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감사의 힘 - 0.3초의 기적
데보라 노빌 지음, 김용남 옮김 / 위즈덤하우스 / 2008년 1월
평점 :
품절
부끄럽습니다.
전 지금 제 자신이 너무 부끄러워요.
생각의 한끗차이만 바꾸면 되는 걸 왜 그렇게 눈물 쏟으며 괴로워하고 힘들어했던가요.
얼마 전, 우연히 언니를 길에서 만났습니다.
평소 사이가 견원지간같았던 언니를요.
물론 언니도 영화약속에 시내로 간다는 걸 알고있었죠. 하지만 어쟀든 시내 거리가 좁아도 그렇지, 설마 만날까... 했는데 우려가 현실처럼 만나게 된거죠.
그런데 그게 뭐가 그리 대수냐고요?
네, 남자는 만나지 않겠다는 제가 남자 손을 잡고 있는 걸 똑똑히 목격하게끔 해서예요.
손도 잡을 수 있는거 아니냐고요?............
보통의 경우라면 전혀 문제될 게 없을지 모르지만,
제 경우엔 특히 달라요.
저희 집은 보수적이고 완강하셔서 남자를 사귀지않는 한, 남자와 함께 길을 나란히 걷는다거나, 그보다 더 손을 잡는 거라면 그건 남자를 사귀는것임을 부인하는 바가 없고,
그렇다면 남자를 사귄다는 것은 대학생이지만 지금과 같이 대학캠퍼스에 로망이나 낭만 대신 칼바람처럼 불어닥친 세계적 경제위기와 실업난에 취업양성소가 되어버린 삭막한 대학의 현실과 그에 갇혀 스펙과 학점기계가 되어버린 암울한 대학생이 진짜 현실적인 신분으로 자리잡은때라면 남자사귀는 건 여건이 허락되지 않는, 암담한 No개념 학생이자 딸임을 증명하는 바였어요.
그렇기에 전 평소 그와 같은 것에 있어서라면,
구름한점 가릴 바 없이, 난 남자는 관심없다 - 조금의 흔들림 없이 말했습니다.
그런 저였기에 이건 용납되거나 그냥 넘어갈 문제가 아니었던거죠.
아니나다를까, 눈에 띄자마자 뒤에서 고함치며 나를 부르는 소리가 났습니다.
그리고 대답이 없이 가버리자 쫓아와서는 눈을 부라리며 모른척하고 대답하지 않은 데 질책했죠.
그 뒤...
엄마가 일하시는 도중 허리가 삐끗하여 급히 병원에 가서 치료를 받았음과 함께
그 사실을 뒤늦게 알고는 제게 전화하여 다짜고짜 그 모든게 내 책임인것처럼 -
내가 한심하게 시내 거리를 남자와 손잡고 돌아다니며 영화보러 다니는 등
정신차리지 못한 행태를 보여준 것 때문인양
날 비난하기 시작했습니다. 찌질이는 '나'인거였어요.
거기까지도 난 버텼습니다.
그런데 집에 와서 훨씬 전에 날라온 문자를 열어보니,
주절주절 날 기세좋게 비난하는 말의 말미에,
"정신못차린 한심한 X야"라는 말에 난 왈칵 쏟아지는 눈물을 주체할 길이 없었습니다.
갑자기 감정이 봇물터지든 터져 울음이 복받쳐 올라왔습니다.
하염없이 비수처럼 꽃힌 한심한 X라는 표딱지가 내 등에 포스트잍처럼 붙여진 기분이었고,
언니의 눈에 - 가족의 눈에 난 그저그렇게 '...한심한 X'라는 주홍글씨가 낙인찍혀버린듯했습니다.
난 그걸 참을 수가 없었습니다.
그게 왜 그렇게 잘못된 건지, 아니 엄마가 허리를 다친것과 그게 무슨 상관인지,
정녕 죽을 죄를 진 것인지... 혼자 생각하고 또 생각했습니다.
내가 뭘 그렇게 잘못했기에, 난 잘했는데 -
처세술, 인간화술, 세상 따뜻하게 보기, 변화하기, 마음을 다스리는 자기계발서... 등을 읽어오며
실천한답시고, 가장 가깝다는(그러나 가장 상처받고상처주는) 가족에게
그리고 언니에게 나름대로 격려도 하고 상심해있을땐 기운을 붇돋아주려 노력했는데 -
왜 그걸 그렇게 몰라주는 걸 넘어서서 날 이토록 괴롭고 서운하게 한건지.... 그렇게 나오기 시작한 눈물은 서럽게도 주루룩 주루룩 계속 흘러내렸습니다.
내가 한 좋은 말들이, 정을 주려 애써 한 칭찬과 좋은 격려의 말들이, 하루 아침을 새롭고 행복하고 에너지충만하게 시작하라고 문자보낸 긍정과 자신감회복의 말들이 쓰라리고 억울해 분통터지는, 무방비 상태의 내 가슴에, 비수가 되어 꽃힐 줄은 상상도 못했던 까닭에 난 이토록 가슴아프고
괴로워하며 두 손으로 눈물을 훔치며 대야를 가득채울정도로 울고 울었습니다.
그리고 언니와는 단 한마디 말도 하지 않았죠.
어떤 말조차도. 아마 욕하는 것도 '그나마 미운' 정이라도 있어야 가능하다는 게 맞는 말인가 봅니다. 전 어떠한 나쁜 말도, 복수의 말도 하고싶지도 주고받고 나누고싶지도 않았으니까요.
그렇게보낸 이틀반.
오늘아침 문득 무섭게 깨달았습니다.
그러자 그 깨달은 생각 하나, 그 생각에 전 갑자기 어둡고 음습하고 칙칙해진 마음속을 환하게 비추듯 형광등이 밝게 켜진 느낌이었습니다.
내 마음속을 밝게 비추는 형광등은 내게 우울함은 모두 떨쳐버리게 기쁘고 행복한 상상을 마구마구 떠올리게 해주었고, 기발하고 획기적인 아이디어도 떠오르게 하였습니다.
전 다시 마음의 평화와 안정, 기쁨을 되찾고 생각의 전환까지 하게되었어요.
오바스럽게도 표현했다할거예요, 아마.
더 오바스럽게라면, 앞으로 인생을 살아가고 사람과 더불어 살아가며 관계맺을 때
정말 중요한 방식 하나를 완전히 전환하게 되었다고나 할까요?
. . . . .
그럼 그것이 무엇이냐고요.
그건 바로 일방적인-Give 였어요. 일방적인 베품, 감사함, 배려.
말하자면 누군가에게 친절을 베푸든, 도움을 주든 간에
되돌려 받아야겠다는, 기대나 보상심리를 조금도 생각하지 않는 거였어요.
전 아무래도, 내가 이제껏 불행해왔던 이유의 대부분은 내가 뭔가를 그나마 남을 위해 '해 주고'
그쪽에선(도움을받은측에선) 내게 그만한 무언가를, 어떠한 것도 해주지않았다고 생각들었을 때였거든요.
그런 기대적인 계산을 했기 때문에, 전 주는 기쁨을 '온전히' 알지는 못했었죠.
이제 이 말의 뜻을 진정 알 수 있게 되었어요.
☞ '해 주었다'가 아닙니다.
저 사람을 위하여 그 일을 '해 주었다'라는
생각이 들면 스스로에게 이렇게 말해 봅시다.
'내가 그 일을 할 수 있어 기뻤다'라고.
- 스즈키 히데코
또- 누군가에게 행복을 주려고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내 얼굴엔 이미 '행복'이 떠오름을 알게 되었지요. 이기적으로 말씀드리면 내가 행복하기 위해 남을 웃게 하는 거라고도 말할 수 있나요?
행복은 입맞춤과 같다.
행복을 얻기 위해서는
누군가에게 행복을 주어야만 한다.
- 디어도어 루빈
그리고, 누군가로 인해 상처받거나 힘들었다 해도
생각의 각도를 조금만 달리해서 바라보고
용서하면 순식간에 마음에 평온이 깃든다는것도 알게되었어요.
용서하고 용서받는 것으로부터 느끼는
이루 말할 수 없는 기븜은 신의 질투를
살 정도의 황홀경을 가져다준다.
-앨버트 하버드
이런 생각의 전환으로 전 드디어 앞으로의 저를 지탱해줄 마음의 평온과 여유, 안식을 찾을 수 있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