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령수사 - 범죄수사에서 활약한 심령술 형사들의 이야기
제니 랜들스 외 지음, 이경식 옮김 / 휴먼앤북스(Human&Books) / 2009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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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수퍼내추럴이나 고스트 위스퍼러, X파일, 고스트 앤 크라임 같은 미드라던가, 우리나라 영화인 사이코 메트리에 나오는 심령수사는 경이롭기는 하나 실생활에서 불가능 하다는 생각이 들것이다. 하지만 과거에도 현재에도 언론에는 다루어지지 않은 심령수사가 곳곳에서 실제로 이루어지고 있다고 한다. 물론 보통 사람들에게 심령술로 사건을 해결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거나, 사기라는 생각을 할 것이다.

 이 책에는 흔히들 알고 있는 사이코 메트리, 예지몽, 투시, 텔레파시, 최면부터 수맥 찾는 용도로 잘 알려진 다우징, 셰익스피어의 햄릿처럼 우연히 유령과 접촉한 것과 의도적으로 부르는 영매, 또 어떤 초자연적인 존재의 목소리나 도움을 이용한 사건 수사 사례와 함께 과거 기록에 나와 있는 심령술의 실용적 사례, 역사가 나와 있다. 알고보면 심령수사의 역사가 상당하다는 것은 좀 놀라운 점이다.

 주로 미해결 사건이 되려는 순간에 경찰이 소문을 듣고 도움을 청하거나 직접 자청하기도 하지만, 때로는 평범하게 살던 사람이 예지몽이라던가 투시를 하게 되서 신고를 하게 되는 일도 있다. 하지만 영화처럼 반드시 성공하는 것은 아니다. 심령술사들에 말해 의하면 간접적인 상징으로 나타나기 때문에 심령수사도 반드시 완벽한 것이 아니라고 한다. 오히려 수사를 더 혼란스럽게 할 때도 있다. 또한 알고 보면 심령술사들도 이런 일을 하면서 온갖 고충을 겪는 듯했다.

 몇몇 기록을 보면 심령술사는 불확실성 때문에 수사에 참여하기를 꺼리는 일도 있다고 한다. 이를 보면 아무리 신비한 능력을 가진 심령술사라 할지라도 보통 사람과 다를 바 없어 보였다.

 책 내용 중 한 부분을 보면 저자가 단순히 자료조사 만으로 책을 쓰지 않고, 심령술사가 진행하는 실험에 직접 참여하면서까지 심령술에 대해 느끼고 이해하려고 한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경찰이나 법정에서는 심령수사를 필요로 하면서 논란을 피하기 위해 꺼리는 편이긴 하지만, 세계 곳곳에서 심령술사들이 활약을 하고 심령술 형사 기관이 만들어지고 있는 편이라고 하니, 단순히 미신이나 사기꾼으로 몰고 가기 전에 생각을 해 봐야 할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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싫은 소설
교고쿠 나쓰히코 지음, 김소연 옮김 / 손안의책 / 201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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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부분의 작가들은 책이 잘 팔리기를 원할 텐데, 이렇게 대놓고 보지 말라는 듯이 쓰고, 디자인한 책을 보니 작가가 어떤 의도를 가지고 그랬는지 상당히 궁금했다. 개인적로는 세월의 흔적과 찌든 때의 느낌을 가진 고서 느낌을 소름끼칠 정도로 잘 살린 디자인이라고 생각한다. 읽고 나서 작가가 독자를 책 속에 들어 있는 온갖 싫고 기분 나쁜 분위기 속에 깊숙히 파묻어 버리고 싶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작품 속에 나타나는 싫음이라는 것은 형언할 수 없는 다양한 것을 포함하고 있기 때문에 단순한 공포와는 차원이 다르다. 다른 어떤 첨가물도 없이 '싫음' 그 자체를 표현한 게 있다면 바로 이런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어떤 회사에 근무하는 후카타니라는 인물을 중심으로 주변 인물들이 온갖 싫은 일로 인해 인생이 망가지는 내용이다. 소설 속에서 사건이 일어나서 인생이 망가지는 일은 흔하다. 일상적인 사건이라던가, 살인사건이 일어나서 죽거나, 또는 괴물이나 귀신, 종말 같은 비상식적이고 말도 안 되는 일도 있다. 하지만 싫은 일, 싫은 일로 인해 비롯되는 공포 같이 대체할 수 있는 감정이 아닌 싫음 그 자체로 인생이 망가지는 일은 상상도 못할 일일 것이다.

 총 7편의 단편으로 일상에서 있을 법한 싫은 일부터, 초현실적으로 보일 정도의 싫은 일까지 존재한다. 각 단편에서 싫은 것으로 나오는 소재는 다들 한 번 쯤은 싫다고 느껴봤던 것이기도 한다. <싫은 아이>에서 나오는 수상쩍고 흉측하게 생긴 아이, <싫은 노인>에서 나오는 지독스러울 정도로 음란한 할아버지, <싫은 조상>에서 나오는 집안 공기마저 기분 나쁘게 만드는 불단, <싫은 여자친구>에서 나오는 싫은 짓만 골라하는 여자친구가 그렇다. 문제는 이 싫어 하는 느낌이 쌓이고 쌓여 당사자를 미치게 만들거나, 싫음의 주범이 초현실적인 짓을 벌여 비정상적인 싫음을 만든다는 것이다. <싫은 문>에서 나오는 인생역전과 나락을 동시에 주는 문처럼 비정한 현실 그대로를 반영한다던가, <싫은 집>에서 나오는 기분 나쁜 초현상이 벌어지는 집과 <싫은 소설>에서 나오는 싫은 일의 반복처럼 있을 수 없는 싫은 일 같은 예외도 있다.

 첫 단편부터 마지막 단편까지 후카타니가 직간접적으로 등장해서 보면 볼수록 싫음을 몰고다니는 주범이라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하지만 마지막 후카타니가 주연인 <싫은 소설>을 보면 가장 안타까운 인물로 보인다. 남들의 불행을 전부 알게 되고 싫음의 굴레를 겪고, 끝내는 자기와 가장 가까이 있고 비현실적이지도 않은 존재에게 싫은 일을 당하게 될 운명이기 때문이다. 어쩌면 이 싫은 소설은 조언을 잘 해주는 후카타니가 막상 조언을 필요로 하기 전에 주변인물들을 제거해가며 만든 함정이라는 생각이 든다.

 개인차에 따라 혐오감 비슷한 것도 느낄지도 모르지만, 일단 기본적으로 누구든 싫은 느낌을 받을 것이다. 아마 평생 겪을 싫은 기분을 여기서 다 느낄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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빙과 고전부 시리즈
요네자와 호노부 지음, 권영주 옮김 / 엘릭시르 / 201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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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학창시절이 제일 좋을 때라고 하지만 솔직히 공감하지 못한다. 도대체가 어디가 어떻게 좋다는 건지 알 수도 없고, 선택보다는 강요에 가까운 필수가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거의 아무것도 안하고 지냈다고 말하는 게 정답에 가깝다. 빙과를 접하기 전까지는 별의미 없이 낭비하는 시간이라고 생각한 나날이라는 생각은 변함이 없었다. 읽은 이후로는 왠지 모르게 그 시절에 뭐라도 했으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애니메이션으로 먼저 접했기 때문에 어느 정도 구성은 파악하고 있었지만, 구체적인 내면 감정이 나타나지 않은 애니와의 차이점이 같은 작품을 두 번 본다는 생각이 들지는 않았다. 원작을 보면서 애니메이션 제작자들이 어떤 것을 첨가했는지 알 수 있었다. 아쉬운게 있다면 일본어 표기법을 지키면서 생긴 어색함이다.

 각종 부서활동으로 유명한 카미야마 고등학교에 입학한 오레키 호타로는 에너지 절약주의라는 이유로 아무 것도 하지 않고 지내고 싶어 하지만, 학교 선배이자 누나인 오레키 토모에의 권유로 고전부에 들어가게 된다. 방과 후, 호타로는 특별동 4층 구석에 위치한 고전부실에서 치탄다 에루와 만나면서 일상의 변화를 겪기 시작한다.

 주인공 오레키 호타로는 추리하는 부분을 제외하면 거의 나의 학창시절 지냈던 모습에 거의 가까웠기 때문에 행동과 생각에 공감을 할 수가 있었다. 아마 처음으로 나의 학창시절은 어떻게 잘지냈는지 돌아봤을 것이다. 그때는 학교에 가면 공부 말고는 할게 없다는 생각 뿐이었다. 하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과연 그때 다른 것도 있었는데 내가 관심을 가지지 않고 무시해 버렸는지도 모른다.

가벼운 분위기에서 어떤 것이 사건이 되고 어떻게 그것을 해결하는지 처음알게 되었다. 이제 막 학교에 입학하고 고전부라는 부서에도 들어왔을 때라서, 전반적으로 정체성에 대해 알아가는 과정으로 보였다. 배경으로는 고전부란 무엇을 하는 곳이고 어떤 의미인가였지만, 인물로 보면 치탄다 에루의 목적도 있지만 오레키 호타로의 변함없던 에너지 절약주의가 환경의 변화를 겪으면서 스타일의 변화를 생각하게 되는 의미가 있었다고 본다.

 살인에서 오는 것은 죽음과 사연의 무게라면, 일상에서 오는 것은 감춰진 불편한 진실의 무게라는 생각이 들었다. 처음에는 단순한 호기심과 약간의 의무적으로 과거의 일을 조사할 때만 해도 그렇게 심각한 분위기는 아니었다. 상식과 시대적 상황, 그리고 당시 시대의 내적 심리 같은 어느 정도 납득할 만한 일일 거라는 낙관적인 분위기였다. 하지만 기대와는 달리 진실은 납득할 수 없을 정도로 추악하고 불편한 것이었다. 자발적으로 만들어진 것과 미화시켜 만들어진 것의 차이가 바로 이런 것이라는 게 보였다.

 이 빙과라는 제목에서도 가벼움과 동시에 숨겨진 무거움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빙과라는 단어 하나로 학창 시절이 가지고 있는 두 가지 모습을 나타낸 작가의 의도가 정말 대단하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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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서의 우리 上 백귀야행(교고쿠도) 시리즈
쿄고쿠 나츠히코 지음, 김소연 옮김 / 손안의책 / 201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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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편에 이은 종교, 그 중에서 특히 불교와 종파간의 고찰을 심오하게 다룬 내용이었다. 정신의학서적과 다름없던 광골처럼 철서도 불교서적에 버금가는 장광설로 뒤덮여 있다. 불교 교리라던가, 역사, 십우도 등등은 전편 만큼 읽기 쉬운 것은 아니었다. 한 가지 확실한 것은 종교는 그걸 접하는 사람의 해석에 달렸다는 것이다. 대체로 장광설은 사건과 직접적인 연관은 없었지만, 범행 동기를 이해시키기 위한 장치가 아니었는 가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가나가와 현 하코네에 있는 수수께끼의 사찰 명혜사를 취재하기 위해 희담월보의 아츠코와 이쿠보, 그리고 사진기사 겸으로 참여한 도리구치는 센고쿠로라는 여관에 묵게 된다. 그곳에는 명혜사 승려에게 골동품을 소개받으러 온 이마가와 마사스미와 조시가야 사건(우부메의 여름)이후 은거 중인 구온지 요시치카를 만난다. 새하얀 설경을 앞에 두고 이런저런 얘기가 오가는 와중에 갑자기 정좌를 한 스님의 시체가 여관 정원에 떨어지고, 하코네 산 중의 연속 승려살인사건이 벌어진다.

 그 동안 의뢰를 받거나 우연히 사건현장을 목격한 것과는 다르게 우치다 야스오의 아사미 미쓰히코처럼 여행을 갔다가 사건이 일어나는 구성이다. 아츠코 일행 같은 경우 약간 성격이 다르겠지만, 부부동반 여행 겸으로 광골 때처럼 고서 의뢰를 목적으로 하코네를 방문한 세키구치와 교고쿠도라면 확실하다. 전작에서 대활약?을 한 에노키즈의 계속되는 활약이 돋보이기도 했다. 거칠게 나가는 가나가와 경찰 경부보와의 기싸움을 이기고, 아무도 손을 못쓰는 명혜사에 가서는 스님들을 뒤흔들어 놓았다. 거기에 에노키즈 만에 이름 개명에 당한 인물이 좀 많이 나왔다.

 우부메 관련 인물인 구온지 요키치카의 등장은 간간히 분위기를 슬프게 만들었다. 우부메에서 언급된 복선을 마무리 짓기 위한 것도 있었지만, 사건 이후의 관계자가 어떻게 지내는지 나타내면서 사건은 끝났지만 당사자들에게는 아직 끝나지 않은 모습을 보여줬다. 이런 식으로 전작의 등장인물이 재등장하는 것은 소설 속의 사건이 끝나면 관계자 역시 사건으로부터 멀어지고 다시는 나오지 않는 느낌을 없애고, 살아가다 우연히 다시 만날 수 있는 하나의 인물상을 나타낸 것이라고 생각한다.

 사건도 토막살인이라던가, 해골이 넘쳐나는 전작들보다는 딱히 기괴한 느낌이 없었다. 배경이 사찰이고 승려가 많다보니 약간 경건하다던가, 살인사건 현장임에도 불구하고 명혜사라는 공간이 가지는 알 수없는 무거움이 있었다. 다만 스님들 밖에 없는 절에 숨어있는 살인자, 일명 쥐스님인 철서가 스님들 사이에 숨어 있는 것처럼 느껴지고, 자라지 않는 소녀로 불리는 아이의 출몰로 아무리 경건한 분위기라 해도 간담을 서늘하게 했다.

 명혜사라는 공간도 외진 곳에 존재해서 일명 밀폐된 공간이었지만 사건 관계자들과 스님들 사이의 단절감도 또 하나의 밀폐된 공간이었다. 겉으로는 아무 문제없어 보여도 사람관계에서의 밀폐가 집단간의 밀폐가 되면 그것도 밀폐된 공간을 이룬다는 생각이든다.

 또 명혜사가 숨겨져 있던 오래된 사찰인 만큼 약간의 유물탐사 같은 구성도 있었다. 교고쿠도만 이해할 고서와 관련이 있고, 건축양식이라던가 종파와의 연관성도 있었다. 철서가 불교와 연관성이 큰 만큼 작가가 불교에 관한 거라면 뭐든지 다 채워 넣은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주요 인물들이 스님들이라서 절에서 역할이 어떻게 나눠지고, 종파별로 다른점이 뭔지 알 수가 있었다. 보통 사람이 아닌 종교인이라는 점에서 인물들과 대화를 할 때 격언을 한다거나, 불교에서 나오는 말씀을 인용하는 등, 좀 어려운 말을 자주 하는 편이었다. 교고쿠도의 장광설 수준의 말이 짧고 굵게 나온다고 보면 된다. 그래서였는지 간간히 질질 끄는 듯한 느낌을 받기도 했다. 연쇄살인이 계속되는 상황에도 비정상적일 정도로 침착함을 유지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지만, 스님도 역시 사람인지라 갈수록 동요하는 이들이 조금씩 늘어났다. 명혜사에 있는 스님들을 보면서 스님이라면 당연할 것으로 생각되던 것이 일종의 편견이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을 때는 지금까지 불교의 겉면만 보고 있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신앙에서도 어쩔 수 없는 사람의 이기심이 존재한다는 것이 느껴졌다. 특히 속세를 멀리하는 불교에서는 물적인 이기심이 아니라, 득도라는 개념에서 나오는 특수한 이기심이 나올 수 있다는 것은 상상도 못한 일이었다. 한 사건으로 보였지만 사실은 다른 사건이었던가, 다른 사건으로 보였지만 사실은 한 사건이었던 전작의 구조와 비슷하게 이번에는 모든 사건이 명혜사로 집중됐다. 다만, 사건의 연계성과는 관련이 없고 장소로의 집합과 동시에 붕괴라는 느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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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르센 뤼팽 전집 2 - 아르센 뤼팽 대 헐록 숌즈 황금가지 아르센 뤼팽 전집 2
모리스 르블랑 지음, 김남주 옮김 / 황금가지 / 200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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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금까지도 많은 논란이 있는 작품을 본 심경이 참 묘하다. 일단 먼저 모리스 르블랑이 누가봐도 홈즈인 것을 알아보게 헐록 숌즈를 작중에 출현시켜 표현한 것을 평가하자면, 우리나라 추리작품에 일본 작가의 명탐정 캐릭터, 예를 들면 긴다이치 코스케라던가 아케치 코고로를 등장시켜 원작 이미지을 파괴할 정도의 깽판을 친다는 설정을 해놓은 것과 맞먹을 정도다. 코난 도일이 소송을 고려하고, 영불 사이에 분쟁이 생긴 것은 당연할 것이다.

 내용으로만 보자면 굳이 셜록 홈즈를 출현하지 않아도 충분히 흥미진진한 내용이었다. 굳이 탐정역할이 필요했다면 셜록 홈즈에 버금간다고 모방하고 사칭하는 탐정으로 했으면 더 나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뤼팽의 라이벌격인 가니마르를 구상한 것만큼, 자체적인 탐정역을 만들었으면 오늘날까지 이렇게 욕을 먹지는 않았을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전편에 비해서 여성 인물들의 출현이 유독 두드러진다는 것도 눈여겨볼 점이다. 이전 작에서는 도둑으로서의 이미지가 강했다면 이번 작은 흔히 말하는 신사적인 로멘티스트의 이미지가 약간 더 강했다. 이때부터 뤼팽에게 희로애락을 가져다 줄 여자 문제가 시작되는 듯하다.

 작중에서 일어나는 사건은 두 가지다. 금발의 여인이라고 명명된 첫 사건은 책상 하나 때문에 벌어진 복권 당첨금 쟁탈전과 프랑스 대사 출신의 남작 살인사건에 연루된 푸른다이아몬드 사건에 연이어 등장하는 금발의 여인과 아르센 뤼팽을 추적하는 내용이다. 사건 관계자들을 이리저리 굴리며 빠져나가는 뤼팽이나, 발끝까지 쫓아와 놓고서는 마지막에 대굴욕을 당하는 가니마르는 여전하다. 하지만 푸른 다이아몬드 사건 이후부터 문제의 헐록 숌즈와 역시 철자를 바꿨지만 누구나 알아볼 수 있는 윌슨이 등장한다.

 헐록과 윌슨은 감히 셜록 홈즈라고 같다 썼다고 할 수 없을 정도로 망가졌다. 침착함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고, 걸핏하면 권총을 빼들고, 기분나쁘다고 아무런 상관없는 길거리 행인과 싸움질을 하는 등, 찌질함의 끝을 보여주는 헐록이라던가, 거의 호구나 다름없고 부상을 입고 헐록에게 버림받는 윌슨의 모습을 보면 도대체 왜 셜록 홈즈를 같다 쓰려고 했는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금발의 여인 사건은 뤼팽식으로 만든 유사 저택미스터리였다. 작중의 푸른다이아몬드 사건이 저택미스터리 분위기 같다고 할 수도 있지만 물건을 훔치는 뤼팽을 생각하면, 흔히 알고 있는 저택미스터리 형식과는 차이가 많다. 하지만 비슷비슷한 점도 역시 존재하기 때문에 유사 저택미스터리라고 말하는 것이 적당하다고 생각한다.

 두 번째 사건인 유대식 구리등잔은 한 부유층 자택에서 벌어진 유대식 구리등잔 도난사건에서 뤼팽의 흔적을 발견하면서 사건과의 연계성을 추적하는 내용이다. 단순한 절도 사건으로 보이는 사건이지만, 범행을 한 범인과 범행을 하지 않은 범인이 가려진다. 이 역시 뤼팽식 추리의 한 묘미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이 역시 모리스 르블랑이 넣은 짝퉁 홈즈, 헐록이 문제였다.

 여전히 무턱대고 권총을 뽑아드는 헐록에, 이번에는 죽을 고비를 넘기고 병상에 누운 뒤로 결말까지 거의 공기화된 윌슨. 이쯤되면 셜록 홈즈 이미지 파괴는 고사하고 더 좋지 않은 대우를 하면서 까지 굳이 왓슨을 출현시킨 의미를 찾아볼 수가 없었다. 조수라기 보다는 그냥 셜록이라는 본상품에 끼워파는 싸구려 사은품 취급이다. 거기에 사건을 해결한 탐정보다는 쓸데없이 남의 일에 끼어들어 불화를 일으킨 장본인 취급을 한다.

 비록 홈즈의 이미지를 망가뜨린 작품이지만, 이건 뤼팽이 아니라 작가인 모리스 르블랑이 비판받아야할 것이다. 어디까지나 홈즈를 끌어들인 것은 작가였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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