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얀 마물의 탑 모토로이 하야타 시리즈
미쓰다 신조 지음, 민경욱 옮김 / 비채 / 202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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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줄기 빛이란 의외로 많은 의미를 가지고 있다. 위급한 순간에 보내는 신호가 될 수도 있고. 어두운 곳에서 도움이 되는 길잡이가 될 수도 있다. 이건 이로운 관점에서 본 해석이다. 그런데 반대로 해로운 관점에서 보면 어떤 의미가 나올까. 알 수 없는 무언가가 있다는 표시. 경계심이 생기게 하지만 묘하게 이끌려 가게 되는 곳. 확실한 건 이거 밖에 없다. 직접 확인하기 전까지는 무엇인지 모른다. 결국 이로운지, 해로운지는 겪어봐야 알 수 있다는 것이다. 그렇기에 중요한 건 믿음과 판단이다. 눈 앞에 보이는 것에 대해 자신의 믿음과 판단으로 멀리 하거나 가까이해야 한다는 뜻이다.

키타큐슈의 탄광에서 벌어진 사건 이후 광부를 그만둔 모토로이 하야타는 등대지기가 된다. 두 번째 근무지인 간세이 지역의 고가사키 등대로 향하나 어딘지 모르게 지역 사람들이 등대를 꺼림직 하게 여긴다는 걸 느낀다. 이런 탓인지 시라몬코의 전설과 수상쩍은 하얀집에 대한 일로 예정된 날보다 늦게 등대에 도착하게 된다. 하야타는 그곳에서 등대장 이사카 고조로부터 전쟁 이전에 고가사키 등대에서 근무하며 겪은 기이한 일에 대해 듣게 되는데...

등대라고 하면 솔직히 뭔가 크게 떠오르는 게 없었긴 하다. 그저 바다에 가면 종종 보이는 구조물이자, 불빛으로 항로에 도움을 주고, 종종 기이한 괴담이 나오기도 하는 곳이다. 그런데 이 작품은 배경으로 나오는 것 뿐만 아니라 일본의 등대 역사를 다루는 면이 많다 보니 이렇게까지 중요한 시설이라는 걸 처음 알게 된다. 또한 지형적인 특성상 상당히 외로운 직업일 수밖에 없다는 점도 말이다. 재미있는 건 이러한 면이 묘하게 민속 문화와 비슷하게 보이기도 한다. 역사가 깊고 외진 곳에서 위치했다는 점에서 그렇다.

주로 바다가 많이 나올 줄 알았는데, 산속에 대한 부분도 꽤 있어서 의외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다시 생각해 보면 등대가 바다를 향해 있는 건 맞지만, 그 주변이 육지의 어디 부분이느냐에 따라 다양한 경우가 있을 법 하다. 가령 인구 수가 얼마 안 되는 외딴 섬이나 주변에 민가가 거의 없는 산간벽지와 맞닿아 있는 해안의 경우처럼. 사람이 많은 도심지 근처에만 등대가 있었다면 외로운 직업이라는 말이 괜히 나오지 않았을 테니까. 이러한 점에서 등대는 바다와 육지 모두와 가까우면서도 위치에 따라 이미지가 다양한 독특한 장소일지도 모르겠다.

다소 반복되는 구조를 가진 스토리다 보니 경우에 따라 진부함을 느낄 수도 있다. 현재와 과거를 연결하는 동일한 장소, 사건, 경험에 대한 부분은 무서운 이야기에서 은근 자주 나오는 클리셰긴 하다. 과거에 일어났던 일이 그대로 현재에 다시 반복됐다는 부분이 단순 기시감이 아니라는 점에서 섬뜩하게 만든다. 문제는 이러한 공통된 부분이 공포로 다가오는 과정이 짧으면 모를까 이 소설처럼 다소 시간이 필요한 경우라면 지루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또한 이러한 클리셰가 워낙 흔하다는 점도 있고. 다만 구체적으로 이 반복되는 구조 안에 어떤 비밀이 있고 또 어디에서 다른 점이 있는지 관심이 생긴다면 별 문제는 아니다. 큰 결점이라기 보다 워낙 고전적인 스토리 구조다 보니 생길 수밖에 없는 호불호라고 본다.

추리소설이라는 면에서 보면 물증과 근거가 반드시 있어야 되는 현실적인 사건이 아닌, 추정의 영역으로 풀어야 되는 비현실적 사건을 다룬 괴기 미스터리에 가까운 편이다. 본격적인 사건이라 해야 될 것이 결말이 가까워져야 나타나는 동시에 해결로 직행하며 끝나기 때문에 추리 면에서 다소 약하게 보일 여지가 있다. 사건이 일어나게 된 배경만 한가득 보여주다가 끝나는 것처럼 보이기 때문에 그렇다. 물론 이건 공포 부분에 만족하면서 보면 크게 문제 되지 않기에 참고해야 될 사항에 가깝다. 혹시나 평소 알던 추리소설 같은 느낌으로 이 작품을 보게 되면 실망할 가능성이 클 수도 있으니까.

등대와 민간 신앙이라는 전혀 어울리지 않을 두 요소를 통해 작은 사회와 전근대성의 폐해를 나타내서 여러모로 놀랍다. 앞에서도 말했듯이 이 두 요소에는 비슷한 점이 있다. 가까운 사람들만 존재하는 사회. 외진 곳에 동떨어져 있는 환경. 하지만 등대의 경우는 근무 환경만 그렇게 보이는 것이지, 더욱 넓은 세상을 향해 나아갈 수 있다는 확장성이 있다. 이러한 차이점이 존재하는 탓에 등대와 민간 신앙에서 나타난 공포의 충돌은 이렇게 보일 여지도 있다. 더 넓은 세상으로 나아가고자 하는 열망을 괴이한 존재가 가로막기 위해 혼동을 준다고. 하필이면 작중의 괴이가 등대의 빛과 같은 하얀 존재로 묘사되기에 더욱 그렇게 보이게 된다. 앞길을 비추는 빛인지, 방해하는 괴이인지. 이걸 확인하고자 가까이 가게 되는 순간 이미 그걸 선택해버리는 결과가 되어버리니 어떻게 해야 할지 참으로 막막하게 한다.

결국 고가사키 등대란 세상으로 나아가고자 하는 길이 막혀버리며 생긴 원한과 여전히 앞을 가로막고 선 과거라는 이름의 괴이가 뒤섞인 비극의 장소나 다름없다.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게 막는 동시에, 누군가가 데리고 나가줬으면 하는 모순에서 오는 공포란 대체 뭐라 설명해야 할까. 나 자신도 그곳에 붙잡혀 갇히고 말 것이라는 위험성과 원치 않은 꺼림직한 존재를 떠 앉고 나갈 수밖에 없다는 공포. 이 두 가지를 동시에 견딜 수나 있을지도 의문이다. 어쩌면 간혹 등대에 떠도는 괴담 같은 것도 이와 비슷하게 발생했을지도 모르겠다. 외로운 환경을 벗어나고픈 욕구와 자리를 지켜야 된다는 사명감이 충돌해서 말이다.

한편으로 이 작품에 언급된 광부를 그만둔 이후이자 등대지기가 되기 전의 시점에 대한 부분은 어떤 일일지 궁금하게 한다. 작가의 다른 소설에 나오는 캐릭터와의 접점도 있다 보니 더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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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가의 그림자 매그레 시리즈 12
조르주 심농 지음, 이상해 옮김 / 열린책들 / 2011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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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언제나 사람 사이에 문제를 일으키는 것이자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건 언제나 돈이다. 돈 문제로 얽히면 좋은 관계이던 사람과도 금방 싸움이 난다고 하지 않은가. 대체로 이런 문제에서는 가진 자들이 더하다는 말을 많이 하고는 한다. 그렇게 많이 가지고도 더 가지려 한다. 그렇게 가지고도 너무 씀씀이가 박하다. 이런 식으로 언제나 부자는 나쁜 사람으로 지목된다. 하지만 세상 일은 언제나 반드시 그렇다는 건 없다. 특히 돈 문제 앞에서는 누구나 나쁜 사람이 될 가능성이 있다.

파리 보주 광장 61번지에서 걸려온 신고로 출동한 매그레 반장. 그곳은 아파트와 제약회사가 위치한 곳으로 사장인 레몽 쿠셰가 총에 맞아 죽은 채로 발견된 것이다. 시체의 등 뒤에 있던 금고 속 돈까지 도난 당한 상태였지만, 매그레 반장은 정황상 살인범과 절도범을 동일 인물로 여기지 않는다. 한편 쿠셰와 관련 있는 사람들을 하나씩 만나보니 대부분 상당한 돈 문제가 얽혀 있다는 점이 밝혀지는데...

사업에 성공해 부자가 된 평범한 남자. 관련 인물로는 현 부인, 전 부인과 재혼한 남편, 전 부인 사이에서 낳은 아들 그리고 밖에서 만나는 여자. 이런 관계만 봐도 흔한 드라마가 떠오를 것이다. 요즘으로 치면 재벌 집안이 나오고, 돈 문제로 다툼이 발생하고, 이런저런 일이 발생하는 그런 스타일 말이다. 하지만 그렇게 흔해 빠진 이야기는 아니다. 피해자 쿠셰는 자수성가 해서 뒤늦게 부자가 된 경우라 그런지 흔히 떠오르는 상류층 이미지와 거리가 멀다. 오히려 소탈하고 누구에게 든 돈을 아끼지 않아서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좋은 인상만 가득하다. 그렇기에 이런 의문이 생길 수밖에 없다. 도덕적인 면과는 별개로 이렇게 씀씀이가 좋은 사람을 굳이 죽일 이유가 있다면 대체 무엇일까. 역시 돈 때문일까.

사방에서 돈 얘기가 나오고, 돈 때문에 발생하는 사연들을 늘어 놓는 한편으로 이런 생각이 드는 순간이 계속 나온다. 돈이 먼저인가. 사람이 먼저인가. 다르게 말하면 이렇다. 돈을 얼마나 버는 문제로 사람을 판단할 것이냐. 아니면 돈과 상관 없이 사람을 판단할 것이냐. 이게 조금만 관점을 다르게 봐도 의미가 확 바뀌다 보니 굉장히 어려운 문제다. 그것도 쿠셰라는 인물이 소시민 스타일을 더 편하게 여기는 상류층이라서 말이다. 다른 작품 같았으면 그저 돈이 많으니까 사람이 좋아 보인다, 돈이 많으니 저런 일 당할 만 했다는 얘기가 아무렇지 않게 나왔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쿠셰의 인간적인 면이 계속 부각되니 돈은 아무 것도 아니게 된다. 겨우 돈 때문에 이런 사람이 죽었다는 것만 남을 뿐이다.

결국은 돈 문제 때문에 벌어진 사건이긴 했지만, 이렇게 까지 돈에 미쳐 있었다는 실체를 보면 경악할 수밖에 없어진다. 일상에서도 늘 나오는 말이 돈 문제이긴 하다. 하지만 이걸로 사람의 가치를 절대적으로 판단하고, 스스로의 선택으로 불행해진 현실에 대해 책임을 전가 하고, 그저 돈에만 집착하는 것이 과연 정상이라 할 수 있을까. 물론 범인은 범인대로 딱하게 보일 부분이 없는 건 아니지만, 어느 정도의 자기 만족이라는 것이 전혀 없었기 때문에 악독하다는 인상이 더 크다. 자신이 생각한 이상향과 현실 간의 괴리를 견디지 못하고 히스테리가 폭주하며 스스로를 망가뜨린 거나 다름 없는 것이다.

여기서 다시 앞서 다룬 것과 비슷한 문제로 돌아오게 된다. 돈이 문제냐. 사람이 문제냐. 돈 때문에서 사람이 나쁜 짓을 하게 되는가. 사람이 나쁘기에 돈에 집착하게 되는 건가. 어떻게 보면 피해자인 쿠셰가 그 답을 가장 잘 알고 실천했던 것일지도 모르겠다. 한 평생을 돈 때문에 힘들게 살았지만, 부자가 돼서는 집착하지 않고 지냈으니 말이다. 단순 사치가 아닌 자기 나름대로 베푸는 것이나 다름 없었지만, 이걸 제대로 보여줄 기회는 영영 찾아오지 못하게 됐다. 돈의 위험성을 알고 조심했지만 결국 돈 때문에 죽게 됐으니 엄청난 비극인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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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괴 2 - 산에 얽힌 기묘한 이야기 에이케이 트리비아북 AK Trivia Book
다나카 야스히로 지음, 김수희 옮김 / AK(에이케이)커뮤니케이션즈 / 2023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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낯선 것과 익숙함의 경계는 언제 구분 되는 걸까. 자주 마주치고, 경험하게 되면 자연스레 익숙한 것이 되고. 한 번도 본 적이 없거나 아주 드물게 마주치게 되는 것이라면 낯선 것이 된다고 한다. 이게 참 묘한 점은 무엇이든 자주 접하면 별거 아니게 된다는 의미다. 괴이한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말로 보일 수도 있지만, 존재 자체를 부정하지는 게 아니라 당연한 일이라 이상할 것이 없다는 뜻이다. 분명 뭔가는 있다. 그저 어쩌다 마주칠 수 있는 당연한 것일 뿐이다.

산에 대한 인상이 대체로 이렇다고 한다. 갑자기 겪으면 이상하고 무서워 보일 일이 산에 익숙한 사람들에게는 그다지 별일이 아니라고 하니 말이다. 물론 진짜 아무 것도 아니라고 여기는 이들이 있는가 하면, 무서워 하면서도 그냥 무시한 경우도 있다. 산이 곧 생계를 위한 일터이기에 피할 수 없으면 인식이라도 하지 말자는 의도였다고 한다. 그렇다면 진짜 낯설다와 익숙함의 차이일 뿐이라고 봐야 하는 걸까. 산에는 분명 사람의 이해를 넘어서는 뭔가 있다고 봐야 되는 걸까. 그것과 자주 마주치다 보면 어쩌다 자주 보이는 모기나 파리처럼 그저 익숙한 일상에 지나지 않을까.

1편에 이어서 산에 대한 다양한 이야기는 계속 된다. 여전히 도깨비불이 나오고 여우가 나오고, 너구리가 나오고, 유령이 나오고, 괴이한 실종 사건이 발생하고, 이상한 소리도 들리는 현실과 동떨어진 곳이다. 주요 테마라고 한다면 모노라고 지칭되는 신비한 영력을 지닌 괴이한 존재다. 이것에 대한 체험담을 보면 구체적으로 무엇이라 지칭하기 어렵긴 하다. 그저 형체 없이 존재감으로만 느껴지는 존재이자, 때로는 다른 산속 괴이와 크게 다르지 않은 것 같기도 하다. 아마 야생 동물이나 유령, 도깨비불 같이 구체적인 형태가 없는 것에 어떻게든 이름을 붙여 설명이 가능하게 만들려는 의도였을지 모르겠다.

이번 책에서는 2000년대 이전의 시점보다 현대에 가까운 시점의 경험담이 더 많은 것 같았다. 주로 임업 관련 종사자, 현직 사냥꾼, 산 가까이에서 일을 하는 분들의 경험담이 많아서 그렇다. 기계가 갑자기 고장 나는 일이나, 이상한 일로 사고를 당하거나, 현업을 하던 도중에 무언가를 접하는 일이 대부분이다. 이 중에서 앞서 가던 사람을 도저히 쫓아갈 수 없었던 무서운 이야기처럼 경트럭이 자꾸만 앞에서 나타난 경우가 여러모로 인상적이다. 또 도깨비불에 대해 UFO라는 해석이 나오기도 해서 이게 현대적인 관점인가 싶기도 했다. 오래된 이야기의 경우는 이런 분들의 어린 시절에 해당되는 5, 60년대나 더 멀리 가면 에도 말기에서 메이지 유신 초기 무렵까지 내려갈 정도다. 이 에도 말기에 벌어진 일은 마치 한국 공포영화인 <여곡성>에 나온 한 장면과 유사해서 섬뜩하게 보일 만하다.

기존에 언급되던 것 이외에 많이 나오는 내용이라면 화장에 관련된 이야기다. 현대에는 다소 익숙한 장례 방식이라 이게 대체 뭐가 무섭다는 건지 이해하기 어려울 만도 하다. 그런데 일본에서는 1965년 경까지 화장을 하게 되면 들판에서 하는 경우가 많았다고 나온다. 탁 트인 공개된 장소에서 하는 것도 모자라 도중에 온갖 기이한 일이 발생했다고 하니 여러모로 무서웠을 만하다. 정체불명의 괴현상이라기 보다는 어느 정도 설명이 가능한 일로 보이긴 하다. 하지만 설명이 가능하냐, 불가능하냐의 문제가 아니다. 그저 이런 현상이 벌어지는 걸 눈으로 직접 보면 매우 놀랄 수밖에 없다. 다른 것도 아니라 시체가 불타다 발생하는 일이니 더욱 그럴 것이다.

그 밖에도 이 책만의 특이한 소재 거리는 더 있다. 주술사에 대한 부분은 원인불명의 질병이나 귀신이나 여우가 들렸다고 퇴치하기 위해 부른다는 점에서 한국의 무당과 여러모로 유사하게 보였다. 일본의 저주 주술로 유명한 축시의 참배 부분은 뭔가 기이하기 보다는 오히려 현실적인 면이 강해서 무서운 축에 속했다. 음산한 기운을 잘 느끼는 보통 사람의 이야기 같은 경우는 범상치 않은 집안 내력이나 주변에 영향을 받았다는 부분이 신기한 점이다. 영험한 힘을 보여준 수행자의 이야기는 이게 실화라고 믿기 어려울 정도로 판타지 같았다. 이렇듯 매번 패턴이 비슷비슷할 것 같은 산 속 괴이담 속에서도 종종 특이 사례가 나오는 모양이다.

실화 괴담집 같던 이 책도 계속 접하다 보니 이제 산 속에 있는 무언가가 익숙해 지지 않았을까 생각한다. 실제로 무슨 일을 겪게 된다면 또 다를지도 모르지만, 적어도 산에서 흔히 나올 수 있는 것 중에 하나라는 인식이 생겨 침착하게 대응할 수도 있을지 모른다고 여기는 것이다. 무작정 없다고 여기기에는 수 많은 목격담과 증언들이 남아 있다. 부정한다 해도 그 순간에 받은 강렬한 충격은 기억 속에 오래 남아 언젠가는 무심코 다시 튀어 나올 수도 있다. 그렇기에 어떻게든 이유를 만들어내거나 해서 익숙해질 필요성이 있다고 본다. 인식을 거부하기 보다는 적어도 무엇일지도 모른다는 가정을 해둬야 미지에 대항할 수 있을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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센 강의 춤집에서 매그레 시리즈 11
조르주 심농 지음, 임호경 옮김 / 열린책들 / 2011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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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에게나 자신의 자리라는 것이 필요할 때가 있다. 자신 만의 공간. 자신이 있어야 될 곳. 근심 없이 편안히 있을 곳. 없으면 허전한 곳. 원인은 다르더라도 이유는 거의 비슷하다. 문제는 이걸 가까운 곳에서 찾지 못하면 멀리서 찾게 된다는 거다. 적당한 곳에서 잠깐 기분 전환 하는 걸 넘어 다소 진지하게 파고든다는 말이다. 그것도 남의 자리를 노리고. 이런 경우 대부분의 원인을 어리석게 말려든 사람이라고 보는 시각이 많다 보니 딱하게 보일 수밖에 없다. 단 한 번의 실수로 인생 전체를 날려 버린 거나 마찬가지니까.

상테 교도소에 사형을 선고 받고 수감되어 있던 범죄 조직의 두목 르누아르는 매그레 반장에게 어린 시절의 일을 털어 놓는다. 누군가가 운하에 시체를 버리는 장면을 목격했고 얼마 동안 이걸 빌미로 협박해 돈을 요구했던 것이다. 그리고 체포되기 직전에 두 냥 춤집이라는 곳에서 그 사람을 목격했다고 한다. 이후 다른 업무로 인해 바빠져 크게 신경 쓰지 못하던 매그레 반장은 우연히 모자 가게에서 어떤 남자를 목격한다. 그가 두 냥 춤집에서 열리는 가짜 결혼식에 참석할 예정이라는 걸 듣고 별 생각 없이 뒤를 따라갔다가 예상치 못한 사건에 휘말리는데...

존재조차 확인 되지 않은 미제사건을 쫓아가다 벌어진 예상치 못한 돌발 상황이나 다름 없다. 안 그래도 작중 시점이 휴가철이라 경찰 인원이 모자르고, 매그레 반장 역시 휴가를 앞두고 사건이 터진 거라 이래저래 심란한 모습을 보인다. 미제사건의 흔적을 발견해 쫓아 갔더니 또 다른 사건으로 이어진데다 별다른 단서 없이 계속 복잡하게 만드는 일만 벌어지니 답답할 만도 하다.

멀쩡한 직업을 가지고 살면서도 겉과 속이 다른 면으로 인해 벌어진 어처구니 없는 비극이라 사건 관계자 대부분이 비참하게 보인다. 하루하루가 재미 없더라도 나름대로 무난하게 살 거나, 별일 없이 가족들과 잘 지낼 수도 있었다. 그런데 한순간의 허전함이나 충동적인 장난이라는 이름으로 저지른 실수로 한순간에 인생을 망치게 됐다. 이런 상황에서 어떻게든 체면을 지키고 최악의 상황을 피하려 노력하지만 결국은 더욱 깊고 냉혹한 구렁텅이로 빠지게 된다. 나름의 큰 결단을 내려도 치밀함과 냉정함이 부족하다 보니 허둥댈 수밖에 없어서 그렇다. 일개 소시민이 갑자기 전문 범죄자를 흉내 내는 것에 불과하니까. 잠시 혼란은 줄 수 있어도 오래가지 못하는 것도 그러한 이유 때문이다.

이런 이중적인 면 때문에 매그레 반장이 상당히 힘들 만도 했다. 뭔가 있다는 느낌은 들지만 조사에서는 대부분 평범한 것들 밖에 나오지 않고, 단서가 될 만한 것들을 꺼내 놓지 않고 숨기기 바쁜 이들만 있고, 분위기는 이래저래 요란한 상황이다. 사건 관계자들의 배경을 들여다 보는 매그레 반장의 스타일이 여기서는 되려 갈피를 못 잡게 만들었다는 생각도 든다. 보통 범죄를 저지르게 되는 배경은 일상과 구분되는 음울한 사연과 그림자가 있는 편인데, 이 사건에서는 구분이 되지 않았다고 보는 것이다. 일상과도 크게 다르지 않은 비일상. 자신 만의 공간, 아니면 세계로 정리된 또 다른 일상이라는 이름의 범죄라서.

어쩌면 모든 것의 시작이었던 두 냥 춤집은 그저 허물없이 지내는 자유로운 곳이 아니라 자신의 자리, 공간, 세계를 찾기 위해 몰려드는 장소였을지도 모르겠다. 누구는 단순히 주말 여가를 즐기며 기분 전환을 하는 휴양지였고. 다른 누군가에게는 비일상을 만들기 위한 비밀 장소, 일상에서 도망치기 위한 장소였을지도 모른다는 것이다. 이 차이를 보며 느낀 건 이렇다. 책이나 영화에 나오는 드라마틱한 인생은 멀리서 찾는다고 얻어지는 것이 아니다. 그저 멀쩡한 인생에 평생 남을 흠집을 내는 일탈에 불과하다. 가까이에서 스스로의 노력으로 만들어 내는 것이야 말로 진정한 드라마 같은 인생이자, 그 어디에서도 찾을 수 없는 자신의 공간이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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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물랭의 댄서 매그레 시리즈 10
조르주 심농 지음, 성귀수 옮김 / 열린책들 / 201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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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분한 삶을 벗어나 모험을 즐기고 싶다고 여기는 이들은 많다. 뭔가 멋져 보이고 많은 이들의 주목을 받으며 인기를 누리는 그런 화려한 인생 같은 것 말이다. 하지만 대부분 하나만 알고 둘을 모른다. 이런 것들을 누리기 위해서 그 만한 여유가 되는가. 이걸 통해 대체 무슨 의미를 가질 수 있는가. 그리고 이런 모험으로 인해 발생할 일들을 감당할 자신이 있는가. 그저 특별함에 취하고 싶어서, 뭐라도 된 듯한 기분을 내고 싶어서 책임 없이 즐긴다면 그에 따른 대가가 발생할 수밖에 없다. 무엇에 휘말리든 전적으로 본인 책임이라는 말이다.

벨기에 리에 주에 위치한 카바레 클럽인 게물랭에서 델포스와 샤보는 영업이 끝날 때까지 몰래 숨어 있다가 금고를 털기로 계획한다. 그런데 불 꺼진 가게 안에서 방금 전까지 같이 있었던 어떤 외국인 손님의 시체를 발견하게 되면서 곧바로 도망치게 된다. 다음 날, 신문에서는 아무런 말이 없고 게물랭도 평소와 다름 없이 영업 준비 중인 모습이라 델포스와 샤보는 당황한다. 샤보는 중요 속보가 나오지 않는지 계속 기다리던 중, 동물원 잔디밭에 있던 트렁크 안에서 어제 목격한 시체가 나왔다는 기사를 보게 되는데...

매그레 반장이 아닌 다른 인물들의 시점으로 진행되는 부분이 많다 보니 또 다른 식으로 낯설게 보인다. 분명 그 특유의 위압적인 특징을 가진 실루엣이 돌아다니는 듯한 행적이 있긴 있다. 하지만 잠깐 잠깐 언급되는 정도로 나타나기만 할 뿐, 작중 중반까지 제대로 모습을 들어내는 장면이 전혀 없다. 그렇기에 의문만 더욱 커져 간다. 매그레 반장은 벨기에까지 와서 대체 뭘 하고 있는 건가. 게물랭에서는 무슨 일이 벌어진 건가.

시체 이동의 문제에다 사건 관계자들 간의 증언이 엇갈리고 있어 상당히 복잡한 양상을 보인다. 범인의 동기조차 짐작이 가지 않는 가운데, 살해 당한 피해자 역시 뭐하는 사람인지 전혀 파악되지 않고. 여기에 무언가 잘못 돌아간다는 느낌이 있지만 구체적으로 설명이 안 되다 보니 더 그렇다. 단순히 밤 문화의 어두운 면을 다룬다고 하기에 어딘가 일상적이지 못한 면이 있어서 그렇다. 왜 거짓말을 하는 건가. 아니면 이 인물이 알고 있던 사실이 잘못된 것인가. 무얼 숨기려 하는 것인가. 이렇게 갈피를 잡기 어려운 상황에서 매그레 반장이 본격적으로 등장해 교통 정리에 들어간다.

그 어느 때보다도 매그레 반장은 사건의 무대 위에 자연스럽게 녹아 들어 있었지만 실상은 무대 감독 같은 위치에서 사건을 바라봤던 거나 마찬가지였다. 무대 위 배우들에게 정체를 들키지 않고 하나의 배역처럼 숨어서 극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살펴보며 변수를 던지는 관찰자. 평소 같다고 할 수도 있으면서 타인이 보면 매우 이상하게 보일 것 같다는 인상이다. 갈수록 뭔가 반장의 스타일과 맞지 않은 사건 같다는 느낌이 들 수도 있지만 이런 것들이 나오게 된 배경이 소박한 드라마 때문이라는 건 알아둬야 한다. 그러니까 일개 그저 그런 진부한 일상과 수면에 드러나지 않도록 자연스럽게 숨어 있던 비일상이 예상치 못하게 충돌해서 발생한 혼란이라는 것이다.

다소 큰 사건이 밝혀지긴 했지만 그 안에서 나타난 드라마와 핵심 사건은 굉장히 어처구니 없고 시시한 것이었다. 아니 딱하다고 해야 할지도 모르겠다. 요즘에도 발생 중인 문제와 크게 다를 바 없는 거라 많은 생각이 들게 한다. 철 없는 미성년자나 청년의 일탈 문제는 시대를 가리지 않고 언제나 있었다는 점에서 말이다. 그깟 화려하고 특별하게 사는 게 뭐라고. 몸 상태도, 정신 상태도 다 버려가면서 저렇게 병적으로 일을 저지르는 걸까. 오만함에 빠져 책임이라는 걸 하나도 모르고, 정도라는 걸 생각하지 않으며, 뒷일은 생각하지 않는 무모함에 망가지는 건 본인인데. 이러한 문제의 원인이 결국은 부모라는 것도 크게 놀랍지도 않다. 일탈에 빠지게 되는 원인은 친구를 잘못 만나거나 아니면 그렇게 되도록 방치한 부모 둘 중 하나니까.

특별함에 취해 정신을 못 차리는 이들 밖에 없던 게물랭에서 현실을 직시하고 있던 건 사실상 댄서 밖에 없었던 셈이다. 생각해 보면 그 댄서에게는 딱히 특별할 것이 없어 보이긴 하겠다. 그저 돈벌이 하는 직장이자 매일 보는 일상적인 풍경이었으니까. 그런 곳에 잠깐도 아니고 매일 같이 죽치고 앉아 있는 이들이 어떻게 보였을지는 말할 것도 없다. 한순간의 화려함은 잠깐일 뿐, 영원하지 못하다는 걸 누구보다도 잘 알았을 테니까. 그렇기에 무언가 열정적으로 불태우고 싶다면 이상한 길로 빠지지 말고 지금 사는 인생을 열심히 사는 것 외에는 다른 게 필요 없을지도 모른다. 누군가에게 특별하게 보일 것이 당사자에게는 별거 아닌 따분한 인생이듯이, 어느 순간 자신의 인생이 다른 이들에게 특별하게 보일지 누가 알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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