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이올렛
신경숙 지음 / 문학동네 / 200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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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이올렛...신화에서 알 수 있듯 바이올렛은 신의 아버지인 제우스의 바람끼와 헤라의 질투속에서 원치않는 흰소가된 이오를 위해 그녀의 눈동자를 닮은 꽃을 적선하듯 뿌려준 것이 바로 '이오의 눈동자'라고도 불리는 제비꽃이다. 봄이면 산이나 낮은 언덕빼기 때론 동네 어귀의 담벼락 밑에 오롯이 피어있는 몽울몽울한 그것이 그 흔한 제비꽃이다. 흔해빠진 것들이 때론 깊은 의미를 부여하듯 낮게 앉아있는 바이올렛이란 여린 듯한 이름은 사뭇 신경숙같다.

나는 성급하게 이 말부터 한다. 그 붓이 조금씩 녹슬어간다라는 느낌. 일상의 것들을 지루하게 늘어놓아도 신경숙이란 작가는 나름대로 독특한 색깔과 음율로 사람의 마음을 최루하게 하는 구심의 힘이 있었다. 나는 기다렸다. 바이올렛의 절반을 넘기기까지 어디에선가 숨겨져있는 그 비수가 내 가슴을 찌르는 그 날을..., 그러나 그녀가 보여줬던 숱한 이야기들의 어디에서도 내 가슴을 찌르는 숨겨진 칼은 발견되지 않았다. 조금은 서글퍼졌고 또박또박 읽어내리던 언어들은 숨쉬기 보다 사그라들고 있었다.

오산이라는 여자아이가 있었다. 그럴듯한 미나리 군락지와 남애라는 사랑하던 순간 버림받는 친구가 있었고 낳기도 전에 버림받은 아버지가 있었고 수시로 그녀를 버리고 떠나던 어머니가 있다. 수애는 산이를 사랑했지만 산이의 마음은 이미 바람꽃같은 사진작가에게 일상을 빼앗긴 상태였고 수애는 또 다른 산이가 되고 그럼으로 수애는 잃어버린 사랑에 슬퍼하는...누군가 사랑하고 떠나보내고 버림받고 상처받음으로 인해 모두에게 죽기 아니면 상처로 남겨진 이야기들이다.

명징하게 짜여진 아름다움 구도가 있을 때 소설은 한층 돋보인다.아슬아슬했지만 그렇게 구도를 만들 줄도 아는 작가였는데 나의 무지함인지 도통 답답증만이 생길 뿐이었다. 그래도 욕망에 대한 몇 구절은 나를 지금도 아스름하게 남겨져 있어 옮겨본다.'욕망은 현실을 위협한다. 현실이란 무엇보다도 금지의 체계다. 이 체계가 제거된 상태란 혼돈일 뿐이다. 우리는 이 혼돈을 죽음으로 바꿔 부를 수도 있을 것이다.

이 죽음을 필사적으로 연기하기 위해 인류가 고안한 장치가 바로 금기다. 열광과 환희의 축제가 끝나면 욕망은 어떤 식으로든 응분의 대가를 치러야만 할 것이다. 이 욕망을 제거하고 길들이지 않으면 세계가 유지되지 않는다. 따라서 이 규율은 언제나 가장 잔인하고 폭력적인 방식으 로 행사된다.' 책 뒷면의 상당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신수정의 해설부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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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지영의 수도원 기행
공지영 지음 / 김영사 / 200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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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지영의 수도원기행을 다 읽었다. 내 주변의 많은 사람들이 나를 위해 기도한다고 한다. 내가 교회에 나갔으면...., 다시 신앙의 사람이 되었으면...., 그러나 종교는 나를 억압의 굴레 속에 갇혀있게 했다고 생각했다. 다시, 나는 나의 욕심에 대해 생각한다. 순전한 나의 욕심. 그러면서 얼마 전 메모처럼 흘겨 쓴 나의 말 '나의 욕심이 화를 부르리라'라는 말을 생각한다. 책의 마직막장을 덮으면서 나는 창문을 연다.

지금은 새벽2시. 책을 읽는 중간중간 나는 바삭거리는 겨울바람소리를 들어야 했다. 진눈깨비가 가로등 밑에서 분방하다. 유독 그 밑에서. 멀리 호텔의 네온이 선명하고 붉은 교회의 십자가와 초록빛 병원 십자가 호텔의 네온도 희멀겋게 십자가를 닮았다. 온통 십자가뿐이구나. 도시는. 그러면서 살고자 하는 곳과 천상의 자리와 쾌락의 자리가 저리도 닮았을까 싶다. 먹이를 찾는 굶주린 고양이 한 마리만이 추운 겨울의 울타리를 재빠르게 지나간다. 그리고 내 몸 속으로 파고드는 바람냄새. 나는 후두둑 떨어지는 내 감정의 문고리를 걸어 잠그고 다시 공지영을 생각한다. 그녀가 글을 통해 토해낸 많은 말 중에서

'늙지도 젊지도 않은 우리 부부는 이제는 안다. 에로틱이라는 것이 결코 육체의 문제가 아니라는 것을. 오르가슴은 육체로 시작해서 정신의 황홀을 합일시키는 것이고 수도라는 것은 정신을 통해 육체를 초월하고 그리하여 마침내 육체의 긍정조차 이끌어내는 것이 아닐까. .... 섹스라는 것은 하느님이 맨 처음 아담의 갈비뼈로부터 하와를 만들었을 때 하느님 앞에서 부끄러움 없이 둘이 행했던 사랑의 행위였다. 하느님은 둘이 알몸으로 부둥켜안는 것을 보시고 '자식을 낳고 번성하라'고 기뻐하며 축복해 주었다. 그런데 섹스는, 남자와 여자의 성기에 갇힌 채로, 이제 갈비뼈 한 대의 인연도 없이 유리 진열장에 서서, 몇 푼에 사고 팔리고 있었다. ' 그래.... 자식을 낳고 번성하라.

엇그제 반가운 지인과 통화를 했다. 자신의 삶을 소중하게 생각하는 그는 당당히 자신의 삶을 즐기라고 얘기했다. 그 말에 전적동감한다. 그러면서 자신의 어머니가 불쌍하다는 얘기를 했다. 그리고 B 선배가 둘째를 갖고 세상을 살아갈 힘이 강렬해지고 두 아이의 엄마로 충성을 맹세함을 안타까워했다.

언젠간 떠나는 것이 자식임을 자신을 통해서도 모르냐며. 그 얘기를 H에게 했을 때 H는 그런 어머니가 있었기에 자신이 있음을 알아야 한다고 했다. 그는 흘러가듯 한 얘기였지만 나는 H의 얘기에 단박에 그의 심정을 알 수 있었다. 그리고 내가 얼마나 허무의 성을 더 높이 쌓아야 그것이 바벨탑보다 더 무서운 것인가를 깨닫게 될까 한탄했다. 살고자 하는 욕망과 사후의 영생을 꿈꾸는 욕망과 쾌락의 욕망이 눈 내리는 겨울 창밖에서 공존하고 있는 나의 현실 속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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뱀장어 스튜 - 2002년 제26회 이상문학상 수상작품집
권지예 외 지음 / 문학사상사 / 200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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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인숙의 밤의 고속도로편

가끔 소설을 읽고 나서 난 암호를 풀어야 한다는 의무감을 느낄 때가 있다. 김인숙의 소설을 읽고 나서는 특히 그런 생각을 할 때가 많다. 뭔가 잡힐 듯하면서도 그냥 덮어버릴 수 없는 답답한 뭔가가 소설의 구석구석에 도사리고 있는 듯한 느낌. 박완서의 소설처럼 명쾌하지도 않고 신경숙의 소설처럼 최루되지도 않으면서 복선 되어져 있는 뭔가에 골똘히 생각하다 어쩔 땐 지치게도 만든다. 그녀의 소설은....그러면서도 그냥 묵도하기엔 심오한 진리 같은 것이 있을 듯한 애매모호함.

그녀의 소설 '밤의 고속도로'의 남자는 42살의 시속 120k를 달리는 트럭운전기사이며 혼자 사는 사람이다. 나비가 꿈을 꾼 것인가 내가 나비의 꿈을 꾼 것인가를 의심했던 노자처럼 그는 15년 전의 기억 속에 갇혀 지낸다. 딱히 사랑했다고 할 수도 없는 여자. 육체적 배신감에 시달려야 했던 스무살 후반의 그에게 그녀가 남긴 화두는 '당신이 나를 믿으려고 하지 않기 때문에, 나는 이미 그 무엇도 아니예요' 라는 말이다.

나는 곰곰히 생각해 본다. 늘 믿지 못할 것처럼 얘기하면서도 나는 그의 사랑을 믿는다. 그가 날 사랑하고 있음을...., 의심할 수 없는 말임에도 난 의심한다. 아마도 나를 믿지 못하기 때문일 것이다. 내가 그를 진정 사랑하고 있는 가에 대한 그리고 내가 그에게 이미 그 무엇도 될 수 없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그러므로 나는 불행하다.

우리는 서로에게 익숙한 모르스 부호에 진저리를 낼 것이며 서로만 알고 있는 그 부호를 세상에 흘려보내고 하수구를 배회하던 그 몹쓸 것들이 썩어서 끝내는 악취를 낼 것이다. 누군가는 그 악취에 시달려야하고 누군가는 썩어들 것이다.

모든 것이 어두운 '밤의 고속도로'를 달리는 우리네 현실은 늘 꿈과 같다가도 현실인 것 같고 현실인 듯 하다가도 꿈같은...., 그래서 죽음의 속도로 내달릴 수밖에 없는, 잘려진 기억의 모퉁이에서 길을 잃고 헤매이듯 알 수 없는 미래 앞에서 늘 길을 잃을 것이다.

그러나 사람 앞에 다시 뚫린 것이 길이다. 그 길에 좋은 추억들만 고스란히 풀어놓고 싶다. 더 이상의 상처를 누군가의 가슴에 새기지 말자. 내 가슴에 주홍글씨를 달고 살더라도. 온전한 가슴만 그 길 위에 빛나게 하자 암호같은 그녀의 소설을 조금씩 내방식대로 풀어 가슴에 돌돌말아 넣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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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윤기의 그리스 로마 신화 1 - 신화를 이해하는 12가지 열쇠 이윤기의 그리스 로마 신화 1
이윤기 지음 / 웅진지식하우스 / 200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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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끔 나는 근원처럼 꿈속에서 신화의 주인공이 되곤한다. 아프로디테의 요염한 사랑을 꿈꾸기도 하고 태양의 신 아폴론이 되어 음악과 가무를 즐기기도 하다가 하현달이 유난히 빛나는 어느 겨울밤엔 달의 신 아르테미스가 되어 달을 동무삼아 마실나가기도 하였다. 신화를 푸는 12가지 열쇠를 하나씩 엿보며 너무도 흥미로워 내 상상력의 틈도 주지 못하고 내리 읽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신화의 내력들은 처음 접함에도 나의 뇌리에 크게 각인되어 지금도 생생하다. 이윤기님의 어떠한 글도 나를 매료시키지 못하였는데 그리스 로마 신화는 나를 매료시키기에 너무도 충분했다.

미궁같은 세상 속에서 가끔 길을 잃고 야수에게 잡아먹히는 악몽에 시달리다가도 누군가 실타래를 던져 줄 것 같은 상상. 신의 욕망과 지혜를 읽으면서 나는 근원적 인간에 대해 생각했다. 이미 신화의 세계를 접하면서 환타지의 세계는 우리 앞에 펼쳐진다. 무한한 상상력을 자극시키고 인간의 본능적세계에 적나라하게 입성시킴으로 신화의 세계는 이미 나의 세계가 된다.

간밤에 꿈을 꾸었다. 물이 범람하고 내가 살던 보금자리가 물살에 씻기워가고 모든 것이 푸른 덩어리가 되어 버리는 순간에도 나는 멀쩡히 그 소용돌이치는 물살 속에 서 있는 것이었다. 산을 뒤덮던 물들이 어느 순간 바다가 되고 나는 산의 중턱에 앉아 검게 변한 바다를 내려다보고 별들은 그 바다에 떨어져 마지막 빛을 발하고 있었다. 내가 사랑하던 물고기자리가 길게 꿈틀거리더니 빛나는 하얀 뱀이 되어 물살을 휘저었다. 나를 덮칠 것 같던 그 긴 꼬리가 순간 빛을 발하더니 먼 대양으로 휘돌아 나가고 나는 조금 슬퍼하였던가 그렇게 암흑이 되어버린 세상 속에 혼자 울고 있었던가 그러다 새벽녘에 잠에서 깨었다.

밖에선 비가 내리고 있었다 몇 장 안 남은 책을 다 읽고 덮으며 신화를 이해하는 12가지 열쇠를 다시 잠그고 좀 더 깊은 이해를 위해 간밤의 꿈들을 생각했다. 빗소리는 계속되고 창문을 뜯는 바람소리에 귀멀다가 에로스와 프쉬케의 사랑과 마음에 대해 생각했고 이젠 낯설지 않은 신화속의 이름들을 하나씩 호명하며 작가가 나에게 건네준 열쇠를 소중히 간직해야지 라는 생각을 한다.

곰삭여 읽으면 더욱 좋을 책. 늘 늦되는 나의 상상력에 작은 불씨를 제공하고 스스로 사그라드는 책. 그것이 이윤기의 그리스 로마 신화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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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윤기가 건너는 강 - 내가 건너고 있으나 필경 다 건너지 못할 강에 대한 글 37꼭지
이윤기 지음 / 작가정신 / 200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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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그의 글을 읽을 때마다 지나친 '엄숙주의'를 대하는 느낌을 자주 받곤 한다. 너무도 엄숙해서 삶의 냄새가 소멸되어 버리는 느낌. 아마도 나에겐 낯선 외국말들이 많이 나오고 생소한 단어들 속에서 스스로 소외감을 느끼기 때문이 아닌가 하는 나름대로의 판단을 해보지만 그래도 비슷한 연배의 다른 작가들의 소설이나 에세이를 읽으면서는 느낄 수 없는 어려움 같은 것들이 날 지치게 만들거나 지루하게 만든 적이 많이 있었다.

그러면서도 소위 잘 나가는 작가의 산문집을 또 다시 들추며 나도 그의 지식세계를 좀 닮아가야 하지 않을까 하는 윤기 없는 지식욕들이 내 손과 눈을 유혹하여 어렵게 밀쳐두었던 그의 산문집을 조금은 부담스러운 마음으로 열었다.

'사람의 향기'라는 첫 편을 읽으며 난 그만 가슴이 뜨끔하고 만다. 말의 쓰임새에 집착했었다는 그의 말이 어쩌면 내가 느끼던 그대로인가 싶었다. 가끔은 익명으로 글을 쓰고 싶을 때가 있다. 나의 치부라고 생각하는 것들을 과감하게 내 보이지 못할 경우...., 그러나 우리가 다른 사람의 글을 읽으며 어눌하지만 진실한 모습이 보일 때 쉬이 감동하게 되고 그 여운도 길어짐을 느끼면서 나도 어쩜 '말의 쓰임새'에 집착하고 있어 생명감이 없는 글들을 쓰고 있는 것은 아닌가에 대한 의문.

인간의 결정적 진실은 유치해 보이는 부적절한 언어를 통해서 더 잘 전달된다는 사실이 직업적으로 글을 쓰는 작가에게는 얼마나 무서운 일인가. 단세포적 표현, 치명적인 실수가 그 사람의 향기가 되는 사태는 얼마나 경악할 만한 일인가? 그 경악할 일들이 우리의 진실이니 글을 어떻게 쓰는 것이 사람다운 것이며 사람이 어떻게 살아야 만이 글을 쓸 수 있는 것인가에 대한 답변이 그 첫 장에 있었다.

그러다 뒤로 갈수록 그의 깊이 있는 지식에 나는 다시 알 수 없는 목마름을 해야했고 그의 번역서 그리스인 조르바 부분에 대한 번역을 하는 부분에서는 안타깝게도 졸고 말았다.웬만해선 졸지 않는 나의 독서력에도 한계를 느끼게 할만큼...., 난 마지막 장을 덮으면서 다시 '말의 쓰임새'라는 감옥에 대해 생각한다. 그 감옥을 나올 수 있도록 나도 노력해야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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