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월의 저택 폴라 데이 앤 나이트 Polar Day & Night
레이 브래드버리 지음, 조호근 옮김 / 폴라북스(현대문학) / 2018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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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삶은 앞으로 나가면서 무수히 많은 것들을 사라지게 만들고는 한다. 정해진 수순인 것, 한철인 것, 시대흐름인 것. 그 외의 여러 이유로 수 많은 것들은 없어졌다. 영원했으면 하는 순간은 누구에게나 있고 아쉬움 역시 마찬가지이지만 결국에는 변함없이 그 흔적들을 고스란히 간직한 쓸쓸함만 남는다. 만화 보노보노에서도 이것과 비슷한 내용이 있다. 어째서 재미있는 일은 끝나는 것일까. 어째서 재미있는 일은 계속될 수 없는 걸까. 어릴 때 많이 생각하던 것이지만, 이제는 어느 정도 이해할 수 있을 시기가 된 것일지도 모른다.

 이 소설에 나오는 엘리엇 가족처럼 유령 혹은 흔히 몬스터라 불리는 존재가 가족으로 생활하는 스토리는 간간히 본 적 있다. 본질은 무서운 존재지만 가족이라는 구성을 넣으면서 친근한 이미지가 만들어지고, 생활방식을 알아가는 과정과 존재의 다름으로 인해 생기는 위기에 대한 걱정이 더해져 이 세상에 없을 특별한 가족상이라는 점이 참 재미있는 요소로 작용해 깊은 인상으로 기억하고 있다. 어릴 적, 내가 저런 가족과 함께 살았으면 어땠을까 하는 상상도 가끔 한 적이 있는데, 작중 주인공인 소년 티모시는 나의 상상이 나름대로 실현된 모습처럼 보였다.

 다양한 가족들의 모습과 이들이 함께 모인 자리는 기묘하고 신비로운 분위기를 만들어 티모시가 느끼는 것처럼 즐겁게 보인다. 그리고 티모시와 마찬가지로 계속됐으면 하지만 책의 마지막이 다가오는 것과 마찬가지로 모든 건 쓸쓸하게 끝이 난다. 이렇게 보면 안 좋은 의미로 보이지만 작중 곳곳에서 끝이 가지는 여러의미를 보면 생각이 달라질지도 모른다.

 끝의 아쉬움만 생각하고 그 반대의 경우는 잘 생각해보지 않았다. 영원히 계속이란 의미와 그에 따른 불편함을 잘 몰랐을지도 모르겠다. 끝이 있어서 영원을 생각하는 것처럼, 영원이 있어서 끝을 생각할 수도 있었을 텐데 말이다. 죽음의 존재들이 끝을 말하는 것은 마치 우리가 영원을 말하는 것과 비슷하다. 아마도 서로가 반대되는 존재이니 염원하는 것도 반대에 해당되지 않나 싶다. 영원은 끝을 모르고, 끝은 영원을 모르니까. 앞에서 말한 보노보노의 질문에 대한 답도 여기서 찾을 수 있을 것 같다.

 좋은 순간, 좋은 날이라고 영원히 계속된다면 그 의미가 없어질지도 모른다. 하나의 자원이 고갈되어 없어지듯이 좋은 순간도 어느 순간 동력을 잃게 되는 것이다. 게다가 아무리 오래된다고 해도 결국에는 그것 하나 밖에 존재하지 않는 것이 된다. 기억 속에 단 하나의 좋은 순간만 영원하다는 건, 그 만큼 텅 빈 부분이 많아지는 것이고 의미도 변질되고 만다. 엘리엇 가족 중, 미라인 할아버지의 기억 속에도 좋은 순간이 하나가 아니라 여럿이 쌓여 있다. 그 순간들은 모두 다른 기억이지만 서로가 그때의 느낌을 공유하며 하나의 좋은 기억으로 만들어진다. 그렇기 때문에 영원과 끝 어느 하나가 반드시 좋다기 보다는 서로가 서로를 보완하는 관계라는 생각이다. 영원은 끝으로 사라지고, 끝은 곧 영원이 되어 오래 지속되는 것이다.

 제목에도 있는 10월은 가을에 접어들어 낙엽이 지는 시기다. 거기에 연말, 정확하게 10월의 마지막 일인 31일에는 할로윈이 있다. 그 떠들석하고 즐거운 날이 지나면 11월, 곧 겨울이 다가오는 시기라 끝이 강하게 인식되는 감이 있다. 엘리엇 가족이 사는 저택도 이런 인상일지도 모르겠다. 끝에 존재하는 영원, 언제 끝나도 이상하지 않을 영원일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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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 이름을 부른다면
김보현 지음 / 은행나무 / 2017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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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머나먼 오지나 조난 같은 단절된 상황이 발생하지 않아도 현대사회에 고립은 존재한다. 그 중 심리적 고립이 많으며 해결하기 어려운 축에 속한다. 거대한 세상에 혼자 뚝 떨어져 있는 느낌, 모두의 시선이 나 자신을 한 없이 작은 존재로 여겨지게 만드는 느낌이라 당사자가 아닌 이상 그 깊이를 실감할 수는 없을 것이다. 안 그래도 무섭게 다가오는 세상. 그런데 그 세상이 어느 날 한 순간에 사라진다면, 모든 것이 단절되어 버린다면. 단절의 단절은 어떤 느낌일까?

 표지만 보면 잘 모르겠지만 이 소설은 좀비소설이다. 좀비소설하면 가장 유명한 맥스 브룩스의 세계대전Z나 리처드 매드슨의 나는 전설이다를 생각하면 간혹 나오는 잔인한 묘사나 종말적인 상황에서의 군상극을 쉽게 떠오를 수 있을 것이다. 새벽의 저주나 28일 후 같은 좀비영화 역시 그렇고. 그런데 이 좀비소설은 조금 특별하다. 좀비가 발생하고 붕괴, 좀비묘사까지는 다른 소설과 거의 다를 것이 없지만 특별한 점은 그 이후 부터다. 지방 소도시와 시골을 배경으로 펜싱소녀가 좀비들을 지키는 것이다.

 좀비를 죽이지 않고 지킨다는 발상은 나름 여기저기서 시도되고 있는 소재이긴 하다. 국산 인디영화인 이웃집 좀비 3번째 에피소드인 <뼈를 깎는 사랑> 같은 경우가 대표적이다. 영화와 차이점이 있다면 소설은 대도시가 아닌 시골이고, 지키는 사람이 많다는 점을 들 수 있다. 또, 대체로 이런 상황이면 갈등이나 극단적인 상황으로 이어지지만, 이 소설은 거의 좀비가 들어간 성장물 같은 느낌이다.
 나름 고증이 탄탄한 농사방법과 함께 나타나는 시골풍경과 소녀의 일상을 보면 그 동안 보았던 소설이나 영화에서 봤던 좀비 아포칼립스가 맞나 싶을 정도로 뭔가 잔잔한 느낌이다. 이렇게 좀비를 격리 시킬 수도 있고, 안전하게 관리할 수도 있는데 무조건 죽이는게 답이라고 생각한게 잘못이었나 생각이 들 정도다. 물론 시골동네라는 환경적인 이점이나 기발한 펜싱 응용법이라는 주인공만의 특성이 만들어낸 모습이라 할 수 있다. 그렇지만 꼭 죽여야 한다는 의문은 여전히 남는다.
 사실 좀비는 어디서 나오든 죽이고 보는 존재나 다름 없기는 하다. 게다가 세상이 망하면 가망이 없다는 생각에 차라리 죽이는게 속 편하다는 자기합리화로 나름의 설명을 하기도 한다. 희망이 없다면 무슨 일이든 일어나고도 남을 것이다. 하지만 정말 최소한의 가능성이 있는 상황이라면. 그것조차 생각해보지 않고 최선이라 여겨도 되는 것일까. 할 수 있는데까지 해보고 나서 최선이라고 판단하는 게 더 좋은 선택일지도 모르는데. 그 동안 좀비소설하면 무조건 절망, 죽음을 떠올렸는데 지금 보면 그게 편견이었던 것이다.
 소중한 것은 없을 때 가치를 알게 된다는 말이 있다. 대체로 죽음 이후에 알게 되는데 좀비는 그걸 역설적인 상황으로 만든다.
 죽었지만 죽은 것이 아니다. 죽었어도 다시 살아날 수 있다. 죽었지만 곁에 있다.
 비록 세상으로부터의 고립이지만 소중한 것은 곁에 있으니 이만한 의미와 성장을 이룰 수 있는 상황이 또 있을까. 모두를 피하고 싶고 불만스러운 세상이 어느 순간 나를 부르지 않는다면 일시적으로 편해지기는 할 것이다. 하지만 결국에는 누군가 나를 불러주었으면 하는 때가 오고 만다. 그때가 됐을 때면 이미 많은 시간이 흘러 기회를 놓치고 후회하는 상황이 벌어질 수도 있다. 그런 불상사가 발생하는 걸 대비라도 한 것일까. 원나에게는 나름 빠르고 의미있게 고립으로 벗어날 기회가 찾아온 것이라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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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 시스터즈 키퍼
조디 피코 지음, 이지민 옮김, 한정우 감수 / SISO / 2017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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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는 누구인가. 이 문제에 직면하는 순간 삶은 완전히 바뀐다. 안 그래도 큰 세상이 숨막힐 정도로 커져 한 없이 작은 내가 돋보이게 되고, 내가 감당해야 할 책임이 생긴다는 걸 느끼게 된다. 준비된 상태에서라면 모를까, 갑작스럽게 이 순간이 다가온다면 모든 게 혼란스럽다. 그것도 가족과 관련된 일이라면 더욱. 나 자신에 대한 얘기를 하지만 이건 곧 가족과 연관된 일이기도 하다. 

 부모님을 고소하고 싶다.
 이 만한 강렬한 문장이 또 있을까.
 부모와 자녀 사이의 소송과 아픈 가족이 있는 복잡한 상황 속에서 상당히 많은 이해관계와 심리가 나타났다. 죽음과 상실에 직면해 있고, 힘든 현실을 때로는 외면하고 싶고, 현재 상황을 이해는 하지만 쌓이고 쌓인 소외감은 여전하고, 어린 나이에 직면하는 거대한 현실에 많은 것을 포기하고. 소설 속 특수한 상황이 아니더라도 실제 가족 사이에서 있을 법한 상황으로 보였다.
 특히 제시가 느끼는 소외감은 공감이 갔다. 부모가 어느 정도 신경쓰고, 공평하게 해주고 있다 생각해도 당사자에게 그렇게 느껴지지 않으면 오히려 상처가 된다. 진짜 나를 생각한 것이 아니라 다른 것과 같이 딸려오는 겉치레나, 무슨 일이 진행될 때 아무런 감흥없이 있는 일종의 정해진 형식 같은 느낌을 받기 때문이다. 아무 것도 안 해주면 섭섭하겠지 하고 생각하는 마음을 모르는 건 아니지만, 툭 던져주는 인상을 주면 그것대로 더 큰 상처를 받을 수도 있다.
 생명윤리와 가족에 대한 내용이면서 계획된 탄생에 정해진 운명이라는 안나를 통해 존재의 의미도 나타내고 있다. 아버지 브라이언이 밤하늘의 별과 같이 다룰 때는 그 의미가 더 크게 다가온다.
 잘하는 것, 원하는 것, 바라는 것이 있는데 정해진대로 가야한다. 밤하늘의 별이 수없이 많아도 하나하나가 의미를 지니고 있는데, 안나가 그것보다 못하게 사는 건 아니라는 생각이다. 아무리 아픈 가족을 위한 것이지만 자기 자신을 포기하는 것은 힘든 일이다. 이런 한편으로는 부모의 입장에서 보면 그것대로 또 어려운 일이다. 부모에게는 자녀가 살아가는 가치나 다름없으니. 무엇이 최선이고, 가장 좋은지는 알 수 없는 일이다. 특히 가족이라면.
 의료와 관련된 내용인 만큼 전문적인 부분이 세세하다. 이전에 나온 번역은 미숙했다고 하는데, 현재 번역본을 보면 너무 세세하게 보일 정도다. 그렇다보니 안나의 가족이 병원에 자주간다는 게 제대로 느껴졌다. 보통 사람이 어려운 의료 용어나 지식을 줄줄 꿰고 있는 경우는 드무니까.
 나의 가치는 어느 정도냐는 질문이 있다. 어려운 질문이면서 때로는 쉽게 해서는 안 될 질문이기도 하다. 자신감이 있는 사람이라면 모를까, 방황하고 있는 상태라면 오히려 더 큰 혼란을 줄 수도 있고. 하지만 이거 하나는 확실하다. 섭섭하게 하는 순간이 있어도 가족만큼은 나의 존재가치를 알아준다는 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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앙리 픽 미스터리
다비드 포앙키노스 지음, 이재익 옮김 / 달콤한책 / 2017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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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상에는 많은 책들이 있다. 그 중에는 베스트셀러가 되는 것도 있고, 어느 정도 읽히는 것도 있고, 아예 무관심을 받는 것도, 심지어는 아예 출간되지 못하고 원고 형태로만 남아있는 것도 있다. 출간되지 못한 원고들은 끊임없는 재도전의 발판이 되기도 하지만, 여러 사연을 가진채 쓰레기통으로 들어가는 일도 적지 않다. 이런 원고들 중에는 의외로 숨겨진 대작이 발견되기도 한다. 이렇게 재미있는 게 왜 출간되지 못했을까는 곧 누가 썼을까로 이어진다. 그런데, 작가 지망생이라면 모를까 책과 아무런 인연이 없던 사람이 글쓴이라면. 책을 좋아하는 입장에서 이런 엄청난 미스터리는 또 없을 것이다.

 출판사 편집자인 델피는 출간한 소설이 실패하면서 의기소침해진 연인 프레드와 함께 그녀의 고향 크로종을 방문한다. 두 연인은 좋은 시간을 보내던 중, 도서관에 거절당한 책들이 모여 있다는 소식을 듣게 된다. 도서관을 방문한 델피와 프레드는 재미있는 원고를 발견하고 글쓴이인 앙리 픽을 찾아나서게 되는데...

 글을 쓰고 있는 입장에서 투고에 실패하는 것만큼 실망스럽고 김빠지는 일은 없다. 거절당하는 아쉬움과 주목을 받을까는 둘째치고, 언제 내 책이 나올 수 있을까 하는 기약없는 기다림의 시간이 길어질 수록 지친다. 여기에 글까지 안 써지면 불안이 극에 치닫기도 한다. 이런 원고들을 받아주는 누구도 원치 않은 책들의 도서관은 생각만해도 기발하고 실제로 있으면 가보고 싶을 정도다. 어떤 내용이길래 거절당했을까하는 궁금증과 이렇게 좋은 게 왜 거절당했을까 하는 공감대를 느끼고 싶은 마음이 들어서다. 앙리 픽의 소설도 이런 식으로 발견되기 했고.

 미스터리적인 요소와 출판시장에서 문학이 가지는 의미와 영향력을 동시에 다루는 구성이다. 출간되는 과정과 그 이후를 보며 책이 어떤 식으로 관심을 받게 되는지 볼 수 있다. 흔히 책은 내용이나 의미, 더 깊이보는 경우에는 문장을 따지는데 여기서는 앙리 픽이라는 평범한 사람이 저자라는 사연이 관심대상이다. 지금도 이렇게 사연으로 주목받는 책이 적지 않다. 문제는 이런 특별한 사례로만 주목을 받을 수 있는 현실이다. 아무리 재미있는 내용이나 기발한 아이디어라도 주목받지 않으면 사장되기 마련이다. 관심을 끌기 위해 마케팅이 있는 것이지만, 책 내용으로 관심끌기가 힘들다 싶으면 결국에는 이런저런 포장까지 하기 마련이다. 그렇다보면 책의 본질은 이미 저 멀리가 있고 마케팅 속의 이미지만 남게 되는 것이다.

 평범함이 특별하게 변하는 건 일상도 마찬가지로 보였다. 밋밋하고 모든게 불만스러운 일상이라도 무언가로 포장되면 특별해지는 건 순식간이다. 하지만 책과는 달리 자신의 본질을 점점 알아가게 되는 것처럼 보였다. 익숙지 않은 순간을 겪으며 이전의 일상을 다른 시각에서 보는 순간이 생길 것이다. 사소하게 지나쳤던 것에서 나의 일상이 어땠는지 되돌아 볼며 진짜 소중한 것을 찾을 수도, 내가 몰랐던 순간을 발견하면서 미련을 털어버릴 수도 있다. 갑작스럽게 행운이 찾아왔다가 나중에가서 이전의 일상이 더 좋았다고 여기는 내용도 많지 않은가.

 한편으로는 많은 이들이 가능성에 대한 희망을 가지고 있다는 걸 느낄 수 있었다. 나도 할 수 있을까 하는 의문부터, 나는 이 정도 밖에 못한다는 비관, 이 정도면 너도 할 수 있다는 일종의 떠밀림까지. 이런 게 평범한 것이 특별함으로 발전하는 계기와 열광을 만들어냈을지도 모른다. 일종의 대리만족이나 나도 할 수 있다는 동기부여인 것이다. 또, 나 역시 가치있는 특별한 사람이라고 인정받고 싶은 염원일 수도 있고.

 모든 책이 베스트셀러가 될 수도, 상을 받을 수는 없다. 적어도 꾸준히 읽히거나 관심을 받기만 해도 좋을 것이다. 자신의 책이 팔리고 어느 정도 언급되는 것만큼 작가에게 기쁜일은 없을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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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이 온다
츠지무라 미즈키 지음, 이정민 옮김 / 몽실북스 / 2017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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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부모가 된다는 느낌은 어떨까. 미혼인 입장이라서 그런지 어쩐지 쓰기 어려우면서 조심스러워진다. 아기는 많이 봤지만 부모로서 맞이하는 느낌은 여러모로 복잡 미묘할 것이라는 생각이다. 아기가 세상에 나오기까지 많은 과정이 있다. 간절히 원하면서도 이루어지지 않거나. 또는 아무런 준비가 되지 않은 상태에서 맞이하거나. 상황은 다를지 몰라도 부모로서 아이를 맡이하는 마음은 어느정도 다 똑같을 것이다. 하지만 세상은 종종 제멋대로 판단하고 그걸 알아주지 않기도 하다.

 어느 날, 사토코는 아이를 돌려달라는 전화를 받는다. 아들인 아사토는 난임치료 끝에 입양한 아이였다. 전화를 건 당사자가 친모인 히카리라 생각하고 사토코는 직접 만나기로 한다. 그런데 사토코가 만난 여자는 예전에 알던 히카리와는 다른 사람이었는데...

 집안 혈통을 따지는 우리나라나 일본에서 입양은 쉬운 일이 아닐 것이다. 당사자들이 아무렇지 않다 해도 세상이 이해심 없이 대하기 때문에 힘든 점이 가중되기 때문이다. 입양을 보내는 입장에서도 그렇다. 온갖 편견으로 좋지 않은 시선을 보내는 경우가 있어 오히려 이쪽이 더 대우가 좋지 않다. 그래서였을까. 이들의 사연은 안타까운 일의 연속이다.

 아이 문제가 주로 부각이 되긴 했지만 대체로 가족이 만들어지는 과정을 느낄 수 있었다. 그냥 아이가 생기는 게 끝이 아니라 거기까지 도달하는데 필요한 과정이 있는 것이다. 때로는 힘들고, 의견차이가 있을지도 모르지만 서로 맞춰가는 노력이 그 과정이다. 나 역시 그런 과정이 있을 것이라 생각하면 부모는 대단하다고 여겨진다.

 미혼모 문제에 대해서도 다시 생각해 보게 되었다. 그저 단순히 무책임하게 생겨서 버려진다는 생각을 많이 했다. 하지만 그건 세상이 멋대로 판단하는 편견이었을지도 모른다. 작정하고 버리거나, 책임이라는 걸 전혀 생각하지 않는 다면 모를까, 앞서 언급한 아이가 생기기는데 도달해야 할 과정이 없던 탓도 있을 것이다. 계획에 없던 일이 발생하면 누구나 당황할 수 있다. 상황이 정리되지 않다보면 찬찬히 생각할 기회를 갖기도 힘들다. 그렇다보니 가족의 의미를 깨닫는 시기가 늦어질 수밖에 없다. 막상 아이가 없을 때 그걸 알게 된 당사자에게는 얼마나 큰 슬픔일까.
 세상에 존재하는 가족은 많다. 그러나 진짜 가족일지, 그저 모습만 그럴싸한 가족일지는 모르는 일이다. 뭐든 겉만 보고는 알 수 없으니까. 보이지 않는 곳에서 그들만의 문제가 있기도 하다. 그렇다면 진짜 가족이 된다는 건 무엇일까. 그건 각자의 구성원에게 달린 문제일 것이다. 서로를 생각하며 노력하는 가족에게는 그 어떤 일이라도 해결 못하지는 않을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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