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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윤기가 건너는 강 - 내가 건너고 있으나 필경 다 건너지 못할 강에 대한 글 37꼭지
이윤기 지음 / 작가정신 / 2001년 10월
평점 :
구판절판
나는 그의 글을 읽을 때마다 지나친 '엄숙주의'를 대하는 느낌을 자주 받곤 한다. 너무도 엄숙해서 삶의 냄새가 소멸되어 버리는 느낌. 아마도 나에겐 낯선 외국말들이 많이 나오고 생소한 단어들 속에서 스스로 소외감을 느끼기 때문이 아닌가 하는 나름대로의 판단을 해보지만 그래도 비슷한 연배의 다른 작가들의 소설이나 에세이를 읽으면서는 느낄 수 없는 어려움 같은 것들이 날 지치게 만들거나 지루하게 만든 적이 많이 있었다.
그러면서도 소위 잘 나가는 작가의 산문집을 또 다시 들추며 나도 그의 지식세계를 좀 닮아가야 하지 않을까 하는 윤기 없는 지식욕들이 내 손과 눈을 유혹하여 어렵게 밀쳐두었던 그의 산문집을 조금은 부담스러운 마음으로 열었다.
'사람의 향기'라는 첫 편을 읽으며 난 그만 가슴이 뜨끔하고 만다. 말의 쓰임새에 집착했었다는 그의 말이 어쩌면 내가 느끼던 그대로인가 싶었다. 가끔은 익명으로 글을 쓰고 싶을 때가 있다. 나의 치부라고 생각하는 것들을 과감하게 내 보이지 못할 경우...., 그러나 우리가 다른 사람의 글을 읽으며 어눌하지만 진실한 모습이 보일 때 쉬이 감동하게 되고 그 여운도 길어짐을 느끼면서 나도 어쩜 '말의 쓰임새'에 집착하고 있어 생명감이 없는 글들을 쓰고 있는 것은 아닌가에 대한 의문.
인간의 결정적 진실은 유치해 보이는 부적절한 언어를 통해서 더 잘 전달된다는 사실이 직업적으로 글을 쓰는 작가에게는 얼마나 무서운 일인가. 단세포적 표현, 치명적인 실수가 그 사람의 향기가 되는 사태는 얼마나 경악할 만한 일인가? 그 경악할 일들이 우리의 진실이니 글을 어떻게 쓰는 것이 사람다운 것이며 사람이 어떻게 살아야 만이 글을 쓸 수 있는 것인가에 대한 답변이 그 첫 장에 있었다.
그러다 뒤로 갈수록 그의 깊이 있는 지식에 나는 다시 알 수 없는 목마름을 해야했고 그의 번역서 그리스인 조르바 부분에 대한 번역을 하는 부분에서는 안타깝게도 졸고 말았다.웬만해선 졸지 않는 나의 독서력에도 한계를 느끼게 할만큼...., 난 마지막 장을 덮으면서 다시 '말의 쓰임새'라는 감옥에 대해 생각한다. 그 감옥을 나올 수 있도록 나도 노력해야 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