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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 이름을 부른다면
김보현 지음 / 은행나무 / 2017년 12월
평점 :
머나먼 오지나 조난 같은 단절된 상황이 발생하지 않아도 현대사회에 고립은 존재한다. 그 중 심리적 고립이 많으며 해결하기 어려운 축에 속한다. 거대한 세상에 혼자 뚝 떨어져 있는 느낌, 모두의 시선이 나 자신을 한 없이 작은 존재로 여겨지게 만드는 느낌이라 당사자가 아닌 이상 그 깊이를 실감할 수는 없을 것이다. 안 그래도 무섭게 다가오는 세상. 그런데 그 세상이 어느 날 한 순간에 사라진다면, 모든 것이 단절되어 버린다면. 단절의 단절은 어떤 느낌일까?
표지만 보면 잘 모르겠지만 이 소설은 좀비소설이다. 좀비소설하면 가장 유명한 맥스 브룩스의 세계대전Z나 리처드 매드슨의 나는 전설이다를 생각하면 간혹 나오는 잔인한 묘사나 종말적인 상황에서의 군상극을 쉽게 떠오를 수 있을 것이다. 새벽의 저주나 28일 후 같은 좀비영화 역시 그렇고. 그런데 이 좀비소설은 조금 특별하다. 좀비가 발생하고 붕괴, 좀비묘사까지는 다른 소설과 거의 다를 것이 없지만 특별한 점은 그 이후 부터다. 지방 소도시와 시골을 배경으로 펜싱소녀가 좀비들을 지키는 것이다.
좀비를 죽이지 않고 지킨다는 발상은 나름 여기저기서 시도되고 있는 소재이긴 하다. 국산 인디영화인 이웃집 좀비 3번째 에피소드인 <뼈를 깎는 사랑> 같은 경우가 대표적이다. 영화와 차이점이 있다면 소설은 대도시가 아닌 시골이고, 지키는 사람이 많다는 점을 들 수 있다. 또, 대체로 이런 상황이면 갈등이나 극단적인 상황으로 이어지지만, 이 소설은 거의 좀비가 들어간 성장물 같은 느낌이다.
나름 고증이 탄탄한 농사방법과 함께 나타나는 시골풍경과 소녀의 일상을 보면 그 동안 보았던 소설이나 영화에서 봤던 좀비 아포칼립스가 맞나 싶을 정도로 뭔가 잔잔한 느낌이다. 이렇게 좀비를 격리 시킬 수도 있고, 안전하게 관리할 수도 있는데 무조건 죽이는게 답이라고 생각한게 잘못이었나 생각이 들 정도다. 물론 시골동네라는 환경적인 이점이나 기발한 펜싱 응용법이라는 주인공만의 특성이 만들어낸 모습이라 할 수 있다. 그렇지만 꼭 죽여야 한다는 의문은 여전히 남는다.
사실 좀비는 어디서 나오든 죽이고 보는 존재나 다름 없기는 하다. 게다가 세상이 망하면 가망이 없다는 생각에 차라리 죽이는게 속 편하다는 자기합리화로 나름의 설명을 하기도 한다. 희망이 없다면 무슨 일이든 일어나고도 남을 것이다. 하지만 정말 최소한의 가능성이 있는 상황이라면. 그것조차 생각해보지 않고 최선이라 여겨도 되는 것일까. 할 수 있는데까지 해보고 나서 최선이라고 판단하는 게 더 좋은 선택일지도 모르는데. 그 동안 좀비소설하면 무조건 절망, 죽음을 떠올렸는데 지금 보면 그게 편견이었던 것이다.
소중한 것은 없을 때 가치를 알게 된다는 말이 있다. 대체로 죽음 이후에 알게 되는데 좀비는 그걸 역설적인 상황으로 만든다.
죽었지만 죽은 것이 아니다. 죽었어도 다시 살아날 수 있다. 죽었지만 곁에 있다.
비록 세상으로부터의 고립이지만 소중한 것은 곁에 있으니 이만한 의미와 성장을 이룰 수 있는 상황이 또 있을까. 모두를 피하고 싶고 불만스러운 세상이 어느 순간 나를 부르지 않는다면 일시적으로 편해지기는 할 것이다. 하지만 결국에는 누군가 나를 불러주었으면 하는 때가 오고 만다. 그때가 됐을 때면 이미 많은 시간이 흘러 기회를 놓치고 후회하는 상황이 벌어질 수도 있다. 그런 불상사가 발생하는 걸 대비라도 한 것일까. 원나에게는 나름 빠르고 의미있게 고립으로 벗어날 기회가 찾아온 것이라고 본다.