나면 어떤 세계가 있을까? 시골에 버스가 다니면서 부터는 버스 뒤꼬리를 따라 뛰어다녔다. 매연 냄새가 그렇게 고소하고 알싸할 수가 없었다. 단순한 냄새가 아니라 그것을 후각을 자극하는 그리움이었고 가고픈 곳의 소식을 전해주는 전령사였다. 버스가 언덕을 넘어 다른 마을로 영영 사라질 때까지 한 참을 서서 손을 흔들었다. 내 키보다 큰 아빠의 자전거로 폐달을 굴리기 시작하면서부터는 아빠가 자전거를 집에 두는 주말이면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자전거를 끌고 길을 헤매고 다녔다. 언덕을 넘었고 저수지에 갔고 먼 친구네 동네로 가서 냇가에 한참을 앉아 있곤 했다. 세계를 다 갈수 있을 것 같았다. 자전거만 있으면.
그러다 어디선가 ‘실크로드’라는 이름을 유럽보다 먼저 알게 되었다. 그리곤 상인이 되고 싶었다. 서역만리 바랑하나만 짊어지면 상인이랍시고 실크로드를 무조건 통과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러다 진짜 비행기를 타고 유럽을 갔다. 실크로드. 내 눈 아래로 깔아보며 갔다. 이글거리는 사막의 그 뜨거움은 내 가슴에서 일어오는 바람과 같았다. 눈 덮인 설산은 내가 넘어야할 구도의 길이었다. 구름 밑의 실크로드는 내 환상 그대로다. 여전히 꿈이 많고 환상을 즐기는 나는 고대의 상인이 아마도 나의 전생이 아니었나? 아니면 몽골고원을 날뛰는 유목민의 후예였지 라며 쉬이 그 환상을 접지 않는다. 어떤 이는 나에게 순진하다느니 철이 없다느니 현실을 직시하라고 말하지만 난 속으로 뇌까린다. 현실이 뭔데? 어느 삶에나 있을 고통을 몰라서 그러는 게 아니지. 이 삶은 나에게 여인숙과 같으며 부표를 꿈꾸는 여행길일 뿐이다. “여행자에겐 바로 지금 이 순간 발바닥에 닿는 길이 전부입니다.” 내 발바닥이 닿는 이곳이, 나에게 부끄럽지 않은 행복하고 기쁨의 길이었으면 할 따름이다.
혜초라는 인물. 그는 나에게 구도자이며 불제자이기 이전에 ‘길’을 나선 자이다. 그의 발바닥이 낳은 길은 천축국(지금의 인도)와 티벳, 파키스탄, 아프가니스탄, 이란, 우즈베키탄, 파리르 고원, 세계의 지붕인 타슈쿠르칸, 중국에 이르는 대장정이었다. 지금도 오지라 말하는 그 길을 발바닥에 의지해 걸은 것이다.
어떤 소재를 만났을 때 쓰는 자는 고민한다. 어떤 관점으로 풀어나갈 것인가? 그 사람의 다양한 속내들 중에 나는 무엇을 중심에 둘 것인가를 두고..., 저자 김탁환도 분명 고민했을 것이다. 혜초는 과연 불제자인가? 구도자인가? 여행자인가? 그저 방황하는 인간일 뿐인가? 그 어느 것도 아니라고 했지만 이는 동시에 그 모든 것을 안고 있다. 혜초와 고려인의 피가 흐르는 당나라 장수 고선지, 그리고 무희 오름과 내림, 신라 상인 김란수. 책을 읽다보면 이것이 과거였나? 꿈이었나? 미래인가?의 흐름을 놓고 다시 읽기를 반복한 부분들이 있었다. 역사적 사실을 놓고 소설을 만든다는 것이 이렇게 힘든 작업이겠구나를 느꼈다. 물론, 나는 역사적 사실인 왕오천축국전의 6,000자를 미리 보진 못했지만 말이다. 기회가 된다면 신라의 불제자 혜초가 쓴 그 책을 읽어보고 싶다. 불제자의 내면보다는 인간의 오욕이 더 많은 이 작품을 보면서 혜초의 잃어버린 기억을 되찾듯 말이다. 내 발바닥의 내 딛음이 단순한 공간의 이동이 아니라 시공간의 이동을 꿈꾸는 것처럼 말이다.
꿈꾸는 자의 갈망, 길에 대한 호기심, 여전히 나에겐 유효한 것임을 알게 한 책읽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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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소멸만이 남았고 다시는 여행을 떠나지 않을 것이며 기(記)와 록(錄)에 매달리지 않을 겁니다. 항하의 한 알 모래 알갱이로 돌아겠습니다. p339
"그리운가?“
“그러하옵니다.”
“하면 왜 돌아가지 않는가?”
“그립다 하여 모두 돌아간다면 그리움은 사라지고 말것이옵니다.
때로는 가지 않고 그리움만으로 간직하고픈 일들도 있사옵니다.”
p36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