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인숙의 밤의 고속도로편가끔 소설을 읽고 나서 난 암호를 풀어야 한다는 의무감을 느낄 때가 있다. 김인숙의 소설을 읽고 나서는 특히 그런 생각을 할 때가 많다. 뭔가 잡힐 듯하면서도 그냥 덮어버릴 수 없는 답답한 뭔가가 소설의 구석구석에 도사리고 있는 듯한 느낌. 박완서의 소설처럼 명쾌하지도 않고 신경숙의 소설처럼 최루되지도 않으면서 복선 되어져 있는 뭔가에 골똘히 생각하다 어쩔 땐 지치게도 만든다. 그녀의 소설은....그러면서도 그냥 묵도하기엔 심오한 진리 같은 것이 있을 듯한 애매모호함. 그녀의 소설 '밤의 고속도로'의 남자는 42살의 시속 120k를 달리는 트럭운전기사이며 혼자 사는 사람이다. 나비가 꿈을 꾼 것인가 내가 나비의 꿈을 꾼 것인가를 의심했던 노자처럼 그는 15년 전의 기억 속에 갇혀 지낸다. 딱히 사랑했다고 할 수도 없는 여자. 육체적 배신감에 시달려야 했던 스무살 후반의 그에게 그녀가 남긴 화두는 '당신이 나를 믿으려고 하지 않기 때문에, 나는 이미 그 무엇도 아니예요' 라는 말이다. 나는 곰곰히 생각해 본다. 늘 믿지 못할 것처럼 얘기하면서도 나는 그의 사랑을 믿는다. 그가 날 사랑하고 있음을...., 의심할 수 없는 말임에도 난 의심한다. 아마도 나를 믿지 못하기 때문일 것이다. 내가 그를 진정 사랑하고 있는 가에 대한 그리고 내가 그에게 이미 그 무엇도 될 수 없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그러므로 나는 불행하다. 우리는 서로에게 익숙한 모르스 부호에 진저리를 낼 것이며 서로만 알고 있는 그 부호를 세상에 흘려보내고 하수구를 배회하던 그 몹쓸 것들이 썩어서 끝내는 악취를 낼 것이다. 누군가는 그 악취에 시달려야하고 누군가는 썩어들 것이다. 모든 것이 어두운 '밤의 고속도로'를 달리는 우리네 현실은 늘 꿈과 같다가도 현실인 것 같고 현실인 듯 하다가도 꿈같은...., 그래서 죽음의 속도로 내달릴 수밖에 없는, 잘려진 기억의 모퉁이에서 길을 잃고 헤매이듯 알 수 없는 미래 앞에서 늘 길을 잃을 것이다. 그러나 사람 앞에 다시 뚫린 것이 길이다. 그 길에 좋은 추억들만 고스란히 풀어놓고 싶다. 더 이상의 상처를 누군가의 가슴에 새기지 말자. 내 가슴에 주홍글씨를 달고 살더라도. 온전한 가슴만 그 길 위에 빛나게 하자 암호같은 그녀의 소설을 조금씩 내방식대로 풀어 가슴에 돌돌말아 넣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