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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오선 여행 - 과학의 역사를 따라 걷는 유쾌한 천문학 산책
쳇 레이모 지음, 변용란 옮김 / 사이언스북스 / 2008년 7월
평점 :
절판
시간과 공간의 의미.
어제와 똑같은 해가 뜨고 어제와 똑같은 시간에 밥을 먹고 어제와 똑같은 장소로 가서 일을 한다. 나는 어제와 똑같은 오늘을 하루하루 쌓고 있다. 그런 시간을 2000년이면 어떻고 2001년이면 어떻겠는가? 그건 인간이 지나친 상징성을 부여하고 싶은 새날, 새해, 새천년을 기대하기 때문이라고 말한 적이 있었다. 29살의 마지막 날이나 30살의 첫 날이나, 어제와 같은 오늘일 뿐이라고 지나친 호들갑이라고 말했었다. 그러나 결코 그렇지 않았다. 이 책은 내가 얼마나 감상적으로 시간과 공간을 정의내리고 있는지 알게 했다.
이 책의 저자인 쳇 레이모는 과학과 자연뿐만 아니라 좋은 교수일거라는 생각을 했다. 그의 글쓰기방식은 친절했다. 수학과 과학에 열등한 나에게 천문학에 대한 접근을 쉽게 접근시켜주었을 뿐만 아니라 시간과 공간에 대한 과학적 접근을 진솔한 글쓰기를 통해 딱딱한 껍질을 벗기고 말랑말랑한 속살을 간직했음을 알게 해줬다.
그리니치 천문대는 1675년 찰스 2세가 그리니치에 있는 왕실 공원 부지 제일 높은 곳에 국립 천문대를 지으라는 왕명으로 지어졌다고 한다. 자연과 과학에 대한 호기심이 아니라 멀리 떨어져 있는 여러 식민지를 약탈하기 위한 해군의 안전과 무역의 번성을 위해 지어진 것이다. 위도의 경우 지구의 어떤 위치에서든 남쪽과 북쪽으로 나타내는 데는 모호함이 없어 단번에 결정되어지지만 경도의 경우 정확한 지점을 정하기는 어렵다. 영국 왕실은 그 경도를 그리니치에 천문대를 건설함으로 경도 0도를 지정한 것이다.
위도의 확인은 해나 별 같은 천체가 해당 지역 자오선을 지날 때 수평선과 이루는 각을 재기만 하면 되지만 경도는 출항했던 항구의 시간을 정확하게 가리켜 줄 시계가 있어야만 했다. 지구는 시간당 15도씩 자전하므로 배가 있는 곳의 하늘에서 태양이 가장 높은 곳에 당도했을 때 그리니치 시간을 유지하던 선상의 시계가 오후 1시를 가리키면 배는 동쪽으로 15도 항해했다는 의미가 된다. 시간과 거리는 맞교환되면서 안전하게 항해할 수 있는 것이다.
가장 정확한 시계를 만들기 위한 노력은 곧 우주의 시간을 재는 것과 같은 것이었다. 째깍째깍 소리는 우주가 움직이는 가장 큰 소리였던 것이다. 그런 그리니치의 자오선을 국제적으로 인정하는 과정도 무척 흥미 있었다. 프랑스는 영국에 본초 자오선을 양보하는 대신 미터법을 국제 표준으로 만드는 조건을 걸었다. 이로써 1884년에 경도 0의 본초 자오선과 표준시에 대한 구제적인 합의가 이루어짐으로써 공간과 시간의 세계화가 단행되었다.
우주와 인간의 시간과 공간의 기준선인 그리니치 본초 자오선.
그 자오선을 따라가다 보면 에닝이 공룡 화석을 발견한 라임리지스 절벽이 있고 화석 사기극의 무대인 필트 다운과 다윈이 살던 다운 하우스, 헤리슨의 해상 시계가 놓은 그리니치 전문대, 과학자의 성역인 런던 웨스트민스터 사원, 뉴턴의 방이 있는 케임브리지 트리니티 칼리지가 있다. 우연의 일치 치고는 운명에 가까운 일이라는 생각이 든다. 쳇 레이모는 여기서 최초의 지구 지도를 그렸으며 우주 공간을 이야기했고 지구의 과거와 인간의 과거, 우주시간과 공간을 끄집어낸다.
본초자오선을 따라간 쳇 레이모의 천문학 산책은 무척 흥미로웠고 재미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