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2년생 김지영 오늘의 젊은 작가 13
조남주 지음 / 민음사 / 2016년 10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대한민국을 강타했다고도 볼 수 있는 책이다. 베스트셀러가 되었고, 대한민국에서 살아가는 수많은 '김지영'의 이야기를 주제로 텔레비전 방송도 나왔다. 나의 어머니 이야기였고, 나의 이야기이기에 내 딸의 이야기는 되지 말기를 바라는...

"다들 그렇게 사는 거야."라는 당연한 것에 대한 물음표의 시작

"왜 여자만?" 

여성참정권운동 영화 『서프러제트』나 성과 인종차별을 다룬 『히든피겨스』 모두 그 물음표에서 시작되었다.

부당함을 당연함으로 여기고 살아야 한다는, 법보다 더 강하고 문서보다 더 견고한 사회인식을 바꾸는 일이 쉽지는 않으나, 물음표를 달았다면 그 물음표에 대한 답을 해야 한다. 답을 하려면 생각을 해야 하고, 그러다보면 그에 대한 답이 마침표이든 느낌표이든 그 물음표를 단 이전과 이후의 삶은 그래도 달라지지 않을까?

『82년생 김지영』의 이야기가 초유의 베스트셀러가 될 수 있었던 이유. 여전히 이 땅에는 수많은 오미숙과 김지영이 살고 있기 때문이다. 자신들의 이야기이므로 공감했고, 그 이야기가 결말이 되지 않기를 바라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공감만 할 것인가? 2017년 대한민국은 여전히 '여자'라는 이유로, '딸'이라는 이유로 견뎌내야 할 것들이 왜 이렇게 많은가에 대한 새로운 물음표가 필요하다.

물론 오미숙 아들, 김지영 남편으로 살아가는 이들의 이야기도 필요하다. 요즘 뜨는 주말 드라마에서 이제는 경제력도 없어진 한 아버지가 말하지 않던가.

"난 당신 먹여살리려고 태어난 거 아니다."

그러고보면 이 땅의 모든 아들, 딸들의 삶이란 것이 참 팍팍하게만 느껴진다. 그 팍팍함 속에서 나를 찾아가는 것 또한 삶이기에 그 당연하게 여겨지는 삶에 오늘의 물음표를 달아본다.

"나는 이대로 살아도 좋은가?"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이 모든 것을 합치면 사랑이 되었다
이정하 지음, 김진희 그림 / 생각의서재 / 2017년 1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읽는 내내 '사랑'이란 단어가 버거웠다. 지금까지 살아오는 동안 수도 없이 질문했으나 그 답을 알 수 없었던 것. "사랑이 뭐야?"

생각해보면 그 질문을 던질때는 늘 '사랑'이란 단어에 대한 기대가 무너졌을 때였다. 기대한 만큼 돌아오지 않는 사랑에 목말랐고, 실망했고, 아팠을 때마다 그 질문을 했다는 건... 아마도 사랑이란 영원히 채워질 수 없는 감정이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생각만 해도 미소가 지어지고 만날 약속을 한 순간부터 설레로 가슴뛰던, 손끝만 스쳐도 짜릿하던 사랑은 시간의 흐름과 함께 '희생'이 되었다가 '억울함'이 되었다가, '실망'이 되었다가... 헤아릴 수 없을 만큼의 다른 이름들로 불리었다가 이제 '의리'가 되었다.

이제 더이상 "사랑이 뭐야?"라고 질문하지 않는다. 이 책을 읽으면서 '사랑'이란 단어가 버거웠던 이유였을 것이다.

이제 내게 남은 사랑의 조각은, '종신형'이라 부르시면서 여전히 변치않는 마음을 베풀어주시는 부모님의 사랑이며, 나 또한 '종신형'이라 부르면서 온 마음으로 내 아이들을 향하는 나의 사랑이다.

물론 내가 의리라 부르는 것이 사랑이라면, 희생과 억울함과 실망과 미련과 아픔, 눈물, 희망.... 이런 모든 것들이 이 책 제목처럼 합쳐지면 사랑이 될까? 그 모든 것이 사랑하기 때문일까, 그 모든 것때문에 사랑하는 것일까?

멜로 드라마를 보며 나도 저런 사랑 다시 해보고 싶다라고 하면, 아이들이 말한다. 이번 생은 끝났다고... 그런가? 그냥 웃는다.

이제 사랑을 시작한, 사랑이 끝난, 사랑이 진행 중인 사람. 또는 여전히 사랑이 무엇인가에 대해 질문하는 이들을 위한 책인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포르투갈의 높은 산
얀 마텔 지음, 공경희 옮김 / 작가정신 / 2017년 11월
평점 :
구판절판


이 책을 읽기 위해 그이 전작인 파이 이야기를 읽었다. 동족은 없는 망망대해에서 파이가 삶을 이어가는 시간을 통해 작가를 먼저 만나고 싶었다. 삶과 죽음 사이에서 살아남은 사람이 느끼는 절대 상실과 고독, 그리고 그들이 살아내는 삶은 전작과 이어지면서도 더 진지했고, 더 섬세했다.

‘1. 집을 잃다에서 토마스는 아내와 아들을 잃고 포루투갈의 높은 산에 남겨진 율리시스 신부가 만든 십자가를 찾으러 여행을 떠난다. 그 시대에는 정말 희귀했던 자동차라는 물건과 함께. 그와 함께 여행을 떠나며 인도에서 마주친 수많은 눈동자들이 떠올랐다. 소와 돼지와 개, , 원숭이와 사람들이 함께 하는 시골길 비포장도로를 내달리는 깨끗한 자동차 안에 타고 있는 동양인을 바라보던-그들의 시야에서 자동차가 사라질 때까지 바라보던 그들의 시선은 부담스럽기도 했다-그들의 호기심 어린 시선이, 중간에 화장실이 없어 결국 노상에서 일을 해결했던 민망한 웃음이 떠올랐다. 겐지스 강에서 보고 느낀 죽음과 그 죽음을 함께하는 살아남은 사람들의 기도가 기억났다.

노예선에서 노예들에게 신의 가호를 빌어주던 율리시스 신부가 시간이 지나면서 느끼던 신부로서의 무력감. ‘한 영혼이 어디 출신인가가 중요할까? 에덴의 추방자들은 다양하다. 한 영혼은 하나의 영혼으로서 축복받으며, 신의 사랑으로 인도되어야 한다.’고 믿은 그를 위계를 무시했다는 이유로 파문한 주교. 그들의 이야기는 지금도 이어지고 있다. 1631년 율리시스 신부의 일기 속에 등장하는 노예400여년이 흐른 2017년에도 존재한다. 리비아 난민들을 경매에 부쳐 누군가의 노예로 만드는 것이 수용되는 현대사회에도 주교가 말하는 지상의 위계가 존재하는 것이다. 그 위계는 신이 만든 것이 아님은 분명하다.

그는 투이젤루라는 마을에 있는 교회에서 율리시스 신부가 만든 십자가를 대면한다. 십자가에 매달린 예수는 신이 아니라 진화된 유인원이라고 확신하는 그에게 예수는 신이 아니었다. 그가 신이었다면 그의 간절함을 무시하고 그가 사랑하는 아버지, 아내, 아들을 순식간에 데려가지는 않았을테니까... 그는 투이젤루 마을에 도착하기 전 한 아이를 죽게 한다. 자동차 사고였다. 그가 아들을 잃었듯이 누군가에게서 아들을 잃게 했다. 그는 아이의 주검을 길에 버려두고 떠났다. 누군가 그 아이의 주검을 들고 뛰어가는 모습을 보면서 그는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교회에서 토마스는 마리아 도르스 파수스 카스트루를 만난다. 그녀의 남편은 라파엘 미구엘 산투스 카스트루이다.

1부를 접고 ‘2부 집으로에서 에우제비오 로조라의 이야기를를 접하면서 토마스의 이야기는 이렇게 끝나는 것인가란 의문이 들었다. 그러나 2부를 읽어가면서 보다 더 이야기에 대한 흥미가 생겼고 눈을 뗄 수 없게 되었다. 2부에는 1부에서 토마스가 만난 마리아와 라파엘, 그리고 토마스가 그들에게서 앗아간 아들의 이야기가 펼쳐진다.

193812월 그믐, 에우제비오의 아내 마리아다리 난간에서 떨어져 죽었으나 자살이지 타살인지 모른다-가 그의 부검실로 찾아와 애거서 크리스티의 소설과 예수의 이야기에 대해 이야기를 나눈다. 예수의 비유가 중심이다.

 

왜 진실은 허구라는 도구를 쓰려 할까요?”(p.184)

 

왜 이 문장에서 내가 멈추었는지는 알 수 없다. 다만 작가의 전작인 파이 이야기에서, 그리고 이 책에 등장하는 이야기들에서 사실이라고는 받아들일 수 없는 장면들이 등장한다. 그러나 객관적으로 증명되지 않는 허구이나 그 무엇보다 진실한 삶을 드러내는 장면들이었다.

이 이야기에서 사실은 남편 라파엘의 시신을 가방에 넣어 포루투갈의 높은 산에서 온 마리아는 에우제비오에게 부검을 부탁하며, 그가 죽은 이유가 아닌 그가 어떻게 살았는지를 알게 해달라고 한다. 부검 중에 마리아가 들려주는 이야기는 남편과의 사랑, 아들의 죽음, 아들의 죽음 이후의 삶이었다. 포루투갈인 사이에서 태어난 금발의 파란색 눈을 가진 아들, 아들의 죽음은 그들을 죽음보다 더한 고통에서 살게 했다. 그 아들은 1부에서 토마스와 연결되어 있다.

라파엘의 시신에서는 토사물, 은화, 나무피리, 망치, 달걀, , 포크, 카드, 주사위, 말린 꽃잎 등의 물건들이 나온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그의 복부에 평온하게 휴식을 취하며 누워있는 침팬지 한 마리와 침팬지를 보호하듯 안은 갈색 새끼 곰이 나온다. 그녀는 침팬지와 새끼 곰을 껴안은 채 남편의 몸에 들어가고 에우제비오는 봉합한다.

그녀는 그들을 품에 안고 남편의 주검 속으로 들어감으로써 죽음을 통한 행복한 삶을 선택했다.

사실인가? 허구다. 그렇다면 허구라는 도구를 통해 작가가 드러내고자 하는 진실은 무엇일까? 라파엘의 몸속에서 나온 물건들을 통해 마리아의 말처럼 그가 어떻게 살았는지 짐작할 수 있다. 그렇다면 침팬지와 새끼 곰은? 새끼 곰은 그들의 아들이고, 침팬지는 라파엘이다. 아들을 지키지 못한 그의 죄책감, 그리움, 사랑, 슬픔이 담겨있다. 더 이상 볼 수도 들을 수도 만질 수도 없는 어린 아들을 그리는 그의 아픔이 느껴졌다. 누군가 갑자기 사라졌을 때의 상실감을 가장 많이 느낄 때는 시각도 청각도 아닌, 촉감이었다. 더 이상 만질 수 없다는 것, 사진을 쓰다듬는 것으로는 결코 충족될 수 없는 서글픔... 어쩌면 토마스와 라파엘이 아들의 죽음 이후 뒤로 걷기를 선택한 것은 시간을 되돌리고 싶은 간절함을 보여주는 것인지 모른다.

이제 남은 에우제비오는 아내의 죽음으로 인한 상실감으로 흐느낀다. 그믐날 그를 찾아와 책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고 예수의 삶과 죽음을 이야기한 마리아는 이미 세상을 떠나 실존하지 않는 존재였다. 그러나 그 대화의 시간엔 진실이 담겨있었다.

그렇게 2부가 끝나고 이야기는 1981년 피터의 이야기로 넘어간다. ‘3부 집’. 물론 1부와 2부와 연결되어 있을 것이라는 기대감이 든다.

피터는 아내를 잃었다. 그리고 우연한 기회에 만난 유인원 오도를 입양하여 캐나다를 떠나 자신의 고향인 포루투갈의 높은 산 투이젤루- 으로 떠난다. 아니 집으로 돌아간다. 그가 우연히 살게 된 집. 그곳은 라파엘과 마리아의 집이었다. 그곳에서 피터와 오도는 서로 교감하면서 여유롭게 살게 되고, 우연히 에우제비오에게 남겨졌던 라파엘의 몸에서 나온 물건들이 담긴- 마리아의 가방과 에우제비오의 검시 의견서를 발견하게 된다. 그 후에 밝혀지는 일면의 사실들. 오도와 함께 한 마지막 산책에서 피터는 전설적인 동물 이베리아 코뿔소를 발견하게 된다. 코뿔소를 발견한 날 피터는 조용히 죽음을 맞이하고, 오도는 피터의 주검을 진심을 다해 안아준다. 라파엘의 침팬지처럼. 그리고 오도는 이베리아 코뿔소가 있는 방향으로 내달린다.

사랑하는 사람을 잃은 사람들과 그들에게 중요한 무언가를 알고 있는 포르투갈의 높은 산과 1부에서 3부를 관통하는 이베리아 코뿔소와 침팬지란 존재 안에 감추어진 비유 속에서

여기가 집이야. 여기가 집이야. 여기가 집이야.(Esta é a minha casa)”(p.26, 253)

너도 알잖아? 그 여자는 죽어야 해.’(p. 205, 205, 385)

란 말이 반복되며 누군가의 죽음을 통해 집-깨달음을 통한 궁극의 안식처-으로 돌아오는 사람들의 진실된 삶이 펼쳐진다. 전작보다 더 섬세하게 그려지는 인물들의 삶이 끝나는 마지막 책장을 덮으며 엄지 척!

 

나는 자유로운 자들이 아니라 자유롭지 못한 자들의 목자가 된다.

자유로운 자들에겐 자신들의 교회가 있다.

내 무리의 교회는 벽이 없고 주님께 이르는 천장도 없다.(p. 67)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파이 이야기
얀 마텔 지음, 공경희 옮김 / 작가정신 / 2004년 11월
평점 :
구판절판


동물원에서 뛰어놀던 피신 몰리토 파텔.

피싱이라는 놀림이 싫었던 아이는 자신을 파이라고 설명하는 재치가 있었고, 기독교도였고, 힌두교도였고, 이슬람교도였다. 왜 종교는 하나여야 하냐는 엉뚱한 질문에, 종교의 자유라는 말 속에 숨어 있던 구속-하나의 유일한 종교를 가져야 한다-을 발견하게 된다.

해변 산책길에서 신부와 힌두 사제와 이슬람 지도자를 한꺼번에 만난 장면에서 웃음이 터졌다. '사랑'이라고 말했던 사람들이 저마다 자신의 종교 안에서만 구원을 얻을 수 있다고, 자신의 신의 우월성을 주장하며 얼굴을 붉히는 장면에서 인간에 대한 신의 '무한한 사랑'은 자신을 믿지 않는 인간에게는 주어지지 않는 '조건적 사랑'이 된다. 피싱의 아버지가 주장한 '종교의 자유'에 대해 세 사람은 "옳습니다! '종교들'이 아니라 한 '종교'지요!"(p.93)라고 합의된 의견을 보인다. '종교들'이 아닌 '종교'의 자유. 그것은 곧 종교의 '자유'는 종교의 '구속'과 같은 말이 되는 순간이었다. 그랬다. 지금까지 생각하지 않았던 것이었는데... 그렇게 행복했던 어린 피싱은 캐나다로 가는 도중 배의 침몰과 함께 태평양 한 가운데에 오랑우탄과 하이에나, 얼룩말과 뱅골호랑이와 남게 된다.

바나나를 타고 온 오랑우탄, 다리가 부러진 얼룩말, 사나운 하이에나, 그리고 뱅골 호랑이 리처드 파커....

그 끝이 보이지 않는, 하늘과 바다가 맞닿은 곳이 계속되는 바다 위에서 호랑이와 단 둘이 남게 된 어느 날, 피싱은  새로운 희망을, 용기를 갖는다. 피싱이 리처드 파커를 길들이려 노력하며 함께 살 수 있었던 것은 삶에 대한 희망보다는 외로움때문이었다. 죽음을 옆에 두고 있지만 죽음보다 더 두려운 외로움을 떨칠 수 있었으므로.

그렇기에 멕시코 해안에서 자신이 살았음에 기뻐하기 보다 아무런 인사도 없이 떠난 리처드 파커와의 이별을 더 슬퍼했는지 모른다. 그 장면에서 문득 리처트 파커는 '나'이면서 '나'가 아닌, '나'의 무의식 속에 있던 또 다른 '나'가 아닐까란 생각이 들었다. 태평양 한가운데서의 삶을 견디기 위해 나의 무의식에서 터져 나온 또다른 존재. 그러므로 멕시코 해안에서의 이별은 필연적인 것이었다. 피싱 몰리토 파텔이 유일한 생존자가 되는 순간이었고, 더이상 바다 한가운데에서의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아도 되는 순간이었고, 무엇보다 더이상 외로워하지 않아도 되었므로...

그가 인터뷰에서 밝힌 동물이 아닌 이야기 속에 등장하는 내용이 사실인지, 동물들과 함께 한 이야기가 사실인지, 그 둘다 거짓인지, 무엇이 진실인지 그것은 알 수 없다.

그러나 나는 동물이 등장하는 이야기를 듣고 싶다. 사람들이 현실적인 이야기라고 받아드리기 어렵다고 할지라도 말이다.

나는 피싱이 리차드 파커와 함께 한 구명보트 위에서의 수많은 밤을 기억하고 싶다. 빛나는 별빛과 돌고래의 투명한 눈. 하늘에서 내리치는, 폭발적인 힘으로 잠깐 나타났다 사라진 거대한 흰 나무를 기억하고 싶다. 흔들림조차 없는 바다와 거세게 몰아치는 파도, 그리고 그 속에서 삶을 향해 견디고 나아가는 소년과 호랑이를 아주 오랫동안 기억하고 싶다. 하늘과 바다 사이 온갖 바람을 견디며 온갖 밤을 보내고 아침 태양을 맞이한 시간들을. 그리고 이제는 그들을 붙들고 있던 원을 벗어나 '종교들'의 자유를 누리며 행복하게 살아가기를 바란다.


그 둘 사이에, 하늘과 바다 사이에 온갖 바람이 있었다.

또 온갖 밤과 온갖 달이 있었다.

조난객이 되는 것은 계속 원의 중심점이 되는 것과 같다. 아무리 많은 것이 변하는 것 같아도-바다가 속삭임에서 분노로 변하고, 상큼한 하늘이 앞에 보이지 않는 흰색이 되었다. 칠흑같이 까맣게 변해도-원점은 변하지 않는다. 당신의 시선은 언제나 반지름이다. 원주는 대단히 크다. 사실 원들이 겹쳐 있다. 조난객이 되는 것은 춤추듯 겹쳐지는 원들 사이에 붙들리는 것이다. (p.268)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천국에서 만난 다섯 사람
미치 앨봄 지음, 공경희 옮김 / 세종(세종서적) / 2005년 3월
평점 :
구판절판


『천국에서 만난 다섯사람』을 읽은 지 꽤 오랜 시간이 지났다. 구체적인 내용은 기억나지 않지만 책을 읽으면서 느꼈던 감정의 여운들이 아주 오래 남아있었다. 여운만 되새기다가 내가 잊어버린 내용이 알고 싶어 중고책을 하나 구입했다.

누군가의 손 때가 묻어있던 책이다. 첫 페이지를 넘기는데

'일에 쫓기고 시간에 쫓기는 아버지께 차 한 잔과 책 한 권으로 삶의 진실된 의미와 부드러운 여유를 가지시길…' -현호-

라는 메모가 적혀있었다. 아들이 아버지께 건넨 선물이었나보다. 그리고 어떤 이유에서건 내게로 왔다. 아버지를 향한 아들의 마음을 간직한 채로 말이다.


놀이공원 정비반장인 에디(에드워드)의 죽음으로 시작되는 이야기. 그는 죽은 후 다섯 사람과 만난다. '인연, 희생, 용서, 사랑, 화해'로 이어지는 다섯 개의 장 속에서 에디가 살았던 83년 동안 그가 알았건 몰랐건 그의 삶 어느 순간에 스쳐간, 그러나 그의 삶과 연결된 중요한 사람들을 만나게 된다.

그가 만난 첫 사람, 인연의 장에서 파란 사내를 만났을 때, 그는 목소리가 나오지 않아 말을 할 수 없었다.


"곧 목소리가 나올 겁니다. 우리 모두 같은 과정을 거치지요. 처음 도착하면 말을 할 수가 없어요."

그는 빙그레 웃으며 덧붙였다.

"말을 듣는 데 도움이 되니까."(p.49)


말을 할 수가 없는 것이 말을 듣는 데 도움이 된다는 것에서 살면서 듣기 보다는 말하기를 많이 한다는 사실을, 타인을 이해하려고 하기 보다는 내 입장만을 내세우기에 바쁘다는 것을 알게 된다.

함께 전쟁에 참여했던 대위를 만나고, 자신이 가장 미워했으나 사랑했던 아버지를 만나고, 삶의 가장 행복한 순간을 함께 한 아내를 만나고, 전쟁 중에 자신의 손에 의해 불에 타 죽었던 한 소녀를 만나는 에디를 보며 내가 죽어서 만날 다섯 사람은 누구일까에 대해 생각해 보게 된다.

나의 삶 속에서 '인연, 희생, 용서, 사랑, 화해'로 연결된 사람들은 누구일까? 누구를 만나고 싶은가? 내가 머물고 있을 장소는 어디일까? 아직 내게는 삶의 시간이 많이 남아있을 것이라는 전제하에 앞으로 나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에 대한 질문을 던져본다. 내가 앞으로 어떻게 살아가느냐에 따라 내가 만나야 할 다섯 사람이 바뀔 수도 있으니까.


인연 : "타인이란 아직 미처 만나지 못한 가족일 뿐이에요."(p.66)

희생 : "때로 소중한 것을 희생하면, 사실은 그걸 잃는 게 아니기도 해. 잃어버리는 게 아니라 그걸 다른 사람에게 넘겨주는 것이지."(p.118)

용서 : "분노를 품고 있는 것은 독이에요. 그것은 안에서 당신을 잡아먹지요. 흔희 분노는 우리에게 상처를 준 사람들을 공격하는 무기처럼

       생각 되지만, 증오는 굽은 칼날과 같아요. 그 칼을 휘두르면 우리 자신이 다쳐요. 에드

       워드, 용서하세요."(p.176)

사랑 : "당신은 잃은 게 아니었어요. 난 바로 여기 있었어요. 또 어쨌든 당신은 날 사랑했어

       요. 잃어버린 사랑도 여전히 사랑이에요.(…) 추억 말이에요. 추억이 동반자가 되는 거

       예요. 당신은 그걸 키우고 가구고 품어주고. 생명은 끝나게 마련이지만 사랑은 끝이 없

      어요."(p.216)

화해 : "내가 슬펐던 것은 삶에서 뭘 해내지 못했기 때문이지. 난 아무것도 아니었어. 아무것

      도 이루지 못한 채 헤매고 다녔지. 난 그곳에 있으면 안 될 사람 같았어."/ "거기에 꼭 있

      어야 할 사람이었는데." (…) "어린이 때문에. 아저씨가 아이들을 안전하게 해주니까. 나

      한테도 잘해주 니까."/ "거기가 아저씨가 있어야 될 데였어요."(p.238)


다섯 사람과의 만남과 에디의 생일날 일어난 일들이 교차하면서 이어지는 내용은 쉽게 읽어 갈 수 있었다. 241쪽 안에 내용을 담았기에 각 내용들에 대한 자세한 묘사가 부족하게 느껴질 수 있다. 그러나 책을 읽고 나서 그동안 내가 어떻게 살았고, 앞으로 어떻게 살아가야하는가에 대해 고민하며, 내가 천국에서 만날 다섯 사람을 미리 떠올려 보는 것도 좋다.

이 책을 읽으면서 이 책의 첫 주인인 현호 아버지에 대해 생각해 보았다. 이 한 권의 책으로 그분과 나도 삶의 연결고리 안에 들어와 있는 것은 아닌지 말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