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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국에서 만난 다섯 사람
미치 앨봄 지음, 공경희 옮김 / 세종(세종서적) / 2005년 3월
평점 :
구판절판
『천국에서 만난 다섯사람』을 읽은 지 꽤 오랜 시간이 지났다. 구체적인 내용은 기억나지 않지만 책을 읽으면서 느꼈던 감정의 여운들이 아주 오래 남아있었다. 여운만 되새기다가 내가 잊어버린 내용이 알고 싶어 중고책을 하나 구입했다.
누군가의 손 때가 묻어있던 책이다. 첫 페이지를 넘기는데
'일에 쫓기고 시간에 쫓기는 아버지께 차 한 잔과 책 한 권으로 삶의 진실된 의미와 부드러운 여유를 가지시길…' -현호-
라는 메모가 적혀있었다. 아들이 아버지께 건넨 선물이었나보다. 그리고 어떤 이유에서건 내게로 왔다. 아버지를 향한 아들의 마음을 간직한 채로 말이다.
놀이공원 정비반장인 에디(에드워드)의 죽음으로 시작되는 이야기. 그는 죽은 후 다섯 사람과 만난다. '인연, 희생, 용서, 사랑, 화해'로 이어지는 다섯 개의 장 속에서 에디가 살았던 83년 동안 그가 알았건 몰랐건 그의 삶 어느 순간에 스쳐간, 그러나 그의 삶과 연결된 중요한 사람들을 만나게 된다.
그가 만난 첫 사람, 인연의 장에서 파란 사내를 만났을 때, 그는 목소리가 나오지 않아 말을 할 수 없었다.
"곧 목소리가 나올 겁니다. 우리 모두 같은 과정을 거치지요. 처음 도착하면 말을 할 수가 없어요."
그는 빙그레 웃으며 덧붙였다.
"말을 듣는 데 도움이 되니까."(p.49)
말을 할 수가 없는 것이 말을 듣는 데 도움이 된다는 것에서 살면서 듣기 보다는 말하기를 많이 한다는 사실을, 타인을 이해하려고 하기 보다는 내 입장만을 내세우기에 바쁘다는 것을 알게 된다.
함께 전쟁에 참여했던 대위를 만나고, 자신이 가장 미워했으나 사랑했던 아버지를 만나고, 삶의 가장 행복한 순간을 함께 한 아내를 만나고, 전쟁 중에 자신의 손에 의해 불에 타 죽었던 한 소녀를 만나는 에디를 보며 내가 죽어서 만날 다섯 사람은 누구일까에 대해 생각해 보게 된다.
나의 삶 속에서 '인연, 희생, 용서, 사랑, 화해'로 연결된 사람들은 누구일까? 누구를 만나고 싶은가? 내가 머물고 있을 장소는 어디일까? 아직 내게는 삶의 시간이 많이 남아있을 것이라는 전제하에 앞으로 나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에 대한 질문을 던져본다. 내가 앞으로 어떻게 살아가느냐에 따라 내가 만나야 할 다섯 사람이 바뀔 수도 있으니까.
인연 : "타인이란 아직 미처 만나지 못한 가족일 뿐이에요."(p.66)
희생 : "때로 소중한 것을 희생하면, 사실은 그걸 잃는 게 아니기도 해. 잃어버리는 게 아니라 그걸 다른 사람에게 넘겨주는 것이지."(p.118)
용서 : "분노를 품고 있는 것은 독이에요. 그것은 안에서 당신을 잡아먹지요. 흔희 분노는 우리에게 상처를 준 사람들을 공격하는 무기처럼
생각 되지만, 증오는 굽은 칼날과 같아요. 그 칼을 휘두르면 우리 자신이 다쳐요. 에드
워드, 용서하세요."(p.176)
사랑 : "당신은 잃은 게 아니었어요. 난 바로 여기 있었어요. 또 어쨌든 당신은 날 사랑했어
요. 잃어버린 사랑도 여전히 사랑이에요.(…) 추억 말이에요. 추억이 동반자가 되는 거
예요. 당신은 그걸 키우고 가구고 품어주고. 생명은 끝나게 마련이지만 사랑은 끝이 없
어요."(p.216)
화해 : "내가 슬펐던 것은 삶에서 뭘 해내지 못했기 때문이지. 난 아무것도 아니었어. 아무것
도 이루지 못한 채 헤매고 다녔지. 난 그곳에 있으면 안 될 사람 같았어."/ "거기에 꼭 있
어야 할 사람이었는데." (…) "어린이 때문에. 아저씨가 아이들을 안전하게 해주니까. 나
한테도 잘해주 니까."/ "거기가 아저씨가 있어야 될 데였어요."(p.238)
다섯 사람과의 만남과 에디의 생일날 일어난 일들이 교차하면서 이어지는 내용은 쉽게 읽어 갈 수 있었다. 241쪽 안에 내용을 담았기에 각 내용들에 대한 자세한 묘사가 부족하게 느껴질 수 있다. 그러나 책을 읽고 나서 그동안 내가 어떻게 살았고, 앞으로 어떻게 살아가야하는가에 대해 고민하며, 내가 천국에서 만날 다섯 사람을 미리 떠올려 보는 것도 좋다.
이 책을 읽으면서 이 책의 첫 주인인 현호 아버지에 대해 생각해 보았다. 이 한 권의 책으로 그분과 나도 삶의 연결고리 안에 들어와 있는 것은 아닌지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